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52화 (52/298)

< -- 기다려라 돌아가마 -- >

"이게 무슨 일이야!"

잠시 후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천을 뒤집어 쓴 두 사람이 석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이건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둘 중에 키가 큰 쪽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작은 키를 가진 쪽이 석실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해냈다.

"이 넷은 죽진 않았어. 하지만 이대로 두면 주겠군. 거기다가 후안 저건 너무 많이 망가졌는데? 살린다고 다시 써먹을 수 있을까 모르겠네. 그리고 저 놈은 죽었어. 보아하니 저 머리뼈 안에 들어 있는것은 물밖에 없을 거야. 그게 지금 저렇게 코와 귀로 흘러나오고 있는 거지."

작은 키는 세진이 완전히 죽었다고 결론을 냈고 후안은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회복 캡슐로도 안 된다는 건가?"

"그 회복 캡슐의 효력도 많이 떨어졌지. 하지만 온전한 효력이 있었다고 해도 저렇게 한꺼번에 뇌가 죽이 되어 버리면 도리가 없어. 저건 뇌가 다시 복구가 되어도 쓸모가 없는 백지 상태일 뿐이야. 그럼 그건 만들어진 몸뚱이나 다름이 없는 거지. 뭐 그것도 문제가 생긴 순간부터 회복 캡슐이 작동을 해야 하는 거지. 지금은 끝났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한꺼번에 다섯의 뇌에 충격을 줬어. 그걸 저 유저헌터 놈이 익히고 있었다는 거겠지. 아니면 그 동안 여기서 그걸 익히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는 말이고."

"독한 놈이군. 우리조차 느낄 수 없이 은밀하게 에테르를 사용하는 기술 중에 다수를 공격하는 것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알아봐야 할 문제로군. 그럼 이제 어쩌나?"

"몸뚱이가 남았으니 해부를 해서 나머지 조각들을 맞춰 봐야지. 저놈이 에테르를 몸 안에서 돌리는 그 특이한 방법을 완성하려면 말이야."

"그건 정말 신기하더군. 몸을 돌아온 에테르가 조금씩 양이 늘어나서 아랫배 안에 뭉쳐서 저장이 된다니 말이야. 저 놈 수준으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반만 되어도 라훌들이 리얼헌터가 되어서 유저헌터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 않나?"

"제대로 복원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되겠지. 아쉬워. 그냥 계속 두고 관찰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말이지."

"도망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좀 줄 걸 그랬나? 그럼 저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텐데? 쯧쯧쯔."

키가 큰 쪽이 진정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수도 있겠지. 우리의 존재를 알았다면 절망감밖엔 남지 않았을 테고."

"그럴까? 그런데 이것들은 어쩌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을 보며 큰 키가 말하자 작은 키는 잠시 말을 아꼈다. 그러다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입을 열었다.

"살려주지.

지금이라도 치료캡슐을 쓰면 살릴 수는 있겠어. 하지만 기억은 조금 잃겠군."

"그럼 부려먹긴 좀 더 편하겠군. 모르는 거야 가르치며 될 일이니까 말이지."

"그래. 그거지. 그래서 지금까지 그냥 뒀던 거고. 하나는 또 다른 용도로 써 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역시 어째 가만히 있는다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 있었구먼. 그럼 수고하게. 나는 일단 저거부터 가지고 가서 해부 준비를 해 두지."

큰 키가 세진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갈 때까지는 건드리지 말게. 잘못하면 귀한 재료가 못쓰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러자 키 작은 쪽이 큰 쪽에게 그렇게 경고를 했다.

"알았네. 의료 쪽이야 자네가 알지 내가 아나? 난 그저 구경이나 하지."

큰 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세진의 몸뚱이를 들고 석실을 나갔다.

남은 키 작은 이는 후안 등의 입에 회복 캡슐을 하나씩 넣어 주었다.

"쯧쯔.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쨌거나 다시 깨어나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아가들아. 알았지? 크크큿."

네 명의 입에 회복 캡슐을 넣으면서도 생명을 살리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말 잘 듣는 수족을 얻을 생각에 즐거워 보이는 보습이다.

"그럼 회복이 될 때까진 그냥 여기 있거라. 나는 볼 일이 있으니."

작은 키를 지닌 이는 대충 후안 등을 치료하고는 곧바로 세진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다른 육체 능력은 사용하지 못하고 그 에테르를 모으는 방법만 주로 사용했으니까 몸 안에 흔적이 남아 있을 거야.

그것만 제대로 밝혀 낼 수 있다면 놈의 비밀을 손에 쥘 수 있겠지. 흐흐흐."

- 깨어나셨군요. 테멜에 계셨습니까?

세진이 후안 패거리를 죽이고 스스로 자살을 시도한 후에 깨어난 곳은 헌터룸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진에게 우미는 가장 먼저 테멜에 있었는지를 물었다.

- 으아앙. 또, 또. 세진님 미워요. 얼마나 걱정을 했다고요. 우미도 세진님 상황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어리는, 어리는 정말 많이 걱정하고 있었어요. 흐흑, 이제 무사히 돌아오신 거죠? 네?

세진은 우미와 어리의 말에도 반응이 없이 한동안 의자에 누워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 놈들 안 죽었을 수도 있겠어. 머리에 모아 놓았던 에테르의 양이 좀 적었지. 후우, 우미. 내 상황을 알 수 없게 되고 얼마나 지났지? 시간이 말이야."

- 정확하게 163일입니다.

"정말 지긋지긋한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단 얼마 안 있었던 거군."

- 세진님 그게 얼마 안 되는 거라니요? 어리는 속이 시커멓게 타는 줄 알았다구욧.

"그래. 미안. 미안하다. 어리야. 하지만 그게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것은 아니잖니."

- 세진님, 테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세진님이 납치당한 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상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놈들이 내게서 에테르 로드 수련법을 빼앗고자 하더군. 그래서 그동안 고문을 당하고 있었지. 회복 캡슐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자살을 하고 빠져 나온 거야. 그런데 그 놈들을 죽이려고 했었는데 아마도 살았을 가능성이 높아. 엄청난 실력자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아마 살렸겠지. 같은 편인데."

- 그렇습니까?

우미는 그들이 헌터가 아니라 라훌이라 그런지 세진의 납치에 대해서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 고문이라니요? 세진님 고문 당하신 거예요? 어디? 어디 봐요.

하지만 어리는 세진이 고문을 당하다가 자살을 했다는 말에 깜짝 놀란 모양인지 횡설수설이다.

"어리야, 이 몸이 아니라 생체에테르바디였잖니. 이 몸을 본다고 고문 흔적이 보이겠냐?"

- 아, 그렇구나.

에헤헤헤. 맞아요. 그런 거였어요. 어리는 잠시 착각을 했어요.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어리가. 하지만 괜찮다. 덕분에 얻은 것도 있으니까 말이지. 그런데 여기 데블 플레인에도 원수가 생겼구나."

- 에? 원수요?

"나를 잡아서 테멜에 가두고 고문한 놈들 말이다.

라훌 독립군이라던가? 그런 놈들이 배후에 있었어.

후안 패거리는 그들의 사주를 받아서 나를 노린 거였지. 물론 놈들이 먼저 나에 대한 정보를 거기에 팔았지만."

- 그렇군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세진님. 어리는 세진님이 무사해서 너무 기뻐요.

"이번에 고통이 뼈에 사무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확실하게 알았으니 그런 경험을 한 놈이 복수를 하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도 보여 줘야지. 이제부터 데블 플레인에서는 라훌 독립군을 잡아 죽이는것이 내 목표가 될 거다."

- 또, 또 다시 가신다구요? 세진니임.

"그래. 가야지.

가긴 가는데 당장 생체에테르바디를 이용해서 가지는 않는다. 이 몸, 진짜 몸으로 먼저 다녀 올 거야."

- 우엑, 미쳤어요? 세진님 미친 거 같아요. 방금 자살했다고 하시면서 또 다시 거길 가요? 그런데 그것도 진짜 몸으로요?

어리가 깜짝 놀라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를 지른다.

- 권장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세진님.

거기에 우미도 말리고 나섰다. 관리자 입장에서도 본신으로 데블 플레인에 내려가는 것은 말려야 할 일인 것이다.

"걱정하지마. 이번에는 사냥도 안 갈 거야.

그냥 이 몸에 에테르만 증가시키고 올라 올 거야. 그 후에 데블 플레인에서의 복수는 새로운 생체에테르바디를 가지고 안전하게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우미."

세진이 우미를 불렀다.

- 네. 말씀하십시오.

"가장 치안이 좋은 도시가 어디지? 헌터들이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그런 장소가 필요한데?"

- 라훌족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헌터들만의 도시로 사냥보다는 소박하게 육체적인 활동을 주로 하는 삶을 사는 것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머무시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있어?"

- 일종의 특별 구역입니다.

그 이상의 정보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미는 그런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만 하고는 정보를 차단했다.

"그곳에 머물면 안전한가?"

- 헌터 이외의 인류는 들어갈 수 없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헌터는 서로 공격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테멜에 스스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좋아. 그러 그 곳에서 수련을 하기로 하지. 라훌 독립군은 이후에 새로운 의체로 내려가서 복수를 하기로 하고 말이야. 지금 내가 사용하는 의체가 없으니까 이 몸으로 데블 플레인에 들어가는것이 가능하겠지?"

- 규정상 가능하긴 합니다.

세진은 우미의 말에 세진의 행동을 말리고 싶어 하는 뜻을 읽었다.

"이봐 우미."

- 네. 세진님.

"내가 사는 지구에 에테르가 있어. 그 말은 지구에도 에테르 기반 생명체인 몬스터가 있다는 거고, 그것들을 잡아야 한다는 거야. 그럼 거기에도 헌터들을 보낼 건가? 이런 헌터룸 시스템이 만들어질 거냐는 말이지."

- 문명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행성에는 헌터를 투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할 필요도 있지 않나?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하잖아. 그래서라도 이 몸으로 에테르 로드 수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야."

- 그에 대한 판단은 제게 권한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내가 이 몸으로 데블 플레인에 가는 것을 말리진 못하잖아.

그럼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나 알려 줘."

- 알겠습니다. 세진님.

- 세진님 가시기 전에 저 지하창고에 가게 해 주세요. 세진님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무너무 힘들어요. 흐흑.

데블 플레인으로 가려는 세진에게 어리가 지하창고에 가 있겠다고 부탁을 했다.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럼 우린 눈 깜짝 할 사이에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응?"

- 이번에는 가슴에 먼지 쌓고 오지 마세요. 세진님 네?

"응.

그렇게 하마. 아직도 내 가슴에는 복수의 칼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절대 먼지가 쌓이는 일은 없을 거다.

- 거기 칼날 말고요. 어리요. 어리, 잊지 마시라고욧!

"그거야 물론이지. 절대 그럴 일 없다. 자, 그럼 함께 가자. 우미, 지하창고에 다녀오지."

- 알겠습니다.

"그래. 갔다 와도 너에겐 순간이겠지. 다녀오마."

세진은 어리를 들고 게이트를 열어 지하창고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하창고에 온 김에 석판에서 에테르와 오러에 대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읽고 점검했다.

이후에 다시 데블 플레인으로 향하려는데 어리가 말을 걸었다.

- 세진님 이왕에 오신 거 지구에도 한 번 가 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아니.

아직은 아니야. 지금 수준으로 디버품을 쓴다고 해도 얼마 못 쓰고 또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하지만 이번에 가서 수련을 하고 에테르의 양까지 익스퍼트에 이르게 되면 못해도 50미터 밖에서 원하는 목표를 타격할 수 있어. 그 정도 되면 내가 원하는 복수를 할 수 있겠지."

- 네에. 세진님. 하지만 조심하세요. 절대로 무리하지 마시고요. 네?

"알았다. 그렇게 하마."

- 그리고 이곳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데블 플레인의 복수는 나중에 하

세요. 본체의 수련만 끝나면 저를 보러 오시란 말이죠. 아셨죠? 세진님이 너무 오래 거기 계시다가 저를 잊으실까봐 겁나요. 저에 대한 기억에 먼지가 쌓이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그래. 그렇게 하마. 우리 어리에 대한 기억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다시 보러 오마. 약속하마."

- 네에. 저 기다리고 있을 게요.

"너에겐 금방일 거다."

세진은 그렇게 어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데블 플레인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본체로 데블 플레인에... 넵... 가는 겁니다. 드디어...

< -- 기다려라 돌아가마 --

>생체에테르바디를 이용한 데블 플레인의 생활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모험을 즐기고 위험에 뛰어드는 쾌감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헌터 생활을 하면서 에텔론이란 경제적인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아예 관심도 주지 않을 정도로 부유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만들어낸 데블 플레인의 특별 구역이 있었다.

라훌들 없이 헌터들만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헌터들만이 마을로 들어 올 수 있는 곳이고 실력 있는 몬스터 사냥 헌터들을 다수 고용해서 외곽 경비 맡겨 몬스터를 대비한 마을 제이비아.

그곳 생체에테르바디 보관소에서 세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세진은 방금 헌터룸에서 우미가 했던 말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 한 가지 주의하실 것이 있습니다.

등록일 : 13.

12.05 00:04조회 : 6064/6067추천 : 319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6631

세진이 제이비아로 떠나기 전에 우미가 그렇게 세진의 발걸음을 잡고 경고의 말을 전했다.

그 내용은 데블 플레인에서 게이트를 열어 코어를 옮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세진이 지니고 있는 듀풀렉 게이트는 회수가 불가능한 형태라서 그대로 세진의 손목에 문신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을 데블 플레인에서 사용해서 혹시라도 그곳에서 지하창고나 지구로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경고를 한 것이다.

사실 세진은 혹시라도 화이트 코어를 얻게 되면 어리가 있는 창고로 넘겨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경고를 받자 포기하고 말았다.

- 에테르가 없는 행성에 코어가 들어가게 되면 그 코어가 성장해서 행성 전체를 집어 삼키는 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진님의 순간 선택으로 행성 하나가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세상이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이것은 상부에서 내려온 권고이며 경고입니다.

우미는 아주 단호한 음성으로 그렇게 세진에게 경고했다.

세진은 지하창고가 있는 행성에 에테르가 없는데 혹여라도 자신이 가지고 간 코어 때문에 그 행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전에 가졌던 생각을 곱게 접었다.

더구나 지구에 가지고 갔다가 그곳에 있는 코어들과 섞여서 새로운 형태의 몬스터들이 발생하게 되면 그것도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우미가 경고하기를 서로 다른 몬스터 코어가 한 행성에 있으면 서로의 특질을 주고받아서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게 된다고 했었다.

쉽게 말하면 새로운 유전 형질이 들어와서 몬스터의 종 다양성을 늘려주게 된다는 소리였었다.

코어들 사이의 상호 교류가 어떤 방법으로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지구에 새로운 코어를 가지고 가는 것도 그런 이유로 포기한 일이니 데블 플레인에서 코어를 지하창고나 지구로 가지고 가는것은 포기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래도 게이트를 이용해서 지하창고나 지구를 오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고 하니 원.'

하지만 상황을 모르기에 세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게이트를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로 전 우주 연합 안에 몇 명이 되지 않는다.

물론 세진의 경우에는 세 개의 포인트밖에 없고, 그것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자동으로 위치가 저장되는 형태여서 스스로 위치를 지정해서 게이트를 열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개인이 게이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여러 이유로 주목을 받을 일이다.

그 때문에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세진에게 주의를 준 것이다.

그걸 모르는 세진은 불만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우미나 시스템 관리자가 하지 말라는 것을 일부러 해서 불이익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세진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는 제이비아 마을로 나가는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제이비아 마을에 대한 세진의 첫인상은 역시 종족 전시장이란 것이고 다음은 매우 활기찬 마을이란 것이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북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 표정들이 모두 밝았다.

불평불만은 없어 보이고 나름 만족한 모습으로 거리를 오가고 있는 것이다.

세진은 우미가 알려준 대로 마을의 행정을 맡고 있다는 에텔론 상점으로 향했다.

이곳 제이비아도 역시 데블 플레인에 속해 있기 때문에 에텔론 상점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이비아 주민들은 에텔론 상점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다만 제이비아 체류비용을 내기 위해서 에텔론 상점을 이용할 뿐이다. 그들은 따로 에테르를 사용하는 기술을 각인받을 생각이 없었다.

제이비아의 주민들은 직접 몸을 움직여서 농사를 짓고, 옷감을 짜고, 산책을 하고, 동물의 젖을 짜서 그것으로 치즈를 만들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제이비아 주민들은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온 사람들인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세진이 에텔론 상점으로 들어가자 점원이 마중을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이곳에 거처를 얻고 싶은데요? 방해받지 않을 작은 집이면 좋겠군요."

"그럼 마을 외곽에 있는 집을 권해 드립니다. 혼자 지내시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꺼려하시는 분들이 많이 머무시는 곳이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어떻게 하죠? 에텔론으로 구입이 가능합니까?"

"아니요. 이곳 제이비아에선 이곳만의 화폐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화폐는 새로 주민이 들어 올 때에 드리는 1천 제빈이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주민이 한 명 늘 때마다 1천 제빈, 그럼 지금 이 제이비아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총량으로 이곳에 왔던 사람들이 몇 명인지 알 수도 있겠군요?"

"그런 것이 가능한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정 주기마다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서 제빈 수거를 합니다. 새로 마을을 넓히거나 혹은 건물을 지어 주거나 공용 시설을 만들어 주는 등의 사업을 벌이고 그에 필요한 제빈을 저희 상점에서 수거해서 폐기하죠. 그렇게 마을의 물가를 안정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폐의 총량으로는 이곳에 있는 주민과 다녀간 주민의 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화폐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군요. 1천 제빈을 받았는데 그게 한 끼 식사도 못할 액수라면 끔찍할 테니까 말입니다."

"현 제이비아 상황에서 1천 제빈이면 몇 달은 일하지 않고 먹고 놀 수 있습니다.

물론 그다지 풍족하게 지내진 못하겠지만, 집이 제공되니 어쨌건 견디는것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외딴집에는 옵션으로 텃밭이 넓게 제공됩니다. 뭐든 길러서 드시는 것도 좋고, 거기서 생산된 것을 저의 에텔론 상점에서 다른 물건과 교환도 해 드립니다.

"교환?"

"모든 주민이 한 가지 작물만 키우기를 원한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 에텔론 상점에서 다른 필요한 것으로 교환을 해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뭔가 생산을 해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습니다. 일정 가치는 언제나 인정을 해 드리니까 말입니다."

"많이 생산 되어서 가격이 폭락하는 것은 막아준다는 거로군?"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그런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쁘지 않네. 그럼 일단 나는 각인부터 받았으면 하는데?"

"제이비아 주민으로선 독특한 분이시군요. 각인이라니 말입니다. 어쨌건 가능합니

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세진은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각인을 위한 공간으로 갔고, 그곳에서 각인이 가능한 모든 기술들을 각인 받았다.

그래봐야 기초적인 것들만 익힐 수 있고, 그 대부분은 이미 세진이 홀로 수련하며 어느 정도는 길을 닦아 놓았던 것들이었다.

그래도 각인이란 방법을 사용하니 훨씬 정확하게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정신 능력은 새로 각인이 필요가 없었는데 그것은 세진에겐 이미 각인이 되어 있다는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역시 육체가 아닌 기억에 새겨지는 것이라서 그런 모양이라고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단 각인을 마친 후에 세진은 상점에서 툴틱에 표시해 준 곳으로 가서 자신의 것이 된 집을 찾았다.

세진은 외부와 교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꾸준히 수련을 해서 일정 수준에 오르면 곧바로 헌터룸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진의 계획이었다.

사실 이곳 제이비아에 오느라고 세진이 쓴 에텔론이 자그마치 100만 에텔론이었다.

특수 지역이라서 제이비아로 오기 위해서 따로 비용을 내야 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한 달에 5만 에텔론이란 거금을 제이비아 체류비로 내야 한다.

이전의 생체에테르바디를 잃은 탓에 이제 에텔론 상점에서 나오는 배당금도 없는 상황에서 그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세진이 자살로 헌터룸으로 돌아왔을 때, 세진에게 쌓여 있는 에텔론의 총액은 470만 에텔론이었다.

그것은 예비 생체에테르바디를 만들기 위한 예치금을 뺀 금액이었지만 그 중에서 제이비아로 오기 위해서 쓴 100만을 빼면 세진이 가진 것은 370만 에텔론이지만 한 달에 5만 에텔론이 꼬박꼬박 사라진다. 거기다가 제이비아에선 에텔론을 획득할 방법이 전혀 없다.

벌 수 있는 것은 제빈이란 이곳 화폐일 뿐이고 그것은 에텔론과 교환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에텔론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죽어라고 수련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진의 처지였다.

하지만 사람은 먹고 입어야 한다.

입는 것이야 어쨌건 먹는 것은 잘 먹어야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니 세진도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마을 시장이나 상점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곳 제이비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든 것이 넉넉해 보이는 사람들이어서 미워하거나 거부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었다.

"응, 그러니까 세진은 이곳에 수련을 하기 위해서 온 거네? 그것도 고향 행성이랑 이곳 데블 플레인 두 곳에 모두 적이 있는 거고?"

"그래 자넷. 그래서 난 될 수 있으면 집에서 수련에 힘을 쏟아야 하는 입장이야. 이렇게 여유를 즐길 때가 아니지."

"이깟게 여유는 무슨. 겨우 나하고 차 한 잔 마시는 거면서. 한 잔의 차는 네게도 도

움이 될 거야. 딱 봐도 조급증 때문에 답답해 보이잖아. 그런 마음으론 뭘 해도 진도가 안 나가기 마련이거든?"

"그런가?"

세진은 자넷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무조건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님은 그도 요즈음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에테르 로드 수련은 정말 지극히 높은 정신 수련과 병행해야 하는 고차원적인 수련법인 것을 새삼 느끼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고말고. 그나저나 너 어쩌려고 그래? 제빈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아, 그것도 걱정이긴 하지."

세진은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를 떠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니까 그런 거 아냐? 어쩌려고 그래?"

"글쎄?

자넷에게 아르바이트를 부탁해 볼까?"

"응? 정말 그럴 생각은 있고?"

세진의 말에 자넷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자넷은 제이비아에 몇 곳 있는 상점의 주인이다.

잡화점이란 이름에 맞게 여러 물건을 팔지만 그 중에 생필품에 해당하는 곡식과 햄, 고기나 채소, 과일, 열매 같은 먹을 것도 팔기 때문에 세진이 단골이 된 곳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상점이라 자넷의 상점을 이용하게 되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자넷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자넷은 빨간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모습을 한 젊은 여성이었다.

물론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생체에테르바디기 때문에 진짜 모습은 알 수가 없다.

세진이 듣기론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이들인데 젊은 모습을 택해서 이곳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를테면 이 제이비아는 황혼을 즐기려는 노년의 사람들이 머무는 실버타운 같은 개념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넷도 그런 경우일 수가 있지만 그런 것은 서로 묻지도 않고 대답도 않는 다는 것을 세진은 분위기만 보고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자넷이 제법 예쁜 얼굴과 참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세진은 거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만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알고 지내는 것까지 꺼릴 이유가 없어서 상점에 오면 이렇게 자넷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도하고 그러는 사이가 되었을 뿐이다.

"뭐야? 정말 일을 시켜줄 생각이야? 자넷 너, 버는 것도 별로 없잖아."

"따로 제빈을 줄 것도 없이 세진에겐 그냥 먹을 것들만 주면 되잖아. 그럼 별로 부담도 안 되는데?"

"음. 그런가? 그런데 어째 듣고 보니 싸게 막 부려 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냥 열흘에 삼일 어때? 그럼 열흘 치 식량을 주지. 삼일 동안 낮에만 일하고 열흘 치 식량이면 괜찮은 일자리잖아.

응?"

세진은 자넷이 정말로 일거리를 줄 생각이란 사실을 알았고, 그것이 호의에서 나온 것임도 알 수 있었다.

세진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 삼일 동안의 아르바이트를 심각하고 고민하는 현실이 싫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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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자넷이자나... 쿠쿠... 넵... 일종의 세진 도우미 정도로 시작하는 캐릭터입니다.

여기까지 오늘도 세 편으로... ^^ 행복하시길... 그리고 제가 후기에 행복하다고 하는 건... 글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주셨음 합니다.

왜 저를 변태로 몰아가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던지... 후후후... 저 그러면 정말 유리멘탈 깨집니다. 네... 제 멘탈도 소중하니 살살 다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내일 또... 뵙죠... 열심히 해서...

< -- 제이비아의 자넷 - 테멜 --

>세진은 열흘에 사흘을 자넷의 상점에서 일하기로 했다.

처음에 자넷은 이틀 쉬고 하루 일하는 것으로 고용 계약을 하자고 했다.

"그래야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잖아.

왜? 그렇게 하기 싫다는 거야? 내가 싫어?"

세진은 그렇게 물어보는 자넷에게 이길 상황이 아니었지만 계약은 계약이니 두 번은 이틀 쉬고 하루 일하고 그 다음 한 번은 사흘 쉬고 하루 일하는 것으로 하자고 타협을 봤다. 결국 열흘에 사흘 일하는 것으로 하자고 한 것이다.

물론 자넷은 너무 깐깐하게 군다면서 입술을 삐쭉거리며 불만을 터뜨렸지만 애초에 열흘 중에 사흘 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자넷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진은 그렇게 해서 자넷의 가게에서 생소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어려운 것은 없었다.

물건들의 가격을 외우는 것을 빼고는 별달리 할 일도 없었고, 자넷도 세진이 상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함께 상점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것만 봐도 자넷에게 필요한 것이 점원이 아니라 말동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간혹 자넷도 세진에게 상점을 맡기고 동내 산책을 나가거나 혹은 이웃과 수다를 떨기 위해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그게 자넷이 세진을 고용하고 얻은 유일한 변화라면 변화다.

어쨌든 세진은 자넷 덕분에 호구지책을 마련하고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하루하루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에테르 로드 수련에 할애하고 있어서 밖에서 몸을 움직이는 육체 수련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각인 받은 육체 능력들도 몸에 익힌 후에 한 단계씩 높은 수준의 기술들로 각인 받고 있었다.

물론 에테르 로드 수련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신 능력으로 디버프의 변형인 디버품과 에테르 방패, 에테르 랜스, 에테르 붐을 골고루 연마했다.

세진은 그런 정신능력이 이곳 데블 플레인에서보다는 지구에서 훨씬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에테르 붐이나 디버품의 경우에는 들키지 않고 암습을 하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인 것이다.

세진은 일본에 있는 텐헤이나 그와 관계된 이들 모두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왕 시작하는 것이라면 그동안 자신이 일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은밀한 반일 감정을 확실하게 풀어 버릴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어설프게 세진을 건드린 것이 얼마나 큰 재앙으로 다가갈지는 일본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세진은 오늘도 데블 플레이의 흐릿한 태양이 자취를 감추는 시간에 자넷 상점의 일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세진은 익숙한 탁자와 의자들을 보고는 곧바로 방으로 겉옷을 벗고 씻을 준비를 해서 물통이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데 묘하게 세진의 신경을 건드리는것이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집 안에서 위화감이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세진이 언제나 펼치고 다니는 디버프 에테르 범위 내에선 아무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디버프 에테르의 감각을 믿었기에 별 생각 없이 집 안에서 움직이던 세진은 위화감을 느낀 순간부터 세밀하게 집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퇴근해서 들어와서 만진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떠올리고, 혹시 그가 들어와서 봤던 모습들 중에서 뭔가 달랐던 것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런 세진의 머릿속으로 집 안의 이전 모습들이 사진으로 찍어 뒀던 것처럼 떠올랐다. 세진이 정신 능력이 익스퍼트 경지에 이르면서 생긴 변화 중의 하나였다.

정신 능력이 익스퍼트가 되면서 세진의 기억력이 굉장히 발달했던 것이다. 세진은 알지 못했지만 기억력뿐만 아니라 연산 능력까지도 상승해 있었다.

비록 약소하긴 하지만 익스퍼트가 되면서 정신의 성장이 이루어진 결과였다. 사람에 따라서 그 향상 영역이 조금씩 다르지만 세진의 경우에는 기억력과 연산 능력의 증가가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정신력의 향상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로, 그것을 바탕으로 에테르를 더욱 세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 디버품의 가능하게 된 것이다.

어쨌건 세진은 그 뛰어난 기억력으로 집 안에서 변한 것들 찾았다. 그리고 집에 침입자가 있었음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대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곳 제이비아에는 헌터들만 있는데 이런 이유로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무얼 훔치거나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굳이 문단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단속을 하지 않으니 주인이 없을 때에 집 구경을 다녀가는 방문객이 간혹 있다.

말 그대로 구경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얼 하고 지내는지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물론 그 모습을 집 주인이 보게 되면 분쟁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용케도 주인을 피해서 그런 방문을 즐기곤 했다.

세진도 그것을 알았을 때에는 그런 일이 집 주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냐고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제약을 할 수는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그냥 유야무야 이해하고 넘어 갔었다.

사실 동네 이웃의 집이 궁금해서 잠시 들여다 본 것을 가지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일도 아닌지 않은가.

'또 방문객이 있었나? 이젠 볼 만큼 봤을 텐데?'

세진이 자넷의 가게에 출근을 하게 되면서 근무를 하는 날이면 방문객이 간혹 있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그 방문객이 탁자 위에 선물을 남기기도 했다.

주로 약소한 먹을 것이나 생활 도구 같은 것이 놓여 있었고, 세진은 그런 방문객이면 자신이 없을 때에 집에 다녀간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단출한 집에 누가 왔다 간다고 해도 기분만 조금 상할 뿐이고, 때로 도움이 되는 선물까지 준다면야 마다할 일도 아니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세진의 집에서 세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세진의 수련이 특별한 흔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세진이 먹고 자고 하는 흔적만 볼 수 있을 뿐인 것이다.

물론 이곳이 헌터들만 있는 특수한 곳이고, 그런 방문객이 마을의 관습처럼 굳어진 것이라 방문객의 존재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지 이곳이 제이비아가 아니었다면 세진이 그렇게 쉽게 방문객의 존재를 용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건 세진은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방문객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긴장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세진은 그 순간 선반 위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바짝 긴장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설마 방문객이 그것을 두고 간 것인가 의심도 해 봤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선물로 남기고 갈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세진은 조심스럽게 그것으로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봤다.

집을 얻을 때부터 장식으로 있었던 것으로 아침까지는 벽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안쪽에 사진이나 초상화를 넣어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고 얇은 목걸이형의 둥근 케이스였다.

뚜껑을 닫아 놓은 상태로 보기에는 회중시계로 오해할 법한 것인데 집을 구할 때부터 벽에 걸려 있던 장식품들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그것이 뚜껑이 열린 상태로 선반 위에 있었다.

그리고 열린 뚜껑 안에는 아주 작은 에테르 소용돌이가 고요하게 돌고 있었다.

초소형 테멜이 세진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알아봤나요?"

자넷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군가에게 물었다.

- 연합에 속하지 않은 행성에서 온 사람입니다.

자넷의 물음에 목소리 하나가 그녀의 앞에 있는 상자에서 흘러나왔다.

피크닉 가방처럼 생긴 상자는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어딘지는 알 수 없나요?"

- 연합의 외계에 있다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그 이상은 접근이 불가합니다.

"요즘 연합이 팽창을 자중하는 분위기니 당연히 그렇겠죠. 그런데 그런 곳에서 어떻게 이곳 헌터룸을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 조사 중이지만 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직접 물어봐야 하나? 그래도 될까 모르겠네. 그 사람 꽤나 눈빛이 사납던데 말이죠. 그건 정말 보통은 보기 어려운 눈빛이었어요. 그 깊이 잠겨 있는 이글거리는 분노라니."

자넷은 혼잣말인지 누구에게 들으라는 소린지 가늠하기 어렵게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버릇에 익숙한 모양인지 통신기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재미있어 보여서 알아보려고 했더니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군요. 아쉽네요. 뭐 그래도 여기서라도 조금 도움을 줘 볼까요? 일단 일을 줬으니까 그걸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고, 에텔론을 좀 줄까요? 방법이 있나요?"

-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에텔론을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차라리 테멜을 하나 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테멜?"

-소형 테멜은 의외로 쓰임새가 많은 물건입니다.

이곳에선 고작 몇 십만 에텔론에서 몇 백만 에텔론 정도에 거래가 되지만 그게 다른 행성으로 가게 되면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세진에게 줘서 그의 행성으로 가지고 가게 하라는 간가요?

위험할 텐데요?"

- 물론 테멜 내부의 코어가 밖으로 유출되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테멜 내부의 코어를 가지고 나오지만 않는다면 그 행성의 몬스터 종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넷 님이 가지고 계신 테멜들 중에는 소형 테멜로 안에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단순히 테멜을 유지하는 코어만 남았고, 그것도 몬스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붙박이 형태로 테멜의 중앙에 박혀 있는 형태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면 테멜 안에 몬스터도 생겨나지 않으니 여러모로 유용할 것입니다.

"에텔론으로 주는 것 보다는 그게 싸게 먹히니까 지금 내게 그걸 권하는 거죠? 내가 얼마나 많은 에텔론을 줄지 모르니까요."

자넷이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통신기 건너편에선 자넷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

데블 플레인 내부에서 외부로 통화가 가능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인데 영상까지는 무리였던 것이다.

- 그렇기도 합니다만, 제 판단으로 테멜이 세진이란 분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흐응. 그렇단 말이죠?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죠. 그런데 그 테멜은 언제나 이곳에 도착하게 되죠?"

- 빠른 시간 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세진이란 분께 드릴 생각입니까?

"세진이 이곳에 와서 일을하는 동안에 그의 집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에요."

- 그렇다면 그의 집에 있는 소품과 닮은 것을 베이스로 하는 테멜을 찾아야 할 것 같군요. 그의 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합당한 테멜을 찾아 보내겠습니다. 이후에 그분의 집에 가셔서 그 소품과 바꿔 놓으시면 됩니다.

그럼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테멜이 생성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역시! 세바스. 세바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어김없이 맞춰 주는군요. 고마워요. 언제나."

- 별말씀을. 저는 자넷님께 봉사하는 것이 즐거울 뿐입니다.

"그래요. 그럼 수고해요. 안녕 세바스.

자넷은 세바스라는 목소리의 인사를 듣지도 않고 통신기를 껐다. 그리곤 푹신한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묻고 세진에 대해서 생각했다.

처음에는 이 제이비아의 들어온 촌놈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이곳 제이비아와 같은 특별한 마을에 있는 주민들은 이곳 제이비아가 아닌 그들의 고향에선 한 명이라도 특별하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이들이다.

금력, 권력, 무력, 인맥 등등 어느 것이거나 최고 수준에 있지 않고서는 제이비아와 같은 곳에는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제이비아에 나타난 세진이란 존재는 자넷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정보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특이하게 이곳 제이비아에 쉬기 위해서 온것이 아니라 단련을 위해서 왔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진이란 사람이 에테르 운용법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힘을 길러서 그 눈빛에 숨겨진 분노를 풀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

생체에테르바디로 그걸 익혀서 어딜 쓰려는 것일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아보니 생체에테르바디가 아니란다.

그 순간 자넷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렬한 호기심에 빠져들었다.

세진이란 존재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너무도 궁금했던 것이다.

자신의 몸을 그대로 지니고 데블 플레인에 와서 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사람인가. 자넷은 그 때부터 세진을 눈여겨보며 곁에 다가가기 위해 애썼

고, 그건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이제 세진은 며칠에 하루는 자넷의 상점에서 일을하고, 또 말벗을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 봐도 사람이 싫지 않았다.

탐욕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금욕적이지도 않은 보통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자넷에겐 도리어 좋게 보였다. 세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넷이란 후견인을 두게 된 것이다.

============================ 작품 후기 =======================

=====여, 여자가 등장을 했습니다... 만.

서로 얽혀서 뭔가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어쨌건 세진은 테멜 하나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음...

다음 챕터에선 드디어 복수행인 것이죠... 뭐 지금 수위 조절을 좀 해야 하나 생각중이지만세진이 만족할 정도로만 할 생각입니다. 커어엄.

어쨌건 오늘도 한 챕터... 3편이 올라갑니다.

< --

제이비아의 자넷 - 테멜 -- >

세진은 테멜이 들어 있는 펜던트를 목에 걸고 다녔다.

아직 세진은 그가 가진 테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툴틱에서 알아본 정보로는 테멜은 겉모습으로는 그 등급을 알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물론 테멜이 세진의 집에서 나타났으니 이곳 제이비아 마을이 있는 곳의 몬스터 등급에 맞춰서 세진이 얻은 테멜의 수준을 짐작을 해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노란색 등급 정도는 될 거라는 것이 세진의 추측이었다.

이 마을을 경호하는 헌터들에 의하면 마을 주변에는 노란색 등급의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니 세진도 그렇게 추측을 한 것이다.

정말 그렇거나 혹은 그 이상이면 지금 세진의 능력으로는 테멜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세진은 테멜에 들어가는것은 이후에 생체에테르바디로 활동하게 되면 그 때에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혹여, 세진의 테멜 안에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한순간에 끝장이 날 수도 있으니 세진은 테멜 확인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그런 혼자만의 생각은 자넷으로 인해서 금방 무너졌다. 테멜과 자넷이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머 못 보던 목걸이네? 뭐야?

그거?"

자넷이 세진에게 다가와 은근히 팔뚝에 가슴을 밀면서 물었다.

세진은 그런 자넷을 슬쩍 밀어내고 가게 청소를 계속했다.

"흐응, 이상하네? 그거 우리 집에도 있는 장식 같은데? 그런 걸 뭐 하러 목에 걸고 다녀?"

자넷은 어떻게든 세진의 반응을 이끌어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테멜을 주기는 줬는데 그 이후가 궁금한 것이다.

그 안에 들어가서 확인은 했는지 어떤지, 테멜이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것이다.

세진이 펜던트를 목에 걸고 나타났을 때에는 얼씨구나 좋다고 했지만, 그 후로 아무 반응도 없으니 답답한 자넷이었다.

"왜 목걸이에 관심을 주지?"

세진이 청소를 하다말고 빗질을 멈추고 자넷을 보며 물었다.

"응? 아, 뭐 관심은 무슨. 그냥 이상한 걸 목에 걸고 다니니까 궁금해서 물어 본 거지. 아무 집에나 가면 하나씩 있는 장식을 목에 걸고 다니니까 말이야.

혹시 그 안에 예쁜 여자 얼굴이라도 들었나 하고 궁금하잖아."

자넷은 그럴싸하게 말을 돌려 괜찮은 핑계를 만들었다. 아무 집에나 가면 있다는 말도 사실이다. 이곳 제이비아의 집은 에텔론 상점에서 만들기 때문에 집 안의 장식들이 비슷하다.

그래서 어느 집이나 세진이 목에 걸고 있는 것과 닮은 장식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래? 난 또 이걸 나한테 준 것이 자넷인 줄 알았네. 아니라면 관심 두지마. 이걸 내게 준 사람이 아니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세진은 그렇게 딱 잘라서 자넷의 관심을 끊어 내고는 다시 빗자루를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세진을 노려보며 자넷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내가 준 거야.

내가!'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자넷이지만 그렇게 되면 몰래 가져다 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세진은 그런 자넷의 반응을 디버프 에테르로 살피면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목걸이를 목에 걸고 나타난 뒤로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그쪽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나, 목걸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바뀌는 심장의 박동 소리를 보면 테멜을 가져다 둔 것이 자넷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가 줬다는 말은 못하고 분을 삼키고 있는 자넷의 모습이 의외로 재밌게 느껴진 것이다.

며칠 후,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 무렵에 세진이 자넷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런 거야?"

"뭐야?"

자넷은 뜬금없는 세진의 말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이거."

세진은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의 줄을 쥐고 끝에 달려있는 케이스를 살짝 들어 보였다.

"응?"

"왜 우리 집에 가져다 둔 거냐고."

"알아버렸네? 어떻게 알았지?"

자넷은 세진이 확신하듯 묻는 말에 더는 발뺌을 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내 목을 쳐다보고 있는데 모를까?

거기다가 너, 심장은 속이지 못하더라. 표정은 속여도."

"뭐라고?"

"내가 디버프 능력이 좀 되거든. 그러면 상대의 신체 변화도 잘 느낄 수가 있어.

그러니까 지금처럼 네 심장이 쿵쿵 거리면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런데 넌 목걸이 이야길 할 때마다 그랬거든. 평소와 다른 심장의 울림. 그래서 알게 된 거지."

"아, 그렇구나. 쳇. 들켰다."

자넷은 혀를 살짝 내밀고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세진은 그런 자넷의 행동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재미없어.

너."

나름 귀여운 포즈를 취했는데 반응이 없자 자넷이 투정을 부린다.

"그래서 왜 그런 건데?"

세진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자넷에게 같은 내용을 또 묻는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이상하게 관심이 생긴 사람에게 뭔가 해 주고 싶은 거. 그런 거야. 내 부하 직원이 그러더라 에텔론을 퍼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대신에 싸게 테

멜 정도 주면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야."

자넷은 한숨을 살짝 쉬고는 사실대로 털어 놓는다. 어째서 세진에게 테멜을 줬는지.

"싸게 주는 게 테멜이야?"

세진은 어이없는 표정이다.

"그거 얼마 안 하잖아. 난 누구에게 호의를 베풀면 몇 억 에텔론 정도는 퍼주거든. 그래서 세바스가 아, 세바스가 부하 직원 이름이야, 그 세바스가 차라리 싸게 테멜을 주라고 한 거야. 테멜은 몇 십만에서 몇 백만 에텔론 밖에 안 하니까 말이야."

"그, 그런 거냐?"

세진은 몇 억 에텔론이란 말에 살짝 기가 죽었다. 뜬금없이 테멜 같은 것을 주는 자넷에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야길 들어보니 세진이 받은 테멜 정도는 자넷의 껌값인 모양이다.

"그래도 아무에게나 쉽게 주고 막 그런 거 아니야. 세진 니가 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지. 그리고 솔직히 난 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네가 어디 먼 행성에서 왔다는 정도는 알아. 그래서 니가 혹시 테멜에 부담을 느낄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그런 거 수십 개는 있을 거야. 나한테 말고 내 부하 직원한테도 말이야."

"그러니까 수준이 다르다는 거냐?"

"행성의 수준 차이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 봐봐 여기 이곳 라훌들에겐 몇 천만 에텔론이면 정말 끔찍하게 많은 액수잖아. 하지만 내가 사는 행성에선 그게 그리 큰 액수는 아니야.

아, 물론 그건 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긴 하지만."

"알았다. 무슨 말인지. 그리고 뭐 고맙다고 해 두마."

"응? 화 안 내는 거냐?"

자넷은 세진이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에 놀란 듯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뭐? 좀 비싸긴 하지만, 그냥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사실 아직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모르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몰라서 진짜 장신구로나 쓰고 있는 거니까 말이야."

쓸모도 없이 목에 걸고 있는 거라서 받아준다는 투로 말을 하지만 사실 숨은 뜻은 따로 있는 말이다.

"으응. 그런 거구나? 너 지금 이왕 준 선물이면 옵션도 함께 털어 놓으라고 하는 거지? 응?"

자넷은 세진의 숨은 뜻을 금방 알아차린다.

"의외로 이런 때는 눈치가 빠르네? 이거 정말 어떤 거야? 이렇게 목에 걸고 다녀도 되냐? 그리고 이거 다른 행성으로 가지고 가면 어떻게 되는 거냐?"

세진은 이왕 내친걸음이라고 생각하고 궁금한 것을 참지 않고 물었다.

"정말 제대로 아는 것이 없구나? 다른 행성으로 가면 테멜은 열리지 않아. 그러니까 소용돌이가 없어지지. 하지만 그 행성에 에테르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깔려 있으면 소용돌이가 열려. 테멜의 코어가 그 행성의 행성 코어와 접속을 해서 그렇게 된다고 하지."

"코어 접속? 그럼 테멜 때문에 몬스터의 종류가 늘어난다는 거잖아!"

세진이 깜짝 놀랐다.

"아니, 그건 아니야. 테멜 코어는 그런 몬스터 정보가 없어. 다만 테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테멜에 변화가 생기게 되겠지. 구조라거나 구성이라거나 하는 것에 말이야."

"그러니까 몬스터가 아니라 그 행성에 있는 테멜들에 영향을 준다는 거야?"

"정확하게는 새로 만들어지는 테멜들에 영향을 주는 거지. 하지만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야. 연구 결과 그렇게 발표가 있었어. 테멜이 다른 행성의 테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효과라고 말이야. 사실 내부 구조 정도가 바뀌는 것이 뭐가 문제겠어? 안 그래?"

"그런가?"

"하지만 테멜 안에서 몬스터를 잡아서 얻은 코어는 문제가 될 거야. 그건 테멜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말이지.

그 코어는 테멜이 처음 만들어진 행성의 몬스터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행성으로 나가면 큰 문제를 만드니까 말이야."

"그렇군. 그것만 조심하면 되는 거야?"

세진은 어느 정도 테멜에 대해서 알게 되자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바보. 테멜은 간단하지 않아. 어떤 것은 몇 개의 층이 있고, 또 어떤것은 들어갔던 입구로 나오지 못하고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하는 것도 있어.

심각한 경우는 테멜 코어를 취하지 않으면 출구가 생기지 않는 경우지.

그럴 경우엔 정말 테멜 코어를 지닌 몬스터와 싸워 이겨야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말이야."

"테멜도 복잡하구만."

"응, 그래도 내가 준 그건 괜찮아. 몬스터도 안 나오고, 테멜 코어도 테멜 중앙에 박혀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 코어만 건드리지 않으면 테멜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입구와 출구가 달라서 써먹기가 아주 좋아. 출구를 모르면 고생을 하겠지만 말이야."

자넷이 세진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 그런 걸 나한테 주면 어쩌라고? 내가 들어가서 못 나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응?"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멍청해서 섣불리 행동을 하거나 스스로를 과신해서 위험에 처하면 그건 내 탓이 아닌 거지. 안 그래?"

자넷은 그렇게 말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사실 세진이 자넷이 마련한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 기분이 좋은 것이다.

테멜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 전까지 무모하지 움직이지 않은 세진의 태도가 자넷의 흐뭇하게 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세진은 이후로도 자넷에게 테멜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를 얻었지만 당장 급하게 알아야 할 내용은 별로 없었다.

자넷이 준 테멜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진은 한동안 테멜의 이용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지하창고에 있는 어리의 집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테멜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게이트를 열 수 있다면 지하창고에서 어리를 데리고 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헌터룸의 관리자들은 어리가 데블 플레인에 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지만 테멜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도 어리를 곁에 둘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세진은 당장이라도 어리를 데리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어리는 세진과 떨어져서 지내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겠지만 세진은 달랐다.

세진이 복수를 다짐하고 게이트를 넘어 온 것이 벌써 2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했다. 세진은 가슴속에 날카롭게 세운 복수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게 매일 새롭게 날을 세우고 있지만, 그래도 지구에 대한 기억에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시간이 흘러서 혹시라도 복수심이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몇 년, 혹은 몇 십 년이 지날 때까지 굳건하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다가 그렇게 한 가지에만 매달리게 되면 다른 것들을 잃게 될 가능성도 많았다.

자칫 복수에만 매달리다 다른 것들을 잃기 쉽다는 점을 걱정하는 세진이다.

그에겐 아직도 부모님이 남아 있고, 어리도 있었다. 데블 플레인에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부모님과 어리에 대한 감정이 식지 않을까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시간을 내서 부모님이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다. 가는 길에 어리도 테멜로 데리고 올 수 있으면 데리고 오고.'

세진은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했다.

하지만 세진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자넷이 좋은 사람이고 또 자넷이 세진을 해칠 뜻이 전혀 없이 호의로 테멜을 줬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테멜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진은 적어도 에테르의 양이 익스퍼트 경지에는 올라선 다음에 테멜 안으로 들어가서 어리를 데리고 오리라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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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후기 ============================아자 두 편째... 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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