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47화 (47/298)

< -- 사소한 착오가 빚은 비극 -- >

세진은 오랜만에 선정과 함께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고 있는 중이었다. 국도를 따라서 강원도까지 갔다가,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도 즐기다가 돌아오는 계획을 잡고 나온 길이었다.

사실, 요즈음 세진의 어리 공방에 여자들이 드나드는 것을 알게 된 선정이 일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왠지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마음을 풀어주려고 계획한 드라이브였다.

김혜인 박사와 정진이 경호원이 드나드는 것이 마을에 소문이 나서 선정의 동생과 어머니가 먼저 알고 선정의 옆구리를 찔렀는데, 생각지도 못한 옆구리 공격에 당황한 선정이 그 분노를 세진에게 품게 된 것이다.

그걸 풀어 주자고 세진이 야외로 주말 드라이브를 계획해서 며칠 전에는 함께 커플룩도 맞춰 입으며 나들이 계획을 세웠었다.

란색과 붉은 색이 어우러진 등산복을 똑 같이 입고 앞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국도를 달리는 두 사람에겐 마냥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높고 산과 들은 초록을 벗고 색색으로 물드는 날, 곁에 좋은 사람이 있으니 이보다 좋을까 싶은 것이지만, 뒤따르는 도일은 오늘도 혼자서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으로 거리를 두고 뒤따르는 지원차량의 지시나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였다.

도일의 오른쪽 보조석엔 아리수 물병만 굴러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날, 세진에겐 비극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세진의 뒤를 따르던 도일의 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점검을 한다고 했지만 일본 요원들이 자동차 엔진에 손을 댄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정해진 위치에서 말썽이 생겼다.

그렇게 도일의 차가 세진과 멀어진 사이, 세진은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드는 승합차를 피해서 핸들을 꺾고 있었다.

다만 여기서 일본 요원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운전자 앞으로 달려오는 차를 보면 운전자는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다.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더구나 앞에서 달려드는 차가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오는 경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서 피하려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세진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신의 차 왼쪽과 상대의 차를 충돌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내각 조사실 요원들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들이 훈련 받은 대로라면 세진은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차는 약간의 충돌 후에 중앙선을 넘어서 도로 건너편 산기슭에 처박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진이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는 바람에 두 대의 차가 동시에 가파른 경사의 절벽으로 굴러버렸다.

세진이 그렇게 핸들을 돌린 것은 선정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충돌을 하더라도 자신이 있는 쪽이 찌그러져도 자신은 안전할 거라는 생각을 그 순간에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영구 회복 캡슐을 복용한 몸이었다.

어지간한 상처는 금방 치료가 되는 몸인 것이다. 심지어는 심장에 상처가 생겨도 회복이 되는 몸뚱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세진이다.

그러니 자신의 부상 정도는 신경 쓰지 않고 선정을 보호할 생각을 한 것인데, 자동차가 충돌한 후에 절벽으로 떨어질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세진은 절벽으로 밀리는 자동차 안에서 황급히 에어백을 밀어내고 안전벨트를 풀면서 옆에 앉은 선정을 끌어안았다.

"괜찮아. 내가 지켜 줄 거야. 그러니 괜찮아."

세진은 선정의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차량 충돌과 에어백의 충돌까지 겹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선정도 세진의 그 목소리에 안정을 찾으려 했지만 자동차는 가파른 절벽을 구르다시피 내려가다가 중간에서 작은 나무 몇 그루를 박살내고 직각을 이룬 곳에서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선정은 정신을 까무룩 잃었고, 세진은 그런 선정을 꼭 안고 있다가 차가 절벽 밑에 처박히는 충격을 온 몸으로 받아 내며 정신을 놓았다.

"빠가! 멍청한 놈."

약간 떨어져서 따라오며 지원 준비를 하던 곤도는 차 두 대가 한꺼번에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차를 세우고 달려가서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밑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가파른 경사 이후에 직각으로 떨어진 부분이 있어서 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칙쇼."

곤도는 곧바로 부하들과 함께 차를 몰아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일이 국정원 요원들이 타고 있는 지원차량에 함께 사고현장으로 달려왔지만 차를 운전하던 요원은 한쪽에 널려 있는 사고의 흔적은 무시하고 지나갔다.

세진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도로에서 약간 벗어난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곧바로 가까운 벼랑으로 굴러 버려서 사고 흔적이 많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깨어진 유리며 프라스틱을 보고도 그것이 이전에 났던 사고의 흔적이려니 하고 무심히 넘긴 것이다. 강원도 산길에는 유독 그런 사고 흔적들이 많아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이다.

그 순간 도일은 안쪽에서 다른 요원이 추적 장치를 세진의 차에 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느라 창밖을 살피지 못했다.

그들은 서둘러서 세일의 차를 쫓아가야 한다는 것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지, 설마 세진이 사고를 당했으리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진씨 차에 추적 장치를 달아 뒀어야지."

"아 그 사람이 그런 거 찾아내는 귀신인 거 몰라? 몇 번 달았다가 욕만 먹고 다 뗐잖아. 왜 나한테 그래?"

지원 차량인 대형 밴 안에서 지원 요원들이 티격태격 말다툼을 한다.

도일은 운전 중인 요원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속도를 높이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세진이 사고를 당한 곳을 지나쳤다는 것을 몰랐다.

도일과 국정원 요원이 탄 지원 차량이 지나간 후, 곤도가 다시 차를 몰고 사고 현장에 나타났다.

뒤따르던 국정원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되돌아 온 것이다.

"서둘러.

아래로 내려갈 길을 찾아. 저 놈들이 이상을 느끼고 돌아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하이."

"어서, 어서."

곤도는 부하 두 명과 함께 가파른 절벽에서 아래로 내려갈 방법을 찾아 움직였다. 트렁크에서 밧줄까지 챙기고 나서야 그들은 사고가 난 차량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안전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선정은 온 몸이 부서지는 듯이 아파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다 부서진 차의 앞좌석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세진씨!"

선정은 자신의 몸과 차체 사이에 세진이 구겨지듯 끼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추락하는 차에서 세진이 그녀를 안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말하던 목소리를 기억해냈다.

"세진씨. 세진씨 정신 차려요. 네?"

억지로 세진을 바로 앉혔지만 선정은 자신의 왼쪽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억지로 깨진 앞쪽 창문으로 기어 나와 세진이 있는 운전석의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구겨질 대로 구겨진 창문이 열릴 리가 없다. 거기다가 왼쪽 팔을 쓰지 못하는 선정은 창문으로 세진을 끌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세진씨!

세진씨!"

선정은 세진을 부르며 급하게 스마트폰의 119 번호를 눌렀다.

- 네. 119 콜센터입니다.

"여기요. 교통사고가 났어요. 차가 절벽을 구르는데, 우리 세진씨가 나를 보호하느라 껴안고 있다가 많이 다친 거 같아요. 깨어나질 않아요. 차는 다 부서졌는데 세진씨를 끌어 낼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요?"

- 지금 연락하시는 위치를 추적해서 구급차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차에서 연기가 나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아니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저도 앞 유리창으로 나왔거든요. 하지만 차가 떨어지는데 저를 끌어안고 있던 세진씨는 많이 다친 것 같아요."

- 피를 많이 흘리나요?

"잠깐만요. 피, 피가 나는 곳은 없는 거 같아요. 그냥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흐흑."

- 진정하세요. 그럼 그 남자친구 분은 숨은 쉬고 있는 건가요?

자가 호흡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숨은 쉬어요. 제가 확인 했어요."

- 그럼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지 마시고, 그대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위험한 것은 없는 상황이니까요. 대신에 차에 불이 붙거나 하는 상황이 되면 곤란하니 그건 잘 확인을 하셔야 하는데...

"그냥 수증기 같은 건 조금 나는데요. 타는 냄새는 별로 안 나는 것 같아요. 저기 함께 떨어진 다른 차는 방금 불꽃이 피기 시작한 거 같아요."

- 다른 차가 있다는 말입니까?

"반대편에서 중앙선을 넘어 왔어요. 세진씨가 핸들을 꺾어서 피했는데 흐흑, 그냥 와서 충돌... 흐흐흑. 세진씨, 세진씨 정신 차려요. 흐흐흑. 여보세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네?"

- 다른 차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많이 다쳤나요?

"모, 몰라요.

거긴 안 갔어요. 우리 세진씨..."

"서, 선정아."

선정은 작게 들리는 세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아, 세진씨 정신 들어요? 네?"

"선정아, 괜찮아?"

세진이 도리어 선정을 걱정한다. 충격 때문에 겨우 깨어났지만 자신의 몸은 이상이 없을 거란 것을 아는 것이다.

"나, 난, 괜찮아요. 세진씨가 안아줘서 난 팔만 조금 아파요."

"팔, 팔이 어디가..."

"말하지 말아요. 세진씨 가만히 있어요. 그럼 구급차가 온데요. 그러니까... 훗."

낮은 숨소리와 함께 세진을 달래던 선정이 갑자기 쓰러진다.

그와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땅에 나뒹굴려 충전지가 빠진다.

"선정아! 선정..."

세진이 깜짝 놀라서 차창 밖으로 상체를 내밀며 선정을 부르다가 이상을 느끼고 말을 멈춘다.

쓰러진 선정의 등에 피가 번져 나오고 있다.

"살아 있었군. 기적인가?"

세진이 선정의 모습에 놀라는데 곤도와 그의 부하들이 나타났다. 셋 모두 소음기가 달린 총을 들고 있다.

방금 선정이 쓰러진 것도 그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등을 지나 선정의 심장에 박혔기 때문이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실수를 할 정도면 외국에서 요원으로 활동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진은 선정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다시 가동시키기 시작한 디버프 에테르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세명의 사람들이 선정의 죽음에 관여한 것도 알아차렸다.

세진은 억지로 운전석 창을 통해 몸을 빼냈다.

그리고 기어가서 선정의 상체를 일으켜 안았다.

"선정아. 선정아 정신 차려. 응? 선정아!"

실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같이 힘이 없는 선정의 몸이 세진의 품에서 흔들렸다. 하지만 감겨버린 선정의 눈은 다시 떠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세진에게 다가온 곤도의 부하들이 세진을 양쪽에서 부축하듯 일으켜 세웠다.

"저리 비켜!"

세진은 그런 두 사람을 격하게 몸을 흔들어 떨어냈다.

건장한 두 사람이 멀찍이 날아가 나뒹굴었다.

그 모습에 여유롭게 다가오던 곤도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총을 겨눴다.

"나니? 손 들어라. 죽고 싶지 않으면?"

곤도가 총을 겨눴지만 세진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곤도를 노려볼 뿐이다.

"죽고 싶나?"

"누구냐? 나니? 그거 일본어였지?"

"시끄럽다. 어이 뭐하나? 빨리 데리고 가지 않고, 결박해!"

"넵. 대장님."

"알겠습니다."

쓰러졌던 두 사람이 후다닥 달려와서 다시 세진의 팔을 잡고 꺾으려 한다. 하지만 세진은 눈앞의 사내를 노려보며 버티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이고 간다. 그러니까 순순히 따라가는 것이 좋을 거다."

"죽인다고? 나를?"

세진은 양 팔이 잡힌 상대로 곤도에게 물었다.

"이게 안 보이나?"

곤도가 총구를 살살 흔들면서 물었다.

"죽인단 말이지. 나를?

선정이를 죽이고 이제 나를 죽인다고? 나를!"

조용히 속삭이듯 시작한 말이 끝에 가서는 고함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팔을 빠르게 움직여 빼낸 세진이 양손으로 두 사내의 목울대를 양쪽으로 잡았다.

"컥!"

"커억!"

뚜두둑! 뚜둑! 푸슛, 푸슛, 푸슛!

세진이 울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줘서 뭉개는 것과 곤도가 총을 쏜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하지만 목울대가 뭉개진 두 명의 일본 요원은 목을 잡고 발버둥을 치며 땅에서 뒹굴다가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미 돌아오지 못할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세진은 세 발의 총을 가슴에 맞고 쓰러졌다.

"하!

기가 막힐 일이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겨우 이런 놈 하나 때문에 부하 넷이 죽었어? 이게 말이 되나?"

곤도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별것도 아닌 작전에서 부하 넷을 잃었다는 생각에 허탈하기까지 했다.

곤도는 천천히 걸어서 쓰러진 세진에게 다가가 발끝으로 세진의 몸을 굴려 바로 눕혔다.

세진의 가슴에 세 개의 총알구멍이 선명하고 거기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곤도는 세진이 죽었음을 확신했다.

총이 맞은 위치가 심장과 폐의 위치와 일치하는 것이다.

"쯧, 빨리 처리를 하고 몸을 빼야겠군. 한꺼번에 불태우는 것이 최선이겠지? 타버리면 총알이고 뭐고 없는 거지 뭐."

곤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부하들의 시체를 끌고 가서 이미 죽은 부하들이 불타고 있는 차 근처에 던졌다. 그리고 돌아와서 세진과 선정을 운전석에 넣고 불을 지르기 위해서 먼저 선정에게 손을 뻗었다.

텁!

곤도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나올 것 같이 놀란다는 말을 경험을 알았다.

죽은 시체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부스스 몸을 일으켜서 그를 끌어 당겨 목을 잡았다.

곤도는 허리춤의 총을 뽑아 세진의 배와 가슴에 남은 총알 여섯 발을 모두 쏟아 부었다.

푸슛, 푸슛, 푸슛.

곤도는 세진의 몸에서 잔떨림이 일어나는 것으로 세진이 총에 맞은 것을 확실히 확인했다. 하지만 곤도가 바라는 것처럼 세진이 쓰러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경험은 좋은 거야. 아까 맞아서 잠깐 쓰러져 보니까 이번에는 견딜 만해. 아프긴 해도."

에테르가 도는 세진의 몸에는 총알이 깊이 박히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까무룩 정신을 잃었지만 곤도를 잡은 상태에선 여섯 발의 총알이 몸에 박혀도 정신을 멀쩡하게 유지한 세진이다.

"뭐냐?

너, 너는."

"질문은 내가 하지. 너는 뭐냐?"

"..."

곤도는 입을 다물었다. 이 인간 같지 않은 것에게 자신이 사로잡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곤도는 선택을 해야 했다.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 작품 후기 ============================넵... 이렇게 세 편이네요... 행복하시죠?

그럼 저에게도 행복을 나눠주세요... 추천? 하하하 긁적긁적

< -- 불타는 타지마할에 선정을 눕히고 돌아서다 --

>선정의 장례.

선정은 불꽃으로 돌아갔고, 타지마할 궁전은 미왕성의 상태로 선정의 관이 되었다. 선정의 가족들은 119에 남아 있던 선정의 마지막 통화를 듣고 누구도 세진을 원망하지 않았다.

사고는 술을 마신 다섯 명의 취객들이 차를 몰고 가다가 중앙선을 넘어서 추돌을 한 것으로 결론이 났고, 선정은 세진을 돌보다가 운이 없어서, 위에서 나중에 떨어진 돌에 머리를 맞고 죽은 것으로 서류가 꾸며졌다.

일본의 정보 요원이 국내에서 일을 벌이다가 죄 없는 여자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을 꾸미고 정리한것은 국정원이었다.

진은 죽은 선정을 안고 있다가 구급차와 함께 도착한 도일에게 끌려가서 병원에 입원 후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한밤중에 고집을 부려서 도일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어리의 공방에 있던 타지마할을 수습해서 선정이 있는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넋을 놓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타지마할을 선정의 관으로 써 달라는 말을 하고는 병원을 장례식장이 있는 곳으로 옮겨 입원을 했다.

사실 세진은 다친 곳이 없이 멀쩡한 상태고 병원에서도 이상을 찾지 못했지만 사고가 워낙 컸던 탓에 국정원에서 굳이 입원을 강요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세진도 선정의 가족들을 볼 낯이 없어서 병실로 피하는 경우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선정의 가족들은 선정의 명이 거기까지였다고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 큰 교통사고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는데 밖에서 신고 전화를 하다가 돌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는데 누굴 원망하고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사고를 낸 다섯 남자들 모두가 차가 추락한 자리에서 죽었다고 하고,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세진은 벼랑으로 떨어지는 차에서 선정을 부둥켜안고 지키려다 선정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데, 세진에게 원망을 쏟을 일도 아니었다.

다만 세진이 선정을 위해서 선물로 만들고 있었다는 타지마할을 관으로 들고 왔을 때에는 모두들 눈물을 쏟으며 세진과 선정이 가시버시가 되어서 알콩달콩 살았으면 정말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선정의 부모와 오빠, 언니, 동생은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관에 누웠다며 잘 가라고, 행복하게 가라고 그렇게 딸과 동생, 언니를 보냈다. 하지만 세진은 그런 선정의 가족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절절한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것이었다.

세진은 선정이 가는 모습을 본 후, 며칠 만에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그 밤에 어리의 방에 있던 물건들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세진은 지키던 도일은 물론이고 원거리 감시를 하던 요원들 누구도 세진이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본 것은 텅 빈 어리의 방뿐이었다.

그렇게 세진이 없는 시간이 흘렀다.

지구에 세진이 없이 흐르는 시간은 세진이 지하창고를 이용하는 탓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세진은 어리를 안고 지하 창고로 넘어왔다.

어디론가 피하고 싶었고, 또 복수를 할 힘을 얻고 싶기도 했다.

세진은 선정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고가 난 상태에서

'차가 추락할 때에 선정과 함께 지하창고로 갔다면 어땠을까? 왜 그 때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 세진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총에 맞은 선정을 헌터룸으로 옮겼으면 살아날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세진의 죄책감을 더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다는 것은 과학이 발달해도 넘어서는 안 되는 벽임을 세진은 알지 못했고, 어쩌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때문에 세진은 더욱더 복수심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세진은 그럴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세진은 곤도라는 자의 입을 통해서 그들이 이전에 내각 조사실이란 곳이었다가 음지로 숨어든 단체의 소속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배후에 텐헤이란 우익 비밀 결사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후에 횡설수설 했던 곤도의 말에서 그 텐헤이에 속한 이들이 일본에서 어마어마한 신분을 가진 이들이란 것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선도일에게서도 그들이 일본에서 온 정보 단체의 일원이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일이 비밀이라면서도 슬쩍 알려 준 것이다. 그는 이번 경호 실패에 대해서 무척 마음을 쓰고 있었다.

선도일은 세진이 다섯 명의 요원들 중에서 셋을 죽였다는 것은 몰랐지만 적어도 한 명은 세진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곤도는 발견 당시에 마치 육식 괴수에게 뜯긴 것 같은 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19 구급대원들은 벼랑을 구르다가 생긴 상처로 기록을 했지만 그들도 알고 도일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본 시체가 가진 상처들이 벼랑에서 굴러서 생긴 것이 아니란 사실을, 그리고 세일의 몸에 묻은 혈흔들이 그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는 서대철 과장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세일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곤도에서 지옥을 펼쳐 보여 줬다. 그리고 덕분에 편안한 죽음을 얻기 위해 곤돈는 세진의 질문에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 모든 것이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곤도와 그 일행의 신분은 서대철 과장을 통해서도 확인을 한 바다.

그들은 세진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무척 미안해했고, 선정의 죽음에 대해서도 몇 번이나 사과와 위로의 말을 했었다. 어쩌면 그런 미안한 마음 때문에 곤도 일행에 대한 정보를 약간이라도 풀어 놓았을 거라고 세진은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세진은 복수의 대상을 알고 있으니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힘을 얻기 위해서 게이트를 열었던 것이다.

- 여기서 저를 발견하신 거군요?

세진의 품에 안겨서 지하창고로 넘어 온 어리가 주변 공간을 파악하며 말했다.

어리가 세상을 보는 것은 어리의 둥근 몸에 수많은 센서들이 있어서 눈과 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과학에서 나온 산물이라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할 영역의 문제다.

"그래."

- 이제 세진님은 헌터룸으로 가시나요?

"그래."

- 여기 석판에서 배울 거 배운 후에요?

"그래."

- 그럼 저도 데리고 가시나요? 헌터룸에?

"그래. 응? 아, 널 데리고 가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타성에 젖은 대답을 하던 세진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답을 했다.

- 안 된다는 말도 없었으니까 가도 되는 거 아닐까요?

"함께 가고 싶으냐?"

- 그럼요. 저 혼자 여기 있으면 심심할 거 같아요.

스마트폰도 안 터지는 곳이잖아요.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 하지만 내가 갔다 오는것은 네게 순간일 테니 심심할 틈도 없을 거다."

세진은 둥근 은빛 공 모양의 어리를 쓰다듬었다.

이곳 창고에는 이전과 달리 탁자와 의자까지 놓여 있었다.

어리의 방에 있던 거의 모든 것을 옮겨 온 것이다.

탁자도 좁은 폭이 3미터를 넘는 것이었다면 가지고 오지 못했을 것이지만 다행히 그보다 작아서 어떻게든 가지고 올 수 있었던 물건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까지 전선이 뽑힌 상태 그대로 탁자 위에 있는 상채로 가지고 왔으니 아마 선도일 경호원이 어리의 방을 열어보면 기절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세진이지만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다.

- 무슨 생각을 하세요?

어리가 세진의 생각을 방해했다.

"이제 무얼 하면 좋을까 하고..."

- 세진님 화나셨잖아요. 그 일본 때문에요.

"그래. 화가 나. 그래서 그 놈들을 모두 죽이고 싶어. 그리고 그러려고 온 거고."

- 그런데요?

"여긴 에테르가 없거든? 그리고 헌터룸에도 에테르가 없어. 결국 내가 힘을 키우려면 데블 플레인에 있는 의체를 없애고 이 몸으로 직접 내려가서 사냥을 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야 이 몸 자체를 수련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야."

- 차라리 지구에서 수련을 하면요? 데블 플레인은 위험하잖아요.

"하지만 지구보다 그곳이 몇 배는 빠르게 성장할 수가 있지. 거기다가 지구의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해.

수련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낼 수도 없고, 일정 수준이 되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설치다가 당하기도 싫으니까 말이야."

- 그렇게 따지면 데블 플레인에서의 수련이 최고의 방법이기는 하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구요?

"생각 중인데, 일단 데블 플레인에서 정신 능력을 익히는데 주력해야겠어. 그건 몸이 바뀌어도 크게 손해를 보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정신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고 난 뒤에는 이 몸으로 데블 플레인에서 수련을 하는 거지. 어차피 에테르 로드 수련을 해도 본체가 별로 득을 보지 못하는 상태라면 생체에테르바디로 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개발하는 쪽이 훨씬 좋을 것 같다."

- 저도 세진님 생각에 찬성이에요. 지구에서 수련을 하실 것이 아니라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어리도 세진의 계획을 듣더니 찬성표를 던졌다.

어디에서 수련을 하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어리의 생각이었다. 몬스터가 위험하거나 혹은 사람이 위험하거나.

"그러나 저러나 저기 어리 앵무는 이제 못쓰게 되었으니 아까워서 어쩌냐?"

세진은 한쪽에 놓여 있는 새장을 보며 말했다.

어리의 몸 노릇을 하던 앵무새 로봇은 새장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 스마트폰만 이용할 수 있으면 다시 움직일 수 있어요. 잘 뒀다가 나중에 세진님 어깨에 타고서 지구에 갈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 버리시면 안돼요. 알았죠?

어리는 세진이 어리 앵무를 버릴까봐 미리 다짐을 받으려 한다.

"알았다. 절대 안 버린다. 내가 일부러 우리 어리 방에 있던 건 모두 챙겨 왔지 않니.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어리 네가 아끼는 건 모두 그냥 둘 테니까 말이다."

- 네에. 세진님. 감사해요.

"난. 잠깐 눈 좀 붙여야겠다.

아직 헌터룸으로 가기 전에 석판을 좀 더 살펴야 하니까, 일단 자고 일어나야겠다."

- 주무세요. 세진님.

"그래. 그래."

세진은 어리의 인사를 받으며 방 한쪽 구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세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마땅히 죽여야 할 놈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인간을 셋이나 죽였다는 죄책감이 세진을 번민케 만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해결을 해 줄 거야. 죽일 놈을 죽인 것뿐인데 오래 괴로워 할 이유는 없지. 아무렴 없지. 없어.'

세진은 그렇게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잠을 청했다.

'지금도 싸우려고 마음먹으면 싸울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몸인데?'

'아니지. 목이 잘리거나 폭발에 휘말리면 이 몸뚱이론 정말 감당하지 못하지. 에테르를 몸에 두르고 방어력을 높여야 해. 거기다가 칼을 들고 덤비는 것은 미련한 짓이야.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나가는 공포를 느끼게 해 줘야지. 디버프를 익스퍼트 수준까지만 올리면 대상의 몸 안에서 에테르를 뭉쳐서 터뜨릴 수 있어.'

'혈관 하나만 터져도 병신이 되거나 죽기 쉬운 것이 인간의 몸뚱이야. 내가 일본에 가는 날, 지옥이 펼쳐질 거다.

두고 봐라.' 세진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면서 그런 생각으로 마음에 칼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난 세진은 석판이 있는 방에서 다시 한 번 공부를 하며 잊어버린 부분들을 보충해 넣었다.

그러면서 마법과 관련된 석판에 관심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가졌지만 그리 수확이 없었다. 그 지식은 기본적으로 외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마법진이란 것이 평면에 그리는 것에서 시작해서 입체 도형의 외면에 그리는 것이 있고, 이후에는 입체도형의 외면과 내면에 모두 그려 넣는 수준까지 발전을 했다.

세진은 그런 것을 선 하나, 도형 하나까지 모두 외워서 그려야 하는 마법진을 외울 자신이 없었다.

"이건 정말로 우리 어리가 직접 기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아니면 내가 석판에서 보는 것을 어리에게 전달할 수단이 있던가 어쩌던가 해야지.

원."

세진은 결국 마법진 석판에서 별다른 수확이 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어리를 들고 헌터룸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 이제 가는 건가요?

세진님?

"그래. 가야지. 이번에 가면 준비가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거다.

시간이 오래 걸

리겠지."

- 하지만 여기하고 지구는 시간이 안 흐른다면서요?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도 조급할 이유가 없겠지. 다만 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시간의 흐름에 무뎌지는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 네에.

"그럼 가자. 어리야. 이젠 우리 둘이서 가는구나. 진작 함께 갈 걸 그랬다.

- 에헤. 그러게요. 가요. 세진님. 아자, 아자.

세진은 화이팅을 외치는 어리를 데리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 작품 후기 =

===========================아, 살려달라는 분들이 계셨지만 선정은 인물 설정의 역할을 다하고 물러났습니다.

그렇게 계획되어 있던 삶이었습니다. 흐흑.

저도 아쉽습니다.

댓글에도 썼는데 처음부터 세진을 성격 대찬 놈으로 설정을 했으면 선정과 같은 인물은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진을 좀 과격하게 만들기 위해선 선정이 필요했지요. 넵.. 글쓰는 놈이 사실은 생각해 보면 무척 잔인한 면이 있나 봅니다. 전 원래 저런 케릭터 안 만드는데 이번 글에선 이전과 좀 달라지자 해서... 저렇게 되었다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도 3편 올리는데... 이게 원래 손해라네요... 하루 한 편씩 올리는 게... 제일 좋다고하는 분들이 있네요... 떱... 그래도 당분간은 이대로 갑니다. 네... 써질 때엔 써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처지거든요... ^^다음, 다음 편까지 읽으시면서 행복하시길... 그리고 가시는 길에 추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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