< -- 한 호흡 가다듬을 틈이 없다. -- >
선도일은 어리 공방의 가정부가 되었다.
사실은 세진을 밀착 감시하기 위해서 남은 것이었고, 명목은 근접 경호였다.
하지만 지금 세진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나설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세진의 배후에 있는 벗에 대해서 밝혀낼 수 없다면 세진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선도일이 세진을 경호할 일은 없는 것이다. 결국 선도일은 세진의 어리 공방에서 가사 도우미 역할을 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세진은 선도일의 잔류에 별 불만이 없었다. 도일은 음식 솜씨가 매우 좋았고 집안일도 꼼꼼하게 잘 했다.
"뭘 그렇게 봅니까? 이번에 새로 택배로 온 거죠? 그 책."
똑! 까똑! [ 맞습니다. 인도의 신화와 전설, 민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담은 책이라고 해서 주문을 한 겁니다. 그런데 조금 부실합니다.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는 것 같고 말입니다]
"그런 쪽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요즈음 취미를 붙인 겁니까? 책을 보는 시간이 많으시군요."
까똑! 까똑! [원래 전공이 이쪽입니다. 신화나 전설 같은 걸 다루는 쪽이죠. 그리고 지금은 그냥 취미입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요.]
"아, 그렇군요. 그럼 전 또 들어가 보겠습니다."
도일은 고개를 끄덕였고, 세진은 어리의 방으로 향했다.
요즘도 세진은 김혜인 박사의 주문을 받아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미니어처 주문을 꾸준히 받아서 제작 판매를 하는 중이었다.
이전 생활로 돌아간 듯 살고 있는 것이지만 아직 세진은 같은 마을에 있는 선정의 집을 볼 때마다 눈길을 피하게 된다.
그래서 서울에 건물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동안 모은 돈으로 건물을 하나 살 생각으로 괜찮은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선정을 떠올리는 내골에서 계속 살기는 싫은 세진이었다.
= 있잖아요. 세진님.
"응? 뭐가?"
어리는 어리 앵무의 입을 통해서 주로 이야기를 한다.
= 이거 보세요. 세진은 어리의 말에 어리의 발밑에 있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거기엔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도쿄 괴담이란 것이었다.
도쿄의 다리가 끊긴 이후로 곳곳에서 이상한 괴물을 봤다는 목격담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생긴 것이 갓파, 혹은 하동을 닮았다고 목격자들이 입을 모은 다는 소식이었다.
세진은 그걸 보다가 거실로 나갔다.
"저기 도일씨, 이거 봤어요?"
세진은 도쿄 괴담이 실린 화면을 도일에게 보여줬다.
까똑! 까똑! [하동이나 갓파는 지방에 따라서 서도 다르다고 하기도 하고 같다고 하기도 하는 물귀신, 혹은 정령, 신 등으로 불립니다.
음, 머리에 나뭇잎이나 그릇을 달고 있고, 그것이 항상 물을 흘려서 몸이 마르지 않게 한다고 하는데 그게 마르면 죽는다고 합니다. 요괴, 귀신, 정령, 신 등,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좋은 쪽으로 보기도 하고 나쁜 쪽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대략 정리하면 두려움 때문에 섬기면서 적당히 제물을 주고 달래서 서로 이익을 얻는 관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쿄에 이런 것들이 잔뜩 나타났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까똑! 까똑! [뭐라 단정하긴 어렵습니다만 저희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들이 실제로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경험담에 의하면 이것들은 잡아도 결국 몸이 사라지기 때문에 증거를 댈 수가 없어서 그저 환상이나 헛것으로 치부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기껏 포획을 해도 죽어서 사라지는 경우가 전부니까요.]
"진짜라고 믿는군요. 도일씨는."
까똑! 까똑! [신화와 전설은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팍팍한 세상에서 그런 판타지를 믿는 것은 활력소가 됩니다. 그래서 그런 거죠.]
세진은 도일이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개인사까지 들춰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다시 어리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건 좀 그러네. 이게 정말로 이렇게 자주 목격이 되고 있으면 거짓은 아니라는 말이 되는데 말이지."
= 세진님.
지금 생각하시는 거, 그거죠? 에테르 기반 몬스터요.
"그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죽이면 시체가 사라지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갑자기 도쿄에 나타난것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야."
= 그거 세진님 때문 아닐까요?
"응?"
= 에테르를 많이 쓰셨잖아요. 거기다가 다리를 끊어 놓는다고 강이나 하천 지역에서 특히 많이 쓰셨죠. 그래서 그 에테르에 반응해서 그것들이 나온 것이 아닐까요?
"그럼 그 전에는 어디 있었는데?"
= 음... 테멜일까요?
"테멜?"
= 그럼 이해가 되잖아요. 테멜에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볼 수가 없었죠. 거기다가 테멜은 에테르를 가졌거나 에테르에 대한 저항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반응을 하니까 그 동안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번에 세진님 때문에 그 지역의 에테르가 크게 흔들리면서 테멜에 있던 몬스터가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세진은 어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지금 지구에 에테르가 깔려 있는 정도를 생각하면 몬스터가 제법 많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럼 어딘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고, 그 가능성이 높은 것은 테멜이었다.
세진은 자신의 행동이 에테르 기반 몬스터들이 세상에 등장하는 단초가 된 것이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일본에서 등장한 것은 어쩐지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도 도쿄 괴담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구체화되고 군경의 타격에 몇 마리가 잡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그것들의 반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생겼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 하동, 혹은 갓파라고 하는 것의 모습이 화면에 담겨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어린아이처럼 생겼다고 했지만 체구가 작은 것이지 귀여운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머리 부분에 특이하게 생긴 문신 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이 물그릇이나 나뭇잎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머리와 배의 크기가 비슷할 정도로 머리가 크고 팔과 다리는 매우 가늘었다.
몸에 악어나 뱀같은 비늘이 있는 듯이 보였고 이빨은 상어 이빨을 연상하게 했다.
그런 괴물이 물에서 뛰쳐나와 자위대 군인 하나의 얼굴과 목을 물어뜯는 장면이 나오고 뒤이어 군인들의 소총 공격에 상처를 입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상처가 많이 나은 녀석이 다시 물속에서 솟구쳐서 자위대 군인을 공격하다가 결국에는 수백 발의 총알에 걸레가 되다시피 하는 것이 영상의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이 영상이 촬영된 직후에 괴물의 사체가 증발해 버렸다고 모든 목격자들이 입을 모아서 증언하는 여러 내용이 이어졌다.
"머리에 그거 몬스터 패턴이었어. 그리고 죽어서 에테르로 돌아가는 승화현상까지. 결국 그 놈은 에테르 기반 생명체야. 뭐 보아하니 하급이야. 빨간색 등급 정도 될 것 같은데 그보다 좀 약한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에테르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기본적으로 에테르가 없이는 타격을 주기 어려운데 일반 소총으로 잡았다는 것은 이곳에 에테르 기반 생명체가 저쪽 데블 플레인의 그것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
= 그런가요? 우웅. 어째서요?
어리 앵무는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인다.
이제는 앵무새의 모습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세진은 그런 어리 앵무의 깃털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에테르가 조금 다르게 작용을하고 있어. 이곳 지구하고 그쪽 데블 플레인하고 말이야. 여기선 생체 에테르가 방어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 전에 내가 곤도라는 놈에게 총을 맞았을 때에도 생체 에테르를 가진 상태로 보기엔 상처가 크게 났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야. 지구에서는 생체 에테르가 지닌 방어력이 떨어져. 같은 수준의 에테르로도 데블 플레인에서 훨씬 강한 방어력을 보이는 것 같아."
= 그러니까 에테르 기반 생명체를 일반적인 무기로 잡을 수 있단 말이네요? 그거 참 다행이에요.
네에.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지. 그래봐야 주황색 등급까지나 소총으로 잡을까?
그 이상이면 어렵겠지? 하긴 나도 노란색 등급은 데블 플레인에서도 아직 사냥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 뭐라 하기도 어렵군."
= 우웅. 그런데 어떻게 해요? 저기 저렇게 난리가 나서?
"내가 에테르를 사용한 것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에테르가 안정되면 문제도 사라지겠지. 저것들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몰라도 그 입구가 닫히면 못 나올 테니까 말이야."
= 그랬으면 좋겠어요. 몬스터가 설치는 건 싫어욧.
"그건 나도 바라는 바다."
세진은 그곳이 일본이건 어디건 에테르 기반 생명체가 날뛰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물론 속으로 고소하다는 느낌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세상이 갓파 때문에 시끄러운 속에서도 세진은 제 할 일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골의 어리 공방 현판이 떨어지는 날이 왔다.
세진이 이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선정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세진은 이사를 가야 했고, 선정의 가족들은 그런 세진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들도 뉴스를 통해서 선정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세진과 세진의 친구들이 일본과 정도광을 비롯한 친일 인사들에게 한 복수를 보고 들으면서 한을 풀었다고 했다.
그리고 멀리 멀리 이사 가서 선정을 잊고 잘 살라며 손을 잡아 줬다.
세진은 종로의 조금 후미진 곳에 5층 건물을 사고, 그곳에 어리 공방의 현판을 달았다.1층의 절반이 주차장이고 나머지 절반이 살림집이었다.
2층은 공방으로 사용하고 남은 세 개 층은 비워뒀다.
도일은 낭비라고 임대를 주거나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세진은 돈이 궁하지 않았다.
요즘도 심심하면 김혜인 박사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갖가지 물건을 만들고 있었고, 미니어처도 끊이지 않고 판매가 되고 있었다. 지금도 쓸 곳이 없어서 쌓이고 있는 돈 때문에, 번거롭게 사람들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세진이었다.
세진은 특히 2층은 따로 공사를 해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을 시켰다. 창도 없애고, 승강기 문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열리도록 폐쇄했다.
오로지 1층 어리의 방에서만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고 거기에 이전 공방에서 쓰던 기계들을 한쪽에 몰아서 설치했다. 2층에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함께 사는 선도일도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그런 세진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공방으로 침입할 길이 없어서 궁금증만 더하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세진은 지하창고에서 얻은 새로운 지식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전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던 마법과 마법진에 대한 석판을 이제는 조금이라도 활용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정신 능력이 오르면서 향상된 기억력과 연산 능력이 그런 시도가 가능하게 된 배경이었다.
= 이거 정확한 거예요? 정말요?
"그렇다니까?"
= 하지만 이렇게 해도 반응이 없잖아요.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다구요. 제대로 그린 거 맞아요?
"그래. 내가 봐도 어리가 잘못 한 것도 없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이럴까? 뭐가 문제지?"
세진과 앵무 어리는 한 장의 종이를 앞에 두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세진이 기본적인 마법진을 하나 그려서 그것으로 실험을 하는 중인데 마법진이 작동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에테르를 여기에 흐르게 하면 이게 무슨 반응을 일으켜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아무렇지도 않을까?"
= 그 전에 세진님.
"응?"
= 이거 에테르가 흐르긴 하는 건가요? 그 석판에 이런 거 만들 때에 종이에 펜으로 그려도 된다고 했어요? 뭔가 다른 특별한 재료를 쓰거나 하지는 않아요?
"...!"
세진은 어리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냥 평범한 종이에 펜으로 그린 마법진, 거기에 에테르를 부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간단한 것을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어리가 이야기를 해 줘서. 세진은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 작품 후기 ============================두 번째... 일본 그냥 안 지나가죠... 몬스터 등장 첫 스테이지 당첨입니다... 쿨럭14/
14 쪽
< -- 한
호흡 가다듬을 틈이 없다. -- >
세진은 공방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간혹 보여주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들고 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세진을 가까이에서 감시하는 이들이 없어서 세진이 팀원들에게 어떻게 부품을 조달받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이들은 근처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산책 삼아 나가는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세진은 방심하지 않고 부품 조달을 하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외출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간혹 변장을 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에 다녀오는 것이 외출의 전부인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면서 새로 취미를 붙인 마법진 연구에 재미를 붙이고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마법진 연구에는 에테르가 무척 많이 소비되었다.
어리는 에테르 저장 장치에서 에테르가 소비될 때마다 제 살이 떼어지는 듯이 난리를 쳤다. 다른 것에는 별로 집착이 없는 어리가 오직 한 가지 에테르에 대해서는 엄청 집착을 보여서 세진은 난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 자꾸 이러면 곤란하지. 내가 또 가서 에텔론을 벌어야 한단 말이냐?"
- 하지만 세진님은 어리를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는 거라구욧. 원래 가장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거니까, 예쁜 어리는 당연히 세진님이 건사해야 하는 거죠.
"너도 알겠지만 거기가 좀 위험한 곳이거든?
그리고 이번에 가면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한 번 시작하면 그 놈들을 뿌리 뽑을 때까지는 거기 있어야 할 거고 말이다."
- 상관없잖아요. 여기 시간이 흐르는 것도 아니고, 세진님이 가셔서 새로 생체에테르바디 만드시고 활동을 하시다가 오셔도 아무 문제없어요.
"넌 같이 못 가는데?"
- 왜 못 가요?
"생체에테르바디로는 게이트를 열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너를 테멜로 데리고 올 수가 없게 되는 거지."
- 테멜 목걸이는 가지고 갈 수 있다면서요?
"그렇지. 테멜 목걸이는 원래가 그 데블 플레인 물건이라서 다시 가지고 가는 것이 가능한 거지."
-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제가 왜 못가요?
저는 이곳에서 먼저 세진님 테멜에 들어가 있으면 되는 거죠. 거기서 뭐하러 게이트를 열어요?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세진은 손뼉을 치며 반색을 했다.
- 히잉. 너무해요. 세지님.
"또 뭐가?"
- 세진님이 일부러 그러는 거 알아요. 거기 다시 가고 싶지 않으니까 자꾸 그러는 거죠? 가면 또 오래 있다가 와야 할 거 같으니까 미루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를 데리고 갈 방법이나 그런 것도 제대로 고민 안 해본 거고요. 맞죠?
"어리야. 사실 나도 좀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니?"
- 사람은 한가해지면 병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항상 바쁜 것이 좋데요.
네네. 마자요.
어리는 세진의 말에 동의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세진은 아직 에테르 저장 장치에 남은 에테르가 많으니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어리는 조금이라도 에테르가 낭비되는 것을 못 견뎌 하니 자꾸 다투게 된다.
"그럼 말이다 어리야."
- 으음? 또 어떤 말로 저를 꼬시려구요? 저 어린 아이 아니에요.
"도쿄에서 나타난 그 녀석들 있지? 갓파라는 것들."
- 네에.
어리는 세진이 전혀 엉뚱한 말을 시작하자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것들도 코어를 주겠지? 에테르 코어?"
- 네에! 맞아요. 코어 줄 거예요. 거기다가 그것들 두목을 잡으면 화이트 코어도 츄릅, 넵 화이트 코어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에테르 코어라는 말에 어리의 반응이 극명하게 변했다.
심지어는 흘러내린 침을 삼키는 효과음까지 내면서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리도 그런 몬스터들 잡으러 가 볼까? 그럼 굳이 데블 플레인에 갈 필요도 없잖아."
- 흐응, 흐응. 저는 바로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에요. 몇 번이나 세진님께 지구에도 몬스터가 있을 테니까 찾아보자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세진님이 위험하실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이젠 세진님도 짱쎈돌이가 되셨으니까 하급 몬스터들을 겁내지 않아도 될 것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사냥을 가실 수 있는 것이에요.
세진은 어리가 간혹 말을 하다 만 이유가 거기에 있었는가 싶었다.
어리는 가끔씩 말을 하다 마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하다만 말에 지구에서 몬스터를 잡아서 코어를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을 넣어보면 대충 이야기가 맞아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내 생각을 하느라고 위험한 짓을 하자고 하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었던 거로군. 그나저나 짱쎈돌이는 또 뭐야?'
세진은 그래도 자신을 그렇게 배려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어리가 한층 예뻐 보였다.
"좋아. 그럼 우리도 여행을 떠나자."
- 여행이요?
"그래. 여행. 몬스터를 찾아 가야 할 거 아니냐."
- 어디로 가실 건데요? 설마 일본으로 가실 건가요?
"아무래도 그 쪽이 좋지 않을까?"
- 질색을 할 텐데요? 세진님 가신다고 하면 경기를 일으킬지도 몰라요. 아니 입국 허락도 안 나올 거예요. 참아 주세요. 세진님은 일본에서는 악의 축 중에 하나라고요.
"응? 악의 축?"
- 테러 단체 벗(友)의 대변인!
뭐 그런 거잖아요. 외부에 드러나 있는 유일한 벗 소속의 인물.
"나? 내가 왜?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일본 일이나 그런 건 모두 벗에서 한 일이지. 내가 한 게 아니거든?"
세진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며 우겼지만 생각해 보니, 일본에서 입국 거부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을 것 같았다.
- 세진님도 아시죠? 안 될 거라는 건?
"그럼 어쩌지?"
세진은 이쯤에서 인정하기로 했다.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 흐응, 아쉽네요. 가서 에테르 코어를 얻어 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차라리 게슈너 박으로 가시는 것은 어떨까요?
"난 또 실종 되고?"
- 실종이라, 그것도 좀 문제가 있긴 하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선도일을 꼬셔볼까? 그 녀석 갓파 구경 가자고 하면 촐래촐래 따라 올 것 같은데 말이지."
- 그래서 게슈너 박의 정체를 알려 주시려고요?
"그건 안 되겠지? 그것 참 어쩐다?"
세진은 고민을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 그럼요오.
그런데 어리가 뭔가 망설이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응? 뭐?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 저기, 여기서도 몬스터가 있는 곳을 찾아보면 안 될까요?
"여기? 그래서 일본 가자고 하는 거잖아."
- 아니, 지구 말고요. 여기 한국이요.
"한국? 한국에서?"
세진은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 땅에도 몬스터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숨어 있는 놈들을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테멜도 에테르의 소용돌이가 있긴 하지만 디버프 기반 에테르에도 감지가 안 된다.
그럼 지구에 숨어 있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당장에 몬스터가 숨어 있다고 해도 찾아낼 방법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 그러니까 여기, 한국에도 몬스터들 숨어 있지 않을까요?
어리는 그런 속도 모르게 한국에 있을 몬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렇기는 하지."
- 그럼요. 일본에서 갓파라고 불리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뭔가 다르게 불리는 이름이 있지 않을까요?
"있기야 하겠지. 일본 갓파 같은 거라면, 한국에선 도깨비?
몽달귀신, 손각시? 물귀신? 이무기나 영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이 있겠네."
- 그럼 그것들이 나타난다는 곳에 가면 뭐가 있지 않을까요? 네?
"그럴 수도 있지만 안 된다. 어리야."
- 히잉, 왜요? 일본은 못 가지만 여기선 찾을 수 있잖아요.
"당장 중요한 건, 찾을 방법이 없다는 거고. 찾아도 문제가 크다는 거다.
- 찾았는데 문제가 왜 생겨요? 아, 너무 등급이 높은 거면 곤란하다 그런 건가요?
어리가 이번에도 헛다리를 짚었다.
"아니 그게 아냐 어리야. 몬스터를 찾아서 어쩌라고. 그것들을 도쿄처럼 풀어 놓으라고? 그것들이 설치면 사람들이 얼마나 다칠지 모르는데? 그건 좀 아니지 않냐? 너 좋아하는 코어를 얻자고 그런 사고를 칠 수는 없지."
세진은 몬스터가 숨은 곳을 발견한다고 해도 도쿄처럼 몬스터들이 풀려나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게 그런 건가요? 그런데 일본은 왜요?
"그거야 그것들은 좀 당해도 내가 별로 죄책감 같은 것은 안 들 것 같으니까 그렇지."
- 세진님 은근히 사악해요.
"뭐?"
- 아니어요. 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에베베베베, 안 들려요.
"도일씨, 혹시 한국의 신화나 전설, 민담에 등장하는 괴물이나 요괴, 영물, 귀신, 도깨비 뭐 이런 것들을 좀 알아볼 수 있을까?"
세진이 어리의 방에서 나오며 한참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도일에게 물었다.
그런데 도일이 손짓으로 세진을 부르며 그가 보고 있던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세진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다가가 화면을 봤다.
"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세진은 화면을 보고 깜짝 놀라서 도일에게 물었고, 도일은 몇 개의 인터넷 창을 띄워서 노트북을 세진에게 내밀었다.
세진은 그 화면들을 살피면서 사건의 흐름을 짐작했다.
도일이 보고 있었던 것은 도쿄의 갓파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에테르가 안정되면 갓파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세진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모양이었다.
갓파가 떼로 나타나 자위대와 충돌을 했다는 소식이 있는가 하면, 강의 상류에서 마을 하나가 습격을 받아서 많은 사상자가 생겼고, 도쿄 시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갓파의 습격으로 인한 피해는 집계가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갓파 중에서도 강력한 개체가 있어서 소총으로도 처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고, 에테르 코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갓파를 죽이면 갓파의 사체가 승화되면서 그 자리에 작은 구슬이 남는 경우가 있다면서 에테르 코어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까똑! 까똑! [영물의 내단이거나 여의주 종류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 구슬을 연구하겠다고 지금 세계에서 그걸 구하기 위해서 난리랍니다.]도일이 또 다른 페이지를 열어 보이며 그렇게 설명을 한다. 세진은 화면 하나하나를 넘겨가며 내용을 확인했다.
모두가 외신을 다시 번역한 것이라 흡족하진 못했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부족형 몬스터였어.
그리고 그 중에 등급이 높은 것도 끼어 있는 등급 혼합형인 거야. 꽤나 독특한 조합인데, 다른 종류는 아직 안 보이는 걸로 봐서 갓파라는 저 몬스터 부족만 뛰쳐나온 거거나, 저것들만 사는 곳이 열린 거라고 봐야겠지.'
"이거 어디서 주로 나오는지 아직 모르는 겁니까? 어딘가에서 기어 나오고 있을 테니 입구를 찾아야 할 거 아닙니까?"
까똑! 까똑! [그게 물 속이랍니다. 그것도 칸다 강처럼 작은 곳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스미다 강처럼 큰 곳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어딘지는 알 수 없고, 혹시 도쿄만에서 나와서 강을 따라 오는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답니다.]
"정확히 어디서 나오는지 모른다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그것들이 살고 있는 곳이 여러 곳일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까?"
까똑! 까똑! [그거야 저도 모르지요. 그런 자세한 소식은 안 들어옵니다.
그나저나 세진씨가 왜 갓파에 관심을 가지십니까? 뭐 아는 거라고 있습니까?]
"이거 보라고 보여주신 건 도일씹니다. 제가 보자고 한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한국 요괴 뭐 그런 책은?"
까똑! 까똑!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도일은 곧바로 방으로 가서 두 권의 책을 세진에게 가져다주었다.
한국의 신화전설민담에 대해서 풀어 놓은 책과 삽화를 곁드린 한국의 요수, 요괴, 신령, 귀신을 다룬 책이었다. 세진은 책을 들고 어리의 방으로 향했고, 도일은 인터넷에서 갓파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찾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 작품 후기 ============================세 편...
목표 달성.. 그나저나 몬스터 사태의 원흉은 세진이었던? 쿠쿠쿠... 전 지구적인 재앙의 원인이 세진이라면... 떱... 하하핫. 뭐 어쩔 수 없는... 여기까지.. 내일 또 뵙지요.. 행복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