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2회
에필로그 – 2018 IDDC
사실 첫날 공식 일정이 끝나고 나서는 분위기가 좀 이상했었다.
역대 IDDC를 보면 첫날에는 어마어마한 임팩트가 있는 아이템들이 발표되었으니 말이다. 티파니폰부터 시작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골드, 다이아몬드 반도체 등등. 일단 첫날에 등장한 아이템만 보고 ID 그룹의 주가는 치솟아 올랐다.
반면 어제 발표된 퀀텀은 애매했다.
초격차 양자 슈퍼컴퓨터인 본체는 그럴듯한 형태를 띠고 있긴 했다. 하지만 실물이 아닌 영상만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퀀텀이라는 강인공지능은 입체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서 놀랍긴 했다. 그렇지만 캐릭터 디자인이 남다른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입체 홀로그램이란 기술 자체는 이전에 다른 기업에서 공개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사상 처음으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그 정도로 평가가 박하진 않았다.
ID 그룹의 주가들은 크게 오르진 못했지만, 폭락하지도 않았다.
강인공지능이라 주장한 퀀텀 대신 양자 컴퓨터 자체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ID 그룹 이전까지만 해도 양자 컴퓨터 분야는 50~70개 정도 되는 양자 게이트를 제어하는 데 성공했니 마니 하며 아웅다웅하던 수준이었다.
그런데 퀀텀은 코어큐브라는 독특한 형태의 칩에 6천 경에 달하는 양자 게이트가 집적되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어마어마한 차이인지라 진짜인지 아닌지 검증이 필요한데, 유재원이나 되는 사람이 IDDC라는 수만 명이 모이는 행사의 전면에 서서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일단 믿기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한다.
강인공지능은 논외로 하고 퀀텀의 하드웨어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건 확실하다는 결론이었다.
반면 SD 캐릭터로 등장한 퀀텀이란 인공지능이 강인공지능이 맞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인공지능 골드의 완성도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고, 골드에게 퀀텀이라는 강인공지능 캐릭터 기믹을 주고 연기를 하게 하면 이를 파악해낼 방법이 없다는 게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2일 차가 되자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다음날!
2일차 IDDC는 첫날보다 살짝 김이 빠진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게 나오겠지 하며 메인스테이지르 찾았던 이들은 또다시 퀀텀이 등장하자 김빠지는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퀀텀이 발표를 시작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긴급 속보!
-퀀텀이 리만 가설 증명함!
-커다란 소수를 사용하는 암호체계는 업데이트 필수!
수백 년간 수학계의 최대 떡밥이었던 리만 가설을 퀀텀이 완벽하게 증명했다. 그것도 수학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이용해서 풀어냈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전문가들도 ID 그룹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된 리포트를 보고는 다들 충격을 금치 못했다.
양자 컴퓨터가 완성되면 리만 가설이 쉽게 증명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던 학계였다. 그렇지만 캐나다의 스타트업이 만든 D-웨이브나 중국이 만든 구장산술이나 50개가 넘는 양자 게이트를 제어하는 양자 컴퓨터가 나왔음에도 리만 가설은 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퀀텀 이전의 양자 컴퓨터들은 양자 게이트를 이용한 범용계산부터 양자적 특성을 이용한 특수연산 알고리즘 자체가 완성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퀀텀은 이러한 기본적 단계를 모두 건너뛴 궁극의 양자 컴퓨터였고, 고도의 양자 우위를 지닌 연산 알고리즘을 장착했다.
여기에 자아를 가진 강인공지능까지 각성되면서 리만 가설을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 유재원의 공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중국의 황금방패를 뚫어내기 위해 사용한 함수가 바로 리만 가설 증명을 통해 도출된 쉬운 소수 찾기 함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이해하기 쉬운 리만 가설 증명과 이를 통한 ‘소인수 분해를 쉽고 빠르게 하는 법’을 만들어낸 건 퀀텀의 자체적인 능력이었다.
또한, 퀀텀이 이런 식으로 리만 가설을 증명하게 된 건, 코어 마인드에 내장된 기계 심리 모듈 덕이었다.
퀀텀의 지적 능력이 너무도 뛰어나서 과학을 초월한 마법과 같은 미래 기술을 지금 시점에서 출시한다면, 이는 회귀 전 구글의 강인공지능인 골든실버의 전철을 밟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미래 기술을 큰 고민 없이 도입했다가 되돌릴 수 없는 사고를 친 게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가 여러 번 연속적으로 벌어지자 강인공지능이 완성한 미래 기술의 도입에 대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구글이 외주까지 줘 가면서 기계 심리 모듈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게 아니다.
더구나 기계 심리 모듈의 완성으로 기술적 특이점에 대해 이해가 넓어졌지만, 그 이후에도 특별한 미래 기술은 매우 한정된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었다.
강인공지능이 완성되면 유토피아가 열릴 것 같았는데, 그건 선택받은 소수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되었다.
이러한 전철을 막기 위해 유재원은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를 만들었고, 회귀 전의 역작이었던 기계 심리 모듈도 아예 코어큐브에 내장시켜 놓았다.
덕분에 퀀텀은 유재원의 뜻을 십분 이해하며, 리만 가설의 증명을 자기만의 언어가 아닌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냈다.
덕분에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기술적 특이점이 왔다!
-퀀텀, 리만 가설 증명으로 강인공지능임을 증명!
퀀텀이 강인공지능인지 아니면 골드의 상위 버전인지 의문을 표하던 사람들이 단번에 싹 사라졌다.
동시에 컴퓨터 보안 관련 직무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이대로 소수 키 암호체계가 무용지물이 되면 금융 시스템부터 무너질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퀀텀의 추가적인 설명에 당장 위협은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는 안심했다.
소인수 분해를 쉽고 빠르게 하는 법도 자릿수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면 결국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신 퀀텀의 양자 우위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되는데, 퀀텀을 임대하거나 연산력을 빌려주는 등의 상업적 이용은 하지 않을 작정이니 지금 단계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유재원은 AES와 같이 양자 암호화와 양자 패킷을 이용한 새로운 암호체계도 무료로 보급할 것임을 약속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체계가 갑자기 붕괴할 일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유재원의 조치 덕분에 학계는 수백 년의 난제가 풀렸다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강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도 빠르게 해소되는 것은 덤이었다.
-퀀텀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는데, 우리도 즐길 만한 건 없나?
-갑자기 남의 집 잔치가 된 것 같네.
그야말로 광란의 분위기였지만, 여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DC는 매우 상업적인 행사였고, 대중 친화적이었던 행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나게 학술적인 발표만 계속되니, 어색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중적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지표가 바로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의 시청자 숫자였는데, 100만은 거뜬히 넘겼던 그 숫자가 60만까지 줄어들었다.
유재원과 퀀텀은 당연히 대비책을 세웠다.
리만 가설을 해치워 버린 퀀텀은 이제 재미있는 걸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영상이었다. 드림 스타디움의 자랑인 초대형 인피니티 디스플레이를 통해 비치는 건, 비현실적인 비주얼이 충만한 영상이었다.
두 개의 달, 대기권을 뚫고 자라나는 거대한 나무, 하늘을 나는 고래와 이름 모를 거대한 해양 생물들. 그리고 다양한 아인종 이종족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한 세계를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영상이었다. 대신 사실성은 너무도 충만했다.
드래곤과 같이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환상종은 아무리 잘 구현한 CG라도 뭔가 좀 어색한 게 있다. 그런데 퀀텀이 틀어준 영상 속 드래곤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어? CG영상인데?
-응? 뭐지! 게임인가?
-신작 게임 트레일러다!
2일 차 첫 발표로 갑자기 리만 가설 증명이 등장해 버린 탓에 뒤로 밀려나 있던 게이머들은 트레일러 영상만 보고는 어마어마한 기대감을 뿜어냈다.
판타지스러운 게임을 보니 완전히 새로운 IP의 등장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트레일러 영상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고, 환상적이었던 모든 요소를 지워 버렸다.
-잘 보셨나요?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에서 다시 나타난 퀀텀의 캐릭터는 두 팔을 벌리며 주변을 돌았다.
-이곳은 저의 실체가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입니다.
퀀텀의 멘트를 유재원식으로 해석하자면 코어큐브의 빈 공간을 이미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은 이렇게 백색의 공간이지만, 모두의 상상력을 동원하면 처음 보셨던 환상적인 세계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딱 하나 부족한 건 바로, 친구들.
-지구보다 더 큰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도 저 혼자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새로운 세상에 호기심이 넘치는 친구들을 이곳으로 초대할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바로바로! 사이버 스페이스 다이브 기술!
퀀텀은 아기자기한 손 위에 VR 세트를 띄워 보였다.
작년 ID 그룹이 출시했던 증강 현실 고글과 글러브 세트에서 한 번 더 진화한 제품이다. 그냥 3D 모델링만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프로토타입도 만들어졌다.
퀀텀이 자아를 깨달은 지 하루 만에 완성한 것이 리만 가설의 손쉬운 증명법이었고, 다음 날에 만들어낸 것이 바로 사이버 스페이스 다이브 기술이었다.
심심하다는 사소한 이유로 어마어마한 기술적 특이점을 엄청나게 뛰어넘는 걸 만들어냈다. 물론 ID 그룹의 VR 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긴 했지만, 퀀텀이 구현한 사이버 스페이스 다이브 기술은 양방향이라는 게 중요했다.
퀀텀이 시스템에 접속한 사람의 의식에 직접 오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는 곧 완벽한 가상현실을 의미했다.
기기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기존의 VR 제조 방식에 추가적인 몇 가지 부품과 작동 방식을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사이버 스페이스 다이브가 가능했다.
그야말로 기술적 특이점 이후 쏟아져 나올 제품에 대한 맛보기로 이보다 좋은 건 없다.
유재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퀀텀에 최초로 데이터를 전송할 때, 의도적으로 게임과 판타지 세계관에 대한 데이터를 앞쪽에 배치해 두었는데, 대박이 터졌다.
강인공지능 퀀텀이 등장했으니 노동 혁명도 이제는 시간문제다. 노동 혁명이 이뤄지고 난 다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여가 시간을 약속받는 세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들의 욕망을 100% 충족시켜 줄 엔터테인먼트가 바로 가상현실이었다.
게임은 물론이고 공연과 스포츠, 심지어 교육과 업무까지.
완벽한 가상현실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퍼텐셜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현실과 결합해 만들어낼 서비스도 차원이 달랐다.
-사이버 스페이스 다이브 체험관도 준비해 놨으니 한번 놀러 오세요!
퀀텀의 말에 환호하지 않는 메인 스테이지 관객은 없었다.
그날 저녁.
-퀀텀의 초대장! 완벽한 가상현실!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본다! 심지어 냄새까지도 느껴진다!
-약간 불안정한 면도 있지만, 조만간 보완할 것 약속!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던 매스컴들은 단번에 논조를 180도 바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체험관에 가서 한번 사이버 스페이스 다이브를 경험하고 나오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 드림 스타디움의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던 틈에 있었는데, 편안한 리클라이너에 누운 듯 앉아서 VR 고글을 착용하자 세상이 달라졌다. 뭔가 나른해지면서 살짝 선잠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백색의 공간에 있었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퀀텀의 귀여운 모습이라니.
‘어서 와요’라고 말한 퀀텀이 핑거스냅을 한 번 튕기자 백색의 공간은 완전히 달라졌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판타지 세계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따스하게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 속에 섞여 있는 생명력 넘치는 숲의 기운. 그리고 저 멀리에 아스라이 보이는 두 개의 달과 거대한 나무.
“여기, 선물이에요. 바로 드셔 봐요!”
넋이 나가 있는 기자에게 퀀텀은 보석을 빚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작은 과일을 하나 내밀었다. 한 입에 넣어 씹으니 상큼한 과즙이 뿜어져 나왔다. 현실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그런 환상적인 맛이었고, 먹자마자 전신에 기운이 불끈 샘솟았다.
-체력이 대폭 회복되었습니다.
-전신에 기운이 넘쳐납니다.
추가적으로 들리는 시스템 메시지는 덤이었다.
이후 퀀텀과 체험자는 판타지 세계를 걸으며 이세계의 풍경을 실컷 즐겼다. 그러고서 로그아웃을 해 보니 현실에서는 불과 3분도 지나지 않았다.
가상현실 속에서 비주얼적 충격과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은 지금도 생생했기에, 매스컴에 쏟아지는 기사들은 그야말로 호평뿐이었다.
일부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문제나, 감각이 조금 비틀린 듯한 느낌을 받았던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문제없이 가상현실을 즐겼다.
덕분에 체험을 마친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상현실 속에서 보았던 판타지 세계관의 게임이 언제 출시하는지 문의가 빗발쳤다.
IDDC가 있을 때마다 매번 있는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오죽하면 티파니와 혜성이도 유재원에게 직접 물었을 정도다.
덕분에 ID 그룹의 대응도 평소와 달랐다.
-ID 그룹, 1년 내에 가상현실 MMORPG 판타지아 런칭할 것!
이례적으로 2일 차 공식 일정이 끝난 저녁에 ID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를 냈다. 가상현실 게임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게임으로 등극할 판타지아의 출시를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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