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소한 착오가 빚은 비극 -- >
세진은 어리 공방의 홈페이지에서 주문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이제는 새로운 모델의 자동차가 나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 회사에서 미니어처 주문이 들어온다.
물론 각 회사에서도 미니어처를 이전부터 만들어왔겠지만 어리 공방의 작품만큼 뛰어난 것이 없으니 회사 체면을 생각해서도 어리 공방에 주문을 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주문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으니 세진은 주문서 중에서도 조건이 좋은 것만 골라서 작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대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서 배송한다.
도일은 물론이고 다른 국정원 요원들도 세진이 어디에서 어떻게 그의 팀원들에게서 부품들을 조달받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세진이 간혹 무작위로 선택한 서울 지하철역의 물품 보관함에서 부품들을
꺼내 오는 것을 확인할 뿐이지만, 그것도 누가 어떻게 그곳에 물건을 넣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세진이 물품 보관함을 대여하고 빈 가방을 넣고 열쇠를 뽑은 후에 얼마간 산책을 하다가 와서 문을 열면 그 안에 부품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건 순전히 세진이 지하창고로 통하는 듀풀렉 게이트로 만든 트릭이지만 국정원에서 그걸 알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세진이 에테르 저장장치의 여유가 없다면 듀풀렉 게이트를 열기 위한 에테르를 그렇게 낭비할 수 없었겠지만 세진에게 이제 한 번에 15에텔론 정도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액수일 뿐이니 게이트를 열고 닫는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세진은 그의 팀원들과 물건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주고받는 것에 대해서도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저 없는 팀원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유수의 세계 정보기관의 눈을 속이면서 물건을 자유롭게 전달하고 또 전달받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그걸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세진이 하는 행동은 정보 요원들이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때문에 세진의 주변에는 훨씬 더 많은 감시의 눈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세진에게 가장 가까이 포진한 것이 국정원이고, 그 바로 곁에 CIA, 모사드, SVR(러시아 해외 정보군), MSS(중국 국가안전부)에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정보기관, 그리고 일본의 내각 조사실까지 몰려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정보 계통에선 알려진 얼굴들도 있고, 전혀 새로운 이들도 있다. 알려진 이들은 얼굴마담으로 서로 소속을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까지는 양보하고 지내자는 뜻을 서로 전하고 있는 것이고, 새로운 얼굴들은 숨겨 뒀다가 만약의 경우에 사용할 패로 준비한 것이다.
이러니 세진의 어리 공방을 감시할 수 있는 건물이나 시야가 확보가 되는 산이나 언덕까지 자리다툼이 생긴다.
사실 이렇게 소란이 일어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일이, 벤츠에서 세진이 만든 미니어처를 분해하면서 그 초정밀 가공 기술에 놀라 호들갑을 떨고, 또 새로운 합성 물질 때문에 몇 개의 거대 회사가 시끄러워지고, 그러다가 CIA가 나서서 세진에 대해서 정보를 캐기 시작하면서 다른 나라의 정보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기웃거린 것이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 이유다.
거기다가 CIA에서 세진에게 회유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국정원의 서대철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 괘씸죄에 걸려서 더욱 세진에게 관심을 두게 되니 다른 정보국들도 얼렁뚱땅 끼어들어 북적거리는 상황이다.
"완성 되었다면서요? 어디 있죠?"
김혜인 박사가 도일의 안내로 어리의 방으로 들어서며 인사도 없이 용건을 꺼낸다.
세진은 탁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있다가 방으로 들어오는 박사와 정진이 경호원을 보고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시간 맞춰 오셨군요. 자 이리로 앉아요. 어차피 앉아서 봐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차는?"
"됐어요. 안 마셔도 되요. 그러니까 결과부터 보죠."
박사는 오로지 완성된 바퀴벌레에만 관심을 보인다. 청바지에 니트를 입은 모습은 산책 나온 아가씨 같은 느낌인데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설계로 만들어진 로
봇에만 가 있다.
세진은 검지 손가락을 펴서 천천히 이동시켜서 한쪽을 가리켰다.
"앗!"
그런데 김혜인 박사 뒤에 있던 정진이 경호원이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낮게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김혜인 박사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관심을 세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두고 있다.
거기 꼬물거리며 기어가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있는데 마침 바닥에 놓여 있는 새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문이 없는 새장에는 하얀 바탕에 뺨에 주황색 연지를 찍고 머리에 깃털이 솟은 왕관 앵무새 한 마리가 들어 있다.
뽈뽈뽈뽈뽈.
바퀴벌레는 열심히 기어서 그 새장 안으로 들어가고 그 순간 앵무새가 바퀴벌레를 발로 콕 밟아 버린다.
"아아앗. 설마?"
김혜인 박사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머리를 돌려 세진을 본다.
"엇, 저런. 우리 어리가 바퀴벌레를 밟아 버렸네요?"
"이이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지, 지금 그게 이번에 만든 거였단 말이에요? 그, 그걸 지금 움직여서 새장으로 보내요?"
김혜인 박사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겨우겨우 말을하며 소리를 지른다.
"어, 어서 가서 가지고 와! 진이야 어서!"
그리곤 경호원에게 바퀴벌레를 가지고 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정진이 경호원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까똑!
까똑! [정진이 경호원은 조류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무섭지 않다고 하는데 사실은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해야 할 때는 새의 목을 비틀지만 될 수 있으면 접촉을 피하려고 합니다.]도일이 문자로 정진이 경호원에 대해서 세진에게 설명을 한다.
= 세진님 멋쟁이. 사랑해. 사랑해.
푸드드드득.
푸드득.
어리가 갑자기 한 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바퀴벌레를 부리에 물고 새장을 나와서 세진이 있는 탁자로 날아온다.
"앗, 저리 가.
저리!"
어리 앵무가 날아서 탁자로 다가오자 정진이 경호원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어리 앵무는 푸드득 날아와서 세진이 내민 손 위에 앉더니 앞에 입에 물고 있던 바퀴벌레를 내려놓고 다시 날아서 새장 위로 올라간다.
= 불량식품. 에비. 먹는 거 아니야. 뱉어. 어리야 뱉어.
새장 위에서 날개를 고르며 지껄이는 어리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세진에게 몰린다.
어리의 말 속에 그 전에도 몇 번이나 어리가 바퀴벌레를 쪼았거나 혹은 유사한 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하하하. 괜찮습니다. 이번에 몇 마리 예비로 온 것이 있습니다.
컨트롤 박스만 무사하면 겉이야 조금 망가져도 바꿀 수 있어서. 그리고 이거 보시면 아시겠지만 방금과 같은 충격은 어찌어찌 버티기도 합니다.
하하핫."
세진은 어리가 물고 온 바퀴벌레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스마트폰 어플 [곤충과 놀기]를 이용해서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다리 하나가 안 움직이는 것을 빼곤 바퀴의 움직임에 무리가 없다.
"줘봐요!"
김혜인 박사가 대뜸 세진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아서 직접 시험을 해 본다.
그리고 들고 온 가방에서 커다란 돋보기와 한쪽 눈에 대고 보는 확대경을 꺼내서 이중으로 겹치고는 바퀴벌레를 살피기 시작한다.
곁으로 다가온 정진이 경호원이 주머니에서 레이저포인터 같은 손전등을 꺼내 바퀴벌레를 비춰준다. 박사가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응. 고마워."
박사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그런 배려를 알았는지 인사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거의 모든 관심은 바퀴벌레 로봇에 가 있다.
"대단하군요. 어떻게 컨트롤러와 동력까지 확실히 장착을 했는지 모르지만 완벽해요. 거기다가 이렇게 힘을 줘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이 있군요."
박사는 손가락으로 바퀴벌레를 눌러서 확인까지 시키며 감탄을 한다.
그리곤 곧바로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융으로 된 천으로 바퀴벌레를 싸고 다시 상자에 넣는다. 상자 안에는 그런 천들이 몇 장 더 있고 작은 칸들이 여럿 있다.
"아까 몇 마리 더 있다고 했죠? 그것들은 어때요?"
박사는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세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다니요? 그냥 만들어진 그대로 있습니다.
실험도 못했지요. 누구씨께서 컨트롤 박스를 하나만 주시는 바람에 말입니다."
세진은 슬쩍 김혜인 박사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아,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사실 그 컨트롤 박스도 대외비에 해당하는 거라고요. 어렵게 전자칩으로 만든 거라서 함부로 내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하긴, 기계적인 것이 아니어서 우리 팀도 컨트롤 박스는 만들기 어렵겠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동력과 전달 장치 쪽은 어떻게 된 것 같은데 말이죠. 참, 그런데 그거 단가는 얼마나 줄 겁니까?
가격이 맞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는데요?"
세진은 잘 나가다가 가격 협상을 시작했다.
"아, 그건 제가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예산에 대한 문제는 서과장님께 말씀을 하셔야죠."
세진은 박사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탁자의 어리 본체 옆에서 작은 상자를 들어서 김혜인 박사 앞으로 밀어 줬다.
"거기 다섯 마리가 더 들어 있습니다.
알아서 쓰십시오.
컨트롤 박스만 끼워 넣으면 될 겁니다. 하지만 만약 거기에 도청을 위한 장비들을 덕지덕지 붙인다면 문제가 될 겁니다. 그런 작업을 하려면 우리 팀에게 의뢰를 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짐을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바퀴벌레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물론 설계는 박사님이 책임을 지셔야죠."
"알았어요. 그건 이쪽에서 의논을 해서 결정을 하죠. 그리고 이번 작업은 아주 만족스러워요.
그러니 별다른 수정은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대신에 다른 곤충들을 새로 의뢰하죠. 물론 예전에 보냈던 설계도가 아니라 많이 단순화 시킨 설계도를 보내겠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한 주면 된다고 하더니 열흘이나 걸렸잖아요."
세진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혜인 박사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항의했다.
"처음 만드는 거라서 팀원들이 작업 도구를 새로 세팅하고 또 제작이나 구입을 해야 했답니다. 그래서 시간이 더 걸렸다네요. 하지만 이제부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략 일주일에 다섯에서 여섯 마리는 가능하답니다. 물론 바퀴벌레를 기준으로 한 겁니다."
"좋아요.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어요."
= 만족할 수 있어. 그래 거기야 거기. 사랑해 도일 오빠.
그런데 그 순간 어리 앵무가 엉뚱한 소리를 했고, 한쪽에 서 있던 선도일은 깜짝 놀라서 어리를 보더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선도일 경호원에게로 쏠렸다.
가르친 말은 도일 오빠 밖에 없는데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니 선도일로선 억울할 법 한 일이다.
꼬똑!
꼬똑! [그런 거 아닙니다. 전 아무 죄도 없습니다.]도일의 문자가 김박사가 탁자 위에 내려놓았던 세진의 스마트폰으로 날아들었다. 탁자 위에 있는 것이라 모두가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도일은 등을 돌리고 벽을 보며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다.
스마트폰이 탁자 위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도일씨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그랬잖습니까. 어리가 하는 말은 그저 새가 지저귀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말이죠.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그런 거 치고는 어리? 네, 어리라는 저 앵무새가 하는 말이 참 의미심장한데요?"
세진이 도일을 달래는 말에 김박사가 살짝 농담을 한다.
어리의 흉내말에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
"단어가 엉뚱하게 조합이 되면 그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 세일님 멋쟁이. 사랑해. 사랑해. 칭찬은 새우깡 춤추게 한다.
어리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말을 다시 한 번 한다.
푸득, 푸드득.
그리고 활개를 치며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두 발로 걸어서 새장 안으로 들어가 새장의 횃대 위에 올라앉아 부리를 날개 죽지에 묻고 눈을 감는다.
"전 새를 안 좋아하지만 귀엽긴 하네요."
김혜인 박사가 어리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말했지만 정진이 경호원은 여전히 어리를 외면하고 있고, 도일은 노려보고 있다. 세진은 재미있다는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 작품 후기 ============================오늘도 행복하시길... 앞으로 두 편 더 올립니다.
저도 목표 달성에 성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