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덤이네. 무덤이군. 무덤? - 테멜 -- >
"상황이 지랄같이 되었군."
거버너가 나무둥치 옆에 털썩 주저 않으며 그렇게 말했고, 탄제와 세진 또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흙바닥에 엉덩이를 깔았다.
테멜에 대한 정보는 무척 비싸게 거래가 된다.
툴틱에 올리기만 하면 실력 있는 헌터나 단체들이 나서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많은 에텔론을 지급할 것이다.
테멜에는 테멜 코어가 있다.
그것이 테멜을 유지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이것도 물론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데 부족코어와 같은 화이트 코어다.
붉은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는 5백 에텔론이라고 하고, 그 위인 주황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가 5천 에텔론이라고 한다.
무리 하찮은 테멜이라도 기본 5백 에텔론은 벌 수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운이 좋으면 부족 코어와 테멜 코어가 따로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말 그대로 수입이 두 배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것은 테멜의 가치에서 논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테멜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냥터로 이용할 수 있고, 그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사냥터보다 훨씬 효율이 좋다고 알려진 테멜은 다섯 마리에 하나 꼴로 코어가 나오고,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는 시간도 짧은 편이다. 그러니까 아주 편하게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이 테멜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테멜의 가장 큰 가치는 그곳이 감시의 사각지대라는 점이다. 이것을 이용해서 일을 꾸미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 그곳이다.
사실 그런 쪽의 가치가 더 클 수도 있는 것이 테멜이다.
"여기 테멜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어."
"새로 생긴 테멜인 거지. 이런 자리에 테멜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소문이 나지 않을 수는 없는 거야."
거버너와 탄제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세진은 이제부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주시하는 중이다.
"우리가 들어가서 테멜을 차지하는 건?"
거버너가 물었다.
"불가능. 우리 실력으론 안 된다고 봐야지. 물론 안쪽에 있는 것들이 붉은색 등급이라면 가능성이 있지만, 여긴 주황색 등급 몬스터들의 영역이니까 같은 등급의 몬스터가 있을 확률이 더 높지.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은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고. 거기다가 클리어 해서 테멜 코어를 얻는 것보다 정보를 파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야."
탄제가 한 마디로 거버너의 말을 일축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공매를 해야 하나?"
공매는 공개 경매다. 이런 경우 테멜은 레트시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헌터들 중에 하나나 단체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헌터가 이끄는 무리나 단체에서 테멜을 관리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사람이 어딜 가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리를 지어서 뭔가 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무리에는 우두머리가 있기 마련이다.
헌터들도 무리를 만들고 우두머리를 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무리를 트라이브라고 한다.
무슨 무슨 헌터의 트라이브라면 그 헌터를 따르는 일정 규모 이상의 헌터 무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세진 세상의 게임에서 혈맹이라거나 혹은 길드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다만 이 트라이브가 세진 세상과 다르게 운영되는 점이라고 하면 모든 일처리가 아주 투명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헌터와 헌터 사이의 일은 헌터룸에서 지속적으로 감시하며 관리하기 때문에 뭔가를 숨기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고 투명한 일처리에 혹해서 넘어가면 곤란하다.
여기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일처리가 투명하다고 그게 옳은 일만 이루어진다는 말은 아니란 것이다.
투명하지만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사례로 아주 적합한 것이 대부분의 트라이브 운영이다.
트라이브에도 우두머리가 있고, 간부가 있고 일반인이 있다. 트라이브의 우두머리를 치프, 간부를 매니저, 그 아래를 멤버라고 하는데 당연히 이들 사이에는 수익에 대한 분배에 차별이 존재한다.
당연히 치프가 가장 많고, 매니저가 다음을 차지하면 일반 멤버가 나머지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투명하게 처리가 되지만 또 확실히 불공평하게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헌터들 중에는 트라이브에 속한 이들이 많고, 또 속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은 무리 사냥이 혼자 하는 사냥하는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기 쉬운 심리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 기대에 맞게 트라이브에 속한 이들은 그렇지 못한 헌터들에 비해서 수입이 좋은 편이다.
어쨌거나 이런 트라이브는 힘이 있다. 그래서 테멜을 관리할 수도 있다. 입구를 막고 같은 트라이브 소속만 들여보내서 사냥을 하게 하거나 테멜 안에서 뭔가 일을 꾸미기도 한다.
테멜은 헌터룸의 감시도 닿지 못하는 사각 지대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당사자들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 라훌족도 마찬가지여서 이전에 헌터들에게 적대적인 라훌들이 테멜 하나를 먼저 발견한 후에 그곳에 자리를 잡고 들어오는 헌터들을 살해한 일이 있었다.
꽤나 만은 헌터들이 실종된 후에야 일이 발각되어서 큰 트라이브의 대대적인 공격에 토벌된 사례도 있었다.
어쨌거나 결론은 테멜이 여러 면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공매가 아니어도 방법은 있지. 개별 접촉을 해서 조금 더 나은 보상을 얻을 수도 있어."
탄제가 색다른 의견을 낸다. 하지만 세진과 거버너가 고개를 젓는다.
"난 곤란해. 그런 인맥이 없어."
"나도 마찬가지. 내가 제일 경력이 짧은데 말할 것도 없지. 혹시 따로 알아볼 곳이 있는 거야?"
세진이 탄제에게 물었다.
"있기는 한데 그들이 어떤 가격을 제시할지는 알 수가 없어."
"일시불 말고 지분을 얻는 것이 좋지 않나?"
세진이 끼어들었다. 사실 한 번에 목돈은 만지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세진이다.
이미 그 혜택을 보고 있으니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난 지분 보다는 당장 에텔론을 받아서 지금까지 못한 각인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음, 나도 탄제와 같다. 이참에 여건이 되면 세 번째 에테르 기관 업그레이드도 하고 싶고."
벌써 두 번은 업그레이드를 했다는 소리다.
'두 번째 업그레이드 비용이 제법 되지 않나? 그게 1만이었나 2만이었나? 지금 이 무덤 가격을 그렇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모아둔 것이 제법 있나?'
"거버너, 모아둔 에텔론이 제법 되나봐?"
세진이 슬쩍 찔러 본다.
"그거보단 이 테멜을 비싸게 팔고 싶다는 거지. 우린 방법이 없어도 트리이브 정도라면 저 석판을 옮겨서 테멜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을 거야.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저 무덤은 원하는 곳에 설치가 가능한 이동식일 가능성이 높아."
거버너의 대답은 세진의 예상과는 달랐다.
거버너는 눈앞에 있는 테멜을 비싸게 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세진은 에테르가 소용돌이치는 테멜의 입구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테멜 입구의 형태는 천차만별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이 소용돌이치는 입구다. 바로 에테르가 소용돌이를 만들면서 공간의 왜곡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주로 돌로 만들어진 벽이나 비석에 소용돌이가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때론 나무나 풀은 물론이고 몬스터의 몸에 소용돌이가 생기기도 한다. 그 몬스터는 움직이는 테멜인 것인데 실제로 그런 예가 있었지만 그 몬스터를 사로잡지 못해서 몬스터를 죽이는 바람에 테멜이 사라져버린 일이 있었다.
세진도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세진이 보고 있는 테멜 입구는 커다란 바위에 기대 놓은 석판에 소용돌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가버너는 그 석판을 옮겨서 테멜의 위치를 바꿀 가능성이 있으니 테멜의 가치가 훨씬 높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와, 정말? 그러고 보니 그렇군. 저 석판만 잘 옮기면 테멜을 이동시킬 수도 있겠어.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지 이건 가격이 엄청난 물건이야.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니까 말이야."
가버너의 말에 탄제가 이제야 그걸 알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 차라리 공매로 해. 사는 사람이 가지고 가는 거지. 누가 사더라도 테멜의 위치를 알 수 없다면 공매로 산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테멜이야 옮기면 그만이니까 말이지."
세진이 공개 매각을 다시 제안했다. 아무래도 탄제가 알고 선을 댈 수 있다는 트라이브 하나보단 몇 곳이 경쟁을 하는 쪽이 더 많은 에텔론을 받을 것 같았다.
"경매가 되면 아무래도 가격이 상승하겠지? 이건 간단한 물건이 아니니까 말이야."
거버너도 공개 경매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모양이고, 탄제도 막상 가치가 높은 테멜이란 것을 깨닫자 생각이 바뀐 모양인지 거버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 때까지는 우리가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겠네?"
"그렇지. 아무래도 경매 끝나고 에텔론을 받을 때까지는 이곳에 있는 것이 좋겠지."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자. 테멜이 여기 있다면 근처로 몬스터도 오지 않을 테니까 쉬기에 딱 좋겠네. 위험도 없으니까 말이야."
거버너가 배낭을 등지고 비스듬히 기대고 누워 팔베게를 한다.
"그럼 탄제가 알아서 공개 경매를 시작해 봐. 그리고 당연히 공평하게 이익을 나누는 거다?"
세진이 탄제에게 그렇게 말했고, 거버너와 탄제도 그에 동의했다.
헌터들 사이에서의 약속은 어기지 않는 것이 좋다. 헌터룸 관리자가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툴틱으로 공개 경매를 하면서도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의 위치는 경매 낙찰자에게만 알려 줄 것이고, 그 후에는 에텔론을 받고 철수하면 그만이다. 나머진 낙찰 받은 쪽에서 알아서 할 일인 것이다.
툴틱이 시끄러워졌다.
레트시 인근에서 발견된 테멜 입구의 모습과 함께 테멜에 대한 정보를 공개 경매로 판다는 소식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곧바로 레트시를 중심을 활동하는 트라이브의 실력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탄제는 여섯 시간의 여유만 두고 경매를 진행한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툴틱이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다.
다른 도시에 있는 이들도 관심은 있는 모양이지만 경매에 참가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낙찰과 동시에 정보를 받아서 곧바로 인원을 투입해서 테멜 입구를 봉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 테멜의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후에 다른 헌터나 라훌족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라훌족이 끼어들게 되면 정말 곤란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테멜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레트시에 가까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저 석판을 옮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탄제가 넋두리를 하듯이 말했다.
"옮겨서 뭘 하게?"
"그럼 좀 더 시간을 두고 경매를 진행할 수 있고, 우리가 테멜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니까 경매 가격을 더 높일 수 있겠지."
"하긴."
가버너와 탄제는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정말 시도를 해 보자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잘못해서 테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는 것이다.
테멜이 무덤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꼭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테멜은 위험한 곳이다.
입구만으로는 절대 안쪽의 상황을 알 수 없는 미지 아닌가.
비록 그 테멜이 있는 곳 주변의 몬스터 등급과 비슷한 수준의 테멜이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라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고, 그 예외를 무시하기엔 의체의 가치가 너무 높다.
그러니 무리한 욕심은 내지 않는 것이다.
이제 세진 일행이 할 일은 경매가 끝나기를 기다려서 에텔론을 받는 것이다.
그 전에 라훌족이 나타나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문제가 생길 일도 없을 것이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