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보 헌터 레트시(市) 적응기 -- >
알프론은 앞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엔 세진이란 헌터가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알프론은 얼마 전에 의도적으로 세진과 접촉했다. 그는 세진이 헌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와 팀을 이루고 있는 제이앤이 세진이 헌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하급 헌터들이 드나드는 여관을 지켜보던 중에 세진을 발견한 제이앤은 그가 초보 헌터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걸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세진이 여관에서 거래를 할 때에 툴틱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짐작한 것이다.
텔론을 쓰는 것도 아니고 텔론을 쓰는데 굳이 툴틱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라훌족은 툴틱이 없다. 그렇다고 거래를 하지 않고 살 수도 없고, 거래를 물물 교환으로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텔론 화폐가 생겼다. 그래서 보통 헌터들도 텔론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으면 화폐로 챙겨 다니면서 거래를 한다. 그게 조금 더 불편해 보이지만 어차피 헌터들끼리의 거래가 아니고 라훌이 끼어 있는 거래라면 어쩔 수 없이 화폐를 사용해야 하니 툴틱 이외에 소지하고 다니는 실용 화폐를 지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세진이 여관에서 툴틱으로 결제를 한 것을 제이앤이 봤던 것이다.
그리고 대범하게 밤중에 문을 두드려서 그것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일단 세진이 초보 헌터라는 사실을 알아낸 후에는 알프론이 그에게 접근해서 호감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알프론이 보기에 세진이란 헌터는 무척 조심성이 많고 또 꼼꼼한 사람이었다.
벌써 20일 동안이나 호감을 표시하는데도 곁은 내어주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세진은 알프론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시선을 보낸 적은 없었다.
그는 알프론을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했다. 다만 일정 이상의 친분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알프론과 제이앤은 그런 세진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들의 소망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세진과 같은 헌터가 나타나기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벽을 세우는 것 같단 말이지. 좀 냉정한 면이 있는 것 같아. 뭐 그게 생존에는 더 도움이 되는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겐 큰 걸림돌이란 말이지. 제이앤과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 하나? 어쩌지?'
알프론과 제이앤은 서둘지 않기로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세진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각오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세진과 같은 적합자를 만나고 나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길지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제이앤과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삐이 삐이익. 삐익.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휴식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세진!"
알프론은 재빨리 세진에게 달려갔다. 그런 알프론의 손에는 언제 꺼낸 건지 허리에 달려 있는 물통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세진의 목마름을 씻어줄 중요한 도구였다.
세진은 알프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곁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진이 농장 일꾼을 그만두고 도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언 저런 일들을 찾아다니는 동안에도 알프론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언제나 곁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끝난 후에 얼굴을 보였다.
세진이 알프론 때문에 손해를 본 일은 없었다.
도리어 알프론 덕분에 레트시(市)에 적응하는 것이 훨씬 빨랐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진이 알프론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알프론의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와서 벌써 두 달, 60일이 흘렀다.
그 동안 세진은 300만 텔론으로 시작해서 250만 텔론이 늘어난 550만 텔론을 보유하게 되었다.
두 달 동안에 250만 텔론을 벌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로는 아직 지구로 돌아갈 비용도 빠듯했다.100만 텔론이면 1에텔론을 구할 수 있으니, 세진이 가진 텔론은 5에텔론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헌터들이 이 행성에서 갑이 된다.
한 번 사냥을 나가서 빨간색 등급의 몬스터를 잡아서 코어를 얻기만 해도 그게 500만 텔론의 가치가 있다.
물론 하급 헌터들 다섯이 몰려가서 사냥을 해 봐야 100만 텔론으로 분배가 될 뿐이지만 보통 한 번 사냥을 나가면 특별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열흘 가량 사냥을 하고, 코어를 세 개나 네 개 정도를 얻는다. 그럼 열흘에 300만에서 400만 텔론을 번다는 소리다.
한 달 내내 사냥을 할 수는 없으니 두 번만 나간다고 계산을 해도 벌이가 제법 된다.
또 운이 좋으면 더 많은 코어를 얻을 수도 있다.
당연히 세진도 몬스터 사냥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하지만 세진은 현실적으로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여기고 있었다.
지구로 돌아갈 에테르 코어에다가 어리를 가동시킬 적당한 수준의 에테르 코어를 확보하려면 세진의 생각으론 적어도 100 에텔론 정도는 손에 쥐어야 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다.
그것도 실상은 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지구로 돌아가는데 쓰이는 에테르의 양이 얼만지 모르고 있었다.
툴틱에 보면 다른 헌터들도 듀풀렉 게이트란 것을 이용해서 행성을 오고간다고 하는데 그들은 듀풀렉 게이트를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듀풀렉 게이트를 이용한다고 하니 그들과 세진의 경우는 많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세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에텔론을 모아야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다만 대기중에 떠도는 에테르를 모아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그리 많은 에테르가 필요하진 않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1억 텔론은 있어야 하는데, 아니지 도우미가 세금 30%를 뗀다고 했으니까 좀 더 많아야 하나? 넉넉하게 1억 5천만 텔론? 그 정도는 있어야 돌아갈 엄두라도 내 볼 수 있는 건가? 까마득하네."
세진은 두 달 동안 아껴서 모은 텔론을 결산하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세진에게 영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열심히 노력을 한 덕분에 드디어 몸 안에 있는 에테르 기관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움직여서 에테르를 뿜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두 달 만에 드디어 한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이제 다음 단계로 그 에테르를 원하는 곳에 집중시키는 것만 할 수 있으면 초보 헌터로 파티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된다.
몸 안에 있은 에테르를 몸의 두루 퍼지게 해서 생체에테르로 몸의 방어력을 높이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다.
그게 되지 않으면 몬스터가 지니고 있는 생체에테르가 밀려들어와서 몸을 엉망으로 뒤집어 놓는다. 그러니 일반적인 에테르 저항력을 훨씬 상회하는 저항력이 있어야 한다.
그 후에 할 일이 무기에 에테르를 실어서 몬스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즈음 세진이 연습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기본적인 에테르 운용법이다.
그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서 따로 기술을 익히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그냥 몸 안에 있는 에테르를 움직여서 손에 들고 있는 무기로 밀어 넣을 수 있으면 된다.
물론 말로는 쉽고 실제로 하자면 피똥을 쌀 정도로 정신 집중을 해야 될까말까 한 일이다.
"이것만 성공하면 길이 보일 것도 같은데."
세진은 땀이 흐르는 이마를 소매로 닦아 내며 중얼거린다.
사실 세진은 이것이 성공해도 곧바로 몬스터 사냥을 나갈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걷는 소가 천 리를 간다.]요즈음 세진이 틈만 나면 외우는 말이다.
언제 들었는지 모르지만 조급한 마음이 들 때에 그 말을 외우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세진 일어났어?"
밖에서 알프론의 목소리가 들리자 세진은 살짝 인상을 쓴다. 훈련이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서 들려온 알프론의 목소리가 세진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진이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에 알프론이 방해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쉬는 시간인 것 같으면 어김없이 달려드는 알프론이다.
그 말은 세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알프론이 모두 감시하고 있다는 말 같아서 불쾌해진 것이다.
'정말로 저 녀석이 나를 감시하기라도 하나?'
워낙 허름한 여관이니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도 아닐 것 같지만 또 허름하기 때문에 따로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감시가 더 어렵다.
옆방에 있는 것도 아니니 벽에 귀를 대고 동정을 살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세진 뭐해?"
밖에서 다시 알프론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진의 심기가 조금 더 불편해진다.1미터 60을 겨우 넘을 것 같은 체구를 지닌 알프론이 어깨 사이로 머리를 끌어넣을 듯한 기세로 목을 움츠리고 있다.
그 옆에는 세진과 비슷한 키에 대체로 풍만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알프론은 여자를 제이앤이란 이름으로 세진에게 소개했다.
그 후로 세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알프론과 제이앤은 아직까지는 세진 앞에 나설 계획이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어떻게든 세진의 호의를 이끌어 낸 후에나 자리를 함께 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일이 그들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세진이 알플론에게 결별을 선언한 탓이다.
"믿지 못할 사람을 오래 곁에 두는 것은 쓸데없는 정력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얼굴을 보는 일이 없도록 하자."
세진이 방으로 찾아온 알프론에게 그렇게 말할 때, 알프론은 사람의 얼굴에 살얼음이 낀다는 표현이 어떤 경우에 쓸 수 있는지 확실한 예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급하게 제이엔과 의논을 한 끝에, 함께 세진을 찾아 온 것이다.
"이렇게 세워 둘 건가요? 그래도 손님인데?"
세진은 처음으로 제이앤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또 처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첫 날 밤에 문 밖에 있었던 것이 제이앤 당신이었던 모양이군."
"기억하고 있다니 의외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데 좀 앉아서 이야기하죠?"
알프론은 여전히 의기소침한데 비해서 제이앤은 당당한 모습이다.
세진은 그 모습에서 지기 싫어하는 오기 같은 것을 보았다.
"보다시피 1인실이라 좁아. 그러니까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세진은 침대 머리맡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면서 그렇게 말했고, 그나마 허락을 받아서 다행이란 표정의 알프론이 먼저 침대 위로 올라가 앉고, 제이앤은 세진이 앉은 반대쪽 끝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 이렇게 찾아온 것을 보면 할 이야기가 있은 것 같은데 해 봐. 들어는 주지."
세진은 굳이 찾아온 사람을 박대할 생각은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유익한 일이면 함께 하면 될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보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우린 라훌이에요."
"알아."
세진은 잘라내듯 대답했다.
"라훌도 몬스터 사냥을 해요."
"그것도 알고 있어. 라훌헌터라고 한다지?"
"하지만 라훌은 에테르 코어를 거래하지 못해요."
"헌터들과 거래를 할 텐데?"
"맞아요. 하지만 헌터들은 에텔론을 주지 않아요. 아니 줄 수가 없어요. 에텔론은 헌터들의 툴틱에만 존재하는 화폐니까요."
"그래서?"
"우린 우리에게 에텔론을 줄 헌터가 필요해요."
세진은 거기까지 듣고 제이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잠시 정리를 해 봤다.
"보증인이 필요하단 말이군."
"맞아요."
제이앤은 세진의 판단이 옳다고 답했다. 세진은 그 대답을 들으면서 보증인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흠... 이상하게 신경을 써서 글을 쓴다고 마음을 먹으면 더 글이 어려워지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쉽게 쉽게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들인 시간에 비해서 원고의 양이 적으면 답답한 심정이 되곤 하죠.
여유분 두지 않고 쓰는 대로 올리고 있습니다.
며칠은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 부지런히 써 봐야죠. 그나저나 스킬피스 리메는 또 조금 미뤄지게 되는 듯... 앞부분 조금 해 놓고... 이 글 때문에 손을 못 대고 있다는... 하하 그렇답니다.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날이 춥네요. 그래도 화이팅 하십시오.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