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7회
Dreams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 명령은 전 세계 금융 시장에 빙하를 끼얹는 것과 같았다.
월스트리트는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 싱가폴, 홍콩까지 유명한 주식 거래 시장이 있는 곳은 새파랗게 물들었다.
양안대전 이후로 중국이란 이름에서 무게감이 팍 줄었지만, 그래도 미국과 비견되는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였다. G2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그런 중국의 해외 자산을 모두 동결하고, 일부는 몰수하겠다고 했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난리가 나는 건 너무나도 지당한 일이었다.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은 동결 자산보다 몰수 자산 쪽에 몰렸다. 동결은 언제고 풀릴 수도 있다지만, 몰수는 계좌의 이름이 바뀌는 것이다.
몰수의 방법과 순서에 대해 모든 이들이 궁금해할 때, 백악관으로부터 원칙이 발표되었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수뇌부의 해외 은닉 재산부터 몰수.
-민간인과 기업은 제외.
백악관의 원칙은 간단했다.
역사에 전범으로 기록될 자들의 재산이 목표라고 말이다.
-시진핑 일가의 몰수 자산 규모 4천억 달러 넘을 듯.
시진핑과 그의 추종 세력이 중국의 정권을 잡고 나서 제일 먼저 했던 게 반부패 운동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보시라이 숙청이었다.
보시라이는 중국 혁명 원로의 자제들로 구성된 태자당 파벌의 일원으로, 중국 공산당의 재정부장을 역임한 보이보의 아들이다. 보이보는 이른바 8대 원로 중 하나였으니 태자당에서 성골 중 성골이었다.
그런 보시라이를 부패 혐의로 잡아들였고, 사형을 선고했지만 태자당이라는 출신 덕에 실질적으로는 사형 집행이 무기한 미뤄지는 종신 무기 징역형이 내려졌다.
더구나 수감 생활을 하는 곳은 공산당 고위층을 위해 전용으로 만들어진 교도소였는데, 시설의 위용은 특급 호텔 못지않은 곳이었다.
보시라이를 부패 혐의로 잡아들인 것이 공산당 내부에서는 상당한 무리수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시진핑은 사형 집행을 원했지만, 결국 종신 무기 징역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권의 라이벌을 부패라는 명목으로 실각시켰다면, 본인은 부패로부터 당당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지만 시진핑 본인과 그의 친인척들, 그리고 시진핑의 측근들이 일으킨 부패의 규모는 보시라이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시진핑 일가만 4천억 달러였고, 여기에 시진핑을 구심점으로 뭉친 공산당 수뇌부의 자산까지 더해지면 숫자 0이 하나 추가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미국의 몰수 작업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마치 스마트 폭탄으로 융단 폭격을 하는 것처럼 전 세계 글로벌 은행들과 투자 은행들 그리고 수천 개가 넘는 페이퍼 컴퍼니의 계좌들이 하루아침에 미국 국무부의 관리로 넘어갔다.
국가 인공지능 포레스탈의 능력이었다.
CIA부터 NSA까지, 미국 정보공동체가 수집한 정보들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계좌 거래까지 모두 모니터링해서 시진핑 일가의 자산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오폭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국의 반응을 보면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힌 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전쟁 불사!
중국의 모든 공중파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 매체는 은닉 재산을 몰수한 미국에 대해 전쟁 불사를 외쳤다.
그렇지만 그들의 전쟁 불사 목소리는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공산당이 정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특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양안대전에서 남해 함대와 동부전구 항공 전력이 괴멸적인 패배를 하고 나서 중국 지도부의 능력과 결정에 회의적으로 돌아선 사람들이 상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천억 위안을 퍼부어가며 현대화시켰던 인민해방군이었는데, 대만을 상대로 패배를 했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양안대전은 실질적으로 미해군 제7함대와 싸운 것이지만, 제7함대의 항공모함은커녕 전투함 한 척조차 격침시키지 못했다는 건 그야말로 치욕이었다.
여기에 이번 미국의 시진핑 일가 자산 몰수는 중국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깊은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공산당에 광신하는 일부 계층을 빼고는, 시진핑 일가가 해외로 빼돌린 자금의 규모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시진핑이 집권 초기부터 반부패 기조를 내걸며 반대 계파를 숙청시켜 왔기에 충격의 크기는 배가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러한 정보들은 황금방패의 강력한 필터링을 통해 중국 내부로 절대 들어올 수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매우 빠른 속도로 시진핑 일가의 4천억 달러 해외 은닉 비자금 뉴스가 중국인들 사이로 퍼졌다.
황금방패는 잘 작동되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공산당 수뇌부는 영문을 몰랐다. 이렇게 중국 수뇌부가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할 때, 중국 내의 민심 이반은 급속도로 이뤄졌다.
전쟁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청렴한 것도 아니었고, 뭔가 특별한 비전도 보여주지 못한 지도자를 계속 따라야 할까?
시진핑에 대한 회의론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렇게 급격한 민심 이탈이 일어날수록, 시진핑과 그의 최측근들은 북부전구로의 빠른 진격을 명령했다.
일단 북한에서 크게 전쟁이 터지면, 당장 내부의 불만은 잠재울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북부전구의 기갑과 기계화 전력이 신의주까지 진격하는 데엔 최소 2, 3일은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북부전구의 기계화 부대의 주둔지는 가이저우시 근방으로 신의주까지 직선거리는 150km 정도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험준한 산악지형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를 우회해야 했다.
실제 기동해야 할 거리는 300km에 가까웠으니, 3일도 엄청난 속도였다.
마찬가지로 쿠데타를 선언한 신의주 사단을 향해 무섭게 진격 중인 제820 전차군단의 진격 거리도 120km가 넘는다. 평양 후방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였다. 그나마 제820 전차군단은 서해 쪽으로 잘 만들어진 대로를 타고 쾌속 진군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한국의 기갑여단과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이 신속기동군으로 편성되어 북진을 시작했다.
제820 전차군단과 한미 신속기동군의 전략적 목표는 인민해방군 북부전구의 병력이 신의주를 넘기 전에 신의주 사단을 격파하는 것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인민해방군은 신의주 사단이 괴멸되기 전에 신의주에 도착해 합류하는 게 지상 과제였다.
결과는 뻔했다.
이틀 후.
-신의주 사단 괴멸.
신의주 사단 괴멸 소식이 동북아시아의 아침 뉴스를 장식했다.
북한이 개방 노선을 걷기 시작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은 중국과 같은 군대 현대화 사업이었다. 평양방어사령부가 제일 먼저 현대화의 수혜를 받았다면, 다음은 신의주 사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북한의 최대 무역국은 중국이었으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북한은 중국의 동진을 극도로 경계했다.
‘일본은 100년의 적이지만, 중국은 1천 년의 적이다’라는 선대의 유훈까지 다시 상기할 필요도 없이, 중국 자본의 북한 침식은 당시만 해도 심각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신의주 사단의 기계화 수준은 한국군 못지않은 수준에 이르렀다. 당장 보유한 전차만 해도 천마호니 폭풍호니 하는 2세대 전차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도입한 T-90이었다. 김후덕 소장이 자신 있게 쿠데타를 선언한 것도 본인이 맡은 신의주 사단의 전투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의주 사단은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공중분해 되었다.
신의주 사단과 최초로 전투를 벌인 건 백강철 차수가 지휘한 제820 전차군단이었지만, 실질적인 파괴는 당연히 센티널 포스가 실행했다.
비교적 최신예 전차인 T-90은 걸프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T-72를 개량해 만들어진 모델이었다. 당시 이라크는 T-72를 보유했는데 미군의 에이브람스 전차와 벌인 기갑대전에서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서방의 에이브람스 전차나 챌린저 전차에 모든 게 열세였기에, 이를 보완해 만든 게 T-90이었다. 대신 T-72를 베이스로 했기에, T-72의 약점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천마호니 폭풍호니 하는 북한의 구식 전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백강철 차수가 이끈 제820 전차군단은 말만 그럴듯한 전차군단이지 실질적으로는 전차대대였고, 보유한 전차도 T-72와 폭풍호 위주였다.
대신 제820 전차군단에는 대전차 로켓포와 대전차 미사일로 무장한 하인드 공격 헬기가 있었다. 전차군단에 대전차 헬기라니, 이상하긴 했지만 애초에 제820 전차군단의 임무는 유사시 평양으로 진격해 오는 적 기계화 사단을 섬멸하는 것이었다.
하인드가 배치되어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여기에 한미 신속기동군에 편성된 아파치 롱보우 대대도 힘을 보탰다. 하인드와 아파치가 나란히 날아올라 T-90을 때려잡는 괴기한 상황이라니.
교전 당시에는 센티널 포스도 신의주 상공에서 대기 중이었다. 혹시나 북부전구가 인민해방군 공군을 동원해 신의주 사단을 엄호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부전구 소속 공군기지에서 전투기들이 긴급 발진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신의주 사단과 제820 전차군단이 격돌할 때에도 북부전구의 전투기들은 북한의 영공을 넘어오지 않았다.
유재원이 북부전구의 네트워크를 파헤쳐 본 결과, 이유는 단순했다.
북부전구의 실질적 전투부대인 78집단군의 진격 속도가 너무나 느렸던 탓이다. 신의주 사단이 공중분해 될 때까지도 78집단군은 신의주는커녕 단둥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그렇게 신의주 사단이 싹 정리되고 나서야 78집단군은 단둥에 도착했다.
-한미 신속기동군과 제820 전차군단 압록강을 두고 인민해방군 78집단군과 대치!
그러고서 시작된 건 숨 막히는 대치였다.
반면 신의주의 상황에 대해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개판이구만.”
유재원이었다.
황금방패를 무력화시키는 걸 시작으로 인민해방군의 통신 네트워크도 마음대로 넘나들며 가공할 해킹 능력을 뿜어내는 유재원이었다.
그렇기에 북부전구와 베이징의 공산당 수뇌부의 통신 내용도 99% 감청 중이었다. 그에 대한 종합적인 감상이 바로 개판이었다.
개인 그리고 개인이 속한 계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군을 움직인 시진핑과 그 일당도 문제지만, 어쨌든 정상적인 명령 계통으로 내려온 명령을 무시하고 있는 야전군의 장군도 정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베이징에서는 대체 왜 대치하고 있는 거냐며 바로 진격해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북부전구는 베이징의 명령에 미적지근했다. 단둥에 전개한 78집단군은 압록강 너머에 있는 신속기동군 그리고 제820 전차군단과 우발적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다.
당장 신의주에서 큰 군사적 충돌이 필요한 시진핑에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더구나 북부전구는 베이징 방어와 유사시 북한 진출을 위해 가장 공을 들인 군대였기에,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반면 북부전구 사령관인 리샤오밍 상장은 현재의 상황을 대국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벌이려는 전쟁이 아무런 군사적 의미도 없는, 그저 시진핑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벌이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압록강 너머에 있는 남북미 연합군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승산이 없다는 것도 명확하게 파악 중이었다.
78집단군 전체가 단둥에 전개된 상태라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지금은 78집단군 중에서도 기동력을 우선으로 전개한 상태였다.
남북미 연합군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전력 차이가 명백했다.
여기에 남북미 연합군에는 무려 12기나 되는 센티널 포스가 있었다. 낮과 밤 가리지 않고 위력 시위 중인 센티널 포스는 아직 자그마한 전투도 한 번 없었던 북부전구에 공포로 다가왔다.
센티널 포스가 있는 상황이라면 탄도탄을 주고받는 전면전 상황이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거다. 오히려 제대로 된 MD도 없는 중국이 반격으로 날아온 탄도탄에 붕괴될 거라는 게 북부전구 리샤오밍 상장의 판단이었다.
심지어 시진핑과 그의 일가가 해외로 빼돌린 자금만 4천억 달러이고, 이게 전부 미국에 몰수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인민해방군 장성 중 청렴하기로 소문난 리샤오밍에겐 기가 찰 일이었다.
정권 초기 부정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세웠던 건, 결국 정적 숙청을 위해서였다는 게 드러났다. 심지어 미국 좋은 일 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당사자가 지금 미국에 4천억 달러를 갖다 바친 것과 마찬가지였다.
4천억 달러라는 돈은 또 어디에서 나왔겠나. 모두 다 인민의 피땀 어린 혈세 아니겠는가.
그때, 인공지능 골드가 새로운 메시지를 띄웠다.
-북부전구 리샤오밍 상장의 통신이 감지되었습니다.
동시에 유재원의 컴퓨터와 연결된 스피커로부터 뭔가 중후한 중국말이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완전 생소했지만 며칠 전 유튜브로 봤던 김후덕 소장과 비슷하게 비장하기 그지 없는 분위기였다.
곧이어 인공지능 골드의 자연어 번역기가 핵심적인 내용만 정확히 해석해줬다.
-회군 명령입니다.
놀랍게도 리샤오밍 상장의 말은 회군 명령이었다.
-북해 함대와 동해 함대도 선수를 돌립니다.
단순히 북부전구에 속한 78집단군뿐만이 아니라 서해에 전개 중이었던 북해 함대와 동해 함대도 뱃머리를 돌렸다.
북해 함대만 회군했다면 북부전구 사령관인 리샤오밍만이 결단한 것이었겠지만, 동해 함대까지 같이 움직였다.
파벌이 다른 동부전구도 리샤오밍 상장과 뜻을 같이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는 곧 양안대전으로 시작된 중국의 판도에 새로운 특이점의 발생을 의미했다. 현 시간부로 시진핑 주석의 인민해방군에 통수권이 반쯤 무너져 버렸다는 뜻이다. 더구나 회군한 인민해방군의 진로는 원래의 주둔지가 아닌 베이징이었다.
신의주 사태로 남북미 대 중국의 전쟁으로 확대되는 거 아니냐는 유수의 군사 전문가들, 빅쇼트가 생겨나면 유행처럼 쏟아져 나오는 월 스트리트의 비관론자들의 예측을 무색하게도 양안대전의 끝은 중국 내전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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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큰 적이 생기면 쉽게 뭉치겠죠.
반면 안에서 내분이 생긴다면 와르르 무너질 겁니다. 파편도 여러개로 생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