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연이 칡덩굴처럼 얽히네 -- >
세진은 혼자 몬스터 사냥을 다녀온 사실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자신에게 긍정적인 점수를 줬다.
하지만 다시 혼자서 사냥을 나갈 생각은 절대 없었다.
사냥에 성공하고 살아 돌아온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그것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어리석은 행동임을 깨달은 것이다.
더구나 사냥 후반에 자신이 했던 행동들은 너무 빈틈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빈틈은 혼자 움직였기 때문에 생긴 부분도 적지 않았다.
이곳 데블 플렌인 행성에는 헌터들이 있고, 그 헌터들은 서로를 해치는 못하도록 되어 있다. 해치는 범위 안에는 사기를 통한 금전적인 이득까지 포함할 정도로 헌터들의 단결을 저해하는 요소는 철저하게 막으려는 의지가 헌터룸 관리자에게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못된 짓을 하는 헌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접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수를 낼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들이고 이곳 데블 플레인에는 헌터들에게 적대적인 라훌족들이 있어 그들을 이용하기도 쉽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헌터들끼리의 사냥 자체는 충분히 안전하다고 할만하다. 세진도 그런 이유로 다음 사냥에는 헌터들의 파티에 엮여서 가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 사냥을 간다면 헌터들과 타티를 이루어서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런데 세진이 집에 돌아오고 하루 뒤에 제이앤과 알프론이 찾아왔다.
세진이 사냥을 나가 있는 동안에 에텔론 상점 이용 때문에 연락이 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시간 약속을 잡으라는 이야기를 드레드를 통해서 전했기에 세진이 사냥에서 돌아온 것을 안 것이다.
거기에 사냥에서 굉장히 크게 다쳤던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은 모양인지, 걱정이 되어서 왔다고 수선을 피웠다.
"보다시피 다 나았다. 걱정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대단치 않은 일에 수선을 피우는 건 사양한다.
"아니, 이게 어떻게 별 일이 아니야? 너 죽을 뻔 했다면서?"
"드리드가 보기보다 입이 싼 모양이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니."
세진은 알프론 보다는 고용인인 드레드에게 화를 냈다. 아마 드레드가 들었으면 직장을 잃게 될까봐서 무척 마음을 졸일 말일 것이다.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 말아요. 우리가 꼬치꼬치 물어서 그렇게 된 거니까요. 알겠지만 라훌헌터들은 일반 라훌족에 비해서 지위가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드레드 씨도 우리가 묻는 말에 입을 닫고 있기 어려웠겠죠. 그를 해고하고 다른 이를 구한다고 해도 사정이 달라지긴 어려울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가 알 필요도 없는 남의 사정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말이네? 나는 그런 관심은 별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거기다가 사람이 바뀐다고 해도 또 그런 일이 벌어질 거란 소리는 계속해서 나를 염탐하겠다는 소리고?"
"기분 상했냐? 야, 그건 우리가 널 걱정해서 그런 건데, 너무한 거 아니냐? 그리고 염탐은 무슨 염탐? 궁금해서 물어 본 걸 가지고."
알프론이 세진이 불쾌하게 여기는 것에 도리어 화를 냈다.
하지만 세진으로선 그 동안 멀어질 대로 멀어진 세 사람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알프론과 제이앤이 세진의 부상 소식에 부랴부랴 달려온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미 그런 수준의 교감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이다.
"에텔론을 모두 넘겨줄 때까지는 절대 죽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야, 세진. 우리가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잖아."
"맞아요. 에텔론 때문이 아니에요. 우린 정말로 세진이 걱정 되서 온 거예요."
"알았다. 문병 와 준 거 고맙다. 그런데 난 좀 더 쉬어야겠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좀 가 줄래? 다음에 에텔론 상점에서 보자."
알프론가 제이앤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세진은 끝내 냉정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저것들 묘하게 거부감이 느껴져. 이상한 일이지.'
세진이 그들 두 사람을 냉정하게 대하고 서둘러 쫓아내다시피 내보낸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서 가식을 읽었기 때문이다.
디버프 에테르 범위 안에서 그들 두 사람의 신체 상태를 쉽게 알 수 있었는데 말과 신체 변화가 일치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침착하게 세진을 대할 때는 도리어 심장 박동이 빨랐고,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를 때에 심장 박동이 느려졌다.
실제로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한 것이란 증거였다. 그것을 알게 되자, 다른 것들도 찾을 수 있었는데 멈칫 멈칫 하면서 둘 사이에 오고가는 신호들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가 남모르는 신호를 짧게 주고받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별 뜻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쟤 왜 저러는 거야?'
'모르지.'
'사냥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나?'
'그랬을 수도 있지.'
등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면 문병을 온 이들로선 당연한 것이지만 세진은 그들이 그런 내용을 남모르는 신호로 주고받았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디버프 스킬이 쓸데가 많네. 저것들의 속을 조금은 알게 되서 기분이 좋진 않지만 말이지.'
세진은 두 사람이 나간 방문을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침대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아직은 좀 더 쉬면서 사냥의 피로를 풀어야 할 때다.
세진은 한동안 에테르 로드 수련에 집중했다.
에테르 기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쯤 에테르 기관을 업그레이드해서 에테르의 보유량을 늘렸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테르 유저 수준에서도 상급 단계에 들어갔을 텐데, 세진은 에테르 기관이 없어서 스스로 에테르의 양을 늘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부지런히 에테르를 순환시켜서 체내 에테르 보유량을 늘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기초 순환 단계에 머물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단계를 높여서 몸 전체를 아우르는 전체 순환에 이르게 될지 요원하기만 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진은 나중을 위해서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로드를 하나씩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어차피 지구에서 본래 몸으로 해 봐야 할 것을 미리 연습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보다 좋은 기회도 없는 것이다. 또 그것 때문에 의체에서 에테르 기관을 제거한 것이 아니던가.
오러 로드를 조금씩 개척해서 통로가 늘어날 때마다 에테르 로드 수련의 효과가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로드도 모두 석판에서 배운 내용대로 개척을 해야지 잘못 건드리면 큰 상처를 입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매번 긴장하고 조심하며 수련에 힘쓰고 있는 세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미 익히고 있는 에테르 운용법들에 대한 수련도 멈추지 않았고, 한 단계 높은 운용법을 배울 수 있을 때에는 각인도 미루지 않고 받았다.
또 툴틱을 통해서 레트시에서 활동하는 헌터들 중에서 디버프 정신 능력자를 구하는 파티가 있는지도 알아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집에서 수련만 하는 것으로는 성취도를 확인하기 어렵고 실제 수련의 전척도 느렸다. 한 번의 실습이 연습 수 십 번 보다 나은 것은 이미 경험을 알고 있는 바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헌터 2인 파티에서 세진에게 연락이 왔다.
거버너와 탄제라는 이름의 남성 2인조 헌터로 함께 사냥을 한 것이 1년이 조금 넘었고, 주로 붉은색 등급 중에서 상급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주황색 하급을 잡는다고 했다.
그들이 세진에게 연락을 한 것은 주황색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 세진이 디버프가 가능한지 알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세진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주황색 등급은 아직 경험이 없어 알 수 없다고. 대신 긴팔곰이나 우커우덴의 경우 한 번의 디버프로 충분히 혼자 잡을 수 있었으며 두 번 디버프가 중첩되면 싱겁게 잡은 경험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연락을 받은 거버너, 탄테 파티에서 한 번 사냥을 나가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주황색 등급 중에서 그들이 주로 사냥하는 몬스터가 있는데 그 몬스터는 둘이서도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는 녀석이니 함께 가서 디버프의 위력을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세진은 그 권유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헌터니까 믿고 간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들의 제안이 지극히 상식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황색 등급의 몬스터는 도시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레트시에서 사냥터까지 가는 시간만 이틀 정도를 잡아야 할 정도로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 거리에는 도시에서 떨어져 나간 마을들이 있었다.
대부분 하루나 이틀 정도의 거리마다 마을들이 있는데, 그것은 본래부터 헌터들의 이동 거리에 맞춰서 숙박 시설이 만들어지다가 그게 마을로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헌터 생활을 오래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얼마나 되었나?"
거버너가 세진의 곁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레트시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곧바로 사냥터로 이동하기로 하고 길을 걷던 중이었다.
이미 툴틱으로 이런저런 준비를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2년이 조금 넘은 것 같은데?"
"2년? 겨우? 그럼 이전에 다른 삶을 살았었나?"
거버너가 세진이 2년 조금 넘은 헌터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다른 삶이란 다른 의체로 헌터 생활을 했었냐는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초보 헌터들은 정신 능력을 배우지 않는다. 배우려고 해도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에텔론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디버프만 2만 5천 에텔론인 것이다. 초보는 상상도 못하는 액수다.
그러니 2년 경험 밖에 없는 세진이 정신 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 이상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 건 아니고. 운이 좋아서 에텔론이 좀 생겼지. 거기다가 헌터 생활에 대한 조언도 들었고."
세진은 대충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뼈대가 없이 두루뭉술한 대답인 것이다.
"그래? 그것 참 정말 운이 좋았던 모양이네? 하긴, 상급 헌터들이 가끔 초보들에게 선심을 쓴다는 소문이 있긴 하지. 이거 부러운데?"
약간 떨어져 걷던 탄제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탄성을 터트리며 끼어들었다.
"탄제하고 나도 이제 3년 정도 밖에 안 된 초보들이지. 그래도 우리는 제법 빠르게 성장을 한 편이라고. 딱 필요한 것들만 충실하게 익히면서 한 눈을 팔지 않은 덕분이랄까?"
"그렇지. 거버너는 대검을 이용한 강력한 공격과, 그것을 돕는 운용법을 주로 익혔지. 그리고 나는 방패를 들고 몬스터를 막고 방어하는 쪽에 힘을 쏟았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 둘이 만났을 때에는 정말 운명의 짝이구나 했다니까?"
"으하하하하. 그렇지. 우리 둘이 함께 다닌 지난 1년 동안은 정말 환상이었다니까? 지금 우리가 황색 몬스터를 사냥하게 된 것도 전부 둘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혼자였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야."
"맞아. 맞아. 거기다가 이제 세진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어지는 거 아니겠어? 거버너와 내가 전위를 맡고 세진이 후위를 맡아 주면 정말 바랄 것이 없을 거야."
"세진 우리가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는지 모를 거다. 황색 등급을 사냥하는 것이 빨간색 등급을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벌이가 좋아. 알지? 코어 가격이 열 배나 차이가 난다고. 빨간색 열 마리 잡는 것 보나 주황색 하나 잡는 쪽이 더 나아. 빨간색 코어 열 개 보다도 주황색 등급 코어 하나가 더 낫다는 말이지."
"세진, 거버너가 하는 말은 이런 거야. 빨간색 코어 열 개 얻기 위해서 백 마리 몬스터를 잡는 것과 주황색 하나를 얻기 위해서 열 마리 몬스터를 잡는 것을 놓고 보면 빨간색 쪽이 수련도 더 되고 좋을 것 같은데, 실제론 주황색 몬스터를 잡는 쪽이 훨씬 자기 성장에 좋아. 그러니 같은 값이면 주황색을 잡는다는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빨간색 열 마리 잡을 때에 주황색 서너 마리는 잡을 수 있지. 그러니 굳이 따질 일도 아니야."
"다만 위험 부담이 생긴다는 것이 문제지. 주황색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
"맞아. 맞아. 겨우 유저 상급 정도 되는 것들이 의외로 사냥은 까다롭거든? 세진 그거 알지? 몬스터 등급에 따라서 헌터도 상대할 수 있는 실력 격차를 나누고 있다는 거 말이야."
둘이 번갈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주도하다가 갑자기 세진에세 질문을 던지는 거버너 때문에 세진은 살짝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알아. 붉은색과 주황색은 유저, 노란색과 초록색은 익스퍼트, 파란색과 남색은 마스터, 보라색은 그랜드 마스터에게 맞는 사냥감이라고 하더군. 뭐 우리야 아직 유저 수준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그래 그렇게 툴틱에서 구별을 해 뒀는데 거기에 약간의 허점이 있어."
가버너가 세진의 말에 토를 달았다.
"허점?"
"응, 그 구별은 몬스터 하나를 헌터 파티가 상대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거야. 개인이 아니지?"
"그래?"
"가버너 말이 맞아. 그러니까 둘이나 셋이 모인 헌터 파티를 기준으로 해 놓은 거야. 그래서 혼자 까불다간 골로 가는 경우가 생기지."
"그렇군."
세진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 정보를 기억에 새겨 넣었다.
"어서 가서 세진의 디버프 능력을 확인해 봐야 하는데 말이지."
탄제가 자뭇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힘차게 걸음을 옮겨 몇 걸음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 뒤를 세진과 거버너가 걸음을 조금 재촉하며 따른다. 사냥터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은 셋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 작품 후기 ============================새벽에 하나 더 올렸습니다. 후후 뭐 예약입니다.
지금은 2시... 좀 넘었나요?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