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50화 (50/298)

< -- 습격 도주 납치 -- >

- 오셨어요?

- 우아아앙, 세진님!

우아앙.

"어? 왜? 왜 그래? 어리야?"

오랜만에 헌터룸으로 돌아온 세진은 어리의 통곡에 깜짝 놀라서 물었다.

- 나. 세진님 무지 보고 싶었어요. 벌써 몇 네 달이나 되는데 한 번도 안 일어나시니까 자꾸 보고 싶고 그런데... 세진님은 어리 안 보고 싶었나봐요.

"그럴 리가 있나. 나도 어리 보고 싶었지."

- 그런데 왜 한 번도 안 오시고...

"알잖니. 어리야. 내가 마음이 좀 편치가 않다는 거 말이다."

- 그거야 어이도 알지만요. 그러니까 더더욱 예쁜 어리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어야 하는 거죠.

쌓아두고 마음에 병이 되면 안 되는 거라구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래서 우리 어리 이번에는 지하창고에 있을래? 거기 있으면 나를 기다릴 이유가 없잖니. 심심하지도 않을 거고."

세진은 이참에 어리를 지하창고에 두고 올 생각을 했다. 헌터룸에서 심심하고 외롭게 지내는 것 보다는 그곳에 있으면 세진을 기다리거나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에, 그럼 우미가 심심하지 않을까요? 우미는 보니까 아무것도 하는 일도 없어요. 하루 종일 말도 거의 안하고 지내요. 내가 말을 걸어야 겨우 대답하고 그런다니까요? 정말 보고 있으면 답답해요.

- 어리.

내가 그 동안 함께 많이 놀아줬습니다. 지금 하는 말은 진실과 거리가 멉니다.

- 우미는 많다고 하지만, 난 아니거든요? 어리는 많이 심심했어요. 뭔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흥.

- 그런 가요? 우리 둘은 서로 판단 기준이 달랐던 모양이군요. 그리고 정보 전달이 허락되지 않은 것은 제 탓이 아닙니다.

결국 상부에선 어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 즉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허락 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었다.

물론 세진은 그게 무슨 고린지 모르지만.

- 에헤, 그래도 우미가 있어서 덜 심심했던 건 맞아요.

그러니까 실망하지 마요.

- 저는 실망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 삐치지도 말고요.

- 그런 적 없습니다.

- 네에. 우미는 굉장하니까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네에.

세진은 어리가 우미를 놀리는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우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리야, 나 잠시 지하창고에 갈 건데 같이 갈래?"

- 저, 거기다 버리고 오시려고 그러죠?

"하하, 아니다.

그런 거. 그럼 여기 있어라."

- 넵.

어차피 갔다 오셔도 순간일 텐데요 뭐.

세진은 그렇게 대답하는 어리를 두고 게이트를 열어 지하창고로 향했다.

세진이 지하창고로 가는 이유는 변형 디버프를 확실하게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세진이 각인한 디버프는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석판에 기록된 것은 그 변형으로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대상의 체내에 넣은 후에 그 에테르를 한 곳으로 움직여서 그것을 폭발시키는 기술이었다.

디버프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서 엄청난 위력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바로 그 변형 디버프 기술이었다. 세진은 그것을 디버프 붐으로 이름을 붙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줄여서 디버품. 세진이 디버품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헌터룸으로 돌아와 다시 생체에테르바디에 접속한 후, 세진은 얼마간의 시간을 집에서 디버품 수련에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세진은 정신능력이 육체능력에 비해서 많이 사용되지 못하는 또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각인이란 방법이 있기 때문에 육체능력은 에테르 기관의 업그레이드와 병행하면 어렵지 않은 성장이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유저 최상급에서 익스퍼트가 되는 것도 에테르 기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련이 되고 그 비용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경지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정신능력은 에테르 기관이 업그레이드 되어도 익스퍼트에 해당하는 기술을 쓸 수가 없었다.

정신 능력은 말 그대로 스스로 깨우쳐서 성장해야 하는 것이었다.

각인이란것도 육체 능력은 몸 안에 에테르의 통로를 만들고 개척하는 물리적인 것이라면 정신 능력의 각인은 방법을 알려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세진이 디버품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에테르의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달음도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육체 능력과 비교하면 몇 배는 더 어려운 것이 이쪽 길이었어. 그러니 헌터들 중에서 정신 능력을 주력으로 쓰는 사람이 드물고, 그 중에서도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사람이 가뭄에 콩 나듯이 있는 거겠지. 이거 고생길이 훤하게 열렸네."

세진은 정신능력의 성장에 대한 비밀을 깨닫고는 자연히 불만을 쏟아 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육체 능력으로 방향을 바꿀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본신으로 이곳에 와서 새로 익혀야 한다는 소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단병접전을 하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꾸준한 연습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노력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 내겐 시간이 넘치도록 있다.

세진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노화 방지가 되는 영구회복 캡슐을 복용했으니 본체가 늙을 일도 없다.

수명도 무척 길어질 거라 했으니 이곳 데블 플레인에서 시간을 얼마나 보내건 조급한 마음을 가질 일도 없다. 아직 지구의 시간은 며칠 흐르지도 않았다.

세진은 그렇게 마음을 굳게 다지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거버너와 탄제, 세진은 다시 사냥 준비를 갖추고 서쪽 강변의 백사장으로 향했다.

벌써 몇 번이나 오고 간 길이라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는 세 사람이다.

"야, 탄제, 너 얼마나 모았냐?"

거버너가 탄제에게 물었다.

"3만 좀 넘는다.

탄제가 그렇게 말하곤 입을 다문다.

"야, 내가 물었으면 너도 물아 봐야지. 그렇게 제 대답만 하고 끝이냐?"

거버너가 탄제에게 섭섭하단 듯이 따진다.

"짜식아, 너 지금 정확하게 4만 2천 에텔론 모았지? 자투리 빼고."

"어? 어떻게 알았냐?"

7/17

거버너가 깜짝 놀라서 되묻는다.

"우린 매일같이 붙어 지낸다. 세진이야 사냥 끝나면 따로 지내지만 우린 함께 지내. 그런데 너하고 나하고 세진이 분배를 꼭 같이 받거든? 그럼 내가 너의 지출을 대충은 알 수 있을까? 없을까?"

"음. 그야 알겠지. 나도 너 얼마쯤 쓰는지 아는데."

"그럼 끝이잖아. 너도 계산을 하면 내가 얼마나 쓰고 모았는지 아는 거고, 나도 그래서 아는 거지."

"이야, 그걸 계산하고 다녀? 그냥 나처럼 물어보면 될 일을?"

"푸후, 그게 계산하고 다녀서 아는 거냐?

그냥 함께 지내면서 관심을 가지다 보면 아는 거지?"

"응? 그런 거냐? 그럼 나는 탄제 너한테 관심이 없는 걸까? 왜 그걸 모르고 있지?"

"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거다. 단순한 거."

"아, 그런 건가?"

거버너는 탄제의 말에 그런가 하고 넘어간다.

"단순하다는데 화 안 내냐?"

"괜찮아. 괜찮아. 많이 들어서 이젠 별로 신경도 안 쓰여. 더구나 탄제 니가 하는 말인데 뭐."

거버너는 탄제가 하는 말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싱긋 웃는다.

세진은 그런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디버품을 연습하고 있다.

이제 25미터 반경까지 넓어진 디버프 범위 안에서 일정 지역에 에테르를 모은 후에 폭발을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세진은 폭발에 한 번도 성공을 하지 못했다.

에테르 붐과 비슷하지 않을까하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봤지만 디버프 기반의 에테르는 뭉치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폭발시키는 것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에테르 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것이다.

하지만 세진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디버품 연습에 매진했다.

이렇게 이동을 하고 있을 때에도 쉬지 않고 아주 작은 단위로라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걸음을 옮기던 세진이 우뚝 멈추며 소리를 질렀다.

"멈춰!"

그리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뛰어."

"뭐야? 세진?"

"왜 그래?"

"뛰어! 다섯 명인데 전에 봤던 그 놈들이야 후안 패거리. 그런데 숲에 숨어 있었어. 뭔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소리지."

세진은 죽어라 달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이앤과 알프론의 느낌은 확실히 기억하는 세진이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후안 패거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디버프 에테르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로 알 수 있는 체격을 고려해도 답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세진과 거버너, 탄제가 뒤돌아 뛰기 시작하자 세진의 말대로 그들이 가던 길 앞에서 후안과 제이앤, 알프론, 드렉, 트렉 형제들이 뛰쳐나왔다.

"잡아. 잡아 죽여!"

후안이 고함을 지르고 알프론이 빠른 속도로 세진 일행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알프론은 작은 키에 비해서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가 주로 그런 쪽의 육체 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세진도 알고 있었지만 이전에 비해서 훨씬 빨라진 속도다.

세진은 디버프 범위 안으로 들어온 알프론의 몸에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알프론은 그 사실을 모르고 빠른 속도로 다가와서 제일 뒤에 있는 탄제을 향

해서 소검을 휘둘렀다.

세진은 그것을 디버프 기반 에테르로 모두 느끼고 있었기에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좀 이르지만 알프론의 몸에 디버프를 걸어 버렸다. 조금 더 시간을 줬으면 꽤나 충격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이 아쉬운 세진이었다.

"으앗!

으아아아. 이거 뭐야?"

순간 알프론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에테르의 충돌로 온 몸이 전기가 통하는 듯 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히 달리는 속도가 느려져서 탄제에 대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새끼. 저게 디버프를 건 거군?

젠장!"

알프론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30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세진 일행을 쫓기 시작했다.

"뭐야?"

후안이 그런 알프론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디버프야.

그거에 당한 거지. 가까이 가면 꼼짝 없이 당하게 생겼어. 전혀 기척을 느끼지도 못하고 당했으니까 말이야."

"그래? 그거 까다롭네. 하지만 걱정 없어. 놈들은 도망 못 가. 후안, 우회해서 앞으로 가. 가서 놈들의 길목을 막아."

"응?"

"길목을 막으며 놈들은 어쩔 수 없이 몬스터 영역으로 가게 되어 있어. 좌측으로 가면 말 그대로 부족 몬스터들이 있는 곳이라 무척 위험하지 그걸 아는 놈들이니까 우측으로 일단 갈 거야. 그렇게 되면 몬스터 영역 때문에 레트시로 가려면 빙 돌아야 하는 거야. 일단 그리로 몰기만 해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

후안은 달리는 중에도 앞쪽 지형을 떠올리며 알프론에게 설명을 한다. 이미 몇 번이나 이번 습격을 준비하며 주변 정찰을 했던 후안이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될까?"

"일다 막기만 하면 끝이야. 놈들을 약간만 지체시켜도 우리들이 포위망을 만들 수 있지. 그럼 세 놈 정도는 금방 정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음, 알았어. 그렇게 하지."

알프론은 후안의 지시를 받아서 세진 일행을 우회해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프론이 세진 일행을 앞질러 가는 모습이 거버너의 시야에 잡혔다.

"한 놈이 앞질러 가고 있어. 어떻게 하지?"

"이 이상 속도를 내긴 어려워. 지금도 에테르를 써서 달리는 거라고."

제일 속도가 느린 탄제가 얼굴이 시커멓게 죽은 상태로 중얼거렸다.

"거기 서라.

세진놈만 놓고 가면 다른 두 놈은 보내 준다."

그런데 뒤에서 후안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듣지마. 저거 분명 우릴 떼어 놓고 하나씩 정리 하려는 생각일 거야."

탄제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맞아. 믿을 놈을 믿어야지. 분명 속셈이 있을 거야."

거버너도 탄제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세진은 좀 달랐다. 만약 정말로 저들이 노리는 것이 자신이라면 굳이 이들과 함께 달릴 이유가 없었다.

아직 자신은 에테르의 여유도 있고, 누구보다 오래 달릴 자신도 있었다. 탄제의 속도에 맞춰서 뛰고 있지만 조만간 탄제 때문에 모두가 잡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따로 가지. 앞서 간 놈이 길을 막으면 둘은 그 놈을 그대로 공격하며 레트시로 가. 그럼 내가 우측으로 빠질 테니까 말이야. 저 놈들이 노리는것이 나라면 둘은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거야. 모두 나를 노리고 올 테니까 말이지."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해? 우린 파티라고."

"맞아. 파티는 서로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이 때문에 탄제가 잡히면 모두가 나서서 싸워야 할 상황인 것이다. 물론 탄제가 다른 둘에게 보호의 의무를 해지해 준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내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헌터룸 관리자도 인정을 해 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하

자."

세진이 그렇게 제안을 한 이면에는 어차피 얼마 후에 버릴 에테르생체바디라면 조금 일찍 버린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에텔론 배당금 따위는 지금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거버너와 탄제에게 호의를 배푼다는 의미 보다는 이렇게 함께 달리다가 모두 의체를 잃는 것 보다는 후안 패거리를 세진이 끌고 가면 지금 보다는 더 탈출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선 탄제를 놓고 갈 수 없으니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위를 당할 텐데, 그 전에 흩어지면 탄제 때문에 발목이 잡힐 일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 놈들이 모두 세진을 따라 온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툴틱으로 상황 전파는 끝났어. 지금 상황을 다른 헌터들도 모두 알았을 거야. 뭐 도우러 올 놈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탄제가 달리는 중에도 할 일은 하고 있었는지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후안 일행에게도 들었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물론 뒤에는 작게 말하는 센스를 보였다.

===================

========= 작품 후기 ============================넵... 오늘도 한 챕터 올라갈 예정입니다. 물론 세 편이고요... 당분간...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도 오늘도 목표 달성!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시길... 앞으도 둘 더 올라갑니다. ^^

< -- 습격 도주 납치

-- >

세진은 숲 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를 포위한 상태로 후안 패거리 다섯이 함께 숲을 달린다.

지금 세진은 후안 일행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이리저리 몰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아직은 디버프 덕분에 버티고 있는데, 세진이 누군가를 향해서 달리면 디버프 범위 안에 들기 싫어하는 놈들은 30미터라는 거리를 두고 물러난다.

그러니 계속해서 세진을 포위한 상태로 30미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진이 레트시와 가까운 방향으로 이동을 하려고 하면 결사적으로 방해를 하고 막는다.

거버너와 탄제는 알프론이 앞쪽에 나타나서 길을 막는 때부터 헤어졌다. 그 순간 세이 따로 달리기 시작하자 정말로 알프론을 비롯한 후안 패거리 전부가 세진을 따라 붙었던 것이다.

거버너와 탄제가 여유를 찾자 어떻게든 세진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으려고 애쓰고 있는 듯 하지만 별로 희망적이진 않았다. 그 전에 세진이 당할 거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라 그저 강 건너 불 보듯이 하고 있을 뿐이다.

세진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계속 움직이는 것 뿐이었다. 사실 다섯 명에게 한꺼번에 포위가 되면 디버프가 있어도 세진이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

더구나 후안이나 드렉 트렉의 경우에는 유저 최상급에서 익스퍼트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라훌족이어서 에테르 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저 최상급에서 익스퍼트를 눈앞에 뒀다면 잠깐이라도 익스퍼트의 능력을 보일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정말 힘을 뽑아내면 세진의 디버프를 씹어 먹고 세진을 죽일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세진을 생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몰면서 에테르를 허비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세진도 몰이를 당한다는 느낌과 함께 그런 상황을 느끼고 있었다.

놈들이 자신의 힘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창을 휘둘러서 목을 잘라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몸에 구멍 몇 개 만들어 봐야 죽기도 어려운 몸이 세진의 몸이었다.

'이럴 때에는 영구 회복 캡슐을 먹은 것이 후회가 되네. 자살도 제대로 할 수가 없으니 말이야.'

세진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부지런히 달렸다. 세진이 쫓는 것은 알프론이었다.

발이 제일 빠른 녀석이라 떼어 놓기가 가장 힘든 놈이었다.

그 놈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입히면 조금이라도 운신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고 세진은 계속해서 알프론을 쫓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빠른 만큼 잡기 어려운 것이 알프론이었고, 세진은 조금씩 지쳐갔다.

"이제 포기한 거냐?"

세진은 숲 속 공터에 다섯 명의 라훌헌터에게 포위된 상태서 서 있었다.

그들 후안 일행은 세진과 30미터 정도 거리를 주고 다섯 방향에서 포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진이 달리는 것을 멈추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한 판 벌여 보고 죽어도 죽고 잡혀도 잡히리라 결심을 한 것이다.

"이유가 뭐지? 헌터를 잡아 봐야 너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다가 너희들 인적사항이 지금 툴틱을 통해서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데?"

"별 거 아니야. 우린 레트시를 떠나기로 했고, 그 전에 화려한 사건 하나를 저질러 보자고 했지. 그래서 걸린 것이 너야. 너하고 거버너, 탄제 중에서 우리가 너를 찍은 거지. 아, 여기 제이앤과 알프론이 셋 중에서 네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더군."

세진은 제이앤과 알프론을 한번 힐끗 봤다. 세진은 후안의 말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 놈은 내가 켜 놓은 툴틱을 의식해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거겠지?'

'도대체 뭘 노리는 거지? 내게 얻을 것이 뭐가 있지? 에텔론은 주고 싶어도 줄 방법이 없는데? 정말 바라는 것이 없을까? 그냥 헌터를 괴롭히려는 그런 생각으로 모인 걸까?'

"킬킬. 저 놈은 팔다리를 뜯으면 어떤 소리를 지를까?"

"아마 다른 놈들하곤 다를 거야. 저 놈은 저게 본신이라고. 에테르 기관이 없는 몸뚱이 말이야. 어쩌다가 의체를 잃고 본신으로 여길 돌아다녔는지 모르지만 우린 상관없는 일이지. 제 운이 그거뿐인 걸 어떻게 하겠어?"

세진은 드렉 트렉 형제가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저들이 자신이 본체를 가지고 이곳에서 헌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더 진절머리가 났다.

진짜 사람이라 여기면서 죽이려 드는 것이란 소리니 더욱 소름이 돋는 것이다.

"내, 내가 본신인 것을 알면서 죽이려고 한단 말이야?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크크크. 그게 뭐? 우리 라훌은 너희들이 꾸는 꿈의 조각들이야. 진짜가 아닌 가짜에서 태어난 존재들. 그런 우리에게 너, 너 같은 진짜 몸뚱이로 내려온 헌터들은 그야말로 끔찍한 존재지. 우리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을 지니고 있는 존재니까 말이야. 가짜들로 이루어진 이 행성에서 너 같은 진짜는 정말 드물거든."

후안이 뭔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맞아. 진짜의 피를 보는 것은 그것 나름의 쾌감이 있을 거야.

지금까지 죽인 것들은 가짜였지만 너는 진짜니까 말이야."

"그래. 그래."

드렉 트렉 형제는 정수리에만 손바닥 반만한 넓이로 머리카락이 나 있어서 웃음이 나는 얼굴을 가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흉신악살보다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진은 그들의 눈빛에서 인간이 아닌 짐승을 보았다.

"너희도 우리 헌터들을 싫어 한 거냐?"

세진은 제이앤과 알프론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우린 누가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어요. 우린 우리의 이익이 중요하죠."

"맞아. 세진. 그래서 조금 미안하긴 해. 우리에게 좋은 일도 했는데 말이야."

"맞아요. 나는 아직도 세진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뜨거운 몸을 달랠 때도 있다구요."

"미친 년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왜 나는 끌어안고 뒹굴어?"

"호호홋, 그거야 알프론이 키는 그래도 그건 실하니까 그렇죠.

호호호."

알프론과 제이앤은 이제 세진은 다 잡은 상태라는 듯이 여유 있게 걸죽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세진은 자신을 포위한 다섯이 모두 정상적인 것들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제이앤과 알프론의 말처럼 뭔가 자신에게 저들이 얻을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데 만족했다.

"이제 시작을 해 볼까?"

"그래, 그래. 이제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우리도 제대로 힘을 써 볼 생각이니까 말이야."

"맞아. 보아하니 상처가 빨리 아무는 걸로 봐서는 치료 캡슐을 먹은 모양인데 그럼 앞으로 3일 동안은 죽고 싶어도 쉽게 죽지 못할 거라는 말이지."

영구 캡슐은 생각지 못하는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세진은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크크. 그걸 우리 형제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찢어 놓고, 갈라놓아도 회복이 되거든. 그게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닌데 아주 죽고 싶은 심정이겠지. 히히히. 나는 그렇게 오래 가지고 놀 수 있는 몸뚱이가 좋더라."

"더구나 저렇게 진짜 몸이면 더 좋지. 안 그래?"

세진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는 다섯 명을 보면서 일이 좋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없이 잡혀서 놈들의 장난감이 될 생각은 없었다.

세진의 디버프 기반 에테르가 다섯 남녀의 몸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진으로선 승산이 거의 없는 그런 싸움이.

알프론의 소검이 옆구리를 파고든다.

'개놈들,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가리는 곳도 없이 찌르고 보는구만.'

세진은 가까이 붙은 알프론의 얼굴을 왼팔 팔뚝에 매단 작은 방패로 내리 찍었다.

콰직!

"커억, 새끼!"

알프론은 뒤로 물러나며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렇게 알프론을 치는 사이에 뒤에서 제이앤의 대검이 등으로 내리 꽂힌다.

츠와악!

"크으윽!"

"죽여!"

"부셔버렷!"

세진이 등에 칼을 맞고 휘청거리자 드렉과 트렉이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를 앞세우고 좌우에서 달려든다.

세진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내달으며 드렉 트렉의 공격을 피한다.

"어딜 가려고?"

그런 세진의 앞을 후안이 막아선다. 이제껏 이런 상황이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세진은 점차 지치고 있는 것이다. 후안 일행도 이번 작업을 위해서 모두들 회복 캡슐을 먹고 왔다. 그래서 세진의 공격에 상처를 입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이 된다. 그러니 디버프로 속이 망가지는 충격을 여러 번 받았어도 지금까지 멀쩡한 모습으로 세진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회복 캡슐을 먹지 못했다면 세진이 디버프에 충격을 받은 이들을 떨치고 도망을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카카캉!

세진이 휘두른 창을 후안이 요리조리 피하면서 검으로 막아낸다.

그의 움직임은 알프론에 못지않게 날렵하다.

푸욱!

"커억! 이런."

세진은 등 뒤에서 어깨를 찌르고 들어온 검에 인상을 찌푸린다.

손을 뻗어서 뽑아 보려고 했는데 칼날이 몸 안에 박혀 있고, 손잡이가 없다.

"어떠냐? 크크 멋지지?

그게 바로 못질이라는 거다. 내가 개발한 건데 쓸 만하지?"

알프론이 손잡이만 남은 단검을 보여주며 히죽거린다.

"그건 빼기가 어렵지. 그럼 너는 어깨를 쓸 수가 없고 말이야. 키키키."

"우와 제대로 한 껀 했네요? 멋져요. 그거 있으면 나도 하나 줘요. 반대쪽 어깨엔 내가 박아 넣을 테니까."

제이앤이 알프론의 단검에 흥미를 보였다.

"진작 쓰지 그랬어? 그럼 좀 더 쉽게 끝났을 거 아냐?"

후안이 짜증을 낸다.

"기회가 없으면 쓰지 못하지. 그러다가 들키며 더 어려워지는 거고 말이야. 저 녀석이 지치지 않았으면 어려웠다고."

알프론이 인상을 쓰며 항변을 한다.

"어쨌거나 마무리를 지어 볼까?"

"크크크.

좋은데? 이제 제대로 놀아 볼 수 있는 거야? 난 묶어 놓고 괴롭히는 것이 좋아.

저렇게 팔팔하게 무기를 들고 덤비는 놈은 싫거든."

"맞아. 우린 그렇지."

후안과 드렉 트렉이 세진의 포위를 더욱 좁힌다. 이제 오른쪽 어깨를 쓰지 못하는 세진의 창 따위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세진은 이제 자신에게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세진은 왼손에 쥐고 있는 창에 남은 에테르를 가득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잠깐의 여유를 얻어서 준비한 마지막 한 방을 터트렸다.

"죽어라! 하나는 데리고 간다!"

세진이 디버프를 발동시키며 후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후안은 이미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검을 들어서 세진이 휘두르는 창을 막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세진에게 다가가던 드렉 트렉 형제 중에서 드렉이 갑자기 비명과 함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커억, 씨발 디버프."

그리고 후안에게 가는 줄 알았던 세진의 창날이 드렉의 머리를 횡으로 베어냈다.

휘잉! 츠릿! 퍼벅!

그와 동시에 드렉의 반대쪽에 있던 트렉의 방패가 세진의 몸통을 두드렸고, 세진은 다시 드렉 쪽으로 밀려가면서 왼손의 창을 놓고 손을 뻗어서 드렉의 정수리 머리털을 잡아 당겼다.

"무어야?"

"헛, 저런!"

"드렉!"

"어머나!"

"미친!"

이마 윗부분이 잘려나간 드렉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음울한 목소리로

'뭐냐?'

고 물었고 나머지 후안 패거리는 세진이 드렉의 뇌가 일부 들어 있는 드렉의 머리 부분을 발밑에 던지고 짓밟는 것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진은 죽을힘을 다해서 다시 숲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숫자를 하나 줄었으니 어쩌면 탈출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세진이 목표로 삼은 것은 후안이 아니라 드렉이었다.

드렉의 몸에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최대한 밀어 넣고 마지막 공격을 하면서 기회를 노린 것이다. 그리고 일부러 머리를 뜯어서 밟아 버리는 잔인한 행동으로 후안 패거리를 잠시 놀라게 하고 틈을 봐서 도망을 가려고 했던 것이 성공한 것이다.

"잡아."

"드레액!"

트렉은 죽어가는 드렉을 품에 안고 공터에 남았고, 후안과 제이앤, 알프론이 급히 세진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세진은 무기도 없이 남은 에테르의 힘을 다해서 숲을 내달렸다.'이리로 가면 부족을 이루고 있는 몬스터들의 영역이다.

그것도 주황색 등급이지. 그곳으로 가면 적어도 저 놈들에게 잡히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진작 포기하고 죽으러 갔어야 했는데 젠장.'세진은 어떻게든 탈출을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지난 시간이 아쉬웠다.

진작 자살을 결심했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잘못하면 후안 패거리에게 생포되는 꼴을 당할 뻔 했던 것이다.

세진은 힘을 내서 몬스터 영역을 향해 달렸다.

드디어 성공이 눈앞에 있었다. 결과가 죽음이라도 후안 패거리의 손에서는 벗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공할 것 같았던 세진의 탈출은, 성공 직전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세진은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충격을 받고 부족 몬스터의 영역 바로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 --

습격 도주 납치 -- >

"쯧쯔. 어째 이런 일도 하나 제대로 못하나? 아무리 익스퍼트가 되지 못한 하급이라도 그렇지 다섯이서 한 놈을 제대로 상대 못해서 하나는 죽고 목표는 자살을 하게 만들어?"

온 몸을 두툼한 천으로 가린 사람이 쓰러진 세진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의 천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옷을 걸친 그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 사내 곁으로 후안 일행이 당도했다.

"누구냐?"

"뭐지?"

제이앤과 알프론이 깜짝 놀라서 무기를 들었다. 엄한 놈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먹이를 가로챈 상황인 것이다.

지만 후안은 검을 내리고 그를 아는 척 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쯧, 일처리를 이따위로 밖에 못하나? 여기서 더 들어가면 어딘지 몰라? 만약 목표가 이 안으로 들어갔으면 어쩔 거야? 네 놈이 목숨이라도 걸고 들어가서 잡아 나올 생각이었어?"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내가 지켜보지 않았으면 이번 일은 실패로 끝났을 거야. 딱 봐도 에테르 기관이 없는 몸인데 그럼 이 놈이 본체란 말이잖아. 이건 죽으면 뒤도 없는 거란 말이야."

"네네."

"그리고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챙길 거야. 물론 사소한 일이야 후안 네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이고, 저기 저 아이들도 데려다가 심부름이나 시키고."

"알겠습니다. 뭐 해? 감사 인사를 드리지 않고?"

"뭐야?

누군데?"

"그러게요? 후안님이 아시는 분인 거 같은데 그냥 이렇게 막무가내로 이러시면 저도 곤란한데요?"

알프론과 제이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을 한다.

"쯧, 알아서 상황 정리 하고, 이놈은 계획대로 해라. 그건 가지고 왔겠지?"

"물론입니다."

"내가 이런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는 건데.

쯧쯔."

끝내 정체를 밝히지 않은 그는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숲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대, 대단한 능력자다."

알프론이 단번에 사라진 사람이 엄청난 실력자란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더듬었다.

"시끄럽고 일단 이 놈을 끌고 가자.

알프론 못질을 좀 촘촘하게 해. 회복 캡슐을 먹은 놈이라 방심하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걱정하지 마라. 어깨에 둘, 무릎에 둘, 팔굽에 둘, 팔목, 발목에 둘씩이면 꼼짝도 못할 테니까 말이야."

알프론은 방금 떠난 실력자가 후안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별다른 불만 없이 후안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는 곧바로 허리를 둘러가며 꽂혀 있던 단검들을 이용해서 세진의 몸에 못질을 시작했다. 단검을 관절에 쑤셔 넣고 비틀어서 손잡이를 분리해 내는 것이다. 그렇게 이전에 박혀 있던 것과 합쳐서 모두 열 개의 단검날이 세진의 몸속으로 숨었다.

세진은 몸에 칼날이 박혀도 느끼지 못하는지 반응이 없이 늘어져 있을 뿐이다.

제이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당분간 몸조심을 하기로 결심하고 입을 다물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주긴다아!"

그 순간 멀리서 트렉이 드렉의 몸을 안아들고 후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어쩌지?"

후안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못질이 끝난 세진을 어깨에 들쳐 업고 일어난다.

"이만 가자. 저 놈도 쫓아오다보면 정신이 들겠지."

"아, 그래."

"좋아요. 가요.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후안이 미리 준비를 해 뒀다니 안전한 곳이겠죠."

"크크크. 그럼. 당연하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장담하지. 하하핫."

후안은 그렇게 웃으면서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멈춰어어어. 그 놈을 내 놔! 머리털 하나까지 꼭꼭 씹어 먹어 버릴 테다!"

뒤에서 트렉의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셋 중 누구도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세진은 끔찍한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끄으으으윽."

"오호라. 깨어났나? 역시 회복 캡슐이 좋기 좋은 건가 봐.

그렇게 쇳덩이 열 개를 몸에 박고서도 멀쩡하게 깨어나는 것을 보면 말이야."

"후아안!"

"워워워. 목소리도 우렁차지. 하지만 그런 기운은 아껴 둬야 할 거야. 너는 아주 오래 오래 이곳에서 고통을 견뎌야 할 테니까 말이야.

나도 사람을 좀 보는 편인데, 너는 절대로 쉽게 굴복할 놈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충고를 하는 거야. 견디려면 힘이 있어야 해. 응? 알겠어?"

후안은 특유의 짐승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세진을 달래듯이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세진은 수인족의 특징을 보이는 후안의 눈동자를 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하는 게 뭐냐?"

세진은 후안이 도대체 뭘 노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응? 모르겠어? 지금 네가 가진 거. 그 중에서 우리가 탐낼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아참, 여기서 툴틱이 작동을 안 하니까 에텔론 따위를 떠올리진 말아줘."

세진은 툴틱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소리를 들었겠네? 눈빛이 바뀌는 것을 보니 여기가 테멜이란 사실을 알았나 봐?"

"어떻게 너 같은 놈이 테멜을 가지고 있지?"

"나 같은 놈이 뭔지 몰라도 기분이 나쁘네? 뭐 그래도 내가 일단 참아 줄게. 어차피 우리에게 시간이 많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테멜을 너희 헌터들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움직일 수 있는 테멜도 너희만의 것이 아니야. 혹시 그런 거 알아? 지금 우리가 있는 이 테멜은 꼭 요만한 크기야. 요만한 크기."

후안은 주먹을 쥐어서 세진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래. 맞아. 그렇게 작아서 숨기고 다니기도 쉽지. 그리고 우리가 여길 들어와 있는 동안에 안전하게 숨겨 두기도 쉬워. 그렇게 작은 건 잘 숨길 수 있는 곳이 굉장히 많거든? 아, 그런데 아직도 우리에게 줄 것이 없어? 생각이 안 나?"

세진은 후안의 질문에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음, 그건 안 좋은데? 우린 정말 그게 필요한데 네가 그걸 줄 생각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우린 그걸 빼앗아야 하거든."

후안은 그렇게 말하곤 모습을 감췄다.

세진은 돌로 만들어진 석실의 안쪽 벽에 양팔을 벌린 상태로 묶여서 붙여 세워져 있었다.

석실의 천정에서 흐릿한 빛이 나왔지만 세진은 그게 무슨 빛인지 알 수 없었다.

흐릿하게 에테르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세진은 후안이 나간 석실 입구를 노려봤다.

거기 너머에 몇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느껴졌다.

세진의 에테르는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저 몸을 구속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관절마다 쇠못을 박은 것뿐이었다. 물론 진짜 못이 아니라 단검의 날이었지만.

세진이 입구를 노려보는데 거기서 커다란 체구의 트렉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크. 그거 알아? 니가 죽인 드렉이 내 동생이었어."

트렉은 석실 입구에서 세진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트렉의 표정은 무척 슬퍼 보였다.

"이젠 드렉하고 같이 놀 수가 없게 되었지. 그건 무척 슬픈 일이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으면 내 동생 드렉이 기분이 어떨까? 아, 맞다. 우리 라훌족은 영혼이 없던가? 하긴 가짜 몸뚱이에서 태어난 것들이 영혼이 있을 턱이 없지. 그러니까 드렉은 죽은 그 순간 영원히 세상에서 소멸된 거야. 크크크."

트렉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참을 낮은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너는 다르지? 넌 영혼이 있을 거 아냐? 응? 너는 만들어진 몸뚱이, 껍데기에서 태어난 놈이 아니잖아. 그렇지? 응?"

트렉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 너는 그래서 죽어도 되는 거잖아. 죽어도 영원한 소멸은 아니잖아. 안 그래? 하지만 우리 드렉은 이미 소멸되어 버렸어. 정말 불쌍한 일이지. 뭐 우리 라훌들은 모두가 그런 존재들이긴 하지만. 자, 어쨌거나 너는 내 동생 드렉을 죽였는데 나는 너를 죽여도 손해를 보게 생겼어.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지. 최대한 내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말이야. 그래서 나온 결론은 이거야. 너는 쉽게 죽지도 못하고 고통의 끝을 보게 될 거야. 매일 매일. 그렇게 소멸된 내 동생을 기억하게 될 거란 말이야. 비록 없어졌지만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을 거 같지 않아? 키키킥."

트렉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에서 짧은 칼을 꺼내서 세진의 몸에 대고 긋기 시작했다.

"우히힛. 봐봐. 이거 봐. 멋지잖아? 이런 피가 진짜 피인 거지? 넌 진짜잖아. 응? 그런데 진짜나 가짜나 뭐 다른 것도 없네?

키키킷."

"크으으읏. 크윽."

세진은 몸을 가르고 지나가는 칼날이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쓰라린 고통이 오더니 점차 고통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다려. 기다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이런 벌써부터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하고 있어. 이럼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트렉은 자신이 만든 자상들이 치료되는 것을 보고는 허둥지둥 품에서 뭔가를 꺼내서 세진의 몸이 문지르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끄아아아악."

순간 세진은 트렉의 손이 지나가는 곳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자존심이고 뭐고 세진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뭐가 되는 것 같은 거지. 이건 말이야 쇳가루로 만든 거야. 그냥 대충 만들어서 꼴이 말이 아니지. 음, 시뻘겋게 달군 것을 흙탕물에 넣으면 말이지 이런 꼴사나운 것들이 나와. 그리고 이걸 네 상처에 이렇게 문질러서 박아 넣으면, 네 몸이 회복이 되면서 이것들이 너의 몸 안에 남게 되지. 물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 캡슐이 몸 밖으로 이것들을 배출할 거야. 하지만 그 사이에 느끼는 고통이 굉장하다고 하더라고. 키키킥."

트렉은 그렇게 세진의 몸에 꼼꼼하게 쇳가루를 문질러주고 석실 밖으로 나갔다.

"오래 오래 고통스러울 거야. 키키킥.

재미겠지? 동생을 생각해. 내 동생. 내 동생 이름은 드렉이었어. 생긴 건 나하고 같았지. 그러니까 기억하기도 쉽지? 키키키키."

트렉은 중얼중얼 떠들며 밖으로 나갔지만 세진은 벽에 매달린 상태로 계속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끄아악."

"얼마나 견딜까?"

세진의 비명을 들으며 후안이 물었다.

손에 묻은 피를 닦지도 않고 탁자에 와서 앉는 트렉이 그런 후안을 힐끔 보면서 대답했다.

"우리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 좋아. 그래야 놈의 정신이 더 빨리 무너지겠지.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고통이 가시지 않게 해야 해. 놈은 디버프를 쓰니까 말이야.

죽을 일이야 없겠지만 한 번씩 당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어. 정신적 고통이 이어지면 디버프도 쓸 수 없겠지."

트렉은 이전에 석실에서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진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 연기를 한 것이다.

미친놈이 세진을 상대한다는 것을 알면 보다 쉽게 자포자기 하게 될 거란 예상에서 하는 연기였다.

"차라리 에테르를 쓰지 못하게 하는 건? 그런 것도 가능하다면서?"

알프론이 후안에게 물었다.

"놈의 에테르를 없애는 건 안 될 일이야. 그게 쉬운 것도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놈의 에테르 수련법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없애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고문 끝에 실토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놈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중요해. 그러니 이대로 가야 해."

"맞아요. 우린 그 방법을 알아내야 하죠. 그러니 그의 에테르를 그냥 둬야 해요. 그리고 에테르를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은 에테르 기관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런 거였나? 뭐 알았다고. 알았어.

사납기는 원."

알프론은 후안과 제이앤의 따가운 질책에 움찔하며 한 발 물러서는 모양을 취했다.

그런 중에 세진의 비명이 끊겼다.

"응? 왜 조용하지?"

알프론이 살짝 불안한 듯 얼굴을 돌려 세진이 있는 석실 쪽을 보았다.

"내버려 둬. 기절한 거야. 그 고통이 계속 이어지는데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저대로 뒀다가 조금 후에 깨워야 해. 계속 지속적은 고통을 느끼도록 두면 결국 고통에 익숙해지거든. 그러니까 저렇게 기절해 있는 시간도 필요해. 또 나중에는 고통을 완화 시키는 시간도 일부러 줘야 해. 그래야 다음에 겪는 고통이 그만큼 더 커지거든. 흐흐흐."

트렉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알프론을 말리며 이빨 사이로 바람 빠지는 듯 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후안, 그 분들은 뭐하는 분이죠?"

제이앤이 후안에게 물었다.

"두 분 모두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분들이지."

"네? 마스터요?"

"그래. 우리 라훌족으로선 최고의 경지에 계신 분들 중에 두 분이 지금 이곳에 와 계신 거라고 보면 되지."

"그렇게 세진이 중요한가요?"

"세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진이 가지고 있는 에테르 수련법이 중요한 거지. 그것만 알아내면 제이앤이 말한 대로 모든 라훌족이 헌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가능성을 보았으니 그 분들이 나서신 거지. 그래도 우리에게 일을 맡겨 주신 것은 우리가 라훌족이어서야. 우리의 몫을 빼앗지는 않겠다는 뜻이신 거지."

후안은 그렇게 말하며 제이앤과 알프론, 트렉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런 대단한 분의 배려를 받고 있으니 고맙게 여기라는 의미를 담은 눈빛을 하고서.

세 사람의 후안의 눈빛을 똑바로 받지 않고 눈을 아래로 살짝 내려서 피했다.

어쨌거나 마스터들을 등에 업고 있는 후안이 지금으로선 대장인 것이다.

============================ 작품 후기 ============================결국... 불쌍한 세진... 그나마 드렉 한 죽였을 뿐... 하지만 고난은 주인공을 담금질하는 최고의 수단... 너는 새롭게 태어나리니.. 당분간 괴롭더라도 참으려무나 쿠쿠쿠... 넵.. 오늘도 여기까지.. 내을은 또 새로운 쳅터...

행복하시죠?

저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더 행복하고 싶어요... ^^음? 추천? 에헤헤헤 어리는 추천 조아~ 퍽! 징그럽게 어딜 어리 흉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