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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12화 (12/298)

< -- 초보 헌터의 헌팅 -- >

세진의 첫 실전은 그야말로 자다 맞은 벼락처럼 정신없이 닥쳤다.

한 마리의 아도보가 오는 것을 발견하고 알프론이 세진의 어깨를 잡은 이후, 제이앤이 칼을 들고 긴장을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틈에 제이엔이 숨어 있던 곳에서 밖으로 몇 걸음 뛰어나가 낮은 고함을 질렀다.

"핫!"

그리고 곧바로 뒤돌아서 숲으로 뛰어들어 달리기 시작했다.

꾀꾀꾀꾀꾁괵괴!

제이앤을 발견한 아도보는 곧바로 그 뒤를 따라서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쫓아간다.

"우리도 가자."

알프론이 세진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세진은 알프론의 기세에 눌려서 정신없이 따라 달렸다.

"이쪽으로 가면 우리가 사냥하는 곳이 있어. 제이앤이 그곳으로 아까 그 아도보를 끌고 올 거야. 우린 먼저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되는 거야."

세진은 앞서 달리는 알프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달렸다. 그러면서 알프론의 목소리에 이게 이미 알고 있던 계획임을 떠올렸다. 이렇게 행동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다 보니 계획이고 뭐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계획이 떠오르자 세진도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았고, 자연스럽게 달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달려서야 알프론과 세진은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숨 고르기를 하라고. 이제 곧 제이앤이 올 거야. 세진."

흐음. 흐음. 알았어. 하고 있어."

세진은 알프론 뒤에서 창을 세워 몸을 앞으로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멀리서 제이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말았다 한다.

"온다!"

알프론이 소검 두 개를 양손에 나눠 쥐고 약간 상체를 숙인 상태로 몸을 긴장시키며 소리를 지른다.

바로 뒤에는 세진이 창을 양손으로 잡고 대기 중이다.

몬스터는 인간을 보고 도망가는 일이 없다.

적어도 한동안 싸움을 해 본 뒤에 불리함을 알아차리고 후퇴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싸우기 전에 도망을 가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몸을 들어내고 아도보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곳까지 녀석을 유인한 것은 아까 그 자리에서 싸우다가 다른 아도보들이 나타나는 상황이 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준비!"

제이앤이 세진과 알프론 앞에 오더니 소리를 지르고는 돌아서서 아도보를 맞을 태세를 갖춘다.

그녀가 들고 있는 칼은 한쪽만 날이 있는 커다란 도(大刀)였다. 폭도 넓고 무게도 많이 나가서 강력한 공격력이 있지만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인 무기다.

제이앤은 아도보의 공격이 다른 파티원에게 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해야 하기에 일단 강력한 공격으로 아도보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그녀의 대도(大刀)가 최적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여차하며 무기가 방어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넓은 면은 때로 방어용으로 쓰이기도 하니 말이다.

"차앗!"

꿋꿋이 따라와서 이제는 함정이 분명한데도 용감하게 뛰어드는 아도보를 향해서 제이앤의 대도가 매섭게 날아간다.

채앵!

하지만 아도보도 멀뚱하게 서서 목을 내어 줄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덩치에 어울리게 앙증맞은 단검으로 제이앤의 공격을 막아낸다.

제이앤의 칼과 아도보의 단검은 수십 배는 차이가 난다.

크기나 무게나 어느 면으로든. 그런데 그런 제이앤의 칼을 조그마한 단검으로 쉽게 막아내는 것을 보면 최하급의 아도보라도 만만한 녀석은 아니라는 소리다.

"기다려. 세진. 제이앤이 한동안 공격을 더 해야 해."

알프론이 세진에게 고개로 돌리지 않은 상태로 주의를 준다.

세진은 나설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가 주의를 들어서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입을 다물고 제이앤과 아도보의 싸움을 지켜본다. 제이앤과 아도보의 공방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알프론과 세진에게 공격 기회가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도보가 제이앤이 아닌 다른 누구를 공격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아도보가 제이앤에게 집중할 여건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제이앤이 칼을 다루는 솜씨는 비상한 면이 있었다.

짧은 단검을 휘두르는 아도보의 공격은 빠르고 민첩했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아도보의 공격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제이앤 역시 칼을 크게 휘두를 여유가 없었다.

만약 동작을 크게 하면 그 사이로 아도보의 단검이 쑤시고 들어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요리조리 칼을 비켜 흔들면서 단검 공격을 막아내고 그러다가 힘을 주어서 아도보를 밀어낸 다음 칼을 크게 휘둘러서 강한 공격을 하는 패턴으로 아도보를 공격하는데 그 동작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휴우, 대단하지?"

알프론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는지 뒤를 돌아서 세진을 보면서 묻는다.

"그러네. 저렇게 큰 칼로 빈틈없이 아도보의 단검을 막아내다니 굉장하군."

"뭐 워낙에 많이 해 본 짓이니까 말이지. 거기다가 이번에 기술 각인도 했잖아. 나는 예전에 비해서 몸이 몇 배는 가볍게 느껴진다고. 제이앤은 좀 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에테르를 훨씬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거니까 이전 보다는 나을 거야. 딱 봐도 여유가 넘치잖아? 전엔 저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래? 아무튼 여유는 있는 것 같네. 전엔 어땠는지 모르지만."

세진은 알프론의 말에 동감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냥 보기에도 제이앤 혼자서 아도보 한 마리는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이앤이 아도보에게 당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한 번 끼어 볼까?"

알프론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제이앤을 공격하는 아도보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때에 조심할 것은 몬스터의 뒤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몬스터는 뒤에 누가 있으면 그 쪽을 더 위험하게 여기기 때문에 순식간에 공격 목표를 바꾸기도 한다.

세진도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다.

"세진 너도 틈을 찾아서 공격을 해 봐. 우리도 몸을 푼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공격할 테니까 말이야."

알프론이 두 개의 소검을 놀려서 슬쩍슬쩍 아도보의 몸에 상처를 만들면서 세진에게 소리를 소리쳤다.

세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창을 들고 제이앤의 왼쪽 한 걸음 뒤쪽에 붙어 섰다.

그리고 아보도가 제이앤의 공격에 비틀거리는 틈을 보고 빠른 속도로 창을 내질렀다.

팍!

하지만 세진의 창은 아도보의 몸에 닿았음에도 상처를 만들지 못했다.

뭔가 세진의 창을 가로막는 것이 느껴졌다.

"창에 에테르가 부족해. 생체 에테르보다 무기에 담긴 에테르가 부족하면 피해를 별로 줄 수가 없어. 그냥 타격에 의한 충격만 줄 뿐이야."

제이엔의 오른쪽에 있던 알프론이 소리를 지른다.

세진도 한 번 창을 뻗어 보고 깨달은 것이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곤 창에 에테르를 집중시키기 위해 힘을 썼다.

아무래도 짧은 무기에 비해서 긴 무기의 끝까지 에테르를 밀어 넣어서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몬스터와 가까이 붙어서 싸우고 싶은 생각도 자신도 없는 세진은 자신이 선택한 창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실전의 시작은 꽤나 다급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은 퍼스트 블러드에 걸맞지 않게 여유로웠다.

제이앤은 단 한 번도 아도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줄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알프론도 슬쩍슬쩍 공격 연습을 하며 바뀐 몸에 적응하는데 주력했다.

거기에 세진은 처음으로 생체에테르를 지닌 몬스터의 몸에 창을 찔러보며 창 끝에 에테르를 모으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결국 세진의 창도 아도보의 몸에 상처를 내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결국 누적된 피해를 견디지 못한 아도보가 그 시점에서 흙바닥에 쓰러졌다.

세진은 아도보가 쓰러지자 창을 거두고 물러났다.

쓰러진 아보도 주위에는 그동안 아도보가 흘린 피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인간의 피와는 달리 갈색이 섞여 있는 아도보의 피는 세진으로선 생경한 색이다. 또 그래서 그런지 피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이 심하지 않았다. 세진은 아도보의 피가 그리 역겹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기며 창을 세우고 살짝 몸을 앞으로 기댔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감이 몰려온 것이다.

"자, 봐. 여기 이게 몬스터 패턴이야. 이 중앙에서 코어가 나오지. 이번엔 운이 없는지 코어가 나오진 않았지만 말이야."

아직 생생한 알프론이 죽은 아도보의 주검을 뒤집어서 뒷목에 있는 문양을 보여준다.

아도보의 몬스터 패턴의 중심은 그곳에 있었다. 몬스터는 기이한 문양을 몸에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머리나 심장과 비견할 수 있는 약점이다.

그 몬스터의 무늬를 보통 몬스터 패턴이라고 부르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문양이 몬스터가 에테르를 사용하는 주된 통로 역할을 한단다. 그러니 그 문양이 훼손되면 몬스터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대형 몬스터를 잡는 헌터들은 주로 몬스터 패턴부터 허물어뜨린 다음에 몬스터 자체의 공략을 시작한다.

패턴이 무너지면 몬스터의 에테르 사용 능력도 떨어지니 당연한 일이다.

세진도 아도보의 사체 곁으로 다가서서 몬스터 패턴을 자세히 살폈다. 그래봐야 그냥 검은 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색의 문신일 뿐이다.

등급이 낮은 몬스터라 그런지 패턴이 단순하고 작았다.

그런데 그렇게 사체를 살피는 중에 아도보의 몸뚱이가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승화 현상이다.

그냥 허공으로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

"어? 죽은 다음에 칼질 안 했나?"

"그랬으니까 이러지. 쓰러질 때까지는 살아 있었는데 쓰러지고 나서 얼마 후에 죽은 모양이지."

알프론과 제이앤이 없어지는 사체를 보며 하는 말이다.

몬스터는 죽은 후에 사체에 헌터들의 에테르를 주입하면 사체가 사라지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저 에테르를 머금은 무기로 사체를 살짝 그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그렇게 에테르가 사체에 주입되면 승화 현상이 지연되고 또 그 후로도 계속 에테르를 주입하면 연장 시간이 길어진다. 어렵지 않은 작업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장을 하게 되면 그 사체를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행성에서나 그런 것이고 이곳에서 몬스터의 사체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할 기술력 이 행성의 라훌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헌터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해서 뭔가 만들어낼 기술력이 없다.

아주 일부 헌터들 중에서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해서 뭔가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필요한 사체를 헌터들이 직접 수급할 정도기 때문에 따로 사체를 어디 팔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량으로 뭔가 만들어 낼 정도는 아나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몬스터 사체는 별다른 의미가 없이 버려진다.

몬스터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에테르 코어가 전부다.

희박한 확률로 몬스터가 죽으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도구를 떨어뜨리는데 그것은 정말 몇 만, 혹은 몇 십, 몇 백 만 분의 일의 확률이라 그걸 기대하고 사냥을 하는 헌터는 없다.

대신에 그렇게 나오는 몬스터 물품들은 굉장히 비싼 가격에 팔린다.

몬스터 물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에테르와 반응해서 특별한 능력을 보이기 때문에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일반 행성의 주민들의 수집품으로도 인기가 높아서 비싸게 거래가 된다고 했다.

세진은 허공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지는 아도보의 사체를 보면서 정말로 자신이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뭐 어차피 빌려 입은 몸뚱이에 몬스터를 잡고 돈을 벌고, 장비를 사고, 몸뚱이도 업그레이드 하고 하니 게임이나 마찬가지네. 라훌인 저들은 절대 아니겠지만.'

세진은 새삼 알프론과 제이앤이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원한 이방인이겠군. 헌터들은.'

세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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