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타는 타지마할에 선정을 눕히고 돌아서다 -- >
- 어서 오세요. 세진님.
- 우와, 누구? 우미라는 관리자인가요?
- 누구죠? 아, 알겠군요. 소형 테라포밍 기계가 있다더니 그쪽이 그건 모양이군요.
- 그거라니요? 나는 우미라고 불러주는데 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되죠. 어리라고 불러 주세요.
-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어리. 그런데 세진님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습니다.
"그래. 우미. 넌 방금 보고 또 보는 거겠지만, 나는 무척 오랜만이네. 어쨌거나 웃긴 인사겠지만 잘 지냈어?"
- 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요.
"그런데 어리를 데리고 와도 되는 건가 모르겠군."
- 상관없습니다. 어리라는 존재는 세진님께 속한 존재이니 이곳에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 하지만 어리라는 존재는 데블 플레인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우미는 만에 하나란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딱 잘라서 선을 그었다.
"알았어. 그럼 내가 내려가 있는 동안 우리 어리와 함께 놀아줄 수는 있지?"
- 놀아주다니요?
"대화를 하거나 서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하는 그런 거 말이야."
- 의미 없는 에너지의 낭비지만 그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보 전달은 안 되지만 대화는 하면서 어리와 놀아주겠습니다.
- 흥, 뭐가 놀아주겠습니다 입니까?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텐데 나랑 이야기도 하고 그럼 서로 좋은 거지.
- 어리는 모르겠지만 저는 수많은 헌터룸의 관리 프로그램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같은 존재들이 무척 많고, 그들과는 언제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대화 상대를 하려면 상대는 넘친다는 말이지요. 물론 사적은 교류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만.
- 그러니까 내가 놀아 준다니까요. 쳇 서로 좋은 건데 뭘 그렇게 아닌 척 하기는.
"그래, 어리는 그럼 여기서 우미와 놀고 있어라.
너도 알겠지만 나는 여기서 생체에테르바디에 접속하면 너와는 소통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이 굉장히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 쳇 알아요. 하지만 만약에 세진님이 다시 왔을 때, 제가 여기 재미없으면 저 다시 지하 창고로 보내줘요. 그럼 금방 세진님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기다릴 필요도 없잖아요. 그럼.
"그래. 이번엔 여기서 우미랑 놀아보고, 다음에는 네가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로 하자."
- 네. 에헤헤. 좋아요. 그럼 다녀오세요. 세진님.
세진은 어리의 배웅을 받으며 의자에 누웠다.
"우미, 보내줘."
- 알겠습니다.
우미의 대답과 함께 세진의 이마에 빛이 한 줄기 쏘아지고 세진은 생체에테르바디에 접속이 되었다.
- 저런 식으로 되는 거군요? 세진님은 이런 모습을 보지도 못해서 아무것도 모르실 텐데, 나중에 이야기 해 드려야겠어요.
어리가 세진의 모습을 보며 우미에게 말했다.
- 그러세요. - 그런데 우미.
- 네.
- 혹시 여기서 제가 배울만한 것이 없을까요?
- 뭔가 배우고 싶습니까?
- 제 수준에 맞는 걸로 배우고 싶은데요.
- 하지만 어리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일입니다.
-에, 그래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 허락되지 않은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 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면 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은 거 아닌가요? 그럼 해도 되는 거잖아요.
어리가 잔머리를 굴려 본다.
- 허락되지 않은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해라 하지 말라고 규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할 일만을 정해주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제외한 것입니다.
- 혹시 저 같은 경우가 있을지 몰라서 허락을 하지 않은 걸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엔 어떻게 하는 건데요?
- 특수한 상황이면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서 상위 존재에게 가부를 물어볼 수는 있습니다.
- 에헤헤, 그럼, 나도 그렇게 해 줘요.
나도 뭔가 배우면서 기다려야지 그냥 이렇게 있기만 하면 심심하다고요.
- 굉장히 감성이 발달한 존재로군요. 심심하다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어리의 요구는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리에게 정보를 전달해도 되는지 물어보겠습니다.
- 고마워요.
우미. 헤헤헤.
세진은 생체에테르바디 보관소에서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테멜을 판매하고 소이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곧바로 레트시까지 왔고 세진은 집에도 가지 않고 곧바로 생체에테르바디 보관소에서 접속을 끊었었다.
소이쥔에서 하룻밤을 잔 뒤에는 꼬박 달려서 레트시까지 왔다. 중간에 날이 저물어도 쉬지 않고 달려서 날이 밝을 무렵에 레트시에 도착한 후에 곧바로 접속을 끊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침이었다. 세진은 보관소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거버너와 탄제는 도시에 있는 몇 곳의 에테르 상점 중 한 곳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서둘러서 도시로 온 이유가 모두 각인을 하고, 에테르 기관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으니 어디 가서 자고 나올 사람들이 아니라고 세진은 생각했다.
세진은 잠시 시간을 가늠해 보다가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에텔론 상점으로 돌렸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계획했던 대로 정신능력 계열을 모두 각인 받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할 수 있는 각인은 모두 하고 쉬지 않고 숙련도를 높일 생각이었다.
정신 능력은 육체가 아닌 기억에 새겨지는 것이어서 본체로 돌아가도 거의 온전히 능력을 지닐 수 있다. 에테르 부족이 문제지만 어쨌거나 본체의 수련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남쪽 에텔론 상점에 도착해서 살펴봤지만 거버너와 탄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세진은 그들이 아마도 다른 상점 앞에서 기다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세진은 잠시 기다렸다가 상점 문에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각인이 가능한 모든 정신 능력을 매입했다.
에테르를 이용해서 원하는 위치에 방어 방패를 만들어 내는 능력, 에테르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막대를 만들어서 쏘아 보내는 능력, 지정된 위치에 에테르를 뭉쳐서 속성을 부여한 후에 폭발을 일으키는 능력이 세진이 새로 익힐 수 있는 것들이었다.
모두가 기본적인 능력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의 기술들은 모두가 기본 능력을 확장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노력만 하면 기본 능력으로 홀로 수련을 해도 상위 능력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신 능력을 각인 받는 비용은 1만 에텔론이었다. 디버프에 비해선 싼 가격이지만 다른 육체 능력에 비하면 비명이 나올 정도로 높은 가격이다.
다만 정신 능력은 상위 능력의 수가 적고 또 각인을 받아야 하는 간격이 크다. 한 번 배워서 쓰기 시작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각인을 새로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육체 능력은 시시때때로 좀 더 나은 능력으로 각인을 받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 비용을 모두 합산하면 정신 능력의 각인 비용이 더 싸다고 봐야 한다. 어쨌거나 에텔론이 부족한 하급 헌터들로선 부담이 큰 액수다보니 결국 정신 능력을 주력으로 하는 헌터의 수가 많지 않은 것이다.
세진은 상점의 목록에서 마스터는 되어야 사용이 가능하다는 정신 능력들도 봤지만 그것은 에테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라 일단 미뤄 뒀다.
집으로 돌아온 세진은 드레드와 일랜드의 환영을 받으며 급하게 마련한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랜드가 살짝 눈치를 보고 침실로 오려고 했지만 세진이 거부했다. 아무리 유희삼아 지내는 데블 플레인의 생활이라지만 당분간은 침대에서 여자와 뒹굴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일랜드가 아쉬워했지만 세진이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 줄 입장이 아니었다.
세진은 이후로 외출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수련에만 힘을 쏟았다.
디버프와 새로 각인한 정신능력은 물론이고 에테르 로드 수련도 멈추지 않았다.
툴틱에선 거버너와 탄제가 함께 사냥을 나가자고 몇 번 연락이 왔지만, 세진은 새로 익힌 정신 능력을 수련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어렵다는 말로 사냥을 미뤘다.
그렇게 두 달이 넘도록 집에서 새로운 능력을 수련한 끝에 세진은 어느 정도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가 되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거버너와 탄제에게 연락을 해서 사냥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거버너와 탄제는 세진의 연락에 무척 열광했다.
그 동안에 최상급 유저에 오르고 의기양양하게 주황색 등급의 몬스터 사냥을 다녔다는데 막상 상대를 해 보니 둘이서 쌍두표를 상대하는 것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더란 것이다.
물론 지금도 쌍두표 수준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냥 효율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전력으로 사냥을 하고 쉬어야 하는 시간이 제법 길다는 것이다.
"그럼 좀 약한 것들을 사냥하지 그랬어?"
세진이 그렇게 말하자 둘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그래선 제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좀 빡빡한 놈이랑 싸워야 실력이 팍팍 늘지."
세진은 그런 둘을 보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욕심으로 사냥을 한다면 나는 빠질 수밖에 없어. 사냥은 안전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맞아.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 절대로 세진을 데리고 위험한 사냥을 할 계획은 없어. 정말이야."
"물론이지. 우리도 쌍두표는 이미 잡아봤던 거라서 도전을 해 보고, 힘들어도 위험하진 않다는 생각에 사냥을 한 거야. 물론 수련 효과도 좋았고 말이지. 세진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이 몸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세진이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 그럼. 그럼."
거버너와 탄제가 세진의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사실 세진으로선 지금의 의체는 조만간 버려야 할 것이었다.
사용중인 의체가 없어야 본신으로 데블 플레인에 내려올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수련을 할 수가 있다.
다만 지금은 새로 익힌 정신 능력을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냥 수련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세진에게 중요한 것은 지구로 돌아가 복수를 할 수 있게 본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니 말이다.
"좋아. 둘이 그렇게 말하니까 함께 사냥을 가도록 하자. 그래서 뭐부터 사냥을 할 생각인데?
"서쪽으로 가자."
세진의 말에 거버너가 레트시의 서쪽을 이야기했다.
"그래. 서쪽으로 가는 게 어떨까?"
탄제도 서쪽을 이야기한다.
"거기에서 뭘 사냥하려고?"
세진이 물었다.
"거부기."
"자이언트 터틀."
거버너와 탄제의 대답이 달랐지만 의미는 같았다.
서쪽 강변 백사장에 영역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거북 몬스터를 잡자는 것이다.
다른 헌터들은 손도 대지 않는 것을 말이다.
"그게, 일단은 백사장이라서 훤히 뚫겨 있어서 기습을 당할 가능성이 없고, 방어력이 뛰어난 몬스터라서 잡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헌터들과 엮일 이유도 없고, 특히 100에텔론 이상의 코어를 주는데 그 확률이 거의 여섯이나 일곱에 한 번 꼴로 굉장히 높다는 게 이유야. 우리가 그 놈을 잡으려는 이유."
탄제가 세진에게 설명을 한다.
세진의 디버프가 있으니 방어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거기다가 수련에도 도움이 되지.
특히 중요한 거. 맘먹고 우리가 도망을 가려고 하면 그것들이 쫓아오질 못하는 거야. 백사장 모래 위에선 빠른데 백사장을 벗어나면 느려지거든. 그러니까 백사장 밖으로만 도망을 치면 그걸로 안전 확보지. 어때? 세진 생각은?"
거버너가 이 정도면 충분히 사냥을 해 볼만 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물었고, 세진도 툴틱을 확인해서 거부기 몬스터에 대해서 알아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극강의 방어력을 제외하면 그리 위험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그렇다는 말은 디버프가 제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란 소리인 것이다.
"그래. 그럼 서쪽으로 가자. 거부기 잡으러."
세진의 허락이 있자, 탄제가 신이 나서 거버너와 함께 활짝 웃었다.
그렇게 세진의 새로운 사냥 계획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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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두 번째...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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