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4화 (4/298)

< -- 여자에게 차이고 구멍에 빠지고 -- >

세진은 팔찌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팔찌의 작동은 이제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다.

문제는 팔찌에 사용하는 에너지인데 그것도 이곳 창고에 지구로 돌아갈 정도의 에너지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문제될 것은 없는 거다. 그런데도 세진이 팔찌만 만지고 있는 것은 그렇게 지구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려면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아니 가면 다시 오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

지구에 얼마나 많은 에테르가 대기 중에 있는지 모르지만 게이트 생성기가 충전이 되는데 그리 짧은 시간에 되지는 않을 것은 분명하다. 세상에 몬스터들이 날뛰는 상황에서도 열흘은 두어야 충전이 된다고 했으니 지금 지구의 상황으론 추측이 어렵다.

지구엔 아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충전이 된다고 해도 여기 오게 되면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 그러니 왕복 에너지가 준비되지 않은 이상은 절대 여길 올 수 없는 것이다.

"젠장 아까워 주겠네. 그래도 그냥 간다. 내가 미쳤다고 다른 별나라 가서 몬스터 잡는다고 목숨을 거냐? 웃기는 소리 하지도 마라. 그리고 그게 언제 일인지 몰라도 그 사이에 그 별이 또 어떻게 변했을 줄 어떻게 알아? 헹이다.

진은 더는 고민을 하지 않겠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세진이 차고 있는 팔찌는 지금 세 개의 좌표가 설정이 되어 있다.

하나는 세진이 빠졌던 은행 앞 계단의 좌표, 하나는 이곳 이름도 모르는 행성의 깊은 지하 창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게이트 생성기를 만든 사람이 활동하던 행성으로 몬스터들과 인류의 싸움이 진행되는 곳이다. 하지만 세진은 팔찌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식의 석판은 시간은 완전히 단절이 되어 있는 상태로 전해진 것이다. 다만 팔찌를 지구에 던져 놓을 때의 지구 모습이 원시적인 수준이란 말로 설명이 되어 있어서 아주 오래 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세진이다. 더구나 그 때에는 에테르가 없는 곳이었다는데 지금은 에테르가 대기에 어느 정도 지구에 퍼져 있으니 시간이 꽤나 흘렀을 것이란 짐작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트 생성기를 만든 사람의 고향 행성으로 가는 것은 미친 짓인 거다. 그곳이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란 말이지."

세진은 또 한 번 입맛을 다신다.

"그래. 포기한다.

포기해. 지금까지도 잘만 살아 왔다. 이런 뭣 같은!"

끝내 세진은 위험을 감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또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면 지구로 갈 때 필요한 코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고향이란 별에서 무슨 수를 쓰건 팔찌가 충전이 될 때까지 기다리던가 아니면 몬스터를 잡아서 코어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지구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아무 소용이 없다.

코어를 얻어야지 겨우 시간만 보내다가 지구로 돌아간들 무슨 득이 있겠는가. 그러니 결국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소린데 그건 몇 번을 고민해 봐도 세진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다.

세진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구석에서 몸을 일으켜서 공간의 중앙에 있는 탁자로 걸어왔다.

거기엔 작은 상자 안에 하나의 구슬이 들어 있었다.

"이런, 꼭 한 번 게이트 생성기 작동할 정도의 양이란 말이지? 다음에 여길 오려면 돌아갈 에너지가 없이 왔다간 여기서 굶어 죽어야 한다는 거고. 그러니 이젠 여기하곤 완전히 빠이빠이네? 아, 아까워 죽겠네."

세진이 얻은 지식의 대부분은 마법진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는 에테르를 이용해서 몸을 단련하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한 번 읽어주는 것을 들었다고 그걸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세진은 절대 그런 천재가 아니다. 그러니 그저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석판들을 다시 작동시키려면 역시 에테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곳에는 에테르가 없기 때문에 자체로 충전도 안 된다. 그걸 해결해야 이곳의 석판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에테르로 시작해서 에테르로 끝난다. 세진으로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가지고 가보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지."

세진은 한쪽 구석으로 가서 농구공을 사각 받침대 위에 올려놓은 모양의 은빛 물체를 들어 올렸다.

"무겁지도 않으니 기념품 삼아서 가지고 가자."

세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은빛 물체를 품에 안고 테이블 위의 상자에 들어 있는 엄지 한 마디 크기의 구슬을 오른 손으로 들어서 왼 손 팔찌에 투입했다.

두툼한 벽조목은 사라지고 문신처럼 흉하게 남은 팔찌 문양이 그 구슬을 천연덕스럽게 집어 삼켰다. 마법의 힘이다.

팔찌는 그렇게 코어를 삼키고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에 쓰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코어 저장 공간은 텅 비어 있고, 방금 넣은 코어도 게이트를 딱 한 번 열 정도의 에너지 밖에 없는 녀석이다. 게이트 생성기를 만든 사람이 팔찌를 얻은 사람에게 딱 한 번의 선택 기회를 주기 위해 그렇게 준비를 했다니 세진으로선 그 놈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을 정도로 불이 날 일이다.

"쪼잔한 새끼. 빌어먹을!"

세진은 투덜거리며 팔찌를 작동시켰다.

"우아앗, 이런, 또 발밑이야!"

세진이 고함을 지르며 발밑에 생긴 게이트를 통해서 어디론가 떨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