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6화 (26/298)

< -- 다시 레트 시(市)에 서다 -- >

세진은 집을 구한 후에 사냥을 나가지 않고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지하 창고의 석판에서 얻은 에테르 로드 수련법을 익혔다.

그런데 수련을 하면서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체에테르바디의 에테르 기관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세진의 에테르 로드 수련법은 에테르를 몸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그 몸에 맞은 성질로 바꿔서 저장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저장한 에테르를 꺼내서 이용하는 것이 세진이 알고 있는 수련법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생체에테르바디에는 이미 에테르 기관이란 것이 있어서 따로 에테르를 순환시켜서 모을 필요가 없었다. 그 일을 에테르 기관이 대신 해서 해 주기 때문이다.

체에테르바디를 지니고 있으면 그저 몸 안에 있는 에테르를 어떻게 움직여서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만 연습하면 족했다.

심지어 에텔론을 이용해서 에테르 기관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그 업그레이드의 내용이 곧 에테르 기관이 가지고 있는 에테르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니 한마디로 에텔론으로 능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런 방법을 쓰기 때문에 따로 에테르를 모으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고, 또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생체에테르바디에는 좋을지 몰라도 세진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결국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군. 이 몸으론 에테르 로드를 수련할 수가 없어. 이건 곤란한데?"

세진은 에테르 로드 수련을 하려다가 그 사실을 알고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생체 에테르바디 보관소를 통해서 헌터룸으로 이동했다.

- 지구로 돌아가실 겁니까?

우미는 세진이 깨어나자 그것부터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어."

- 네. 질문하십시오.

"의체에 에테르 기관이 있잖아. 혹시 그거 없이도 의체를 만들 수 있나?"

세진은 에테르 기관이 없는 생체에테르바디에 대해서 물었다.

그것이 있으면 에테르 로드 수련법을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에테르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고 에테르 운용 능력은 없는 몸이 됩니다.

"그럼 그 상태로 의체를 만들면 가격은 좀 내려가나?"

- 에테르 기관을 만드는 비용이 절감되지만 그래도 40만 에텔론이 들어갑니다.

"그걸 만들고 싶은데 방법이 없나?"

- 예비 생체에테르바디를 준비하시려는 거라면 에테르 기관을 선택하는 것을 권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로 활동하게 되면 오래지 않아서 돌연변이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거야 지금 내가 익히고 있는 방법으로 저항력도 높이고 에테르 운용도 가능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 세진님께서 지구에서 익히신 방법을 사용하신단 말입니까?

"그렇지."

-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입니다. 에테르 기관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의 수련이 지구에서도 적용이 되려면 아무래도 같은 것을 익히는 쪽이 좋을 것 같단 말이지."

세진에게 이곳에서의 생활은 인형놀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지구에서의 삶은 진짜였다. 그러니 그 삶에 유익한 것을 익힐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에테르 기관이 없는 생체에테르바디는 무척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혹시 지금 사용하고 계신 생체에테르바디에서도 에테르 기관을 제거하길 원하십니까?

"그럴 수도 있나?"

- 가능합니다만 이미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에테르가 가득한 곳에서 저항력이 약한 생체에테르바디는 돌연변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그럼 그렇게 하지 말고 새로 의체를 만들어서 내가 쓸 수는 없나?"

- 동시에 두 개체의 생체에테르바디를 사용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사용 중인 의체가 소실되는 경우에만 다른 의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점 유의해주십시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만약에 지금 내 생체에테르바디의 에테르 기관을 제거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있지?"

-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은 5일 정도입니다.

그 이상이면 언제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에테르 저항력을 확보하셔야합니다.

"좋아.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세진은 지구에서도 몇 시간 걸리지 않은 하단전 생성이 이곳에서 그 이상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있었다.

- 그럼 지금 당장 에테르 기관을 제거하실 겁니까?

세진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려다가 대답을 미뤘다.

"아니. 그건 나중에 하자. 일단 내 툴틱에 60만 에텔론 이상의 자금이 있으면 우미가 알아서 예비용 생체에테르바디를 하나 준비해 둬. 당연히 에테르기관은 없는 것으로 해야지."

- 미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에텔론을 맡겨 두시면 필요할 때에 만들어 드리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세진님의 툴틱에 60만 에텔론 이상이 있으면 50만 에텔론을 인출해서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에 에테르 기관이 없는 생체에테르바디를 만드실 경우 10만 에텔론은 환급해 드리겠습니다.

헌터룸에 기본적으로 만들어져 있던 것을 제외하면 새로 만드는 것은 기본 생체에테르바디가 소실된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여성용이라고 하는 것도 지금 내가 쓸 수 없는 거겠지? 두 개의 의체를 쓸 수 없다면 말이야."

- 그렇습니다.

혹시 하고 물었던 질문의 답은 역시로 돌아왔다.

"좋아. 그럼 일단 예비로 선금을 넣은 다음에 지금 쓰는 의체에서 에테르 기관을 제거하는 것으로 고민을 해 보자. 나는 그 사이에 에테르를 이용한 기술들을 좀 익혀 둬야겠군. 어차피 에테르 기관에 에텔론을 투자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지."

- 선택은 세진님의 몫입니다.

"그래. 알았어. 이제 돌아가야겠다.

우미. 부탁해."

- 알겠습니다. 세진님.

세진은 그렇게 궁금증을 해소하고 또 예비 의체에 대한 준비도 마무리 짓고 레트시의 생체에테르바디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에텔론 상점에서 배당을 받지 못한 세진의 툴틱에 남은 에텔론은 4000에텔론이 조금 넘었다.

세진은 그것으로 이전의 에테르 운용법에서 조금 더 발전한 운용법들을 각인했다.

같은 기술이라도 좀 더 효율적인 것으로 바꾸려면 에텔론이 필요했다.

무기에 에테르를 주입하는 것이나 방어를 위해서 몸에 에테르를 퍼뜨리는 것이나, 힘을 강하게 하는 것, 순발력이나 민첩성을 올리는 것, 몸의 특정 부위에 에테르를 주입해서 능력을 끌어 올리는 것들이 모두 단계별로 상위 기술이 존재했다.

세진은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우선해서 몸이 각인시켜 나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각인을 하려고 해도 기본 바탕이 없이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 번 각인을 받고 그것을 몸에 완전히 정착시키지 않으면 그 운용법과 관계가 있는 상위 기술들은 각인이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에테르의 통로를 단련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에텔론이 있다고 무조건 각인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진은 제이앤과 알프론이 굉장한 노력파란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그들은 사냥을 줄이는 대신에 기술을 각인하기 위한 단련에 힘을 쏟았다. 그래서 자주 세진을 찾아와서 에텔론 상점에서 각인을 부탁하곤 했다.

세진이 가지고 있는 에텔론을 빨리 소진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세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세진을 믿지 못해서 빨리 자신들의 몫을 찾아가고 싶은 거라고 해도, 이제 와서 그들에게 실망감을 느낄 일도 없었다.

어차피 그들과 세진은 필요에 따라서 만났던 사람일 뿐인 것이다. 세진은 그렇게 그들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쁜 감정은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호감도 남지 않은 사이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제이앤과의 잠자리 유희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녀 대신에 일랜드가 세진의 침대 상대가 되어 주어서 크게 아쉬울 것도 없는 상태였다.

일랜드는 처음 며칠은 눈치를 살피며 지내더니 어느 날 밤에 세진의 침대로 찾아와서 자신의 성을 팔 수 있다는 뜻을 세진에게 알렸다. 그래서 세진도 마다하지 않고 그녀에게 주는 월급을 올려주는 대신에 간혹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택했다.

세진은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차피 생체에테르를 이용한 유희라고 여기기로 했다.

놀이에서 굳이 거추장스러운 도덕과 규범을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 일상적인 행위들을 두고, 지구와 다르다고 배척할 이유는 없었다.

세진이 알기로 레트시는 물론이고 이 행성 자체에서 성은 무척 개방적이었다.

아무래도 헌터들로만 이루어진 사회에서 라훌들이 태어나고, 그로인해 조금씩 행성 내의 인류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인 듯 했다.

한마디로 출산을 적극 장려하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 고용인이 주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것이 흠이 되지도 않는 곳이다.

세진은 이런 행성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한쪽 가슴에선 만들다 만 타지마할과 뿔테 안경의 그녀가 양심을 찌르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곳에서의 시간은 지구상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

세진은 꿈이라 여겨도 좋은 것이 이곳의 생활이라고 치부했다.

일랜드는 지구의 번화가를 걷는다면 누구나 한 번씩은 돌아볼 정도로 늘씬하고 볼륨감이 있는 몸매를 지닌 미녀였다.

그런 미녀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일랜드에 대한 망설임을 툴툴 털어내고 침실로 부르는 세진이었다.

각인과 수련에만 힘쓰다보니 드디어 세진에게 예비 생체에테르바디를 만들 에텔론이 모였다.

그냥 놀고먹어도 세진의 툴틱엔 엄청난 에텔론이 쌓이는 것이다.

물론 남색 등급의 몬스터를 잡으면 코어 하나의 가격이 50만 에텔론이다. 그런 사냥이 가능한 헌터들과 세진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바로 아래 등급의 몬스터 코어는 5만 에텔론 정도가 평균이다. 이런 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들은 한 달에 평균 30만 에텔론 정도를 벌게 되는데, 세진도 그와 비슷한 에텔론이 매달 쌓이는 것이다.

그러니 초보 헌터들 중에서는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축에 들지 않을까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는 세진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예비 의체를 준비할 수 있게 되자, 세진은 곧바로 헌터룸에 가서 지금 사용하는 의체의 에테르 기관을 제거해 달라고 했다.

우미는 돌연변이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세진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헌터룸의 관리 프로그램은 사용자인 헌터의 요구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에테르 기관을 제거된 몸으로 눈을 뜬 세진은 생체에테르바디 보관소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안에 머물면서 에테르 로드 수련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서둘러서 에테르 저항력을 키우는 것이 돌연변이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이전에는 에테르 기관이 있었지만 지금 그것이 없는 몸은 에테르를 하나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다시 지구에서처럼 에테르를 느끼고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순환시켜서 하단전을 만드는데 고생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세진은 수월하게 에테르를 이끌어서 하단전을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 에테르 상점에서 여러 기술을 각인 하면서 몸 안의 오러 로드가 생성되어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에테르를 운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여러 통로들이 실제로는 에테르 로드 수련에서 사용되는 통로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에테르를 순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통로 중에서 개척되지 않은 부분들만 뚫어주면 되는 일이라, 지구에서와는 사뭇 상황이 달랐다.

더구나 이곳 행성의 에테르 농도가 지구의 비해서 네 배는 더 짙은 농도를 지니고 있기에 에테르를 느끼거나 혹은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쉬웠다.

세진은 두 시간 만에 에테르 로드의 기본 순환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지금 수준은 헌터라기 보다는 일반 라훌족에 가까웠다.

만약 헌터나 라훌헌터와 마찰이 생긴다면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할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이게 훨씬 더 좋지. 에테르 기관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드는 비용은 앞으로 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거기다가 어쩌면 에테르 기관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이 마스터 경지에 드는 경우가 희박한 것도 에테르 기관 때문일지 몰라. 그렇다면 이후의 발전을 생각하면 내가 훨씬 유리할 수도 있어."

세진은 단전이 자리 잡은 아랫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세진은 일반헌터와도 다르고 라훌헌터와도 다른 방법으로 성장할 방법을 찾은 셈이다.

세진은 이왕 시작한 놀음이라면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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