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54화 (54/298)

< -- 벗(友), 일본 도쿄를 강타하다 -- >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그러시겠지.

우릴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들 그게 필요해서 오거든요."

손님을 맞은 브로커는 그기 친절한 태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사내는 신경쓰지 않고 할 말을 한다.

"이상이 없는 걸로, 여권까지 있어야 하고, 공항을 통한 출입국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에또 그러시면 아무래도 내국인으론 어렵고, 교포나 그런 쪽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만?"

"외국 교포가 더 쉽다는 겁니까?"

"2세나 3세대 정도로 하고 여기서 분실 신고를 내면,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그쪽 나라에 문의를 한단 말씀이지요. 그럼 그 문의에 대한 답변만 이쪽에서 가로채서 해 줄 수 있으면 우리가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신분증을 만들어 준다는 말씀이지요. 그것도 나라에서 말입니다. 물론 입국 흔적을 남겨야 하는 건 기본이지요."

"그렇게 해서 신분증이 내 손에 들어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임시 신분증은 금방 되는데, 정식으로 여권에다가 뭐 그런 것까지 하려면 준비기간 합쳐서 열흘은 주셔야합니다만."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가격은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요? 그게 공식적으로 받는 금액이라 디씨는 해드릴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 신분증에 문제가 생기면..."

"하하핫, 설마 우릴 못 믿는 겁니까? 그럼 거래 자체를 하지 마셔야지요."

"당신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믿고 또 나를 믿지."

그는 말과 함께 앉은 자리에서 앞의 책상 모서리를 잡고 비틀었다.

드드드득.

"엇? 아니?"

상담을 하고 있던 넉넉한 인상의 사내, 떡배는 눈앞에서 자신의 사무실 비품인 책상 모서리가 뜯겨 나가는 것을 보고 경악성을 터뜨린다.

"이런 건 장난이지. 서로 약속을 지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그래서 나도 너희에게 줄 돈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은 거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사내는 그 동안 쓰던 존대를 던져 버렸다.

그럼에도 신분증 브로커 노릇을하는 떡배는 그런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무척 위험한 인물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 그럼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사진은?"

"여기서 그냥 찍지. 그 정도는 준비 되어 있지 않나?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찍어가서 알아서 뽑아."

"있습니다. 네. 사진기도 있고, 다 있습니다.

자 이리로. 요쪽으로 서시면 그 벽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이 딱 어울립니다. 네. 거기로. 야! 뭣들 하냐? 사진기! 사진기 가져오고 찍새, 새끼야 뭐 해?"

떡배가 사내를 안내하며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알아서 기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사내는 떡배가 안내한 벽 앞에 서서 모자와 썬그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선이 굵은 미남의 얼굴이 드러났다.

"딱입니다.

외국 교포 3세. 누가 봐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떡배가 엄지를 치켜 올리며 감탄을 했다.

사내는 떡배가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오똑한 콧날과 짙은 눈썹, 거기에 한국인엔 좀처럼 보기 힘든 구레나룻까지 멋지게나 있고, 머리카락도 간간이 옅은 갈색이 섞여 있는 갈색 머리다. 떡배는 금발을 닮은 그 머리카락이 염색이 아니란 것을 한 눈에 알아봤다.

"이름은 게슈너 박으로 하지. 나머진 알아서 하고."

모든 준비가 끝나고 사내는 떡배에게 그렇게 자신이 쓸 이름을 알려주고 곧바로 떡배의 사무실을 나섰다.

떡배는 부하들에게 사내의 뒤를 캐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사내에게선 위험한 냄새가 났다. 오랜 세월 뒷골목에서 신분증 브로커를 하면서 터득한 생존 본능이 엉뚱한 짓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사내는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탄 후에 떡배의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돌아와 여관을 잡았다.

"신분증이 없으니 피곤하군. 그래도 이번에 제대로 만들면 두고두고 쓸 수 있겠지."

세진은 여관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걸터앉아서 중얼거렸다.

지금 세진의 겉모습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진이 지하창고에서 테멜로 돌아가는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서 당황하다가 듀풀렉의 에테르가 모두 소진된 것을 발견한 것은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듀풀렉은 언제나 완전히 충전시켜두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듀풀렉의 에테르 150이 모두 소진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 충전을 완료하고 테멜로 게이트를 열었을 때, 세진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테멜로 게이트를 열 때에 충전되어 있던 에테르가 모두 소비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한 번 이동에 15에텔론 정도가 소비되었는데 테멜로 이동하는 데에는 150이나 필요하니 듀풀렉이 방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원인을 알아내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테멜로 돌아와서 다시 어리를 테멜의 중앙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세진은 테멜을 나와서 헌터룸으로 돌아와 다시 지구로 귀환을 했는데, 귀환 전에 전신 성형을 받았다.

몸의 유전형질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겨우 겉모습을 바꾸는 것은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 세진은 지금의 모습으로 금방 변신을 했다. 그리고 이후에 간단한 변신은 어리의 능력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감쌀 마스크를 만들어서 쓰기로 했다.

지금의 얼굴로 일본으로 건너 간 다음에는 다른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일을 벌일 생각인 것이다.

세진은 지구에 오자마자 부모님이 계시는 마을에 다녀왔다.

멀리서 부모님이 잘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 서대철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분간 숨어 지낼 것이니 찾을 생각 하지 말고, 정말 필요한 주문이 있으면 비공개로 홈페이지에 주문서를 남기라고 했다.

언제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서대철과의 끈은 이어두기로 한 것이다.

그런 세진에게 서대철은 선도일은 계속해서 어리공방에 남겨 둘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했다. 만약 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면 선도일에게 연락을 하라는 말이었다.

세진은 지금 당장은 몰라도 혹시 모를 나중을 생각해서 선도일이 자신의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어차피 세진이 찾아가지 않으면 그쪽에서는 세진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빈 집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 정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선정을 보낸 날로부터 겨우 열흘이 지났을 뿐이다.

세진은 잠시 시간의 괴리를 느끼다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그곳은 이곳과 다르다.

거긴 그냥 꿈이라 생각하자. 꿈.'세진은 씻지도 않고 옷도 그대로 입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여관 전체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른 시간부터 방아를 찧은 젊은 남녀가 있는가 하면, 구석진 방에서는 소주병을 굴리며 잠들어 있는 사내의 뒤척임이 느껴진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수많은 군상들이 여관방을 채울 것이다.

세진은 디버프 에테르의 범위를 좁혀서 방문 앞쪽의 복도에만 국한시켜 놓았다.

그리고 일찍 잠을 청했다. 이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을 자면서도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흩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처럼 범위를 고정해 놓으면 잠자는 중에도 유지가 되는 것이다.

떡배는 세진의 우려와는 달리 위험한 장난을 치지 않았다.

세진은 여관에 머무는 열흘 동안 일본어 회화를 배웠다. 책과 인터넷을 병행해서 어느 정도 말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는데 고작 열흘 정도가 걸린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정신 능력이 익스퍼트에 이른 세진에겐 이제 가능한 일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일어 회화에 신경을 쓰며 시간을 보내면서 세진은 일본의 주요 인물들을 하나씩 알아갔다.

그 중에는 곤도가 언급한 텐헤이 소속의 유명인사도 들어 있었다.

세진은 그들에게 지옥을 보여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세진은 떡배가 전해 준 따끈따끈한 게슈너 박의 신분증으로 일본행 배를 탔다.

부산항에서 떠나는 배를 타는데 세진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전형적인 트레커 모습을 하고 있는 세진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던 것이다.

세진은 일본의 혼슈라 부르는 본토에 가야 했다. 때문에 그가 선택한 배는 한 주에 세 번 운항하는 오사카행 배였고, 열아홉 시간의 항해 끝에 오사카에 닿을 수 있었다.

거기서 다시 도쿄까지는 고속열차 신칸센을 타고 세 시간이 걸렸다.

이리 저리 보낸 시간을 합해서 하루하고도 몇 시간이 더 걸려서 부산에서 도쿄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제일 먼저 머리에 든것이 많은 놈이 필요하지. 한국 담당이라는 놈이 명령을 내렸다고? 그 놈부터 찾아야지. 차근차근."

세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겨 시부야의 허름한 유스호스텔을 찾아 거처를 정했다.

하지만 다음 날, 세진은 배낭 여행을 한다면서 숙소를 나왔고, 그대로 첫 목표를 찾아갔다.

곤도가 알려준 윗선 중에서 내각 조사실에 소속된 사람이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신분이 있어서 곤도도 알고 있었던 인물인데, 그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보통은 식당 주인이 음식을 하거나 관리를 하기 마련이지만 이 사람은 그런 식당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서 사업가 행세를 하며 지내는 인물이었다.

오노 가이사키는 오늘은 평온한 하루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며칠 사이에 한국에서 있었던 작전 실패로 조사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한국 담당자는 다른 나라의 담당자들과 의논도 하지 않고 일을 벌인 것에 대해서 심한 질책을 받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작전을 벌여서는 안 되는 주요 인물인 것도 모르고 일을 벌이다가 한국 담당 요원 한 팀이 녹아버렸으니 질책 정도에서 끝난 것도 다행이라고 할 일이다.

오노 가이사키도 곤도의 팀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죄도 없이 곁다리로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일은 끝났다. 곤도 팀, 다섯 명이 모두 죽었지만 한국이나 미국에서 그들에 대해서 어떤 항의나 움직임도 없었다.

비록 여자 하나가 죽기는 했지만 중요한 목표는 목숨을 건졌고, 그 정도면 한국에서도 요원 보호에 성공하고 이쪽 다섯을 죽였으니 남는 장사로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고 조사실에선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이쪽의 도발로 저쪽 요원이 다치거나 죽었다면 한국에 나가 있는 모든 요원들은 깊이 잠수를 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고 일이 유야무야 되는 상황이어서 조사실에서도 한숨을 돌린 상황이었다.

오노 가이사키는 사무실 책상에서 그 동안 등한시 했던 식당 운영에 관한 서류들을 살펴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즐겼다.

꽝!

"큰일 났습니다."

그런데 오노 가이사키의 평안은 사무실 문을 박차듯 들어온 부하직원에 의해서 산산이 깨졌다.

"뭐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 예의 없이 설치나?"

"지, 지금. 에도가와점에 큰 화재가 났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화재?"

"그렇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젠장 앞장 서!"

오노 가이사키에게 에도가와의 식당은 그의 식당 1호점으로 출세의 출발점이자 상징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식당에 불이 났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급하게 운전기사를 다그쳐서 동경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서 그의 핸드폰과 비서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지금 급한데?"

"여보세요."

그와 비서가 통화를 시작했지만 거의 동시에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뭐야? 간나나 점에 폭탄 테러? 그게 무슨 말이야?"

"폭탄이라니? 도쿄에서 폭탄이 터져요?"

오노 가이사키와 그 비서에게 전해진 것은 같은 소식이었다. 간나나 거리에 있는 오노 가이사키의 식당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주변까지 불바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동쪽에서 시작한 식당 파괴는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오노 가이사키의 식당이 그 대상이었다.

"뭐냐? 도대체 누가 뭣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오노 가이사키가 갈 곳을 잃은 차를 세우고 도로에 내려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차를 걷어찼다.

그의 평온은 이미 까마득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도쿄는 전대미문의 테러에 공황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가이사키... 원래는 가이삿끼에서 변형시킨 이름입니다. 아시죠?

가이삿끼... 음... 개새끼의 고어랍니다. 우리나라 말이죠. 오노... 이것도... 꽤나 신경이 거슬리는 이름이고 거기에 가이삿끼까지... 쿠쿠쿠.. 나름 신경 쓴 엑스트라 이름이랍니다. 넵... 여하간... 오늘도 세 편으로 갑니다.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행복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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