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회
Dreams
대만에선 축제가 벌어졌다.
대만의 정치권에서는 오늘을 승전기념일로 지정하고 국가 공휴일로 만들자는 말까지 나오는 중이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이 엄청난 도움을 주긴 했지만, 대만과 중국 사이에 진짜 무력 대결이 벌어지고 탄도 미사일까지 사용한 것에 대해 경악했다. 그렇기에 중국에 대한 비난 성명이 즉각 나왔다.
회귀 전의 한국이었으면, 중국에 경제가 종속되어 중국에 바른말도 못 하고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조치도 쉽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깐마늘 파동부터 시작한 대중 무역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도 한국의 무역 상대국 순위에서 중국은 여전히 1등이지만, 얼마든지 중국을 향해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었다. 한국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나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회귀 전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냥 경제가 좀 나은 소국이고 언제든 밟아 버릴 수 있다는 태도였다면, 지금의 중국에게 한국은 밟기 위해선 국가적 위기를 감수해야 하는 강소국이었다.
마치 고구려를 침공하다 수나라가 멸망당한 이후부터 중원을 차지한 황제들에게 한반도를 쉽게 보지 말라는 말이 대대로 전해진 것과 같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개혁 개방 이후 양적인 팽창으로 간덩이가 부으면서 그 말을 잊고 있었다가, 깐마늘 파동으로 기억이 난 것처럼 말이다.
-중국의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
보통의 외교적 수사에서 많이 사용되는 건 ‘유감’이었다. 감정이 있다는 말로 사과를 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특정 사건에 대해 화가 났다고 느껴지게도 하는 마법과 같은 단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한국의 성명은 ‘규탄’이라고 했다.
명백한 중국의 잘못이라는 걸 국제 사회에 정확히 표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외교부 성명이 아니라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 발표였다.
반면 일본은 미국과 늘 외교적 입장을 함께하고 있었기에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일본의 기본 아이덴티티였다. 그렇지만 외교적으로는 한국처럼 대놓고 강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일본도 무역상대국 중에 중국의 비중이 최상위권이었던 탓이다. 그렇기에 ‘유감이다’라는 게 일본 외교부의 정식 발표였다.
이어서 러시아와 유럽 등 많은 나라가 중국을 규탄했다.
DF-21 탄도탄에 핵이 없었더라도 제7함대를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은 양안대전에서 최악의 참패를 했던 중국이었는데, 중국 안은 조용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한 정보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데다가, 중국의 최대 정치 이벤트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언론들은 물론 인터넷까지도 남해 함대의 대파와 대만으로의 나포 소식은 찾을 수가 없었다. 동부전구 공군의 괴멸도 마찬가지다. 센티널 포스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인터넷 전체를 뒤져 봐도 센티널 포스의 ‘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온 세상이 난리였는데, 중국만 보면 양안대전은 없는 일 같았다. 중국이 자랑한 인터넷 검열 시스템 황금방패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황금방패도 막을 수 없는 게 있었다. 스타링크였다.
-인민해방군은 종이호랑이였다.
-남해 함대 대파되어 대만에 그대로 나포됨!
-동부전구의 최첨단 전투기도 센티널 포스에 다 썰림!
스타링크의 불법 사용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인터넷 사용료도 부담이었고, 황금방패로 안 되는 것도 참 많았다. 스팀은 기본이고 유튜브부터 톡톡, 넥스트닷컴과 넥스트 뮤직 그리고 타임플렉스까지 죄다 블락을 먹여 놓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어지간한 인터넷 서비스들은 중국에서 접속할 수 없었다. 대신 이러한 서비스를 따라 한 중국식 서비스가 있었는데, 그러한 짝퉁의 품질이 좋을 리 만무했다.
덕분에 스타링크를 불법 사용하는 중국인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위성 안테나는 위성 방송용 안테나로 충분하고, 약간의 손재주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작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안테나와 연결되는 스타링크용 모뎀도 중국의 짝퉁 시장에 가면 100위안 정도에서 쉽게 구한다.
다만 불법 사용이라는 건 중국이 불법으로 정했다는 것이지, 스타링크에는 정해진 요금을 확실히 냈다.
이렇게 비공인 장비를 구해서 스타링크 접속용 프로그램을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완전 자유로운 인터넷에 접속이 된다. 처음 접속한 사람에겐 일주일짜리 무료 체험 아이디가 부여되고, 스타링크의 품질이 마음에 들면 정식으로 아이디를 발급받은 후 사용권을 구매하면 된다.
결제는 Z코인부터 N포인트, 알리페이까지 다양하게 지원되기에 중국인들은 아주 쉽게 스타링크에 접속할 수 있었다.
이런 이용자가 중국에 3천만이 넘는다.
주로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대다수지만, 그렇다고 중년이나 장년층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황금방패를 뚫고 해외 인터넷 언론이나 커뮤니티에서 양안대전의 결과를 보았다.
시진핑이 무력 대응을 천명하며 제7함대를 분쇄하겠다는 말과 달리 어마어마한 참패를 당한 것에 다들 충격이었다.
오죽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나왔지만, 고화질의 비디오나 대만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속보, CNN 보도가 일관되게 이어지자 패배를 사실로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중국 네티즌들은 괴멸적 패배에 수긍하느냐?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인민해방군 현대화 사업에 투자했던 돈은 수천억 위안에 달했다. 인민해방군은 무적이고 미국도 능가할 거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미국 전체도 아니고 제7함대에 남해 함대와 동부전구 공군까지 깨져 버렸고, 심지어 탄도 미사일까지 쐈는데도 로널드 레이건함 근처에 가 보지도 못하고 요격당했다니.
시진핑이 말했던 강한 신시대 중국이 이런 종이호랑이였나 하는 분노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그렇기에 중국 네티즌들은 자국의 커뮤니티에 양안대전에 대한 결과나 전투가 담긴 동영상을 업로드했지만 순식간에 차단당했다.
심지어 업로드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공안이 찾아왔다. 그냥 말로 경고만 주는 게 아니라 업로드를 한 사람을 연행했고, 그들의 컴퓨터를 압류해 갔다.
패전 소식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수뇌부가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게 공안들의 초강경 태도로부터 확실히 보였다.
그러면 이렇게 공안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시진핑은 양안대전의 참패에도 권력이 탄탄하다는 뜻일까?
당연히 아니다.
3일 차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시진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증거다.
둘째 날까지만 해도 예의 떫은 표정을 하고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3일 차에는 아예 인민대회당에 나오지도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국 일반인들에겐 황금방패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지만, 중국의 수뇌부와 공산당에는 남해 함대와 동부전구의 참패 소식이 공유되고 있었다.
DF-21 대함 탄도탄의 발사 역시 시진핑의 독단적인 판단이었다.
그걸로 성과를 냈다면 체면이 좀 살아났을 텐데, DF-21도 센티널 포스의 가공할 화학 레이저에 요격당하면서 망신만 당했다.
아니, 망신만 당한 게 아니라 중국의 무력 자체가 종이호랑이로 변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인민해방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력은 탄도 미사일이었다. 그런데 탄도 미사일을 완벽하게 요격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인민해방군의 군사 전략 자체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산당 수뇌부 중에는 DF-21 발사에 대한 보복으로 핵 공격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단순히 공포로 끝이 아니라 시진핑의 인민해방군 장악력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DF-21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시진핑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즉각 동해 함대와 북해 함대에 출동을 명령했었다.
목표는 남해 함대 지원이었다.
시진핑은 대파된 남해 함대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저대로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었던 것이다. 동해 함대는 중국의 해상 영토 분쟁에서 선봉에 서는 함대인 만큼, 중국 해군 전력 중 최강이었다. 게다가 동해 함대로도 모자라 발해만과 황해를 관할하는 북해 함대까지도 움직이도록 했다. 그만큼 제7함대와 센티널 포스의 조합이 압도적이었던 탓이다.
그런데 시진핑의 명령을 받은 동해 함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저장성 닝보에 자리한 동해 함대 사령부는 출진을 준비 중이라는 답만 올릴 뿐, 함선들이 군항을 나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군대가 통수권자의 명령을 씹은 건 쿠데타로 봐도 되는 거죠?”
유재원도 다각도로 전해지는 정보를 통해 동해 함대가 시진핑의 명령을 무시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ID 그룹의 정보팀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미군 측에서 보내주는 정보였다.
센티널 포스의 활약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미군은 유재원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지려고 했고, 그 일환으로 중국의 민감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음, 인민해방군은 상식적인 군대와는 많이 다릅니다.
“나라의 군대가 아니라, 공산당의 군대라는 거죠? 그 정도는 알고 있는데요.”
북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행정부가 있고 거기에 국방부와 하부 조직들이 있다. 그렇기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군의 통수권은 새로운 대통령에게 이전될 수 있었다.
반면 중국은 공산당이 모든 걸 가진 나라였다.
공산당이라는 정치 세력에 행정부도 있고, 군대도 속해 있는 것이었다.
-예. 그런데 여기서 고려하셔야 하는 건 공산당의 파벌입니다. 파벌에 따라서 인민해방군의 실질적인 통수권도 갈라져 있다는 것이지요.
유재원에게 중국 인민해방군의 특성을 친절히 설명하는 사람은 미군 국방정보국의 동아시아 책임자인 로버트 킴이었다.
성에서 알 수 있듯 미국 이민 2세대였다. 국적도 당연히 미국이었지만, 그의 부모님 덕에 한글도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자리에서는 통역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인공지능 골드의 실시간 자연어 번역의 품질이 좋았지만, 모든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특급 비밀이 다뤄지는 자리에서는 직접 대화하는 게 최선이었다.
덕분에 로버트 킴의 우수한 한국어 능력이 부각되어 유재원과의 미팅이 이뤄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센티널 포스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다뤄졌다.
무인 전투기 자체의 능력도 엄청났고, 인공지능 파일럿의 기량도 인간을 초월했으니 당연했다. 어제의 비행 기록지를 보면 센티널 포스에 파일럿이 탑승했다면 G-LOC으로 인한 블랙아웃이 여러 번 있었을 거라고 장담할 만큼 급격한 기동이 수십 번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의 냉정한 판단도 미군이 높게 평가했다. 창 역할을 한 비스트와 방패 역할을 한 데몬의 임무 분담도 마찬가지다.
3박4일을 주야장천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의문도 있었다.
DF-21이 요격된 다음부터 지금까지 중국 인민해방군이 완전 침묵에 빠진 것이었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비스트와 데몬을 배경 삼아 승리 선언을 했음에도 중국의 공식 입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재원은 ID 그룹은 물론 가용한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답을 찾으려고 했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로버트 킴에게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바로 답이 나온 것이었다.
인민해방군은 각 지방에 난립했던 군벌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이었고, 그 형태는 현대인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동해 함대가 시진핑의 출격 지시를 무시한 것도, 동해 함대가 속한 동부전구 자체가 상하이방 파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란다.
제7함대를 수장시킨다는 계획에 동부전구도 동의했고, 그렇기에 대규모 전투기를 발진시킨 것이었다. 만약 거기서 승리를 거뒀다면 시진핑의 후속 조치도 즉각 따랐을 터인데,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J-10과 J-11은 물론이고 어렵사리 실전 배치시킨 J-20까지도 복귀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해 함대를 출전시키라고?
상하이방 입장에서는 절대 따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직은 쿠데타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한 건 아니고,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고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 이는 본인의 독재 권력에 대한 중대한 위기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소식인데, 상하이방을 중심으로 이번 전인대에서 의결하기로 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조항의 폐지 합의를 파기하는 쪽으로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시진핑의 우상화 작업은 몇 년 전부터 한창이었다. 마치 과거 북한이 주체사상으로 김씨 일가를 신격화했을 때와 같았다.
그런 시진핑이 이번 양안대전에서 엄청난 치욕을 당한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반발은 여론 조작과 인터넷 검열로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지만, 공산당의 다른 파벌은 아니었다.
특히 시진핑 주석 시대가 도래한 후에 쌓인 게 많은 상하이방이 이번에 칼을 빼 들었다.
로버트 킴의 브리핑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유재원은 머릿속에 불현듯 기시감이 들었다.
“흐음. 보통 이런 식으로 내부가 불안정해지면 외부에 분란을 만들던데.”
-역시 유 회장님이로군요.
-중국과 인도, 네팔의 국경에서 인민해방군 병력이 대거 이동하는 게 잡혔습니다.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도 상당히 오래된 분쟁이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칼을 갈고 있던 상하이방이 한발 물러설 만큼 인도나 네팔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이른바 어그로감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이보다 훨씬 좋은 팻감이 있다.
띵!
유재원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는 것처럼, 스마트폰에 뜬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남 위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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