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레트 시(市)에 서다 -- >
세진은 정말로 가기 싫었다.
갔다 온다고 해도 이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을 테지만 세진 자신의 시간은 훌훌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애틋함이 그 때까지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럴 가능성이 컸고 세진은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 세진님. 다녀오세요오. 에테르 많이많이 가지고 오셔야 해요. 알았죠?
이렇게 응원을 가장한 압박을 가하는 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자초한 일인데 어쩌겠냐. 갔다 와야지."
진은 한숨을 쉬면서 헌터룸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어리가 에테르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꾸만 재촉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에테르를 구하기 위해 나선 길이다.
그리고 어리가 그렇게 에테르가 부족하게 된 이유가 세진이 거창하게 벌이고 있는 프로젝트 때문이니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니다.
심선정.
이 이름의 여자가 세진에게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등산로 산책에서 만났던,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미녀.
세진은 두 번째로 그녀를 봤던 그 때, 과감하게 다가가서 물었었다.
"저기, 초면에 웃기는 질문인데 혹시 남자 친구 있습니까?"
그 질문에 잠시 세진을 보던 선정이 대답했었다.
"아뇨. 없는데요?"
선정의 이 대답 다음에 이어진 세진의 말이
'가까운 카페에서 차나 한잔 하면서 서로 알아보자.'
는 것이었고, 갑자기 그런 소릴 하는 것은 너무 급한 것 아니냐는 선정의 의례적인 거부가 있었지만
'제가 마음에 없었으면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을 거 아닙니까. 적어도 호감이 있으니까 남자 친구가 없다고 했겠죠. 그러니 가서 차나 한 잔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보잔 말입니다.'
라는 세진의 말에 선정이 OK했다.
그렇게 둘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세진은 선정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선물을 만들기로 했고, 그 대상으로 정해진 것이 위대한 사랑의 산물이라 불리는 타지마할 궁전이었다. 그 미니어처를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타지마할에 대한 자료 수집을 위해서 인도로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렇게 엄청난 자료들이 모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진과 어리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정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 세진은 불타는 열정을 쏟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표현으로 그녀의 호감을 얻고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직 친구 사이라고 선을 긋는 선정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세진은 심선정이라는 새로운 인연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거창한 미니어처를 만들 생각을 하고 실행을 하다 보니 어리의 에테르가 생각보다 빨리 소진된 것이다.
세진이 만드는 미니어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크기였다. 이번에 만들고 있는 타지마할 미니어처는 지붕이 세진의 허리까지 오는 대작이었다.
당연히 어리가 그것을 한 번에 만들 수는 없으니 벽돌이나 기둥 조각 하나하나를 따로 만들고, 세진이 그것을 쌓고 붙여서 완성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진이 직접 작품 제작에 참여한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는 작업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큰 규모의 작업이니 어리의 에테르 부족이 이해도 될 일이다.
사실 이런 노력으로 판매용 미니어처를 만들면 굉장히 큰돈이 될 것이지만 세진은 별로 따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 만드는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세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일을 잠시 미뤄두고 여행을 다녀와야 할 때다.
저기 먼 우주 너머로.
빨리 가야 빨리 온다는 말이 전혀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세진은 더는 머뭇거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 세진님 힘내세요. 어리가 있잖아요. 세진님 힘내세요. 어리가 있어요. 세진님 화이팅!
아빠 응원가를 묘하게 바꿔 부르고 있는 어리다.
어리에게 중요한 것은 생명연장의 꿈, 에테르의 확보인 것이다.
세진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어리가 얄미워서 어리를 한 번 보고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왔을 때, 타지마할을 만드는 일이 여전히 내게 중요한 일이기를...'
- 어서 오십시오. 세진님.
"아 반가워. 우미."
세진은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들리는 도우미의 목소리에 그렇게 답했다.
- 우미라니요?
"이름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정한 호칭이야. 우미."
- 알겠습니다.
앞으로 세진님이 '우미'라고 하시면 그게 저라고 판단하겠습니다.
그저 도우미란 단어에서 따온 성의 없는 이름임을 알 수 있을 텐데도 우미는 호불호의 반응이 없이 그저 받아들인다는 의사 표현만 한다.
세진은 그런 면에서 어리와 우미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참, 내가 얼마 만에 돌아온 거지?"
- 그 시간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짧은 시간입니다.
세진님은 저의 감지 범위 안에서 순간적으로 약간의 공간 이동을 하셨으며 그 순간 신체 및 복장 전반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정말로 이곳과 지구 사이를 오가면 시간이 그렇게 흐른단 말이지?"
- 이미 지구 행성으로 가셨을 때에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우미는 덤덤하게 세진의 말을 확인해 주었다.
"맞아. 그랬지. 자, 그럼 이제 다시 데블 플레인으로 가서 열심히 사냥을 해야 하나?"
- 그런데 그 전에, 세진님의 신체에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우미가 세진의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자 세진은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을까 겁이 덜컥 났다.
"무슨 변화?"
- 에테르 저항력은 물론이고 에테르 운용 능력이 생기셨습니다.
"아! 그렇지. 내가 이번에 지구에서 에테르 운용법을 익혔거든. 그래서 그런 변화가 생겼을 거야."
세진은 에테르 로드 수련 때문에 생긴 변화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놓였다.
- 그렇습니까? 저의 감지로는 아주 잠깐 사이에 생긴 변화라 논리적인 이해가 늦었습니다.
이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다시 레트시로 갈 수 있나?"
- 물론입니다.
세진님.
"그런데 우미."
- 네 세진님.
"정말 사흘 후에 에테르 상점에 라훌족을 위한 보증인 점원이 생기고 그 대신에 내게 에텔론이 지급되는 건가? 확실히?"
세진은 이전에 들었던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우미에겐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는 지구에서 8개월 정도를 보내고 온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옛 일을 확인하게 되었다.
- 확정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정이지만 확정적이기도 합니다.
"알았어. 그럼 믿어도 되겠군."
- 단,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응? 뭐지?"
세진은 우미의 경고에 살짝 긴장했다.
- 그 조취는 세진님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진님께서 운용하시는 생체에테르바디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그 의체를 상실하게 되시면 그 혜택도 사라지게 될 겁니다.
"뭐? 아니 왜? 그 아이디어를 낸 것은 몸뚱이가 아니라 내 정신이잖아. 그런데 왜 의체를 잃게 되면 혜택이 사라진다는 거지?"
- 라훌족을 비롯하여 그곳에서 활동하는 헌터들까지 모두 세진님을 인식할 때에 그 생체에테르바디로 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생체에테르바디의 상실은 그곳에서의 죽음이고 죽음 이후에는 권리를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진은 우미의 말에 완전히 동감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체에테르바디도 그곳에선 하나의 생명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니 반발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그 혜택을 라훌족에게 넘겨주면 어떻게 되지? 유산 형식으로 넘기는 거라면 말이야."
세진은 지구에서 죽음 이후에 흔하게 일어나는 유산 상속을 떠올려서 물었다.
- 그것은 선례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조상인 헌터가 후손인 라훌족에게 그의 재산을 상속한 선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후손이 아닌 경우에도 가능할까?"
-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가 뒤통수 맞으면 엄청 아프겠지?"
세진은 막상 유산 상속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걱정이 되었다.
- 배신을 이야기하시는 거라면 그렇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라훌족이 알프론이나 제이앤 밖에 없는데 그들을 유산 상속인으로 정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의 의체가 죽었을 때, 그냥 허공에 뜨는 에텔론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둘에게 유산으로 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유산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어쩌면 그들 손에 의체를 상실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다.
"알았어. 그건 나중에 생각을 하지."
-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생체에테르바디로 연결 하시겠습니까?
"그래 수고해 줘."
세진은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세진이 생체에테르 보관소에서 나왔을 때, 레트시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저녁 시간을 넘어 밤으로 가는 시간이었다.
"지금 가서 뭐라고 하지? 가려다가 그냥 왔다고 할까? 아무래도 그게 좋을까?"
세진은 그 사이에 고향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헌터룸에 갔다가 왔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굳이 고향 행성에 갔다 왔다고 해 봐야 알프론이나 제이앤에게 도움이 될 것도 없고, 또 아니라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세진의 툴틱에서 1만 에텔론 이상이 빠져나간 것은 좀 문제였다. 지구로 귀환하면서 사용한 비용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굳이 알려줄 이유는 없지만 에텔론을 사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될 문제이기도 했다.
"이거 이러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못하게 되는 건가?"
세진은 머리를 긁으면서 제이앤과 알프론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고향에 갔다 왔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또 갔다 왔다 아니다 굳이 이야길 할 필요도 없다 싶었다. 그저 그냥 알아서 생각하겠지 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중에 생각을 해 보니 이제까지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떠올랐다.
앞으로 제이앤과 알프론이 굳이 세진과 파티를 맺고 활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상점에 라훌족을 위한 보증인 점원이 있다면, 그를 통해서 에텔론 상점의 이용이 자유롭게 된다. 세금도 40%만 내면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파티를 유지하면서 세진에게 내는 과한 수수료 따위는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 전부터도 그들이 세진과 갈라서서 다른 보증인을 통해서 에텔론 상점을 이용했으면 세진과 파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야 하는 수수료를 아끼면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세진이 보증인 노릇을 하면서 버는 에텔론을 그들에게 분배해 주면서 그들이 세진을 떠나지 못하게 잡았던 것이다. 실제로 세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잡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상황이 그렇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둘은 세진이 필요 없는 상황인데, 세진이 에텔론 분배를 해 주니 곁에 붙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세진이 중간 결산을 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여전히 세진과 파티를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 덕분에 중간 결산을 하면서 세진이 주는 에텔론 분배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니 그들이 날름의 의리를 지켰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세진은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이 세진과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파티라는 형식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억지로 파티를 유지한다고 해도 세진이 이익을 볼 것은 없는 상황이다.
도리어 에텔론을 그 둘에게 퍼주는 꼴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세진은 어쩐지 자신이 억울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보증인 일을 하기 전까지는 세진이 그들에게 이익을 얻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보증인 일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그들은 세진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고, 세진은 그들에게 과도한 에텔론을 지급하면서 곁에 붙들어 놓은 꼴이 되고.
세진은 그런 상황을 파악하게 되자 점차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느려졌다.
세진은 레트시에 자신의 집을 마련할 수준이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그들과 함께 집을 사용하고 있었다.
셋이 써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니 그대로 지냈던 것이고, 간혹 제이앤과 침대에서 즐기는 유희도 꽤나 마음에 드는 일이어서 굳이 집을 옮기고 싶지도 않았던 세진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집으로 향하는 세진의 걸음은 좀처럼 흥이 붙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심란한 기분으로 세진이 집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프론과 제이앤이 처음 보는 손님과 함께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열심히... 어쨌건 세진은 다시 데블 플레인으로 왔습니다.
목표는 아리의 밥이지만, 또 그것만 하고 갈 수는 없는 일이죠?
하하하. 뭔가... 사건을... 넵... 쓰고 있습니다. 모두 행복한 나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