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먼지 쌓인 타지마할과 불청객 -- >
세진은 타지마할 궁전을 공방의 구석으로 옮겼다. 거의 완성 직전까지 갔던 타지마할 궁전은 그렇게 봉인되었다.
'내 마음속에서 타지마할 궁전의 먼지가 모두 씻겨 나갈 때까지는 그냥 두는 것이 좋겠어.'
세진은 타지마할 대신에 선정과 만났던 등산로 일부를 미니어처로 만들어서 선정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어리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로 제작하고 두 번째 선정을 만났던 자리에 있던 벤치와 그 주변의 일부를 미니어처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선정이 스마트폰을 다루며 앉아 있던 그 모습을 넣어서.
'이게 더 의미가 있겠지. 타지마할은 확실히 과하지. 과해.'
세진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면서 예전 자신이 선정에게 가졌던 그 감정들을 일종의 열병 같은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리고 이제 그 열병에서 깨어나서 선정이란 사람을 제대로 보게 되었으니 앞으로 시간을 두고 제대로 사귀어 보리라 결심했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건 외모는 세진의 이상형이니 그 내면만 잘 살피면 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진의 결심은 선정에게도 영향을 줘서, 몇 번 더 만나는 사이에 선정도 세진이 자신에게 예전과 같은 열정이나 갈망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진이 아직까지 선정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었다.
선정은 세진이 선물로 준 미니어처를 자신의 방 한쪽에 장식틀까지 만들어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볼 때마다 세진이 자신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그렇게 세진과 선정이 조금씩 서로에 대해서 알아갈 무렵, 세진의 미니어처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에게 관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어리야. 넌 어떻게 생각 하냐? 이 주문서 말이야."
세진이 어리와 함께 비공개로 설정한 홈페이지 주문서 목록을 열어보며 의논을 하고 있었다.
- 곤란해요. 그런 건 만들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래서 내가 0.1미리 이하는 제작을 하지 않았던 건데 말이지. 그런데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걸까?"
- 아마도 자동변속 자동차 미니어처 아닐까요? 그리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제품들 중에서 일부를 사용 가능하게 만든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요.
"그건 사실상 흉내만 낸 거잖아. 제대로 만든 것들이 아니었지. 그것도 0.1미리라는 한계 이하는 적용시키지 않았을 거 아냐?"
- 그렇더라고 그것들을 고려하면 그 주문서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내용대로는 어렵지만 그보다 약간 더 크게 만들면 가능성이 있거든요.
"음. 그래? 내가 정해준 한계를 가지고도 제작이 가능하긴 하단 말이야?"
- 네에. 어리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걸 만들었다간 정말 나중에 곤란하게 될 거란 말이지. 이건 딱 봐도 민간용이 아니라고. 어디 스파이들이나 써 먹을 것 같지 않냐?"
- 맞죠. 그거 등에 보면 빈 공간 있어요. 거기에 무선 장치를 넣으면 진짜 쓸 수 있어요. 동력이 문제긴 하지만 일단 실험적으로 어떻게든 사용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면 그 다음에는 다른 주문서가 오지 않을까요?
"아니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보고 학습용 곤충 미니어처라고 믿나? 그것 참 머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세진은 여러 곤충들의 모양이 나와 있는 주문서를 클릭하면서 투덜거렸다.
딱 봐도 곤충 로봇들이 분명한 설계도가 잔뜩 있었다. 물론 공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지 그걸 진짜로 만들어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은 설계도가 분명했다.
설계도에 이상은 없지만 그걸 실제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그런 것들이란 소리다.
손톱 크기의 파리 한 마리 안에 톱니와 회전축은 물론이고 모터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도 뭔가 새로운 것이 들어갈 빈자리가 있다.
그런 식으로 설계된 곤충들 십여 종류가 주문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식의 주문서가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회사도 여러 곳에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세진은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회사를 찾았다.
"뭔 회사 이름도 세일이 뭐야? 세일이."
세진은 컴퓨터를 통해서 세일을 찾아 봤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주로 외국과 거래하는 수출입 대행 회사라는 정도 밖에는 없다.
연혁도 건성으로 쓰여 있고, 거래 내역도 나와 있지 않다.
"딱 봐도 이건 뭐 유령회사? 그런 거 같은데?"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그 주문은 안 하시는 거죠?
어리가 함께 화면을 보다가 묻는다.
"그래야지. 그런데 안 한다고 하면 그냥 물러날까 모르겠네."
- 네? 그냥 물러나지 않으면요?
"딱 봐도 여기 이 회사 일반 회사 같지 않잖아. 이번에 온 주문을 봐도 용도가 심히 의심스러운 것들이고 말이지."
- 그야 그렇긴 하죠.
"일단 여기 설계도는 어리가 기억을 해 두고. 어디 따로 카피를 하거나 하지는 말자. 이건 그냥 삭제.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온 것들도 모두 기억해두고."
- 그런데 제가 왜 기억을 해요?
"왜긴,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냐? 이런 벌레 만들어서 도청 같은데 사용하면 좋지 않겠어? 어리 네 생각은 어떠냐?"
- 으음. 컨트롤박스만 있다면 가능하긴 하겠네요. 그런데 그게 없는데요?
"맞아. 여기 빈 공간에 그게 들어가는 거겠지. 어쩌면 소형 밧데리도 함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아마 그게 핵심이겠지. 아주 작은 크기에 동력과 컨트롤박스가 함께 있는 거라면 엄청난 물건일 테니까 말이지. 그래도 그건 칩 종류도 어떻게든 만들었겠지만 이 곤충 몸통은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에게 주문을 했을 거고. 다른 곳에서 온 것들도 뭔가 핵심을 빼 놓고 보냈어. 전부 컨트롤박스 같은 것이 없는 거지."
- 껍데기만 온 거란 말이죠?
"그런 것 같아. 그래도 꽤나 쓸 만한 구석들이 많잖아. 여기 다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 전달 구조는 꽤나 신선하지 않냐? 거기다가 이거 날개 움직이는 거 봐라. 전에 60센치 넘는 크기로 만든 잠자리 있었는데 그거랑 똑 같은 거 같다.
크기만 줄였지."
- 그렇기는 하네요. 겉으로 보면 파린데 날개를 펼쳐서 날 때는 헬리콥터처럼 돌게 만든 것도 있고 그러네요.
"아직 날개 움직임을 그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거지. 그나마 여기 이 잠자리 날개 움직임을 모방한 건 괜찮았던 모양이야. 그걸 다른 곤충들에 쓴 것도 있고 그런 거 보면 말이야."
"그래도 모기는 너무했어요. 모기 날개를 잠자리처럼 날게 만들다니 말이에요. 그건 크기만 작은 잠자리 같아요. 앉을 때 날개 접는 것만 빼면요."
세진과 어리는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곤충 설계도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그걸 실제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물론 움직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구동부분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를 했지만 성공한 것은 없었다.
그저 가능성만 확인하고 끝났다.
"싹 치워. 흔적도 남기지 말고. 알았지?"
- 물론이죠. 그냥 다 분해해 버릴 게요. 재료 덩어리 형태로 만들죠 뭐.
어리는 만들었던 곤충 모형의 흔적을 모두 지웠고, 세진은 홈페이지에 들어온 주문서들에 반송과 함께 제작 불가라는 통보를 했다.
제작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렇게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없고, 만들어도 재료 때문에 동작할 때에 받는 힘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특히 강조한 것은 너무 세밀한 부품이 많아서 어리 공방에서도 만들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일을 정리하고 잊으려고 했지만 세상 일이 세진의 바람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주식회사 세일의 영업부장 서대철입니다.
"전화로도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그 주문은 저희 공방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세진은 억지로 불려나온 자리에서 원하지 않던 사람과 마주앉은 것이 불쾌했다.
세일에서는 세진의 주문 거부 의사를 확인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어서 가격을 높여 줄 수도 있다면서 제작 의뢰를 받아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세진은 애초에 그런 것을 만들 생각이 없었기에 불가만 외쳤다. 그런데도 세일에서 직접 집 앞까지 찾아와서 만나자고 성화를 부리니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똘마니 끌고 다니는 거 보니까 확실히 보통 회사는 아닌 거였어. 뭐하는 놈들이지?'
세진은 자신의 디버프 기반 에테르 범위 안에 잡히는 사람들의 느낌을 통해서 앞에 앉은 서대철이란 인물과 관계된 이들이 카페 안에만 세 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명의 남자는 함께 앉아서 건성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한 여자는 홀로 찻잔만 들었다가 놓았다 하고 있는데 차를 마시지는 않는다.
그들이 서대철이란 사람과 세진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카페에 들어오면서부터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긴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문 내용이야 조금씩 바뀔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너무 작아서 문제라며 조금 더 크게 만드는 방법이 있고, 재료 문제라면 문제를 이야기하시면 우리가 합당한 재료를 찾아서 공급할 수도 있는 문제고 말입니다.
세진은 서대철이란 사내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장한 체격이고, 여름이라 얇게 입은 와이셔츠 안쪽으로 단련된 근육들이 숨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을 대하는 것이 미숙해보이지도 않는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회사의 부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능력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는데 서대철도 말문을 닫고 세진을 바라보며 눈싸움을 시작한다.
그렇게 되자 세진도 물러서지 않고 눈싸움을 시작했다. 세진은 단순하게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면서도 오기가 생긴 것뿐이다. 하지만 서대철의 입장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세진이 그에게 속내를 털어 놓으라고 압박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회사에서도 설계도를 보낼 때에 어리 공방 수준의 기술자들이라면 그것이 어떤 용도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드러내놓고 말을 할 수는 없으니 변죽만 올리고 있는 참인데 세진이 본격적으로 무게를 잡고 바라보고 있으니 쓸데없는 소리를 더 해 봐야 없는 호감이 더 떨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서대철은 끝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주문한 그것들은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네."
그는 아예 말을 높이지도 않고 평대를 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세진은 그런 서대철의 말투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데블 플레인에선 딱히 어투를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익숙해서 서대철이 어떤 말투를 쓰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서대철은 확실히 세진보다 연배였다.
"커엄. 거참, 과묵하긴. 딱 까놓고 이야기하지. 난 자네가 짐작하는 곳 3국의 과장이네. 그리고 과장은 실무책임자 한 팀을 총괄하는 지위네."
"3국이요?"
"아, 그렇게 말해선 모르겠지? 국내, 북한, 국외. 제1국, 2국, 3국. 그러니 내가 속한 곳에선 국외의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활동을 하네. 그래서 자네에게 주문한 것들이 필요한 거지."
"제가 아는 곳이란 것이 그 국자, 정자, 원자.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그곳 맞습니까?"
"맞네."
"어떻게 믿습니까?"
"뭐?"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말씀입니다. 서대철 부장님, 아니 과장님께서 정말 공무원인지 아닌지 제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냔 말이죠. 원래 그 쪽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 꺼내시려는 것이 신분증이라도 전 까막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게 위존지 아닌지도 구별할 능력이 안 되지요."
"그럼 방법이 없군."
서대철은 세진이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세진에게 증명이 불가능하단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쨌거나 신분이 그렇다고 일단 가정하고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십시오. 들어 보죠."
세진은 일단 이야길 듣기로 했다. 들어봐야 나라를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이니 노력을 해 보라는 정도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서대철의 이야기는 세진이 짐작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분히 불법적인 일이지만 정보 수집을 위해서 은밀하게 사용할 계획이라면서 제작이 가능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낸 서대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품속에서 신분증을 꺼내서 세진에게 줬다.
"뭡니까?"
"믿을 수 없다고 하니 주는 거지. 그걸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가서 신분증을 내밀고 조회를 부탁하게. 그럼 이 신분증이 가짜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겠지. 그리고 그 신분증은 그곳에 그냥 맡겨 두면 되네."
"그러니까 이걸 들고 가서 확인을 해 보란 말이군요? 여기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네요?"
"그냥 확인 코드가 있는 거네. 경찰청과 연결된 망이 아니면 확인이 안 되는 거지. 몇 곳이 있지만 자네가 가장 접근하기 좋은 곳이 경찰이니 거기로 가라는 거네."
세진은 신분증과 서대철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만들 수 없는 것은 만들 수 없는 겁니다.
수상한 물건이지만 제작 가능성에 대해선 이미 확인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제작 불가였습니다. 뭐 가능으로 나왔어도 거절할 물건이었지만 사실상 불가능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제가 굳이 신분을 확인할 이유도 없습니다.
세진은 단호하게 주문 내용의 것을 만들 수 없다고 확언을 하며 신분증을 다시 서대철에게 내밀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 보게. 혹시라도 다시 만날 때에, 또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우린 다시 보게 될 거네."
서대철은 그렇게 말하곤 세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카페를 나섰다.
"참, 빠른 시간 안에 경찰서에 맡겨 주게. 새로 발급받으려면 귀찮은 일이 많아서 말이야."
문을 나서기 전에 그는 세진에게 그렇게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서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남자 둘이 따라 나갔고, 혼자 있던 여자는 세진이 공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거리를 두고 미행을 했다.
============================ 작품 후기 ============================행복하셨음 해요.
오늘도 세 편... 추천이라도 한 방? ^^될 수 있으면 챕터별로 올리려고 하루는 두 편만 올렸었어요. 당분간 챕터 별로 올릴 생각입니다. 넵.. 며칠 갈지 알 수는 없지만요... 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