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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8화 (8/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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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세진은 툴틱에 열중하다가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자신의 방문을 두드린 것이다.

"누구요?"

세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크지 않은 목소리로 문 밖을 향해 물었다.

"어머나, 예의가 없는 손님이시네. 문도 안 열어보고 누구냐고 묻기부터 하시나요?"

세진은 뜻밖에도 밖에서 들린 목소리가 여자라는 사실에 의아했다.

목소리만으론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니 헌터라면 생체에테르바디가 나이를 먹지 않으니 나이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무슨 용무요? 나는 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소."

"호호. 그렇겠죠. 오늘 이곳에 온 헌터분이시니."

"나를 알고 있소?"

자신이 오늘 이곳에 도착한 헌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자.

세진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에 대해서 아는 걸까?

이곳에 새로 나타나는 헌터를 알려주는 시스템 따위는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 이야긴 툴틱에 없었던 것이다.

세진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알고 있냐구요? 당연히 모르죠. 그냥 새로운 헌터분이 왔다기에 인사나 할까하고 왔을 뿐이에요."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인사를 한단 말이오?"

"호호홋. 늦은 시간이니까 할 수 있는 인사도 있는 법이죠. 안 그런가요?"

세진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뭔가를 느꼈다. 흔히 말하는 직업여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니면 직업여성을 가장해서 돈도 벌고 즐길 것도 즐기자는 생각을 가진 여자일 수도 있고.

아무튼 세진 생각에 지금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은 여자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나는 늦은 시간에 여자와 인사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소. 이만 가 보시오."

"문은 안 여실 건가요?"

"문을 열고 거절하면 얼굴을 보고 거절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후에 밖에서 다시 마주쳐도 불편하지 않겠소? 그러니 서로 모르는 상태로 헤어지는 것이 좋을 듯싶소만."

속으로야 뭐 이런 여자가 있느냐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지만 세진은 오늘 이곳에 도착한 새내기다.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괜한 적은 만들 이유는 전혀 없다.

"어머나 독특한 분이 오셨네? 흐응. 뭐 좋아요. 원하지 않으신다니 물러나죠. 대신에 나중에 다시 봐요. 우리."

'보기는 뭘 봐. 누군지도 모르는데.'

세진은 툴툴거리면서 귀를 기울여 문 밖의 여자가 복도를 걸어 멀어지는 소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여자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털썩 자리에 누웠다.

"뭐 하자는 건지 원."

세진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언제 잠이 든 거지?"

잠깐 고민을 해 봤지만 잠든 시점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급히 툴틱을 확인하니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다.

여섯 시다.

못해도 열 시간 이상은 잠들어 있었다는 소리다.

여자가 왔다가 간 후에 잠시 누워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던 모양이다.

여관의 아침 식사가 여덟시까지 준다고 했으니 아직 여유는 있다. 하지만 공동 세면장을 이용해서 씻어야 하니 그것도 고려하면 마냥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세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본다.

새 몸이지만 이전의 몸과 비교해서 큰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 도우미의 말로는 에테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야 생체에테르바디의 진면목을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세진은 밖으로 나서기 전에 침대에 앉았다. 흔히 명상을 할 때에 적당하다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은 가부좌도 생각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냐 싶어 양반다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몸 안에 있다는 에테르기관을 느끼기 위해서 집중했다.

그것을 느끼는 것이 유저가 되는 첫걸음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에테르기관을 느끼고 그 기관을 움직여서 에테르를 뿜게 만드는 것이 첫 관문인 것이다. 한동안 눈을 감고 집중하던 세진은 별다른 소득 없이 눈을 떴다.

"재능이 별로 없나?"

에테르 기관을 느끼는데 재능이 필요하단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에테르 기관이란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이 답답한 세진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굶을 수도 없고, 씻지도 않은 얼굴로 도시를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 계속 침대에서 버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좀 늦게 일어난 것이 세진에게서 여유를 빼앗아갔다.

우물에서 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서 양은 대야 같은 금속 그릇에 부어서 얼굴을 씻어야 하는 세면장은 북적북적 거리고 때로 말싸움이 벌어지는 험악한 환경이었다.

거기에서 무사히 얼굴을 씻고, 입고 있던 옷으로 물기를 닦은 후에 세진은 여관 식당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었다.

어제 먹은 것보다는 조금 더 진한 스프에 빵은 같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빵이 반 개 정도 더 나왔다.

아무래도 일을 하러 나가는 아침에는 조금 후하게 주는 모양이라고 세진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보니 사람들마다 조금씩 식사 내용이 달랐는데 세진이 먹는 것이 기본이라면 거기에 고기 조각을 얹어 먹거나 에스 스크렘블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것은 추가 요금을 줘야 하는 선택 사항이지만 일단 세진은 기본만 시켜 먹기로 한 상태다. 당분간은.

길거리는 복잡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있으면 이 많은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나간다.

그 중에는 몬스터 사냥을 나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도시 주변에 있는 농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나간다. 그리고 그들을 뽑기 위해서 도시의 출입문에는 농장의 관리인들이 나와서 기다리는 곳이 있다.

일종의 인력시장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인력시장에서 라훌과 헌터는 같은 일을 해도 대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헌터가 라훌에 비해서 두 배는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 주변의 농장이라도 완전한 안전지역은 아니어서 간혹 몬스터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에 그 몬스터를 잡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헌터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헌터들은 몬스터가 나타나면 안전하게 도망을 가는 선택을 하지만, 그래도 일반 라훌들은 몬스터를 상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에 비해서 헌터는 가능성이나마 있기 때문에 임금을 높여서 헌터를 고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봐서는 헌터인지 라훌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뽑아서 일을 시킨 후에 정산을 할 때에 신분을 파악한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렇게 하면 일부러 헌터를 빼고 뽑거나 할 수가 없다는 건데, 실상 일꾼을 뽑는 농장 관리자가 정산을 하는 쪽과는 연관이 없게 만들어 놓아서 그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일종의 헌터 우대 정책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할까?

그러니 될 수 있으면 스스로 헌터라는 것은 밝히고 다니지 않는 것이 농장에서 일거리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툴틱에서 알려 주었다.

또 한 가지는 복장 문제인데, 처음 도시에 나오는 생체에테르바디의 복장은 하급 헌터들의 기본적인 복장 수준에 맞춰서 임의로 선택된 것이기 때문에 복장으로 헌터라는 것을 구별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물론 그 때문에 세진은 자신이 초보 헌터라는 것을 지난밤의 그 여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얼굴을 보아두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중이다. 그 여자는 세진을 알고 있는데 정작 세진은 그 여자를 알지 못하니 세진만 손해를 본 기분인 것이다.

어쨌거나 세진은 될 수 있으면 튀는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농장 일꾼을 모으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곳에서 일당을 벌어보고 다음에는 또 다른 일을 찾을 생각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보고 그 후에 적성에 맞는 것을 골라 정착할 생각인 것이다.

'서둘러서 몬스터를 잡겠다고 설치다가 이 의체를 날리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되지. 아무렴.'

여성 생체에테르바디를 사용할 생각만 해도 세진은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도시 주변의 농장에선 곡물이나 채소를 기르기도 하고, 가축을 기르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몬스터들이 가축을 공격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체향이 심하게 묻어 있지 않은 이상은 몬스터들이 가축이나 일반 동물을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이 행성에서 몬스터가 아닌 일반 동물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원래 이곳은 행성 전체가 에테르 기반 생명체에게 점령을 당해서 그들 이외의 생명은 박테리아까지 멸종을 당한 행성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에테르기반 생명체의 행성이 된 상태였다는 거다.

거기에 헌터들이 투입되면서 조금씩 개척을 했고, 그 개척 덕분에 지금 도시 주변에서 그나마 농경과 목축이 이루어지게 된 거란 말이다.

그래서 헌터들 중에서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유명 인사가 있는데, 그 헌터는 에테르 코어의 힘으로 땅을 정화시켜서 에테르 기반 생명체가 아닌 식물과 동물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능력을 지녔단다.

그 덕분에 지금의 도시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또 라훌들이 태어나 살 수 있게 되었다니, 정말 그 헌터의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 분명했다.

세진은 그 헌터에 대한 내용을 툴틱에서 확인하고 내심 박수를 쳐 주었다. 다만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툴틱에서도 찾을 수 없었는데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모두 지워졌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이후로 그와 유사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간혹 등장해서 도시와 마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그 사람이 유니크한 존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더불에서 그 능력도 에텔론을 지급하면 구입할 수 있는 에테르 활용 능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 짐작하니 세진도 그런 능력을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물론 그런 것이 정말 있는지, 있으면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는 세진도 알 수 없었다. 툴틱에 나온 기술 정보엔 없는 내용인 것이다.

"윽!"

"이봐 세진. 괜찮아?"

한창 곡괭이질을 하다가 잠깐 딴 생각에 빠져서 삐끗한 세진이다.

그것을 봤던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던 알프론이 뛰어와서 세진을 부축한다.

"아, 괜찮아. 잠깐 삐끗 했을 뿐이야."

"어디 봐. 어디 찍힌 건 아니고?"

"그래. 다친 곳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래? 그럼 다행이네. 아무튼 조심해."

알프론은 세진이 다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서 곡괭이를 집어 든다.

세진은 그런 알프론을 보며 살짝 고개를 흔든다.

알프론은 라훌족이다.

키가 세진보다 약간 작은데 앞으로 더 클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의 부모가 키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들의 시작이 되었던 헌터들의 종족이 키가 작은 종족들이었던 모양이다.

라훌족으로 치면 벌써 10대 이상 조상에 헌터가 있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로 라훌족도 이곳 행성에선 나름 자리를 잡은 주민들이다.

하지만 라훌족 중에서 성공하는 이들은 스스로 에테르의 사용법을 익히는 이들 뿐이다.

이곳 행성에서 태어나서 살아남은 이들은 기본적으로 에테르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태어나서 사흘이 지나기 전에 죽는다.

그렇게 세대를 이어가다보니 점차 라훌족 중에서도 에테르에 대한 저항력을 뛰어넘어서 에테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이들이 라훌족 사이에서 우상이 되고, 또 에텔론을 벌어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자격을 얻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좋은 조상을 만나서 그 도움을 얻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로또에 당첨이 되지 않는 이상은 이곳 행성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물론 세진이 생각하기에 그 삶이 지난하고 고단해 보이긴 하지만, 이곳의 라훌족들은 그들이 삶에 대해서 크게 불만은 없었다.

일부만 빼곤 말이다.

특별히 라훌족이 억압을 받거나 천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헌터가 유독 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그래서 라훌족들은 헌터들을 소 닭 보듯이 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엮이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사실 헌터들도 라훌족을 별반 달거워하지 않으니 서로 비슷한 입장인 셈이다.

그런데 이 알프론이란 소년은 어쩐 일이지 세진에게 살갑게 굴었다.

그게 세진이 헌터이기 때문인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렇게 세진에게 잘 보인다고 알프론에게 세진이 뭔가 해 줄 것도 없는데 유난히 소년 알프론은 세진과 말을 튼 이후로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벌써 20일 정도 된 건가?"

세진은 알프론을 만난 것이 그 정도 되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진 또 딴 생각해? 그러다가 정말 크게 다친다고. 일을 할 때엔 일에 집중해."

뒤에서 알프론의 목소리가 세진을 일깨운다. 맞는 말이다.

일단 일을 할 때에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다가 발등이라도 찍는 날에는 적잖은 텔론을 써야 할 것이다.

세진은 잠깐 생각을 뒤로 미뤄두고 곡괭이질에 정신을 모으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넵... 일단 데블 플레인에 들어오긴 했군요.

그런데 저 알프론은 뭐하는 놈일지... 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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