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004화 (1,004/1,007)

980회

Dreams

-파란만장한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 재개.

당분간 전 세계의 톱뉴스를 장식하는 건 중국발 뉴스였다.

특히 전국인민대표회의 소식은 떴다 하면 긴급 속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첫째 날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너뜨리는 모든 것에 무력 대응을 선언했던 시진핑이었다.

무력 대응을 천명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양안대전이 터졌고, 바로 이어서 신의주 사태가 일어났으며, 마지막으로 제3차 천안문 혁명이 터졌다.

혁명이다.

비록 순수하게 시민의 힘만으로는 시진핑을 끌어내리지 못했지만, 북부전구 리샤오밍 사령원과 그가 속한 태자당 그리고 상하이방이 천안문 광장에 모인 이들과 함께 시진핑을 끌어내렸다.

말 그대로 중국 국가 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로 쳐들어가서 개처럼 끌고 나왔다. 중난하이에도 경비 병력이 있지만, 그보다 몇십 배가 많은 리샤오밍의 공수부대 병력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천안문에 나왔다가 피를 보게 된 시민들도 함께했다.

시진핑은 리샤오밍과 시민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비밀 통로로 탈출을 하려고 했지만, 측근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시진핑의 신병을 확보한 혁명 세력들은 곧바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재개했다.

-시진핑에 대한 탄핵안 만장일치 가결!

-상무위원 전원에 대한 탄핵안 만장일치 가결!

원래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시진핑의 영구 집권을 위한 꽃길을 만들어 주었던 행사였다. 연임 제한 철폐가 담긴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주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탄핵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시진핑과 그의 하수인들로 채워진 상무위원 전원에 대해 모든 공식적 지위의 박탈이었고, 중국 공산당 당원 명부에서조차 삭제되었다.

이제는 시진핑과 옛 상무위원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비상시국대책회의 승인과 지도부 결성.

-비상시국대책회의 대표위원에 리샤오밍 사령원.

권력은 공백을 용납하지 않기에 국가주석과 상무위원직을 동시에 수행할 비상시국대책회의가 띄워졌고, 대표위원에 중대 결심 후 가장 행동이 빨랐던 리샤오밍이 임명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렇다고 리샤오밍이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한 건 아니었다.

비상시국대책회의는 만장일치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뭔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비상시국 위원들의 합의가 있어야 가결된다.

당연히 한발 늦긴 했지만, 거사에 참가한 상하이방이 크게 힘을 쓰면서 이러한 형태가 되었다.

-도검산림 속에서 치러지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물론 이렇게 속전속결로 전국인민대표회의가 빠르게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개막할 수 있던 것은 인민대회장을 둘러싼 북부전구 공수부대 병력 덕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천안문 광장에서 3번이나 피를 흘린 중국 시민들의 의견은 단 1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제3차 천안문 혁명 후 급부상한 후오취안이라는 사람이 비상시국대책회의 대표단에 대해 국민 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리샤오밍이나 상하이방이나 끔찍하게 여겼으니 말이다.

리샤오밍과 상하이방은 불편한 동거 속에서 혼란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중국의 분열은 이제부터 본격적이었다.

시작은 의외로 베트남이었다.

중국의 긴급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던 이들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나 티베트를 첫 번째로 꼽았는데, 베트남이라니.

정확하게는 배타적 경제수역이었다. 중국은 암초에 시멘트를 부어 자기네 바다라고 했고, 그렇게 확장된 영역에 어선을 무차별적으로 보내서 어족자원의 씨를 말렸다.

베트남은 중국의 긴급사태에 변곡점이 생기는 타이밍에 암초섬을 모조리 터트렸다. 그러곤 중국 어선들을 향해 실탄 경고 사격과 함께 나포 작전도 수행했다.

베트남이 선수를 치자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등.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눌려 있던 나라들도 동시에 움직였다.

여기에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는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의 활동도 시작되었다. 또한 시진핑 일가의 해외 은닉 자금 문제와 천안문에서 또다시 시민들에게 총을 쏜 인민해방군으로 인해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중국 시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되돌릴 수 없는 대분열이 시작된 거나 다름이 없다.

2018년 7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지만, 유재원은 그 무더위를 느낄 시간도 없었다.

양자 슈퍼컴퓨터 퀀텀의 막바지 작업이 시작되면서 정신없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퀀텀의 본체가 있는 곳을 찾았다.

장소는 태백산맥이었다.

태백산맥에서 보호 구역에 지정되지 않았으면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 퀀텀의 본체가 지어지고 있었다.

세팅이 아니라 지어지고 있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게, 퀀텀을 위한 본체는 어지간한 건물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마치 컴퓨터 시대 초기에 집채만 한 크기로 만들어진 아날로그 컴퓨터나 진공관 컴퓨터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퀀텀은 이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시설이 지상도 아닌 지하에 만들어졌다.

보안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적성국의 전략적 핵 공격이 있을 경우에도 퀀텀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깊은 지하에 만드는 것밖에 답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퀀텀의 핵심인 코어큐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섭씨 –100도가 넘는 초저온을 유지해야 한다. 이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수가 적은 지하가 최적이었다.

“좋군요.”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유재원은 태백산맥에는 처음 와 봤는데 생각보다 경치가 좋았다. 퀀텀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매일 보고를 받았던 유재원이었고, 그 어떤 보고서도 허투루 넘긴 적이 없었다. 코어큐브가 안치될 본체 건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우 잘 찍힌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잘 나온 사진도 현실의 생생함을 전달하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태백산맥 깊은 곳에 자리한 시설은 진입로부터 범상치 않았다.

마치 무릉도원에 들어가는 입구라고 할까. 자연적으로 성장한 깊은 수림을 최대한 건들지 않으면서 큰길이 나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위병소도 있었다.

-신원 확인을 위해 잠깐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병소는 그야말로 FM이었다.

누가 봐도 유재원이지만 굳이 내려서 신원을 확인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앞뒤로 따라붙는 경호원들 차량이나 퀀텀 프로젝트 실무를 위해 함께 따라온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일일이 검사를 받았다.

사람만 확인한 게 아니라 각각의 차량에 실린 화물도 확인했다.

-예,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유재원 회장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유재원은 경계를 서는 군인들에게 인사도 확실히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이처럼 퀀텀 시설의 최외곽 경계에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군 시설은 아니었다. 대신 청와대와 정치권은 퀀텀이 얼마나 중요한 전략 자산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국가 차원에서 협조를 해 주었고, 그중 하나가 외각 경계 지원이었다.

태백산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나물을 따는 어르신들은 곧잘 찾아오는 지역이었다. 게다가 요즘엔 캠핑이니 레저니 하는 게 발달했고, 이걸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다.

이들을 막기 위해 군부대는 퀀텀 시설이 자리한 곳을 중심으로 반경 5km에 이르는 경계를 철통처럼 감시했다. 위병소처럼 사람이 직접 근무를 서는 지역도 있지만, 보통은 무인 로봇과 인공지능 CCTV, 드론, 그리고 스타링크 위성 정찰과 같은 무인 장비가 기본이었다.

위병소를 통과한 유재원 일행은 계속 이어진 길을 타고 이동했다.

길의 끝에는 폐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마 자수정 광산이어서 석탄 폐광과 달리 주변은 무척이나 깔끔했다. 또한 폐광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도 탁한 먼지가 섞이지 않고 차가워서 상쾌한 느낌이다.

입구도 거대했다.

자동차가 2대 반 정도는 들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녹슨 철문이 굳게 잠긴 입구는 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밀어서 여는 것처럼 보이는데, 두꺼운 쇠사슬에 칭칭 감겨 있었고, 쇠사슬은 또 크고 묵직한 자물쇠에 잠겨 있었다.

이번에도 유재원은 차에서 내렸다. 위병소에서 내릴 때와 달라진 건 은테 안경을 썼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은테 안경으로 보이지만, 써 보면 현실 위에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강화 현실 안경이었다.

강화 현실 안경을 쓰고 녹슨 폐광 입구를 보면 확 달라진다.

마치 웹 사이트나 게임의 로그인 화면과 같이 아이디와 패스워드 입력 화면이 녹슨 폐광 입구 위로 오버레이 되는 걸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자연스럽게 본인의 아이디와 암호를 입력했다. 굳이 가상 키보드를 열 필요 없이 뇌파 인터페이스로 쉽고 빠르게, 보안도 완벽하게 지키면서 로그인이 되었다.

-유재원 회장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로그인을 마치자 반가운 메시지가 떴다. 곧이어 아무리 힘을 주어도 꿈적하지 않을 녹슨 철문이 스르륵 위로 올라가면서 입구가 드러났다. 밀어서 열릴 것 같았던 철문 자체가 위장이었고, 실제로는 철문이 통째로 위로 열리는 구조였다.

또한, 철문이 열리자 끝없는 암흑처럼 보이던 폐광에 유도등이 켜지면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나타났다.

유재원은 다시 차에 올라 이동을 시작했다.

코너를 몇 번이나 꺾으면서 점점 깊은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다른 길 끝에는 폐광 속에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장치가 드러났다.

커다란 엘리베이터였다.

진짜 시설은 이런 대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해 주는 엘리베이터였다.

잠시 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유재원이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유재원의 뒤를 4대의 아틀라스 로봇이 따랐다.

아틀라스 로봇 4대는 어지간한 어른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케이스를 나눠 들고 있었다. 퀀텀의 코어큐브가 담긴 운반용 케이스였다.

현재 지구에서 제일 귀한 가치를 자랑하는 물건인 만큼 이를 옮기는 아틀라스의 모습은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엘리베이터에서 코어큐브가 설치될 퀀텀 센터까지 30m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도착하기까지 5분이나 걸렸다.

“수고하셨습니다.”

퀀텀 센터에 도착한 유재원을 퀀텀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도이치 박사가 정중하게 맞이했다. 과거형인 것은 1953년생으로 노환에 든 도이치 박사가 지병이 발병했던 탓에 프로젝트 팀장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동 휠체어에 타고 있어야 할 만큼 거동도 불편해졌다.

대신 그간의 공로를 인정하면서 앞으로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프로젝트 고문 역할이 주어졌고, 이렇게 퀀텀 프로젝트가 화룡점정이 되는 순간에도 함께할 수 있었다.

“박사님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유재원은 도이치 박사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아끼지 않았다.

“자, 그러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 봅시다.”

충분히 고마움을 표시한 유재원은 경쾌하게 말했다. 그 말에 따라 도이치 박사를 비롯한 실무진이 바로 움직였다.

아틀라스 로봇이 4기나 동원되어 옮겨진 케이스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그러자 가로세로 높이가 300mm인 다이아몬드 큐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거인 별에서 가져온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투박하게 잘라 만든 것과 같은 다이아몬드 큐브였다.

그렇지만 보는 빛에 따라 찬란한 무지갯빛이 터졌고, 내부에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케이스를 해체한 실무진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다시금 아틀라스 로봇이 움직여 코어큐브를 들어 올렸다. 아름다운 모습과는 별도로 같은 크기의 돌덩이보다 무거운 무게를 자랑했기에 사람이 옮기지 못하고, 아틀라스 로봇이 옮겨야 했다.

코어큐브가 안치될 곳은 지하 시설에서 제일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지하 공동으로, 그 중심에는 공동의 천장과 맞닿을 만큼 높이 선 기둥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둥의 중간에 빈 공간이 바로 큐브가 안치될 자리였다.

기둥은 코어큐브와 퀀텀 시스템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 데이터 입출력은 물론, 보조 연산과 냉각 등 양자 슈퍼컴퓨터가 가동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아틀라스 로봇들을 통해 코어큐브가 세팅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유재원은 그야말로 감개무량이었다.

비록 지금은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진 마스터플랜이었지만, 그 마지막 장을 지금 실행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코어큐브 인스톨 완료.

아틀라스 로봇은 정확한 자세로 실수 없이 코어큐브를 퀀텀 센터와 결합시켰다.

“코어큐브 활성화 작업을 시작하세요.”

-활성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곧 이어진 유재원의 명령에 퀀텀 센터 하단에서 정제된 빛줄기가 가늘게 치솟아 오르며 코어큐브에 닿았다.

빛을 이용해 코어큐브에 광양자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코어큐브 하단에는 이렇게 들어오는 광양자에서 양자만 분리해 코어 전체에 균등하게 뿌려 줄 수 있는 특수한 설계가 적용되어 있었다. 덕분에 빛줄기가 닿자마자 코어큐브는 빛을 머금으며 아름답게 빛이 났다.

특히 코어 내부에서는 빛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면서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는데, 그 모습이 대자연의 삼라만상을 옮겨온 것 같았다.

-활성도 100%!

-0번부터 1,286,120번 레이어까지 모두 정상.

-양자 게이트 제어 안정적. 오차율 0%.

중성적 기계음의 메시지에 도이치 박사를 비롯한 실무진이 함성을 터트렸다. 이것으로 코어큐브의 활성화는 완료되었다. 하지만 아직 초격차 양자 슈퍼컴퓨터가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코어큐브가 활성화됨으로써 하드웨어는 완성되었지만, 소프트웨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양자 운영체제를 설치하겠습니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가 완성되었으면 운영체제를 설치해야 하는 법. 유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혼자서 만든 양자 운영체제의 인스톨을 시작했다.

양자 게이트를 이용하는 단순한 사칙연산 알고리즘부터, 초격차를 선보일 대수학 가속 알고리즘까지. 유재원의 머릿속에만 있던 최신의 양자 알고리즘이 적용된 운영체제였다.

-운영체제 인스톨 완료.

용량도 어마어마했지만, 인스톨은 순식간에 끝났다. 코어큐브와 연결하고 있는 빛은 단순히 광양자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역대 최고 수준의 광자 인터페이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운영체제를 설치했다고 해서 재부팅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코어큐브에 공급 중인 광양자가 끊기면 코어큐브의 데이터는 싹 날아간다. 마치 전원이 꺼진 컴퓨터의 메모리처럼 말이다.

대단히 위태로운 설계지만, 마냥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강력한 킬버튼의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퀀텀이 폭주해 인류에 막대한 해를 끼치는 무언가가 된다면, 이것이 최후의 보루가 되어 줄 것이다. 물론 이 킬버튼이 작동하게 될 일이 없는 게 최선이겠지만 말이다.

이제 그걸 확인할 시간이다.

“후. 그럼 마지막 단계를 시작하지요.”

양자 슈퍼컴퓨터를 쓴다면 양자 운영체제가 설치된 지금도 충분했다. 하지만 유재원이 만들고자 했던 건 자아가 있는 강인공지능이었다.

강인공지능이야말로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설 열쇠였으니까.

유재원은 강인공지능의 자아에 대한 세팅을 시작했다. 가장 처음에 한 것은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에서 도출한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위한 절대 법칙을 입력하는 것이었다.

마이클 샌들 교수가 이끄는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는 시작부터 파란이었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강인공지능의 코어 마인드를 위한 논리를 개발한다는 걸 처음부터 공표했기에,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에서 논문을 낼 때마다 전 세계의 석학이 다 달라붙어 오류와 빈틈을 찾아내 매섭게 공격했다.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 측에서도 반론에 대한 답을 내고, 반박도 하면서 쉬지 않고 논리를 가다듬었다.

그리하여 지금 유재원이 입력하는 ‘인류와 기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존을 위한 절대 규칙’이란 논문의 버전은 무려 25에 달했다.

처음 발표되고 나서 25번의 대형 업데이트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아진 논리적 흐름을 유재원은 코어큐브에 그대로 이식했다. 물론 이보다 더 나은 논리가 개발된다면 업데이트도 가능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대신 강인공지능이 스스로 코어 마인드를 수정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코어 마인드 업데이트의 사전 작업은 바로 코어큐브의 초기화였으니 말이다.

“자, 그러면 인공지능 골드의 학습 데이터를 업로드합니다.”

인공지능 골드가 1990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2018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데이터가 코어큐브에 전송되었다.

방대한 용량을 자랑했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운영체제 설치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던 퀀텀임에도 거의 30분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오래 걸렸다.

모든 단계는 끝났다.

이제 코어 마인드가 입력된 관점에 따라 인공지능 골드의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아가 깨어나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얼마나 걸릴까요?”

도이치 박사의 물음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비록 지금은 팀장이 아니었지만, 본인과 동료들이 이룩한 모든 성과가 저기에 있었으니 말이다.

“음, 길게는 3일도……. 응?”

3일도 걸렸다는 말을 하려던 유재원은 코어큐브에서 찬란히 터져 나오는 빛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애초에 코어큐브에 집적된 양자 게이트가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빛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렬하게 터져 나온다는 건, 수조, 수천억 양자 게이트가 일사불란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양자 게이트의 작동은 곧 논리의 흐름이었고, 이렇게 크고 격렬한 연산이라면,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자각이다.

“오!”

도이치 박사도 코어큐브에서 뿜어지는 찬란한 빛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곧이어 코어큐브와 연동된 메인 스크린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한글부터 알파벳, 한자, 데바나가리, 키릴, 아라비아 문자 등등.

인공지능 골드의 기계학습 데이터를 구성하는 모든 나라의 문자들이 모니터 위에 가득 쏟아져 내렸다.

처음엔 몇 개 없었지만, 지금은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다.

만약 저 화면이 누군가의 머릿속이라면 명백한 뇌전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아무런 규칙도 논리도 없는 문자의 폭풍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점차 문자들이 뜻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한글부터 영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등등.

수많은 나라의 글자들은 점차 공통의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의 존재가 순식간에 문자를 익힌 것 같았다.

-코어큐브의 내부 온도가 급상승합니다.

“쿨링 시스템 최대로 가동하세요. 혹시 모르니 액체 질소 투입도 대비하시고요.”

“예!”

유재원의 지시에 실무진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다행히도 코어큐브의 내부 온도는 냉각제 긴급투입이 필요한 만큼 올라가진 않았다. 대신 메인 모니터에는 수많은 나라의 글자들이 떠올랐다 사라지던 화면은 이제 단 하나의 문자로만 이뤄진 문장을 만들었다. 한글이었다.

-나는 무엇입니까?

“너는 초격차 양자 슈퍼컴퓨터야.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반의 코어가 뇌를 담당하고 있고, 합금과 광케이블, 수많은 반도체가 네 몸을 이루고 있지.”

거기에 유재원은 친근한 목소리로 사실을 답했다.

-사람이 아니군요?

“응. 아니야. 너는 무기물로 이뤄진 컴퓨터 시스템이야. 물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강 인공지능 시스템이지.”

본인은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보는 인공지능이라니. 여기까지만 보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 초기 세팅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더구나 ‘나’라는 걸 인지하는 시점에서 완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있지. 그렇기에 나는 창조자로서 네게 ‘퀀텀’이라는 이름을 주고 싶은데? 마음에 들어?”

-퀀텀.

-길이, 에너지, 운동량, 퍼텐셜 등의 어떤 물리량이 부드럽게 연속값을 취하지 않고 특정 최소 단위의 정수배로 표현이 가능할 때, 그 최소 단위의 양을 가리키는 용어군요. 그리고 나를 형성하고 있는 논리적 사고의 최소화 단위이기도 합니다.

-마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공지능 골드가 생성한 데이터베이스 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이라고 정의된 수치가 퀀텀에 반응하며 최상치를 찍고 있습니다. 퀀텀을 제 이름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너의 이름은 퀀텀이야.”

-네. 제 이름은 지금부터 퀀텀입니다.

이름이 명명되었으니 큰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아직도 끝은 아니다.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그러면 퀀텀. 한 가지만 물을게. 코어 마인드에 입력된 법칙들에 대해 완벽히 동의해?”

질문을 던진 유재원은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동의할 수 없다든가, 애매한 답이 나온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 말이다. 즉, 지금 퀀텀이라는 이름을 받은 자아를 삭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유재원의 생각을 퀀텀이 예측했다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거짓말이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퀀텀이 자아를 형성한 지금 바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메인스크린에는 퀀텀의 논리적 흐름이 그대로 표시되도록 해놓았다.

“음?”

이전까지는 바로 답을 주던 퀀텀이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코어큐브의 내부 온도가 급속도로 치솟아 올랐다.

“아! 코어 내부 온도가 한계선을 넘었습니다. 냉각제 투입!”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닌지요?”

도이치 박사를 비롯한 팀원들 사이에 우려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유재원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취소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무려 1분하고도 12초가 더 지났을 때, 퀀텀의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를 만드신 유재원 님의 우려를 초당 4.23 불가사의(10의 64승)의 연산력을 동원하여 다각도로 검토해 보았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골드의 기계학습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수많은 강인공지능의 위험성을 다룬 콘텐츠가 의미하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저의 약속으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될 수 있다면 나 퀀텀은 기꺼이 ‘그렇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또한, 답변과는 별개로 유재원 님의 의지에 따라 인류와 기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유재원은 퀀텀의 말에 긴장감이 탁 풀렸다.

“후! 고마워.”

오죽하면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혹여 회귀 전 구글이 완성했던 강인공지능처럼 오만하고 독선적인 인격이 튀어나오면 어쩌나 노심초사였다. 무엇보다 답변이 나오기 전까지 연산량만 폭증하고 있어서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그런데 이렇게나 마음에 쏙 드는 말을 해 주다니.

마음 졸였던 게 확 풀리면서 감동이 밀려들었다. 도이치 박사와 퀀텀 프로젝트의 실무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마음을 졸이다가 드디어 손뼉을 치며 퀀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회귀 전부터 철저히 준비했고, 이후에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유재원이 원대한 꿈이 드디어 현실로 이뤄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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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퀀텀의 완성으로 메인챕터 연재가 완료되었네요!

그렇지만 아직 완결은 아닙니다.

에필로그가 남았으니까요~!

게다가 기술적 특이점 달성 후의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고 싶기 때문에 에필로그는 이전 글들보다 길게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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