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다려라 돌아가마 -- >
세진은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트렉은 인간의 신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체를 고통스럽게 만들면서 대상의 정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수준을 유지할 능력도 있었다.
세진은 간혹 스스로 정신이 나가서 모든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생체에테르바디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세진은 수도 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세진의 몸에 영구 회복 캡슐이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안 일행은 세진에 대한 고문의 강도를 높인 상태로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런 중에 세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내고 말았다.
그것은 그들이 말을 해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답은 정확했다. 후안은 세진이 그것을 찾아낸 것에 크게 기뻐했다.
"바로 그거야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지. 그리고 네가 그걸 찾아냈다는 것은 그걸 우리에게 줄 수 있다는 소리지. 주지 못할 것이라면 그게 원하는 거냐고 묻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지? 아니, 아니 지금 와서 그게 아니라고 하진 마. 어차피 소용이 없어. 넌 그걸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어. 그리고 우리도 그걸 익힐 수 있다는 걸 너도 아는 거야. 응? 그렇잖아."
후안은 그 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세진은 정말 후안에게 원하는 것을 털어 놓을까도 했었다.
고통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걸 알려준다고 고통이 없어질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알려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우겼다.
헌터룸에서 특별하게 각인을 받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고, 각인 받은 것이라 알려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후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서로의 고집이 부딪히며 충돌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당연히 당하는 쪽은 언제나 세진이고, 망가지는 것도 세진의 몸이었다.
더구나 후안은 세진이 정신을 차리고 있는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동일한 고통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고통이 온 몸의 여기저기서 수시로 일어나고 또 사라지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 트렉의 실력이었다.
혈관 안을 굴러다니는 작은 구슬은 뾰족한 침들이 나 있는 것인데, 이것이 때론 혈관을 긁으며 굴러다니기도 하고, 또 때로는 혈관을 막아서 터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구슬들이 몸 안에 있으면 언제 어디서 그런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해서 세진의 몸은 틈만 나면 꿈틀거리며 고통에 비틀렸다.
그래서 세진은 좀처럼 디버프를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희망 또한 거기에 있었다. 다른 어떤 정신 능력보다 세진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변형 디버프였다.
세진이 디버품이라 이름을 붙인 그것만 성공할 수 있다면 이곳에 있는 놈들을 모두 죽이고 탈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세진은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아닌 에테르를 운용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후안 일행은 세진이 움직이는 에테르에 대해서는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조금만 이상해도 세진에게 엄청난 고통을 줬다. 그럼 자연스럽게 정신 능력을 이용한 에테르 사용은 취소된다.
그들은 세진을 감시하는 눈길을 거둔 적이 없었다. 희망은 오직 디버프였다.
디버프 기반 에테르의 운용만은 다른 이들이 눈치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몇 번 에테르 붐을 사용하려다가 실패하고, 빠르게 시전되는 에테르 랜스를 사용했다가 부상만 입고 자살에는 실패한 이후에 후안 일행은 세진의 석실에 뭔가 이상한 것들을 설치했는데 그 후로는 정신 능력으로 에테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다.
당연히 세진은 더욱더 디버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세진의 디버프 운용 능력은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었다.
어지간한 고통에는 정신이 흩어 지지 않고 디버프를 유지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거기다가 뭔지 모를 방해까지 헤치고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움직이는 일은 세진의 수련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고 디버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세진이 무턱대고 후안 등을 공격한 것은 아니다. 그는 디버프를 조금씩이라도 쓸 수 있게 되자 죽어라 그것에 매달렸다.
트렉조차 세진이 조금씩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고문의 방법을 바꾸며 관찰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세진은 이 테멜 안에 후안 일행 넷 이외에 또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았다.
그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세진의 감각에 거의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세진은 탈출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었다.
후안 일행은 죽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이들은 절대 이기지 못할 거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대신에 세진은 그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세진을 관찰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 이유가 세진의 몸에서 에테르를 관찰하기 위해서일 거라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그건 세진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몸 안의 에테르를 완전히 없앨 것이 아니라면 에테르의 흐름을 완전히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오늘도 또 보게 되는군. 그거 아나? 네가 이곳에 온 것이 얼마나 지났는지 말이야."
"크으, 후안."
"오오, 오늘은 말을 할 정도로 정신이 있단 말이야? 트렉에게 신경을 좀 더 쓰라고 해야겠네?"
"크으으."
"있잖아. 세진? 이젠 다 털어 놓는 것이 어때?
사실을 말하자면 네가 입을 연다고 해도 널 살려줄 수는 없을 거야. 음, 그렇지.
트렉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말이야. 하지만 이건 약속하지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준다면 말이야, 그럼 너를 편하게 해 줄게. 응? 너는 영혼이란 것도 있을 테니까 죽음이란 것이 끝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고통은 그만 겪어야지. 응?"
후안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세진의 마음을 허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세진은 후안에게 시퍼런 눈빛을 보낼 뿐이다. 꺾이지 않는 고집을 눈빛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역시 어렵단 말이지? 그래. 네 뜻대로해. 하지만 여기가 테멜 안이란 사실을 명심해. 너는 어디로도 도망을 갈 수가 없어. 여긴 네겐 지옥이야. 탈출구도 없는 지옥 말이야.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영혼이 되는 것뿐인데, 우리는 네게 영혼이 되는 자유를 주지 않을 거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는 말이지."
세진은 라훌족들 스스로가 자신들에게 영혼이 없다며 비하하는 것을 들으면 묘하게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다.
정말로 그런지 아닌지는 몰라도 라훌들에 비해서 세진이 월등하게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
'영혼도 없는 허상들에게 시달림을 받다 무너지면 그게 또 무슨 개쪽이냐고.'
몸을 타고 흐르는 고통은 여전하지만 세진은 그 고통 속에서도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디버프 범위는 반경 40미터에 이를 정도가 되어서 이젠 이곳 테멜의 전체적인 모습
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세진은 이곳 테멜에서 몬스터들이 등장한다는것을 처음 알았을 때, 깜짝 놀랐다.
세진이 있는 곳은 테멜의 한쪽 구석이었고, 그 구석을 벗어난 곳에선 몬스터들이 나타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다.
그런 몬스터를 후안이나 제이앤, 알프론 등이 혼자서 쓸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붉은색 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하급이 아닐까 세진은 추측했다.
어쨌건 그렇게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엄청난 쾌거였다. 그냥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이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찢어 놓는 가운데도 디버프 정신은 평정을 유지하게 된 것이니 당연히 쾌거 중에서도 쾌거라 할 수 있을 일이었다.
하지만 세진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세진은 이곳에 후안 일행 이외에 두 명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강자라는 사실도 알았다.
만약 그들이 전면에 나선다면 아무런 경험도 얻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세진은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숨겨서 끝내 원하는 것을 쟁취하자는 것이 세진의 생각이었다.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오늘도 트렉의 고문을 견디고, 후안의 정신적인 괴롭힘을 버텼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얼마가 흘렀는지도 모를 때가 되었을 때, 세진은 자신이 드디어 디버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았다.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대상의 몸 안에 넣고, 그것을 한 곳에 응축시킨 후에 폭발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세진은 오직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스스로 혀를 물어도 자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벽에 매달린 상태로 고문을 받으며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진은 이미 이 생체에테르바디에 미련도 없었다.
"자, 오늘은 어떤가? 잘 지냈나?
매일같이 같은 일상의 반복이지? 어때? 이젠 생각이 조금씩 바뀌나? 어차피 죽고 나면 이 세상은 너와는 상관이 없는 곳이 될 텐데, 무엇 때문이 이렇게 버티는 거지?"
"크으으, 허깨비, 인형에서 나온 불량품들, 쓰레기, 크크 그런것에 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후안."
"!"
후안은 세진이 입을 열어 길게 말을 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조롱에 더욱 놀랐다. 라훌족은 언제부턴가 스스로 영혼이 없는 인형, 쭉정이, 허깨비 등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는 풍조가 생겼다.
그런데 그것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던지 그런 인식을 받아들여서 세상을 극단적으로 보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후안도 그런 쪽에 속하는 이였다. 그래서 차라리 그럴 거면 이 행성에서 오직 라훌들끼리만 모여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 뭉친 라훌 독립군과 연을 맺은 이후는 그에 빠져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이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를 죽여 줄 거라고 생각한 거냐? 하긴 지금 내 심정으로는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큰 것을 위해서 참아 보마."
"크크. 웃기는 놈. 커억! 컥! 허깨비 주제에 더 큰 것? 그런것 따위가 네게 있을 성 싶으냐? 어차피 넌 그냥 없는 것에서 나온 허깨비일 뿐이다."
"놈!"
퍽! 퍽! 퍼버벅!
후안은 세진의 도발을 견지지 못하고 결국 세진에게 달려들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후안의 몸에는 세진이 퍼트리는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스며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뭐야?"
"왜 그래요?"
알프론, 트렉, 제이앤이 후안의 고함 소리와 세진을 두드려 패는 소리에 놀라서 뛰어왔다.
"참아, 참아. 그러다 죽어."
"저건 이 정도로 죽지 않아. 영구 회복 캡슐을 쳐드신 귀하신 몸이거든. 그걸 먹으면 심장에 구멍이 나도 살고, 머리에 구멍이 나도 살아. 그게 회복이 되는 거지. 저 놈을 죽이려면 목을 자르거나 뇌를 일순간에 곤죽으로 만들어야 해. 아니면 허리를 잘라 토막을 내거나."
"아무리 그래도 저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회복도 늦어지고 있다고. 정말 죽어버릴 수도 있어."
트렉이 후안을 잡아 끌어냈다.
"크으윽. 허깨비들이 모여서 인형극, 크억, 을 하는 구나. 커커컥."
세진은 입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네 사람을 쳐다보며 그렇게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저 새끼가!"
후안이 다시 세진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트렉에게 잡혀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세진은 석실 안에 있는 다섯의 몸에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침투시켰고, 그 에테르를 몰아서 머리 쪽으로 옮겼다.
그 수가 다섯인 이유는 스스로의 머리에도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세진은 후안이 오기 전에 이미 자신의 머리에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채워서 뭉쳐 둔 상태였다.
그 후로는 후안에게 먼저 디버프 에테르를 심었고, 이후에 도착한 트렉 등, 셋에게도 디버프 에테르를 심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 에테르들을 모두의 머리로 끌어 올려 응축을 시키기 시작했다.
"크어, 내, 내가, 너희에게 질 것 같으냐? 나, 나는 절대 인형들 따위에게 지지 않아.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해! 커억!
울컥!"
세진은 말을 하다 말고 피를 토했다. 조금 전에 후안의 발길질이 세진의 배를 때려 큰 충격을 준 것이다.
물론 그대로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이 되겠지만 이제는 그런 회복도 세진을 살리진 못할 것이다.
"크어억. 자, 잘 대, 대접을 받고, 간다.
커억!"
세진은 그 말과 함께 후안, 제이앤, 알프론, 트렉의 머리에 뭉친 디버프 에테르를 폭발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머리에 들어 있는 디버프 에테르도 터뜨렸다.
지금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다른 방의 두 사람이 뭔가 이상을 느낀 건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더는 여유있게 이야기를 주고 받을 틈이 없었다.
푸확!
"컥!"
"아악!"
"케엑!"
"엇!"
"..."
제각각 비명을 지르며 후안 패거리 넷이 쓰러지고 세진은 눈과 코와 귀와 입으로 피를 흘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뇌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피에 섞여 나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목표 달성입니다.
드디어 탈출(?)에 성공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세진... 지구에서도 이곳에서도 쥑일 놈들만 늘어나는데... 괜찮은 인연도 하나 필요하다 싶어서... 그런 인물 하나를 내 놨습니다.
뭐 워낙 둘 사이엔 넘사벽들이 많긴 합니다만... 어쨌건... 친구 하나 만들어 줍니다.
자넷으로.
오늘도 세 편입니다. 이게 첫 편이죠... ^^행복하시면 추천... 으로 저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뭐 이미 목표 달성이란 점에선 행복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