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덤이네. 무덤이군. 무덤? - 테멜 -- >
여섯 시간. 테멜에 대한 정보를 파는 것으로 치면 턱없이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정도가 세진 일행이 안심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더 긴 시간을 줬다가 만약 다른 헌터들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진 일행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테멜에 욕심을 내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물론 헌터라면 직접 나설 일은 없을 테니 라훌족 헌터를 부려서 세진 일행을 방해하거나 혹은 처리하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헌터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지는 않겠지만 꼭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급 헌터들이 테멜을 발견했다고 하던데? 여기 이 놈들이라더군.'이러면서 세진 일행에 대한 정보만 슬쩍 흘려주면 나머진 알아서 하는 식이다. 헌터들은 그런 식으로 라훌헌터를 부리는 것이다.
그런 놈들이 끼어들기 전에 정보를 팔고 테멜 문제를 털어 내기 위해서 세진과 거버너, 탄제는 여섯 시간이라는 짧은 경매 시간을 설정했던 것이다.
그런 자들을 피하기 위해서도 경매 시간을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경매가 끝난 후에 테멜이 어떻게 되건 그건 인수자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경매에 참가하라고 탄제는 분명히 툴틱 경매 전에 이야기를 해뒀다.
여섯 시간의 경매가 끝나고 테멜에 대한 정보는 펄커스라는 헌터에게 팔렸다. 펄커스는 레트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상급 헌터로 그 이름을 딴 펄커스 트라이브의 치프이기도 했는데 마스터 등급의 실력 있는 헌터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자그마치 45만 에텔론에 테멜에 대한 정보를 샀는데 그들 트라이브의 매니저와 멤버가 도착할 때까지 테멜 입구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했다. 물론 그 부탁은 들어 줘도 그만이고 안 들어 줘도 그만인 말 그대로 부탁일 뿐이고, 책임이 없는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때문에 세진 일행은 경매가 끝나면 곧바로 소이쥔으로 돌아가서 침대에서 쉴 거라는 소박한 꿈을 뒤로 미루고 밤을 테멜 입구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 불도 피우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서늘한 기운을 그대로 받으면서.
"에텔론도 다 받았는데 계속 여기서 그들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뭐냐고. 젠장."
거버너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연신 툴틱을 살피고 있다.
이번에 분배가 된 45만 에텔론 중에서 각자의 몫으로 나눈 15만 에텔론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이다.
"서비스라는 거지. 서비스. 정보만 전하면 끝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펄커스 트라이브 사람들이 테멜을 확보하는 걸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그 때까지 입구를 지켜주는 것이 예의란 말씀이지."
"예의는 무슨, 괜히 펄커스 트라이브에 찍히기 싫으니까 그러는 거지."
거버너가 여전히 심통을 부린다.
"뭐 그것도 어느 정도는 있지. 사실 우리 헌터들끼리 문제가 생기면 헌터룸에서 해결을 해 주잖아.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거대 트라이브는 무섭거든. 사람 수가 많고 능력 있는 이들이 많아서 잘못 보이게 되면 나중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아니 지금 당장도 그럴 수 있지. 헌터들 사이에서도 찍히면 파티를 하기 어려워지기도 하고 그러잖아. 펄커스 트라이브 정도면 충분히 그런 입김은 불 수 있는 곳이지. 아무렴."
"그래서 알아서 기어 준다는 거냐?"
"기긴 누가 기어? 솔직히 서로 좋으면 되는 거 아냐? 우리가 받은 에텔론이 얼만데 이 정도 서비스를 못 해 줘? 거버너, 너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각인을 하고 싶고, 또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좀 진득하니 기다려. 응?"
탄제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아, 알았다.
짜식이 갑자기 소린 지르고 그러냐? 농담이지 농담. 그냥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래서 농담 하다가 생각 없이 좀 말이 헛 나왔다. 미안하다.
됐냐? 응? 됐어?"
"그래. 됐다."
그러자 탄제의 반응에 찔끔한 거버너가 냉큼 사과를 하고, 탄제는 그 사과를 깔끔하게 받아들인다.
세진은 그런 둘을 보며 오래 함께 한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뭔가를 느낀다. 부럽지만 세진은 여전히 저들에게 외인이다.
"이번에 크게 벌었으니 당분간은 사냥을 다니지 않아도 되겠군."
세진이 그렇게 거버너와 탄제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응? 무슨 소리야? 세진?"
"아니 그렇잖아. 이제 에테르 기관 업그레이드도 하고 각인도 하고 그러면 말이야. 수련도 좀 해야 하잖아. 곧바로 사냥에 나서진 못할 거 아냐?"
"에이, 뭐 그런 걸 가지고. 수련이야, 한 열흘 쉬면서 하면 되는 거지. 그 다음엔 사냥하면서 익혀야지. 사냥에서 익히는 게 제일 빨라. 아무렴."
"그렇지. 오히려 더 열심히 사냥을 다녀야 할 걸? 그래야 새로 각인된 기술들이 익숙해지지, 그래야 또 각인을 받을 수 있고 말이야."
"맞아. 에텔론이 있으니까 오히려 더 열심히 해서 각인을 더 받고, 에테르 기관 업그레이드도 하고 싶고 막 그런 마음이 들거든."
거버너와 탄제는 세진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을 한다. 그들은 수련을 최소로 하고 나머지는 직접 몸으로 움직이며 숙달시키는 방법을 쓰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럼 세진은 이번에 벌 걸로 각인하고 수련을 할 생각이야? 사냥은 뒤로 미뤄 두고?"
거버너가 세진을 보며 묻는다. 세진은 사실 계속 사냥을 하고 싶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이 세진은 에테르 기관의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거버너와 탄제가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면 그들 둘은 확실하게 유저 최상급으로 익스퍼트의 바로 전 단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 시간이 지나면 익스퍼트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에테르 기관이 있으니 계단을 오르듯이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것도 세진이 성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게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눈에 보이니 함께 사냥을 다니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나는 좀 사정이 있어서 에텔론 기관 업그레이드를 할 수가 없거든. 그러니 함께 다니기가 좀 어렵지 않나 싶어."
"음, 그래? 하긴 나도 이번엔 고향으로 좀 보내기도 해야지. 그러고 보면 나도 업그레이드는 한 번이 다겠네."
탄제가 세진이 고향 행성으로 송금을 해야 한다는 말로 잘못 알아듣고 세진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한다.
"쯧, 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런데? 이번에 크게 한 탕 했으니 일단 좀 빼 놔야지. 또 예비 생체에테르바디도 생각을 해야지 무턱대고 쓸 수도 없잖아."
"그럼 세진, 이렇게 하지. 우리가 최상급 유저로 활동하는 동안은 같이 하자. 익스퍼트가 되고 나서 노란색 등급을 사냥하게 되면 그 때 다시 의논을 하자고. 혹시 알아? 그 사이에 세진도 노란색 등급의 몬스터를 감당할 정도가 될 수 있을지?"
"그건 탄제 말이 맞는 것 같다. 넌 후방에 지원을 주로 하잖아. 그러니까 디버프에만 집중하면 충분히 우리와 함께 해도 제 몫은 할 수 있을 거야. 아무렴."
"그래, 그래. 그렇게 하자. 야, 세진. 솔직히 내가 너한테 반한 거거든. 나 정말로 디버프 능력에 딱 빠져버렸다고. 그러니까 함께 할 수 있을 때까진 함께 하자."
"나도 부탁하지. 그리고 분배는 당연히 3등분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응? 어때?"
디버프가 걸리기만 하면 몬스터의 능력이 상당히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사냥이 훨씬 쉬워진다. 그런 신세계를 경험한 거버너와 탄제는 세진을 파티에 묶어두기 위해서 상당히 애를 썼다.
실력 차이가 있음에도 분배를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그리고 사실 디버프는 그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한 단계 정도 올려서 대우를 해 줘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디버프 가격이 2만 5천 에텔론이나 하지 않던가 말이다. 그것은 에테르 기관을 유저 상급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보다 비싼 가격이다.
세진이 둘의 제안을 듣고 잠시 고민을 빠진 사이에 셋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누가 온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에 잠겨 있던 세진이 어둠 속을 노려보며 창을 잡고 일어났다.
그러자 거버너와 탄제도 무기를 챙겨들고 세진이 창끝을 향하는 쪽을 노려보며 일어났다.
"뭐야?"
탄제가 늦은 목소리로 물었다.
"열 명이나 되는데? 조금 전에 저기에서 멈췄어."
"이거 설마 라훌 놈들 아니야? 그럼 꼴이 우습게 되는데?"
"그런데 난 왜 모르겠지? 아무 것도 안 보여."
"그건 나도 그래. 하지만 세진이 거짓말을 하진 않을 거 아냐."
"그야 그렇지."
무기를 들고 몸을 약간 움츠린 상태로 세진 일행은 새로 나타난 이들이 있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거기 누구냐? 정체를 밝혀!"
거버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살짝 술렁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정말이네? 뭔가 있어."
거버너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세진을 본다.
"그렇게 볼 거 없어.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깔아 둬서 그런 거야. 지금은 20미터 정도까진 커버가 되지."
"그 안에 들어오면 알 수 있다는 거야?"
"맞아."
"그거 정말 좋은 기술인 모양이네? 나도 한 번 배워봐야겠다."
"정말로, 나도 배워 볼까? 아니다. 탄제 네가 배우고 나면 어떤지 보고 익혀야지."
"지랄!"
세진은 물론이고 농담을 주고받는 거버너와 탄제도 여전히 긴장 상태로 어둠에 싸인 건너편을 노려보고 있다.
"탄제, 거버너, 세진 맞나?"
그런데 어둠속에서 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확인하는 물음이 전해진다.
"맞다."
탄제가 방패를 앞세운 상태로 대답한다.
"휴우, 이거 참. 사람 긴장하게 만드네. 우린 펄커스 트라이브 사람들이다.
증명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겠다."
그러자 자신들이 펄커스 트라이브에서 온 사람들이라며 접근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좋다. 셋 이하로 와라."
이번에도 탄제가 대화를 이끌어간다.
세 사람 이하로 오라고 한 것은 이쪽 사람이 셋 밖에 없기 때문에 한 말이지만 사실 별로 의미가 없었다. 저 쪽이 열 명이나 되는 인원인데 나쁜 마음을 먹은 라훌들이었으면 벌써 일이 끝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둠을 해치고 나타난 이들은 툴틱을 소유하고 있었다. 툴틱을 소유했다는 것은 서로 해치지 못한다는 말이고, 그런 상황에서 펄커스 트라이브라고 속이면 헌터룸에서 제약을 걸 수도 있다.
이번 거래가 고액이 걸린 테멜 거래니 당연한 일이다. 헌터 사이의 사기 행위도 적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지? 우리들이 접근하는 거 말이지. 아, 난 펄커스의 매니저 피시지라고 한다. 익스퍼트 중급이지."
서로 툴틱을 확인하고 안전을 확인한 후에 펄커스 트라이브의 매니저라고 소개하며 한 사람이 나서서 물었다.
흰자가 없이 검은 부분만 가득한 눈을 가지고 있는데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보통의 눈에서 흰자 부분을 빼고 나머지를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세진은 그것도 다른 행성 인류 종족의 특징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어느 행성인지, 어떤 종족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그이 무척 똘망똘망하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유쾌해지는 인상을 지녔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어둠 속에서도 피시지라는 그 매니저의 눈은 뚜렷이 보였다.
"그래도 테멜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건데 감시 정도는 하고 있어야지. 그래봐야 우리 실력도 낮고, 수도 셋 밖에 없어서 막상 상황이 닥치면 별 힘도 못 썼을 테지만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
탄제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쏙 빼고 말을 건넨다.
"뭐 우리야 당연히 우리 물건 찾으러 온 거니까 그 쪽이 고마워 할 일은 아니지. 그런데 정말 안 가르쳐 줄 거야? 여기 우리 멤버들이 모두 한 가락 하는 이들인데 유저 중급에게 어둠속에 숨어 있다가 들켰다면 그건 정말 어디 가서 고개도 못 들 일이라고. 응? 그러니 이야기 좀 해 봐, 어떻게 우리 접근을 알았어? 우린 이쪽에서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일찌감치 기척을 죽였는데 말이야."
"아니 그게..."
탄제가 대답을 망설이는데 세진이 나서서 한 마디 했다.
"디버프.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펼쳐 놓은 거야."
"뭐? 디버프. 아, 그래 뭔지 알겠어. 그런 방법이 있지. 하지만 가만, 20미터가 넘잖아. 우리 들킨 곳이. 우아, 이거 대단한데? 그 정도면 거의 익스퍼트에 가까운 디버프잖아?"
피시지가 놀라서 고함을 지르고 그 소리를 들은 다른 펄커스 트라이브 멤버들이 웅성거린다.
"이거 인재를 한 명 알게 되었군. 디버프에 재능이 있나 봐? 겨우 유저 중급 정돈데 디버프는 익스퍼트에 근접했단 말이지? 좋은데?"
피시지가 세진을 아래위로 훑어보는데 거버너가 나섰다.
"이제 우리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 가 봐도 되겠지? 솔직히 아늑한 침대가 그리워서 말이야.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펄커스의 행사를 보는 것은 그쪽도 탐탁하지 않을 거 아냐?"
"음. 그야 그렇지만 아쉽군. 뭐 일단 신분은 알고 있으니 다음에 기회가 되겠지. 알았어. 그럼 수고들 했어. 잘 들 가라고."
피시지는 잠시 세진에게 미련이 있는 듯 시선을 던지다가 아무래도 테멜 문제가 우선이다 싶었던지 세진 일행이 떠나는 것을 허락한다.
사실 허락을 받고 말고 할 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거대 트라이브의 간부이고 실력이 좋은 헌터니 이쪽에서 숙이고 들어간 감이 있다.
거버너는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성큼성큼 앞장서 걷는다. 그 뒤를 세진과 탄제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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