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1화 (21/298)
  • < -- 조기 축구와 어리의 상관관계 -- >

    - 있잖아요. 세진님.

    "응? 뭐가?"

    - 세진님이 말씀하신 그 합금이란 거 하고, 유리라는 거요.

    "그게 왜?"

    세진은 저녁을 먹고 어리와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어리는 여전히 에테르 저장 장치에서 에테르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마치 사탕을 녹여 먹듯이 아껴가며 조금씩 흡수하는데 어리 말로는 에테르를 받아들이면 어리의 본체가 자극을 받아서 기분이 좋단다.

    세진이야 기계인 어리가 에테르에 어떤 자극을 받고 또 기분이 어떻게 좋아지는지 알 길이 없는 일이지만 축구공 신세가 된 충격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세호 부사장이 이야기했던 합금과 유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세호 부사장을 만나고 온 그 날, 세진은 어리에게 합금과 유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어리는 그것이 필요에 의해서 몸 안에서 조합을 한 것이어서 지구 식으로 그 조합식을 밝히는 것이 어렵다고 했었다.

    이를테면 어리는 본능적으로 재료들을 조합해서 필요한 재료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의 합성식은 쓸 수가 없다는 거다.

    - 제가 지닌 한계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계를 극복할 방법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응? 그래?"

    - 어리도 열심히 공부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공부? 하긴 언어를 배운 것을 보면 어리가 굉장히 똑똑하긴 하지.

    - 에헴. 맞아요. 그러니까 어리가 교육을 받으면 아무래도 훨씬 똑똑해지고, 그러면 세진님이 말씀하신 합금이나 유리에 대해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구나. 그럼 공부를 어떻게 하지?"

    - 어리는 인류의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또 그걸 통해서 배우죠.

    "잠깐, 어리가 오감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그럼 후각과 미각도 있어? 아니 그 전에 어리가 왜 미각이 필요해? 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 세진님. 어리 무시하지 말아요. 원래 어리는 뭐든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음식도 만들 수 있는 똑똑한 어리가 되기 위해서 미각 기능과 후각 기능도 있어야 하는 거라고요.

    "아,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거였어?"

    - 저를 홀수나 짝수로 보시는데 그러시면 안 되는 거거든요. 어리는 굉장히 뛰어난 존재라고요. 언젠가 요리를 배워서 세진님께 만들어 드릴 날이 있을 거예요.

    세진은 잠시 어리가 홀수나 짝수로 본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숫자 하나씩을 건너뛰는 것이라서 띄엄띄엄 본다는 의미란 사실을 알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식의 언어유희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어리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우리 어리. 이제부터는 홀수나 짝수로 보지 않도록 노력하마. 알았지?"

    - 그런데 저 이제 다시 조기 축구회에 끌려 나가지 않아도 되는 거죠? 네?

    "그럴 거다.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 놓았으니까 말이다."

    - 아, 다행이에요. 얼마나 무섭다고요. 막 하늘로 날아오르고 하는데 겁나 겁나요.

    "응? 겁나 겁나?"

    - 에헤헤. 재밌는 말이죠? 겁나 겁난다는 말이요. '겁나'가 '무척 대단하게'라는 뜻의 사투리라는데 합치니까 재밌는 말이 되어요. 재밌죠? 네? 세진님 재밌죠? 겁나 재밌죠?

    "그래. 재밌다.

    재밌어."

    세진은 어리의 변화에 빨리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게 좋은 것인지 어떤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전에 어리는 말 잘 듣는 비서 같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어리는 어린 여동생 같은 분위기라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어리의 기본 능력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니 다행이라 여기는 세진이다.

    '어디 망가지기라도 했으면 정말 어쩔 뻔 했어? 그나마 다행이지. 어쨌거나 내일은 아버지 공부터 사 와야 되겠네. 또 어리 들고 나가서 차면 정말 곤란하니까 말이지.'

    - 아 다 먹었어요. 어리가 에테르 저장장치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흡수한 후, 만족스럽다는 듯이 나른한 음성으로 세진의 생각을 방해했다. 세진은 어리의 조기축구회 사건 이후로 자신의 방에 대한 출입을 통제했다.

    부모님은 이전에 없던 짓을 한다면서, 다 늦은 나이에 사춘기를 겪는 거냐며 세진을 타박했지만 어리를 보호해야 하는 세진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리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컴퓨터를 바라봤다.

    생각 같아선 해킹이라도 해서 정보들을 모으라고 하고 싶은데, 어리에게 컴퓨터 해킹 능력은 없었다. 그 계통도 배우고 익히면 어떻게 될 것 같다지만 지금의 어리에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저 어리의 본체에서 나오는 신호로 키보드와 마우스의 입력 신호를 대신하는 정도가 고작이라 세진의 해킹 염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쨌거나 세진의 방이 금역으로 선포된 이후에 어리는 언제나 컴퓨터를 켜놓고 열공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아서 따로 세진이 시키는 일이 없으면 컴퓨터에만 집중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세진이 이미 만들어 놓은 미니어처 자동차들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을 해 줄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국내의 자동차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외국의 자동차 회사에서도 미니어처를 구입할 의사가 있다는 연락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현대, 이건 기아, 이건 삼성 르노, 이거는 쪽바리? 음, 우와 슈퍼카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어? 이쪽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 뭐 워낙 차를 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서 말이지. 어디 보자, 어쭈? 오토바이? 음. 이것도 재미는 있겠네."

    - 뭐해요?

    "우리가 만든 미니어처를 사겠다는 연락을 확인하잖아. 어리도 보이지 않아?"

    - 아까부터 그거만 하고 있잖아요. 심심해요.

    "그래도 일을 해야지. 이번에 이거 팔아서 우리 어리에게 멋진 작업실도 꾸며주고 그래야 할 텐데? 어리는 어리의 방을 가지고 싶지 않아?"

    - 내 방이요?

    "그래. 어리의 방이면서 작업실이겠지."

    - 예쁘게 만들어 줄 거죠?

    "꾸미는 거야. 어리가 해도 되잖아. 필요한 재료는 줄 테니까 나머지는 어리가 만들어서 장식을 하면 되지."

    - 우아, 그렇겠구나. 맞아요. 내 방은 내가 꾸미는 것이에요.

    "너, 요즘 만화도 보고 그러냐?"

    - 세진님은 때로 날카로운 것이에요. 어리가 만화책 주인공의 말투를 따라한 것을 금방 알아다니 대단한 것이에요. 그러면 세진님도 그 만화를 봤다는 거군요. 어리는 놀라고 있는 것이에요.

    "장난 그만하자. 별로 자주 듣고 싶은 말투는 아니다."

    - 쳇, 알았어요. 뒀다가 나중에 가끔씩 꺼내 쓰기로 결심한 것이에요.

    "휴우. 어째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다.

    이래서 정보도 가려가면서 접해야 하는 건데, 내가 곁에서 하나하나 가려주지 못하니 내 잘못이 크다."

    - 어리는 충분히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이제 그만 돈벌이에 집중하시죠? 아까부터 같은 화면이네요.

    "그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것아."

    세진은 그렇게 어리를 타박하곤 다시 메일들을 확인했다.

    그 메일들은 이전에 올린 동영상에 있는 주소로 온 것들이었다. 그런데 메일 내용에 간혹 합금과 유리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 것이 있었다. 세진은 그래서 알게 되었다.

    이 메일들이 갑자기 몰린 이유는 벤츠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기 때문이란 사실을 말이다.

    이 미니어처 주문은 다르게 말하면 합금과 유리의 샘플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니어처를 보내게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해 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어차피 벤츠에서 알고 있는 상황인데 굳이 다른 회사에 비밀로 할 이유도 없지. 벤츠에서 못하면 다른 회사도 못하는 거고, 벤치에서 조합 방식을 알아내면 다른 회사들도 알아낼 수 있도록 해 줘야지. 아, 특허를 먼저 내는 놈이 장땡인가? 나야 뭐 특허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지.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을 못하는데 말이지."

    세진은 투덜거리며 메일들에 답변을 준비했다.

    답변의 내용은 이미 그 회사의 자동차 미니어처를 만들어 놓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서로 달랐다.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 있는 경우는 가격 흥정이 주된 내용이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엔 설계도와 가격 문제를 적어서 초안을 만들었다.

    "어리야."

    - 네, 세진님.

    "여기 이 내용으로 메일 좀 보내 줄래? 여기 이쪽에 있는 주소로는 이쪽 내용으로 보내고, 여기 이쪽은 이 내용으로 보내면 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 회사들이 있는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서 보내 주고. 할 수 있지?"

    - 당연하죠. 어리는 이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자를 쓰고 번역할 수 있어요. 아직 회화는 약간 모자라지만 그것도 오래지 않아서 정복 할 수 있을 거예요. 메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에헴.

    "그래. 고맙다. 어리."

    세진은 어리의 언어 능력을 그렇게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세진은 외국어라곤 영어를 조금 한다는 정도 외에 다른 언어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하나씩 한다는 제2 외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세진인 것이다.

    "어리야, 여기 필통에 꽂혀 있던 필기구들이 다 어디 갔지?"

    - 어리가 필요해서 썼어요.

    "응? 어리가 그걸 어디 필요해서 썼을까? 설마 여기 있는 이거?"

    세진은 퇴근 후에 책상 위에 못 보던 조형물 하나가 놓여 있는 것에 신경이 쓰였는데 그것 때문에 어리가 세진의 필기구를 모두 분해해서 써버린 모양이었다.

    - 컴퓨터에서 본 건데 원래는 나무하고 쇠하고 그런 거로 만든 거래요. 그런데 책상을 뜯을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필기구를 써서 만들었어요. 멋지죠?

    "그래 멋있긴 하다만 이건 뭐라는 거냐?"

    - 에헴, 그게 뭔지 몰라 당황하셨어요?

    "장난치지 말고,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생각이 안 나네."

    - 혼천시계입니다아. 1662년에 만들었다죠. 실내에 두고서 시간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만들었답니다.

    물론 거기 앞에 있는 부분으로 별의 움직임도 알 수 있었다죠.

    "이거 움직이냐?"

    - 당연합니다. 두 개의 추를 동력으로 사용했습니다.

    꽤나 정밀하게 잘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그러냐? 얼마 전에 240년 전에 스위스에서 만들었다는 글 쓰는 로봇을 본 후로는 이런 걸 봐도 별 감흥이 없어서 말이지. 그걸 한 번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

    - 어디에도 내부 구조가 나와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드리고 싶어도 지금은 안 됩니다.

    "음. 그렇군. 아니지. 이게 아니고. 어리, 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책상에 있는 필기구를 모두 분해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응?"

    - 하지만 제가 세진님을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으신 물건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활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말투 딱딱하게 바꾸지 마! 너 야단맞을 것 같으니까 일부러 말투 바꾸는 거지? 응?"

    - 아닙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딱 표가 나는데 뭐가 아냐?"

    - 표가 나요? 정말로요?

    "어휴, 내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 그래도 제가 쓴 것들은 정말 세진님이 안 쓰시는 것들이었습니다.

    "그거 아니어도 재료는 많잖아."

    - 저도 감정이란 것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쓰레기들을 재활용하는 것은 싫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재활용 수거함으로 들어가야 할 것들을 제게 주시는 것은 너무한 겁니다.

    "말투, 제대로 하라고 했지?"

    - 그러니까요, 전 쓰레기가 싫다구욧!

    "아, 결국 그 이야길 하려고 이거 만들고 필통 비우고 그런 거구나? 그렇지?"

    - 딱히 그런 건...

    "점점 여우가 되는 것 같네. 하지만 어리야 너 원래 광석 같은 거 분해해서 재료 만들고 뭐 그러는 게 본래 하는 일 중에 하나잖아. 테라포밍 하려면 그래야 하니까. 그에 비하면 이쪽이 좋지 않아?"

    - 기분 문제라고요. 제 뱃속으로 쓰레기가 잔뜩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돋는 거 같다고요.

    '너 소름 같은 거 안 돋는 몸이잖아. 이것아!'

    속으로야 그런 생각을 하지만 세진은 어리의 마음을 달래 줄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어쨌거나 어리는 세진에게 속한 존재니까 말이다.

    "알았다. 앞으론 좀 조심하마."

    - 정말이죠? 에헤헤. 그래도 딱히 제가 그런 것들을 완전히 거부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깨끗하게 씻는다거나 닦는다거나 하는 쪽으로라도 신경을 써 달라는 거죠. 네? 아시죠? 제 마음.

    세진은 어리의 말에 그저 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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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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