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연이 칡덩굴처럼 얽히네 -- >
세진은 가버너와 탄제를 따라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걸어서 사냥터 가까운 마을에 도착했다.
원래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려야 하지만 셋 모두 마을에서 하룻밤 피로를 풀기로 하고 에테르를 운용해서 속도를 높였던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세진의 에테르 운용 능력을 시험해보려는 가버너와 탄제의 숨은 의도가 있었지만, 세진도 그 정도는 눈치를 챘다.
그리고 셋이 소이쥔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가버너와 탄제는 일단 세진이 에테르 운용에는 자신들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녔음을 인정했다.
그들이 바라는 디버프 능력은 어떤지 확인을 해보지 못했지만 에테르를 운용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둘에 비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사실 세진이 익힌 에테르 로드 수련법의 에테르 순환은 소진되는 에테르를 조금씩이라고 꾸준히 보충해줄 수 있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면서 사용하는 에테르를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었다.
러니 가버너나 탄제에 비해서 에테르의 총량이 부족한 세진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루 반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달리면서 에테르 순환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본 순환 정도는 다른 에테르 운용과 병용해서 쓸 수 있게 된 세진이다.
그동안 수련에 힘쓴 덕을 본 것이다.
"여긴 여관도 하나뿐이라 선택의 자유가 없어. 거기다가 주방장의 솜씨도 별로지."
"맞아. 솜씨 좋은 라훌족이 있었는데 일을 그만뒀거든."
"여관 주인 놈이 욕심이 많아서 그래."
"같은 라훌족인데 얼마나 모질게 구는지, 이 마을을 지나는 헌터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
가버너와 탄제가 여관으로 향하면서 정작 여관 주인에 대한 비난을 쏟아 냈다.
"그래도 이런 마을에 여관을 세우고 운영을 할 사람이 없으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이용하게 되는 거지."
"인심을 잃고도 여관 장사를 계속 할 수 있는 것도 전부 경쟁 업소가 없기 때문이야. 젠장 내가 여기다가 여관을 하나 낼까?"
가버너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여관 입구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여관의 홀에는 탁자와 의자들이 제법 있었지만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여기 방!"
가버너가 카운터 앞으로 가서 소리를 질렀다.
"어떤 방을 드릴까요? 손님."
주인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가버너를 상대했다.
"2인실 하나, 1인실 하나. 식사는 기본. 2인실 방으로 가져다주고."
"알겠습니다. 손님. 계산은 어떻게?"
"여기 있다."
가버너는 탄제와 세진에게 묻지도 않고 방을 얻고 주문을 마쳤다.
그리고 세진에게 1인실 방을 쓰라고 하고, 식사는 자신과 탄제가 함께 쓰는 방에서 같이 하자고 했다.
"손님 모셔라!"
계산이 끝나자 카운터의 사내는 문이 없이 천으로 막아 놓은 출입구를 향해 소리를 질렀고, 곧바로 아직 어려보이는 소년이 나와서 세진 일행을 방으로 안내했다.
"자, 이건 잘 숨겨서 네 용돈으로 쓰거라."
가버너는 방을 안내한 소년에게 카운터에서완 달리 부드러운 어조로 대하며 팁까지 챙겨 줬다.
"고맙습니다. 헤헤."
소년은 얼굴이 보통 보다는 조금 긴 모습이었는데 흔히 방아깨비라고 부르는 종족의 피가 섞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활짝 웃으며 팁으로 받은 텔론을 품속에 숨기는 것이 여간 재빠른 것이 아니다.
"내 멋대로 정해서 미안하다.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와 의자 등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가버너가 세진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여관에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 것에 대한 사과다.
"뭐. 나야 처음 오는 곳이니까 경험자가 일을 처리하는 것에는 별 불만은 없어."
"이해를 해 주니 고맙다. 사실 이곳에 오는 헌터들은 대부분 방에서 기본 식사만 하는 쪽을 택하는데, 그게 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것을 시켜도 제대로 만든 음식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까 홀을 봐서 알겠지만 사람들이 홀에 내려가지 않는 것도 우리 헌터들 사이의 묵계 같은 거다."
"여관 주인 놈에게 시위를 하는 거지. 여관을 제대로 운영하라고 말이야."
탄제가 끼어들었다.
"사실 이곳에 여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도 상당히 곤란하거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냥터를 전전해야 하다니 얼마나 끔찍해?"
"그렇지. 거버너와 내가 며칠 죽어라 사냥을 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는데 와서 보니 정막 먹을 음식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목을 씻을 맥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상황, 그거 정말 끔찍하거든."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헌터들이 모두 여관 주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중이란 말이야? 주방장을 제대로 된 사람으로 구하라고?"
세진이 이야기를 듣다가 그렇게 정리해서 물었다.
"맞아. 여관을 새로 지을 수가 없다면 여관 주인이 일을 제대로 하게 해야지."
"그런데 쉽지 않을 거야. 그 놈이 워낙 소문이 좋지 않게 나는 바람에 여길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말이지. 크큭."
탄제는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확 망하고 새로 생기던가 해야 하는데."
거버너도 악담을 퍼부었다.
"어쩌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몰라. 먹고 살 정도는 되니까 우리 헌터들 고생을 좀 해 보라고 말이지."
그런데 탄제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세진이 물었다.
"요즘 마을들, 그러니까 사냥터의 뒤를 받쳐 주는 마을들의 라훌족들이 이상하게 헌터들을 배척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흐름이 생긴 것 같아."
"그건 맞는 말이지. 점점 호의적인 라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니까?"
"맞아. 명확하게 딱 집어서 말하긴 좀 어려운데 그런 조짐들이 있긴 해."
"그거 라훌헌터 놈들 때문이지. 그 놈들이 기세가 오르니까 이제 우리 헌터들이 없어도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들이 생기니까 그런 거야. 이전처럼 우리 헌터들에게 알랑방구 뀔 일이 없다는 거지."
"그 보증인 때문이지 뭐. 에테르 상점에 라훌족이 마음껏 드나들게 만들어 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아무튼 그게 문제라고."
세진은 거버너와 탄제의 대화를 듣다가 움찔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만든 라훌족 보증인 제도가 뭔가 이 행성에 변화를 만들고 있고, 그것이 헌터들에게 좋지 못한 방향이라고 하니 놀란 것이다.
"몬스터는 넘치는데 헌터와 라훌 헌터가 서로 경쟁을 할 일도 없잖아. 그런데 왜 일반 라훌족들이 헌터들을 싫어 한다는 거지?"
"아, 세진은 도시에만 있어서 잘 모르지? 사실 라훌들 중에는 헌터들에게 적대적인 이들도 많아."
"생각을 해 봐, 라훌은 우리 헌터들이 낳은 아이들이야. 또 그 아이들의 후손이지. 지금도 그런 아이들은 수도 없이 태어나고 있다고. 여기저기 씨를 뿌리는 헌터들은 널리고 널렸지."
"라훌족도 그렇게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은 환영하지. 아무래도 이 행성에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적으니까 말이야."
"맞아. 그런데 그게 문제야. 여기저기 씨를 뿌리곤 그걸 제대로 돌보질 않아. 심지어는 여자 헌터들도 낙태를 할 수 없으니까 낳기는 낳는데, 아이를 가진 의체를 보관소에 맡기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이곳에 오지 않지.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서 어디론가 보내진 후에 다시 돌아와 헌터 생활을 하는 거야. 그러니 라훌족의 입장에서 그들은 부모에게 버림 받은 처지가 되는 거지."
"날 버린 부모, 그들에 대한 라훌족의 감정은 그리움이나 애틋함 보다는 적개심이 더 강하지. 그나마 개발 초기에는 몬스터를 잡으면서 라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의 이미지가 강해서 좀 나았는데, 이후에 도시와 마을들이 커지면서 달라진 거야. 이젠 헌터가 없어도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버림받은 과거가 떠올랐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에테르 상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 라훌헌터가 조금씩 성장을 하게 되고 예전보다 실력이 좋아지니까 몬스터와 가까이 접하고 사는 마을들에서부터 라훌 헌터의 활약상을 느끼게 되고, 우리 같은 헌터들의 필요성을 조금 덜 느끼게 된다고 할까?"
"쉽게 이야기하면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니까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던 것을 버리고 싶어 한다는 거군."
세진은 가버너와 탄제의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라훌헌터가 활약을 시작하니 헌터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라훌헌터, 헌터. 그렇게 부르던 것이 이제는 우리 같이 의체를 사용하는 이들을 유저 헌터라고 하고 라훌 헌터를 진짜라는 의미로 리얼 헌터라고 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더군."
"맞아. 나도 들었지. 솔직히 그 말을 쓰는 놈들은 모두 우리 헌터들을 싫어하는 놈들이라고 봐야지."
"유저헌터? 리얼헌터?"
세진은 처음 듣는 명칭이라 탄제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맞아. 우린 사용자 헌터, 그러니까 의체를 사용하는 헌터고, 라훌은 실제로 진짜 몸을 사용하는 헌터라는 의미에서 리얼헌터인 거지."
"우릴 가짜라고 하는 거지."
"틀린 건 아니지만 유쾌하진 않네요. 하하하."
"맞아. 그런 거지. 뭐라고 부르건 상관은 없는데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은 거야. 그리고 그런 식으로 라훌족들이 우리 헌터들, 그러니까 저들 말론 유저헌터들을 대한단 말이지. 이 여관 주인 놈도 어쩌면 그래서 주방장을 내보낸 건지도 모른다는 거지."
"아니, 장사 망치면서 우리 헌터들을 골탕 먹이고 있다는 말이야? 그건 좀 아닌데?"
"세진 아까 이야기 했잖아. 이 여관 주인 놈은 텔론은 벌만큼 벌었다니까? 이제부터 적자만 보지 않으면 평생을 이렇게 살아도 걱정 없을 놈이라고."
"거버너, 그만하자. 사실 그건 확실치도 않고, 또 주인이 그런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같은 소극적 압박뿐이야. 아니면 여관 자체를 이용하지 않거나 말이지. 그런데 이렇게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도 쉽게 포기가 안 되잖아? 그러니까 그냥 저냥 넘어가야지 어쩌겠어?"
탄제가 그렇게 대화의 장을 마무리했다. 마침 식사가 올라 온 것이다.
기본이란 식사는 빵과 스프, 그리고 얇은 고기 패드가 전부였는데 빵을 스프에 찍어 먹거나 소금기가 있는 패드를 잘게 잘라서 얹어 먹는 것이었다.
세진은 묵묵히 음식을 씹어 삼키면서 레트시에서 첫날밤을 보낸 여관의 음식을 떠올렸다.
가격은 못해도 몇 배는 될 텐데 음식은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속으로 여관 주인에게 욕을 퍼부었다. 다음날 일찍 거버너와 탄제, 세진은 마을의 상점에서 배낭을 가득 채웠다.
사냥 하는 동안에 먹고 마시고 사용할 것들을 보충한 것이다. 중요한 것들은 레트시에서 모두 가지고 왔지만 부피와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 중에서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마을 상점을 이용하는 것이 좋았다.
약간 더 비싸긴 하지만 그건 감수해야 할 일이다. 편하게 왔으니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사냥한 놈은 주황색 등급 중에서도 약한 놈이지만 그래도 주황색이라서 간혹 에테르를 이용한 기술을 쓰기도 하니까 조심해야해."
"그래서 내가 있는 거야. 그런 공격은 내가 방패를 이용해서 막아야지. 그걸 맨 몸으로 맞으면 상처가 크게 나거든. 더구나 정신 능력을 배웠다면 세진 너는 더 조심해야 해."
"알았어. 어차피 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조를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세진은 이번 사냥의 목표인 포치포치를 떠올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포치포치는 레트시 주변에선 주황색 등급부터 나오는 몬스터였다. 다른 도시에는 붉은색 등급 포치포치도 있다는데 여긴 주황색이 제일 낮은 등급인 것이다.
이 포치포치는 반인반수형의 몬스터로 꼬챙이를 들고 두 발로 걷는 다람쥐를 떠올리면 되는 몬스터다. 물론 크기가 사람만큼 크다는 것과 팔다리가 길어서 다람쥐의 귀여움은 찾을 수 없는 녀석이긴 하다.
툴틱으로 처음 봤을 때, 세진은 얼굴만 나온 것을 보고 다람쥐를 떠올렸다가 전체가 나온 것을 보곤 그냥 포치포치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람쥐 몬스터라고 부르기엔 긴 다리와 팔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 심리는 다른 헌터들도 비슷했는지 대부분의 헌터들은 포치포치라고 부르고 이름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에겐 징그러운 다람쥐 몬스터란 말로 설명을 한다고 했다.
"그 놈들 들고 다니는 꼬챙이가 시뻘겋게 변하는 순간만 잘 잡으면 충분히 대비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리고 세진은 뒤에 있을 테니 포치포치가 가까이 갈 일도 없을 거야. 내가 다 막을 테니까 말이야."
"한 마리씩만 끌고 와서 사냥하는 방식이니까 염려할 것도 없지. 두 마리 이상 붙으면 다른 곳으로 가서 따돌리고 한 마리만 데리고 사냥장소로 갈 테니까. 나만 믿어."
사냥터가 가까워질수록 거버너와 탄제는 세진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혹시라도 세진이 너무 긴장해서 실수라도 할까 걱정을 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행복하셨으면... 모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