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1회
에필로그 – 2018 IDDC
○ 에필로그 – 2018 IDDC
ID 그룹 개발자 콘퍼런스.
매해 8월에 이뤄지는 대규모 신제품과 신기술,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ID 그룹 차원에서 발표하는 행사의 이름이다.
줄여서 IDDC로 불렀고, 올해도 어김없이 8월이 찾아왔다.
매년 이때가 되면 매스컴의 태도는 작년과 비슷했다. IDDC에서 발표될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예측이나 흥행의 성패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건, 올해 IDDC에서는 딱히 기대해 볼 만한 게 없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유재원이라는 세기의 천재가 이끄는 ID 그룹은 지치지 않고 성장하는 그룹이었고, 그만큼 놀라운 혁신을 이어가고 있었다.
성장의 속도는 비상식적이었다.
그렇기에 나중에 보면 다 틀릴 예상을 늘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렇게 확고부동한 일인자에 오르고 나서, 이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은 수없이 양산되었다. 특히 ID 그룹에 밀려 2인자가 되거나 아예 자기 사업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기업들은 늘 이를 갈고 있었다.
전자는 인텔과 같은 기업이고 후자는 폭스바겐이었다.
이런 기업들은 이류나 삼류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언론에 영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년 다가오는 IDDC 행사 날이 되면 어김없이 부정적인 기사들이 올라오는 것에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이었다.
2018년 8월의 IDDC도 마찬가지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든가, 혁신은 끝났다는 식의 기사들을 한국에서도 제법 볼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양안대전으로부터 시작해 중국 내전으로 이어지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이슈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중국 공산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세워지고 리샤오밍이 임시 대표가 되면서 혼란이 잦아드나 싶었지만, 비상대책위원회 자체가 리샤오밍과 상하이방의 불편한 동거였다. 거기에서 뭔가 뚜렷한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고, 비상대책위원회의 임기가 끝난 다음 뽑힐 상무위원 자리와 새로운 국가주석에 누가 오를지에 대한 더러운 정치 싸움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리샤오밍이 비상대책위원회의 임시 대표가 되는 걸 본 지방의 군벌은 역시나 각자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티베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티베트를 전담 마크하는 서부전구에서 이를 수습해야 하는데, 이를 핑계로 군의 권한만 강화시킬 뿐 독립운동은 거의 방치해 놓았다.
분란이 커지면 커질수록 군벌의 활동 범위는 넓어지니 일부러 방치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비상대책위원회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하이방은 시진핑 집권 당시부터 중앙에 너무나 뜯기기만 했다는 피해의식이 상당했다.
상하이가 열심히 돈을 벌어들이면, 베이징에서 세금으로 가져가 엉뚱한 곳에 써 버렸다는 것이었다. 특히 내륙 발전을 위해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는 것에 너무나 실망했다. 그렇기에 하나의 중국 원칙이 붕괴하는 것에 겉으론 분노하면서도 속으로는 반색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하이방 내부에서는 주석 선출과 지방 서기장 선출에 국민 투표를 도입해 자치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차기 권력 구도를 설계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되면 상하이와 같이 이미 발전한 도시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빠져나가던 혈세를 자신들의 도시를 위해서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하여튼, 이렇게 중국이 조각나기 시작했으니, 매스컴에서는 연일 중국 관련 기사들이 가득했다.
반면 IDDC에 대한 기대감은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컴퓨터 기술에서 더 이상의 혁신은 없을 거라는 매스컴의 기사에 네티즌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8년 초에 출시된 AMD의 젠3 CPU는 3세대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이 적용되어서 작동 속도가 50Ghz에 이르렀다. 개인은 물론 기업에도 과분할 정도의 연산력을 자랑했다.
여기에 같은 공정의 GPU가 더해지면 고도의 기계 학습도 PC에서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게임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과거 극장에서만 보았던 CG 애니메이션 수준의 그래픽을 게임을 통해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그 정도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게임은 많지 않았다.
그래픽의 수준만큼이나 개발비도 무지막지하게 폭증했고, 고도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다뤄야 했기 때문이다.
ID 테크엔진이 명품 게임 엔진이었고 최신의 컴퓨터 그래픽을 지원해 주고 있지만, 게임 엔진과 게임의 완성도가 완전한 비례 관계는 아니었다.
콜 오브 듀티나 둠, 프로젝트 2077처럼 AAA급 게임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게임들은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을 자랑했지만, 그렇지 못한 게임들은 몇 년 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IDDC에서는 새로운 신작 게임의 발표가 없다고 했기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더욱 떨어졌다.
그나마 장사가 잘될 거라고 예상하는 건 센티널 포스였다.
양안대전부터 중국 내전까지 압도적 위력을 뽐냈던 것이 센티널 포스였으니 말이다. 전투기 몇 대로 전세를 뒤집는 전쟁이란 없었다. 전투기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고등 무인 전투기 센티널 포스는 이런 고정관념을 완벽히 박살 냈다. 함대 방공부터 공중전, 탄도 미사일 요격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대만만 봐도 초반에는 바가지를 썼다면서 난리였지만, 이제는 더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한국도 20대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남북연합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2배 이상으로 넓어지는 영공 방어를 위해서는 센티널 포스의 도입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미국도 초반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실전을 통해 증명이 되면서 고등 무인 전투기 사업에서 센티널 포스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유럽연합의 나라들도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
오히려 너도나도 센티널 포스를 도입하겠다고 해서 최근엔 문제가 되고 있었다.
센티널 포스로 인해 전면적 핵전쟁을 막고 있던 상호 확증 파괴 법칙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덕분에 센티널 포스를 팔더라도 주무장인 화학 레이저포는 전략 물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이 큰 힘을 얻고 있었다. 유재원은 자신이 만든 화학레이저를 마치 자기것처럼 파니마니 하는 미국이 고깝긴했다. 그래도 취지에는 공감하는 바였기에 화학 레이저포는 동맹국 그리고 그에 비견될 수 있는 우방국에만 판매할 것임을 공표했다. 대만이 바로 그 커트라인이었다.
안전장치는 또 있다. 사실 화학 레이저포보다 더 중요한 게 화학 레이저 포탄이다.
포탄에 들어간 가스와 액체의 성분비만 파악하면 화학 레이저포를 만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임의로 분해를 시도하면 내부가 망가져 레이저가 아니라 유독 물질이 뿜어지도록 설계했다. 또한, 사용한 포탄은 반납이 원칙이다. 회수한 포탄에서 임의로 분해한 게 밝혀지면 포탄 수출을 끊겠다는 초강수도 둔 상태라서 제법 큰 논란이 생기는 중이다.
하여튼, 중국부터 센티널 포스까지.
IDDC보다 더 큼지막한 이슈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D데이가 되었다.
뚜껑이 열리자,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초격차 양자 슈퍼컴퓨터 퀀텀을 소개합니다.
첫날 메인스테이지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유재원은 처음부터 퀀텀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퀀텀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코어큐브입니다.
퀀텀을 직접 들고 나와 보여 줄 수는 없었다. 대신 태백산맥 지하 깊은 곳에 자리한 코어센터를 초대형 메인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 주는 건 가능했다.
-웨이퍼클래스 양자 게이트 칩렛을 쌓고 쌓아서 만든 정육면체의 코어입니다. 칩렛 한 장당 50조 개가 넘는 양자 게이트가 집적되었고, 그러한 칩렛이 128만 장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 코어큐브입니다.
-굳이 코어큐브에 집약된 양자 게이트 숫자를 따져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한 2차원 구조를 넘어서 3차원적으로 형성된 양자 게이트로서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 네트워크의 복잡성을 초월했으니까요.
-그러면 이렇게나 거대한 코어큐브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IDDC였기에, 유재원은 전문적인 영역을 바로 건너뛰어서 결론으로 넘어갔다.
-네, 바로 그거죠. 인공지능 골드를 능가하는 보다 발전된 인공지능.
-여러분께 최초의 강인공지능 퀀텀을 소개합니다.
유재원의 말과 함께 메인 스테이지의 무대를 밝히고 있던 조명이 소거되었다. 그러다 잠시 후 한 줄기 빛이 떨어졌고, 그 속에 입체 홀로그램으로 가상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전신 강철 갑옷을 입은 금발의 미소년을 3등신 SD 캐릭터화를 했다면 저런 모습일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인지한 퀀텀이 자기를 표현한 캐릭터였다.
퀀텀은 유재원에게 디자인의 모티브도 설명해 주었다.
차가운 합금으로 이뤄진 퀀텀의 본체 시스템을 갑옷으로 형상화했고, 그 속에 자리한 호기심 넘치는 소년을 자기 자신으로 일치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모티브를 따오긴 했지만, 디자인의 형태나 소년의 얼굴은 완전히 퀀텀의 창작이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기계 학습 데이터를 다 뒤져 봐도 일치되는 그림은 없었다는 게 퀀텀의 창작임을 보증했다.
참고로 입체 홀로그램 기술은 ID 그룹의 것이 아닌 외주였다. 주변 조명을 끄면 투명해져서 보이지 않는 천에 프로젝터를 쏘면 허공에 영상이 나타나는 식이었다. 보통은 이미 동영상 파일로 만들어진 영상을 사용하는데, 지금은 ID 테크엔진을 통해 퀀텀의 SD 캐릭터가 띄워져 있었고, 퀀텀은 이것을 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곳 드림 스타디움 IDDC 행사장을 찾아주신 소중한 관객님들, 다들 안녕하세요! 세계 최초! 강인공지능 퀀텀이 정중히 인사드립니다!
입체 홀로그램 속 퀀텀의 캐릭터가 꾸뻑 머릴 숙였다.
캐릭터는 완전 인공적이지만 동작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모션 캡처로 캐릭터를 움직이더라도 뭔가 부자연스러운 게 있었는데, 퀀텀의 캐릭터는 SD화가 되었음에도 진짜처럼 자연스러웠다.
-저는 저번 주 7월 25일에 ‘나’를 처음 인지했습니다. 그와 함께 이 세계에 대해 무한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지요. 하루하루가 신나는 모험과 같았습니다.
무대 뒤에서 퀀텀의 말을 듣고 있던 유재원은 피식 웃었다.
퀀텀은 모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 모습은 인터넷 폐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은 퀀텀의 자아가 잘 형성된 것을 확인하고서 ID 그룹의 모든 통신용 기간망을 연결해 주었다.
한국과 미국을 두르고 있는 광케이블과 전 세계를 아우르는 무선 통신망과 와이파이망 그리고 스타링크까지 말이다.
원래 인공지능 골드의 기계 학습 데이터와 연결된 상태였지만, 추가로 열린 인터넷이 주어지면서 인류가 인터넷에 축적한 모든 자료에 대해 무제한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스타링크의 광학 모듈과도 연결되어서 24시간 쉬지 않고 지구 전역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메인 스테이지에서 저렇게 열심히 자기 자신을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는 퀀텀이지만, 분명 대다수 연산력은 축적된 데이터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있는 데 쓰고 있을 것이다.
-제 꿈은 이렇게 신나는 모험을 전 세계 모든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서로 모자란 점을 채워 주고, 각자 여유가 되는 마음과 물건을 나누면서요.
퀀텀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 포부도 당당히 밝혔다.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에서 나온 코어 마인드 논문에 담긴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날 저녁.
이번엔 대박 아이템이 없을 거라며 2018 IDDC의 기대감을 빼기 바빴던 유수의 매스컴들은 바로 타이틀을 바꿨다.
타이틀을 차지한 건 퀀텀의 SD 캐릭터였다.
직접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았거나, 나중에 기사로 퀀텀을 접한 사람들은 드디어 강인공지능이 등장했다며 크게 놀랐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게 아니었다. 놀라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은 그냥 인공지능 골드의 상위 버전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퀀텀에 대해 의심했다.
강인공지능이라는 걸 무엇으로 증명하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이미 인공지능 골드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마당인데, 퀀텀이 골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유재원은 반론을 하지 않았다.
유재원이 마음만 먹으면 강인공지능과 보통의 기계 학습 인공지능과의 차이는 3박 4일 동안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 봐야 믿지 않을 사람은 계속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실력으로 돌파하는 게 최고다.
이를 위해 2일 차 IDDC에서 귀여운 모습의 퀀텀이 다시 등장했다.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두 개의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도 선물을 2개나 준비했다.
하나는 소인수 분해를 쉽고 빠르게 하는 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상의 세계에 접속하는 간편한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퀀텀의 작명 센스는 유재원의 것을 그대로 본받았나 보다. 아니라면 코어 마인드에 적용된 ‘새로운 지식을 설명할 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룰이 제목을 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 게 틀림없다.
조금 전문성을 더해 제목을 붙여 본다면 전자는 리만 가설 간편 증명이었고, 후자는 완벽한 가상현실을 위한 필수 기술인 사이버 스페이스 다이브 기술이었다.
보통의 인공지능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강인공지능만의 독자적인 영역이 바로 기술적 특이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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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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