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6화 (6/298)

< -- 여자에게 차이고 구멍에 빠지고 -- >

"하아, 그래 내 복이 뭘 바라겠냐. 그냥 운이 좋았다 생각하자. 응? 젠장!"

세진은 다시 침대로 몸을 던지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벌떡!

"아니지."

세진은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젓는다.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내 원래 복이 지지리 궁상이었건 말건, 이건 이대로 물러날 일이 아니야. 일단 나에겐 빌어먹을 팔찌가 있다."

세진은 팔찌를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팔찌의 용도는 간단하다. 세진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주는 용도다.

동 가능한 곳은 전에 다녀온 지하 깊은 곳의 공간. 일종의 창고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팔찌의 주인이 살던 행성.

그곳에는 몬스터들이 있다고 했다.

설명에 따르면 에테르라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에너지 생명체라는데 아무튼 이것을 잡으면 그것이 지니고 있는 에테르 코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작은 구슬처럼 생긴 것이란다. 그걸 얻으면 세진이 당면한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이 된다.

팔찌를 움직이는 에너지원도 그 코어고, 어리라는 녀석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도 코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위험하다는 것. 잘못하다간 한 방에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고, 세진은 아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목숨을 걸고 위험한 곳에 뛰어들 모험 정신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세진은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변함없는 삶이 그를 지치게 했다. 그 삶이 그를 여자에게 버림받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진은 돌파구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에겐 마침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었다.

그 때문에 세진은 자꾸만 팔찌 형상을 한 문신을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시계를 차고 문신을 가리고 있지만 그래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지금도 어리에 대한 생각에서 팔찌로 관심이 돌아갔다.

"에테르는 이미 가득 찼어. 그래봐야 한 번 움직일 에너지 밖에 모이지 않았지만 말이지."

코어가 아닌 대기중의 에테르를 포집해서 팔찌의 에너지를 채우는 것은 딱 한 번 이동할 에너지 밖에는 모이지 않는다.

코어를 사용하면 얼마든 에테르를 저장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면 한 회 분량의 에너지만 축적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째째한 놈이다.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쓸 수 있게 모이면 얼마나 좋아? 그걸 꼭 한 번만 쓰도록 만들어야 되겠어? 째째한 새끼."

누군지 모를 팔찌의 주인에게 그렇게 욕을 하는 세진이지만 사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충전이 되게 만든 것이 대단하단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약하게 흐르는 대기중의 에테르를 모아서 팔찌에 저장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에너지가 충전되면 그 압력 때문에 외부에서 더 이상은 에테르를 모을 수 없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팔찌가 굵고 두꺼워진 이유가 바로 그 충전 에테를 저장하는 매체 때문이다.

그걸 몇 번 사용할 정도로 만들려면 팔찌가 아니라 구속구 정도 되는 두께로 만들었어야 할 것이다.

그걸 모르는 세진이 몇 번이나 팔찌를 만든 제작자를 욕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세진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가서 죽을 수도 있는데 꼭 그 짓을 해야 하나.'

'그냥 이렇게 견디다보면 언젠가 실연의 아픔도 잊을 수 있는 거고, 또 그러면 새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봐야 지금과 같은 허무한 삶의 연속, 그럴 바엔 뭔가 도전을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도 죽을 수도 있는데?'

벅벅벅벅!

세진은 머리를 미친 듯이 긁으며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잘게 콩콩콩 찍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세진이 오늘따라 이렇게 더 심각한 상태가 된 것은 그의 팔찌가 드디어 충전이 완료된 상태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금씩 차오르던 에테르가 드디어 완전 충전이 되어서 다시 한 번 이동이 가능한 시점이 된 것이다.

거기다가 구정 연휴까지 겹쳤으니 세진이 아주 몸살이 날 지경이 되었다.

며칠 시간도 있는데 구정이라고 어딜 갈 일도 없는 세진은 연휴 전체가 남는 시간인 까닭이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시설 출신이라서 따로 구정이라고 차례를 올릴 일도 없고 찾아 볼 일가친척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부모님은 부부 동반으로 온천을 가시거나 외국 여행을 가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번에도 세진만 혼자 남아 집을 지키고 두 분은 동남아 여행을 가신다고 새벽에 집을 떠나신 참이다.

"악! 악! 악!"

세진은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곤 곧바로 현관으로 뛰어가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에나 신었던 군용 워커를 꺼내고, 다시 베란다의 다용도실에서 캠핑 장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 간다.

가. 내가 가서 죽던지 살던지 한 번 해 보고 만다. 어차피 인생 한 방 아니겠어?"

언젠가 인터넷의 비박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활동을 해 보리라 결심하고 장만했던 물건들이 줄줄이 나와서 거실 바닥을 채우기 시작했다.

트, 침낭, 생존도구 세트, 야외용 조리기구들과 삼단 야삽, 사냥용 칼과 텐트 바닥에 깔 깔개까지 놓으니 거실 바닥이 복잡해진다.

"아, 그것도 가지고 갈까?"

세진은 방으로 들어가서 벽에 걸려 있던 얇은 하드 박스 가방을 들고 나온다. 그것 역시 동호회 활동을 해볼까 하면서 장만만 하고 실제론 써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컴파운드 보우라고 활에 도르레를 달아서 활시위를 당긴 후에 지탱하는 힘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는 활이다. 세진은 군에서 제대하고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인터넷 동호회에 빠져서 컴파운드 보우에 미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세진이 실제 활을 들고 사냥을 나가거나 혹은 습사라도 많이 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활을 사고, 또 활을 샀으니 사냥을 하려면 비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거기도 기웃거리면서 장비를 마련하고 했을 뿐이다.

그래놓고 결국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그냥 다용도실에 공간만 차지하고, 벽에 장식으로 걸어 놓는 물건들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세진은 그것들을 모두 꺼내서 빠진 것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대충 다 있는 것 같으니까 이젠 부엌을 좀 쓸어 담아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곤 쌀이니 밀가루니 하는 것들은 물론이고 라면이나 조미료 같은 것들을 한 가득 쓸어 담아서 배낭에 넣은 세진이다.

몬스터가 있는 세상으로 간다는데 확실히 준비를 하겠다는 생각이지만 한편으론 정말 미친짓이 아닌지 자꾸만 망설이는 마음이 들곤 한다.

하지만 가서 어떻게든 버티면 열흘이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세진에게 기운을 주고 있었다.

물론 그보다는 어떻게든 작은 몬스터라도 잡아서 에테르 코어를 얻고 연휴 기간인 닷새 이내에 돌아오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세진이다.

"그래도 여기서 50일 걸릴 것을 거기선 열흘 정도면 충전이 된다니까 만약을 위해서 여행을 간다는 쪽지 정도 남겨두고 가면 회사에서 연락이 오더라도 부모님께서 해결을 해 주시겠지. 그러다 잘리면 또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지금 죽을 각오로 하는 일인데 직장 따위야 어떻게 되건 무슨 상관이야!"

세진은 자꾸만 가고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에 대한 발발심리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배낭을 모두 꾸린 후에 컴파운드 보우를 완전 조립하고 여분의 화살까지 모두 챙긴 후에 방으로 와서 워커를 챙겨 신었다.

방 안에서 군화를 신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지만 세진은 끈을 단단히 조여 묶으며 스스로의 각오를 다졌다.

"간다.

가. 가서 이 놈의 팔찌가 내게 복인지 화인지 알아보겠다.

빌어먹을 세상아 다시 보자."

세진은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곤 자신의 방 가운데에서 배낭을 맨 상태로 팔찌를 작동시켰다. 그가 정한 좌표는 팔찌의 주인이 있다는 행성이었다.

"젠장! 좀! 밑으로 떨어..."

세진은 바닥에 생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렇게 세진의 모습은 그의 방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일단 프롤로그만 먼저 올렸습니다.

이전에 쓰던 글을 어제 완결을 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조금 쉬어가면서 글을 써도 써야 하는데... 일단 설정이 잡혀 있는 글이니 쉬엄쉬엄 조금씩 쓰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해 봤습니다.

아, 다른 글 쓰던 것도 리메이크 들어갔습니다.

스킬피스-피솔더... 리메이크 중입니다.

그런데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 굳이 리메가 아니라 퇴고 정도가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고민 중이라지요... 쿨럭...

일단 썼던 부분까지 고쳐보고... 그 다음에 그 글을 리메로 올릴 것인지, 아니면 이전에 썼던 글을 한편한편 수정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할 생각이라지요...

뭐 그것도 천천히... 일단 12권짜리 쓰느라 녹초가 되었으니... 좀 쉬면서... 할 생각입니다.

아무튼 새로 글을 시작했으니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

"떨어뜨리지 말란 말이야!"

털푸덕!

세진은 또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다가 위로 솟구치는 느낌을 받고나서 다시 바닥에 처박히는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

이번이 세 번째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구구. 이런 젠장할! 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네."

세진은 투덜거리면서 등에 매고 있는 배낭 때문에 불편한 몸으로 바닥에 배를 깔고 눈을 돌려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입으로는 투덜거리고 있어도 자신이 어딘지 모를 다른 행성에 와 있으리란 것을 뻔히 짐작하는 마당에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런데 슬그머니 주변을 살펴봐도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분명히 몬스터가 날뛰는 행성이라고 했으니 어디 숲이나 그런 곳에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사방이 막혀 있는 룸이다. 가운데에 치과 치료용 의자 같은 것이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 세진 혼자 떨어져 있는 것이다.

"뭐야? 또 무슨 창고 같은 곳이야? 설마 여기 에테르가 없는 건 아니겠지?"

세진은 화들짝 놀라서 왼손에 꼭 잡고 있던 활을 놓고 팔찌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러자면 에테르가 있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에테르가 충전되기만 하면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가 보고 있는 팔찌는 대기에 에테르가 섞여 있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 정말이야? 야, 이러면 안 되지. 에테르가 충전이 안 되면 나한테 어쩌라고?"

세진은 팔찌를 확인하고 충격에 빠졌다.

"우아악!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라고."

세진은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휘휘 돌아봤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은 가운데 놓인 의자밖에 없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도 보이지 않는다.

"사, 상자는? 응? 코어가 들어 있는 상자라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 에테르가 없으면 난 집에 못 간다고. 아니야, 어디, 여기 어디 밖으로 나가는 문이라도 있을 거야. 그래. 그래야 말이 되지. 나한테 이곳에 와서 몬스터 사냥을 하라고 했으니까 나가는 길이 있을 거야. 그래. 그래야 해."

이전 행성의 창고에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작은 에테르 코어가 들어 있는 상자가 있었다.

세진은 그거라도 있을 거라고 찾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는 길 역시 찾을 길이 없다.

세진은 꽤나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세진은 지금 집으로 돌아갈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다.

아니 집이 아니라 지구로 갈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세진은 미친 듯이 벽을 더듬으며 틈을 찾으려 했지만 벽이고 천정이고 바닥이고 어디에도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다. 그런데도 세진이 어둠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벽 전체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어서 방 안이 훤하게 밝기 때문이었다.

"이건, 이건 아니지. 도대체 뭐냐고. 여기까지 오게 했으면 뭐가 있어야 하잖아. 응? 이러지 말자.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자고. 응."

세진은 팔목의 문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배낭과 활은 한쪽에 덩그러니 방치된 상태다.

그렇게 세진은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 모서리 부분에 웅크리고 있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여기 있는 거라곤 저 빌어먹을 의자뿐이니까 저게 뭔가 해 주겠지. 그러니까 저걸 저기 놓은 걸 거야. 맞아. 그럴 거야."

세진은 혼잣말을 하며 의자 곁으로 다가섰다.

이제 남은 희망은 그것뿐인 것이다.

심플.

세진은 딱 그런 생각을 했다.

그저 머리 쪽이 약간 높게 만들어져서 비스듬하게 누울 수 있게 만들어진 의자일 뿐이다. 재질은 세진이 알 수 없지만 쓰다듬어 보니 표면이 부드럽고 푹신하다.

누우면 편하긴 할 것 같다.

그것 이외엔 어떤 장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이걸로 뭘 어쩌려는 걸까?'

세진의 머리속에 의자에 눕는 순간 사방에서 칼과 가위, 톱, 주사바늘 같은 것들이 생겨나서 세진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공간이 온통 피바다가 되고 자신은 잘게 토막이 난다.

그것을 두 눈을 뜨고 구경하는 상상을 하다가 세진은 머리를 잘잘잘 흔들었다.

"젠장 죽을 각오로 왔는데 의자에 눕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거야? 내가?"

세진은 혼잣말로 스스로를 격려하며 털썩 엉덩이를 의자에 올렸다.

올라앉았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굳은 결심을 하고 바른 자세로 의자에 편안하게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천정에서 세진의 이마로 가느다란 빛이 쏘아졌다. 하지만 세진은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다.

아니 실제로는 빛이 세진의 이마에 닿는 순간 정신을 잃은 것이다.

세진의 이마로 쏘아진 빛은 세진의 뇌에 기억되어 있는 정보들을 읽고 있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언어 습득을 위한 기본적인 스캔만 이루어졌지만 정신을 잃은 세진은 그런 사실을 알 길이 없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세진의 이마에 닿았던 빛은 사라지고 몇 초 후에 세진의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세진은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었던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잠시 눈을 감고 있는 중이라 여길 뿐이다.

- 안녕하십니까. 박세진님.

"으아악! 뭐야?"

세진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성의 맑은 목소리는 방향을 알 수 없이 방 전체를 울리며 들리고 있었고,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 박세진님의 안정과 신체의 피로도 경감을 위해서 그대로 누워 계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박세진님의 안내를 맡은 안내양입니다.

"안내양?"

이런 상황에서도 안내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목소리에 세진은 어이가 없었다.

하필 안내양이란 말인가.

- 그 표현이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시면, 어떤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박세진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정도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더불어서 제 성별이 박세진님의 반대인 여성으로 지정이 되었기에 안내양이라 소개를 한 것입니다만 저는 실제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작동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 박세진님의 행성 지식에서는 비교 가능한 것이 그것밖에 없습니다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고도의 연산이 가능한 존재가 바로 저입니다.

실제로 박세진님의 행성 수준으로 짐작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존재는 아닙니다.

"잠깐만, 니가 그렇게 잘난 존재란 건 그렇다고 치고, 그러니까 너는 이를테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제공되는 도우미란 말이지?"

- 도우미. 그렇습니다.

그 단어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세진은 목소리의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의자 위에 상체를 세우고 앉은 상태로 한동안 세진은 말이 없었다.

"좋아. 그럼 도우미 네가 나에게 어떤 일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

한참 후에 세진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는지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 물론입니다. 박세진님.

"아, 내 이름을 세진이야. 박은 성이지."

- 알겠습니다.

세진님.

세진은 어디에서 들리는지 모를 목소리 도우미의 등장에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쨌거나 방에 혼자 갇혀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목소리가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란 것이 한 몫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일단 설명을 좀 부탁할까? 이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말이야."

- 알겠습니다.

그럼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도우미 목소리는 세진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 주었다.

그것이 그 프로그램의 역할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서 몬스터 사냥을 한다는 말이지?"

한동안 도우미 목소리의 설명을 들은 세진이 다시 확인하듯이 질문을 던진다.

-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몸뚱이를 가지고?"

- 그렇습니다.

세진님은 에테르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몬스터 사냥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에테르 기관을 지니고 있는 생체에테르바디를 대신 사용해서 사냥을 하시는 겁니다. 에테르를 이용하지 못하는 신체는 에테르의 농도가 짙은 곳에 오래 머물면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 의자에 누워 있는 상태로 그 생체에테르바디라는 몸을 몬스터가 날뛰는 행성으로 보내서 사냥을 한다고?"

세진은 몇 년 전에 유행한 영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만들어진 육체에 정신만 이동해서 움직이는 것이 그 영화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 그렇습니다.

"거기서 얻어진 에테르 코어 30%는 네가 가지고, 나머지 70%를 가지고 내가 활용을 해야 한다?"

- 설명 드린 그대로입니다.

세진님께 제공되는 바디는 기초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좀 더 나은 상태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에텔론이 필요합니다.

에텔론은... 세진은 다시 이어지는 도우미 프로그램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그 설명에 따르면 세진은 몬스터에게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은 몬스터 사냥을 위해서 각 행성에서 오는 사냥꾼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사냥꾼들은 수 천 개의 행성에서 몬스터 사냥을 위해서 이곳 데블 플레인이라고 불리는 에테르 몬스터들의 행성으로 오는데 그들은 직접 사냥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의체라고 할 수 있는 생체 로봇을 지급받아서 그것으로 몬스터 사냥을 한다는 것이다.

생체에테르바디라고 부르지만 세진이 생각하기엔 그냥 아바타다. 아바타 놀이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상황 이해가 쉽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공짜로 무한 제공되는 것은 아니란다. 처음에 주어지는 생체에테르바디, 즉 사용 가능한 의체는 딱 두 기가 전부다.

한 명의 헌터에게 제공되는 공간은 지금 세진이 있는 것과 같은 기본 공간이 전부인데 이 공간 즉 헌터룸의 주인에게는 기본적으로 생체에테르바디가 남성용 하나와 여성용 하나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헌터룸에 어떤 성별의 헌터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두 가지 종류가 준비되어 있는데 잘못해서 자신의 생체에테르바디를 잃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성별의 의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말이다.

물론 그 전에 에텔론이라는 데블 플레인의 화폐를 획득해서 새로운 의체를 마련해두면 그럴 일이 없지만 새 의체를 미리 준비하기 전에 자신의 몸을 잃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성별의 바디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성의 몸을, 혹은 여자가 남자의 몸을 사용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고, 세진은 절대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간혹 스스로의 성별을 버리고 반대 성별에 애착을 가지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가 흔한 것이 아니니 예외로 친다.

"좋아. 그럼 만약을 위해서 준비한다는 새로운 의체는 가격이 얼마나 하는데? 그 에텔론이란 거로 결제를 해야 한다면서? 그럼 에텔론부터 좀 더 자세히 이야길 해 봐."

- 에텔론은 몬스터의 에테르 코어를 변환한 값을 말합니다. 등급별로 가격이 다르고 또 같은 등급도 결정의 밀도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게 책정이 됩니다만 평균을 말씀드리면, 제일 등급이 낮은 붉은색 등급의 에테르 코어는 5에텔론입니다. 그리고 그 위의 등급인 주황색 등급의 에테르 코어는 열 배인 50에텔론이 됩니다.

그와 같이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까지 일곱 등급의 몬스터 코어가 있으며 각각 10배씩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등급인 보라색 등급의 코어는 500만 에텔론입니다.

"와우 500만 에텔론? 대단한데?"

-참고로 이것들은 기본적인 에테르 코어를 변환해서 얻는 에텔론입니다. 하지만 화이트 코어의 경우에는 같은 등급의 에테르 코어의 200배 정도의 가치로 환산이 됩니다.

"200배? 그럼 붉은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가 1000에텔론이란 소리야?"

- 정확하게 정해진 가격은 아니지만 그 정도 합니다. 코어를 에텔론으로 변환하는 것은 마을의 교환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개인적인 거래로 헌터들간에 주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가격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정해진 값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좋아. 그럼 아까 이야기하던 그 새로 준비하는 기본 의체의 가격은 얼마나 하는 거야?

- 새로의 기본 의체의 가격은 50만 에텔론입니다.

"뭐? 얼마?"

세진은 50만이란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의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코어의 가격과 같은 값인 것이다. 더구나 듣기론 몬스터 열 마리를 잡아야 겨우 코어 하나가 나오는 확률이라고 했다.

- 50만 에텔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그럼 그걸 못 모으고 죽게 되면, 아니 그러니까 의체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 그 전까지 모았던 에텔론으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고 사냥을 그만두시거나 혹은 남은 다른 성별의 생체에테르바디를 사용해서 다시 도전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것까지 쓰고도 새로 의체를 구할 에텔론이 없다면 어떻게 되냐는 말이지."

세진은 지속적으로 에테르 코어를 얻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걸 위해서 이곳에 왔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세진은 혹시 모를 사태에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 마지막 수단으로 존재하지만 권하지 않은 방법이 있습니다만 세진님께는 해당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뭐지?"

- 생체에테르바디가 아닌 본래의 몸으로 도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테르를 이용할 능력이 없는 몸이라면 그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몸으론 하고 싶어도 안 된다는 말이네?"

-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 소유하고 계신 두 기의 생체에테르바디를 이용해서 성공을 거두시길 권합니다.

"그럼 그 이야길 왜 하는데?"

- 생체에테르바디를 사용하시는 중에 사용자가 본래의 몸으로 에테르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확률적으로 절반 이상이 됩니다.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서 알려드린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그 의체를 사용하는 중에 사용자가 스스로 에테르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는 소리지?"

-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절반 정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군."

세진은 어쩌면 자신도 그런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지막 방법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기본으로 지급된 생체에테르바디로 성공적인 정착을 하시길 권합니다.

"그거야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일이란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

- 시간을 들이고 욕심을 내지 않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응? 어떻게?"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 도우미 목소리에 세진이 반색을 한다.

- 헌터들, 생체에테르바디도 의식주의 문제는 해결해야할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당연히 그러한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준비된 것을 활용하는 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에텔론을 버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심부름 같은 것을 하면서?"

세진은 조금 맥이 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 안전지대가 있으니 그곳에서 생활하며 에텔론을 버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사냥이 아니라 거래를 통해서 성공을 할 수도 있으며, 생체에테르바디가 사용할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또 에텔론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진은 도우미의 설명을 이해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히 헌터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진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외로 나쁘지 않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괜히 설치다가 비싼 의체를 날려버리고 여성용 의체를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는 세진이다.

- 에텔론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직접 경험하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도우미 프로그램의 첨언이 세진의 생각을 흔들고 지나갔다.

세진은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봐 도우미."

- 네 세진님.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세진의 부름에 지체 없이 들려오는 대답이다.

"한 번 행성에 내려가면 보통 얼마나 있다가 올라오지?"

- 올라오지 않습니다. 다만 안전한 곳에 생체에테르바디를 보관하고 사용자는 헌터룸에서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알았으니까 보통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는 거지?"

- 그것은 사용자의 의사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생체에테르바디를 잃지 않는 상황이라면 평균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뭐? 1년?"

세진은 깜짝 놀랐다. 1년이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면 그건 정말 곤란했던 것이다.

아마 부모님께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근심이 크실 것이다.

"이봐, 그건 곤란하다고. 난 빨리 돌아가야 한단 말이지. 부모님께서 걱정하신다고."

- 제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세진님께선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세진님께서 소유하신 듀풀렉 게이트는 중간에 시간이 왜곡되는 지점을 지나게 됩니다. 따라서 이곳으로 1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세진님이 다시 게이트를 지나게 되시면 시간 왜곡으로 출발하셨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실 것입니다.

"뭐? 이건 또 무슨 헛소리?"

- 헛소리가 아닙니다.

세진님께서 지니고 계신 듀풀렉 게이트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이곳에서 아주 먼 행성의 좌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곳까지 오는 중간에 우주의 신비에 해당하는 영역이 있고, 듀풀렉 제작자는 그 영역을 이용하여 지금 소지하신 듀풀렉 게이트를 사용해서 이동할 경우 양쪽에서 보내는 시간을 서로 달리 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게 가능한 거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지?"

세진은 이해 불가능이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그것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설명 가능한 정보가 없습니다. 다만 그런 기능이 세진님의 듀풀렉 게이트에 있다는 정보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좋아. 그렇단 말이지? 그게 반가운 소식이긴 한데..."

세진이 말꼬리를 흐리자 도우미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 달리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이곳에서 몇 년 보내고 돌아가면 그만큼 늙어서 가게 되는 거잖아. 그거 문제 아냐?"

-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필요하시면 에텔론을 이용해서 세진님의 신체 나이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긴 합니다.

"젊어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이야?"

세진이 깜짝 놀라서 묻는다.

- 에텔론을 지불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습니다. 다만 행성의 문명 수준에 맞지 않는 것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젊어지고 어쩌고 하는 것도 안 된다는 말이잖아."

- 세진님 개인에게 제공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내가 쓸 물건들은 가지고 갈 수 있다는 말이야?"

-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세진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가능성이 있고, 또 연구용으로 사용되어 세진님의 행성인 지구의 문명 수준을 크게 향상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몸이 젊어지게 만드는 것은 내 몸뚱이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또 지구의 수준으로는 나를 해부해서 뜯어봐도 알아낼 것도 없을 테니까 해 줄 수 있는데 다른 물건 같은 것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이지?"

- 스스로의 몸을 실험용으로 내놓지 않으리란 예상을 한 것이지만 대체로 옳은 추론입니다.

"좋아. 알았어. 그럼 여기 누워있는 동안에 내 몸은 도우미가 관리를 하나?"

- 현 상태로 유지할 것입니다. 청결이나 영양 상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건 에텔론을 안 받고 해 주는 모양이지?"

- 그렇습니다.

"생체에테르바디를 움직이는 동안에도 도우미의 도움을 계속 받을 수 있나?"

세진은 어차피 부딪혀야 할 문제라면 빨리 시도하고 싶은 생각에 그렇게 물었다.

- 툴틱을 이용하시면 데블 플레인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툴틱은 생체에테르바디에 기본적으로 제공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도움을 드리는 것은 생체에테르바디 보관소까지입니다.

"툴틱? 그건 뭔데?"

- 개인용 통신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그것으로 모든 경제 활동을 하게 된다는 점도 기억하십시오. 물론 이것은 개인용으로 탈취나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신용카드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 정도 되는 모양이군."

- 툴틱의 원시적인 형태가 그랬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진은 원시적이란 말에 살짝 당황했다가 이내 쓸데없는 생각은 털어 버렸다.

그런 사소한 문제를 신경 쓸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럼 이제 출발을 하면 되는 건가? 어떻게 하면 되지?"

- 자연스럽게 누워서 눈을 감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생체에테르바디에서 깨어나실 것입니다.

"그럼 다시 여기서 깨어나려면?"

- 안전지대의 보관소에서 생체에테르바디를 눕히고 눈을 감으신 상태로 생체에테르바디와의 링크, 연결을 끊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곳에선 저와도 대화가 되니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았어. 그럼 이제 시작해도 되나?"

- 그렇습니다.

언제든 시작하셔도 됩니다. 더 자세한 것은 차후에 배우셔도 됩니다.

"좋아. 가 보자고.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세진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눕히고 가볍게 눈을 감았다.

- 생체에테르바디와 링크중입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세진은 한동안 기다려도 도우미의 반응이 없어서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곧 무슨 소식이 있겠거니 하면서 기다리는데 몇 분이 지나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와락 짜증이 나서 눈을 떴다.

"엇?"

그런데 세진의 눈에 보인 장소는 이전의 헌터룸이란 곳이 아니었다.

"뭐지? 여긴 어디야?"

- 그곳은 생체에테르바디가 수납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지금 움직이시는 몸이 세진님께 맞추어진 생체에테르바디입니다.

"응? 뭐?"

세진은 도우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이게 뭐야? 완전히 내 몸이잖아."

세진은 비록 옷이 바뀌기는 했지만 몸 자체는 자신의 것이 맞다는 생각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지금 사용하시는 육체는 생체에테르바디입니다. 기본형의 생체에테르바디를 세진님의 신체 특성에 맞춰서 조정을 한 상태라서 본래의 몸과 차이가 없다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집중해서 느껴보시면 그 몸이 본래의 몸이 아니란 사실을 아시게 되실 것입니다.

세진은 도우미의 말에 혼란을 느끼면서 자신의 몸을 다시 살폈다. 그러다 보니 약간 다른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작은 흉터들이 없고, 약간 더 날씬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빼곤 몸에서 이질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완전히 세진 자신의 몸이라는 느낌인 것이다.

"놀랍군."

- 지금 계신 곳은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의 행성입니다.

그곳에 생체에테르바디를 가진 헌터들이 진입을 한 것은 그 행성의 자전과 공전 주기로 계산해서 350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행성에는 헌터들이 만든 안전지대가 상당 수가 생겼으며 그 중에서도 총 열 두 곳의 도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계신 곳은 그 중에 한 곳으로 레트시(市)라고 하는 곳입니다.

"레트?"

-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나가면 되나?"

- 세진님께서 우선 하셔야 할 것은 왼쪽 팔뚝에 있는 툴틱의 이용법을 배우시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셔야 합니다.

"툴틱? 이건가?"

세진은 거친 소매를 걷고 안쪽에 있는 툴틱이란 것을 찾았다.

마치 피부처럼 팔뚝에 붙어 있는 그것은 그냥 보기에는 문신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서 그것을 작동시키고 또 사용법을 배우는 동안에 툴틱이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이며 결제 수단이며 통신수단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툴틱에서 여러 정보들을 획득할 수 있는데 그 정보는 헌터들이 그동안 올려 놓은 이곳 행성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세진은 그것만 잘 이용해도 이곳에 정착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툴틱이 행성 내부에서만 사용이 가는하고 다른 행성들과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는데 그런 것은 헌터들과 사귀면서 개인적으로 알아봐야 한다는 도우미의 안내가 있었기에 아쉬움을 약간을 덜어낼 수 있었다.

전혀 다른 행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색다른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제 나가면 되나?"

- 툴틱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에텔론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공용화폐인 텔론이 300만 텔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텔론 대신에 사용하는 화폐단위입니다. 그것으로 당분간 의식주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헌터 생활을 시작하십시오. 세진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마치 다시 안 볼 것 같은 비장한 인사말인데? 너무 겁주는 거 아냐?"

- 헌터들끼리의 불법적인 행위는 규제 대상입니다. 하지만 헌터가 아닌 라훌들은 그런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라훌이라니? 그건 또 뭔데? 그런 이야긴 없었잖아?"

세진은 라훌이란 새로운 존재를 언급하는 도우미 목소리에게 발끈했다.

- 라훌은 헌터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뭐? 뭐라고? 이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지? 그러니까 지금 이 생체에테르바디가 생식 기능이 있단 거야? 그러니까 뭐냐 성행위를 통해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단 말이야?"

-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을 라훌족이라고 부릅니다.

열 두 곳의 도시에는 물론이고 그 외의 마을들에도 라훌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한 이들도 있고 악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이들은 때로 헌터를 속이거나 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헌터들은 서로 해치지 못하지만 라훌들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헌터가 라훌을 배후에서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겁나는군. 이건 뭐 겁을 팍팍 주는군."

세진은 그렇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도우미는 그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그 때부터 시작이란 말이지?"

- 시작은 이미 되었습니다. 그 생체에테르바디에서 눈을 뜨신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 후면 배가 고플 것이고 시간이 더 지나면 잠이 올 것이고, 목이 마를 것입니다. 세진은 도우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뭐가 되었건 이젠 이 몸으로 살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다시 생체에테르바디 보관소에서 눈을 감기 전에는 말이다.

세진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하나뿐인 문의 손잡이를 잡고 힘차게 당겼다.

============================ 작품 후기 ============================

음... 드디어 본격적인 데블 플레인 생활에 뛰어든 주인공.

아직까지 주인공 보정은 없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특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된 주인공 혜택은 이미 앞에서 언급이 되었습니다. 미리 준비된 장치를 예상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주인공의 현실 생활을 등한시 할 생각이 없습니다.

게임과 같은 이곳 데블 플레인의 생활과, 현실 생활이 번갈아 나올 것입니다.

물론 당분간은 이곳 데블 플레인 생활이 이어지겠지만요.

자, 그럼 또 다음에 뵙겠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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