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회
Dreams
천지를 백색으로 물들이는 백색의 벼락이 치면 인민해방군의 J 시리즈는 여지없이 폭발했다. 그러고서 온 세상을 진동시키는 거대한 천둥소리가 뒤를 따랐다.
초고출력 화학 레이저가 100km가 넘는 대기를 지나자, 복사열에 의해 대기가 급속도로 달궈지면서, 일반적인 자연 현상인 천둥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센티널 포스로부터 백색의 빛줄기가 터지면 대만은 물론이고 푸젠성 해안가 도시까지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악몽인가!
반으로 갈라져 죽는 건 약과였다. 어느 순간부터 백색 레이저는 콕핏만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단좌형이든 복좌형이든 상관없이 콕핏 내부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었고, 레이저에 직격 당한 파일럿들은 외마디 비명도 없이 레이저에 쓸려 나갔다.
인민해방군의 전투기들은 센티널 포스의 그림자도 못 밟아 본 상태에서 벌써 십여 기가 넘는 손실이 일어났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인민의 날개다! 속도를 더 올려! 레이더에 제7함대 함선이 잡히면 주저하지 말고 대함 미사일을 쏴라!
그나마 제대로 판단하는 편대장도 있었다.
원래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각 기체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대함 미사일을 숙적인 제7함대를 향해 모조리 날려 보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이른바 대함 미사일 러시다.
작전 중 공중전은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만에 하나 제7함대 함재기인 F-35와 공중전이 발생하면 같은 스텔스기인 J-20이 맡기로 했다.
작전의 전체적 그림은 매우 단순하지만 확실한 전과를 보장하는 작전이었다. 중국이 자랑하는 압도적 물량전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전이기도 했다.
동부전구의 공군 전력 중 80% 이상을 동원한 만큼, 출격하는 전투기의 숫자도 100기가 넘는다. 각 기체마다 최소 2기, 많게는 4기 이상의 JY-12 대함 미사일을 장착했으니,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발사되는 미사일의 숫자만 300기가 넘는다.
JY-12는 러시아의 명품 초음속 미사일인 Kh-31의 카피판이었는데, 카피할 때마다 심각한 성능 저하가 일어나는 중국의 군사 장비 중에서는 그나마 원래의 성능을 잘 모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함 미사일이다.
남해 함대가 모루 역할로 제7함대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수백 발의 대함 미사일 세례는 제7함대를 분쇄하는 망치다.
이것이 시진핑의 무력 대응을 요구 받은 인민해방군이 수립한 대만 해협 전투의 전체적인 그림이었다. 그야말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제7함대를 섬멸하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짜인 작전이었다.
문제는 중국의 작전에서 센티널 포스라는 변수는 상정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더더욱 뼈아픈 일은 중국은 센티널 포스가 로널드 레이건함에서 필드 테스트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전투기 2기만으로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의 힘을 발휘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을 뿐이다.
이는 곧 전략의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남해 함대가 자작극을 벌이면서 겨우 확보한 선제공격을 무위로 만들었고, 2차로 이어지는 대함 미사일 러시까지도 분쇄했다.
-교전 거리가 80km 내로 접어들었습니다.
-화학 레이저를 1,000ms 단위로 나눠 발사하겠습니다.
화학 레이저포를 비롯한 광학 병기의 특징이 교전 거리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전투 초반 120km가 넘는 교전 거리에서는 화학 레이저를 하나의 목표에 온전히 집중해야 했다.
반면 80km인 지금은 적 기체 하나당 1초면 충분했다.
화학 레이저 포탄 한 발당 3초간 레이저를 발사할 수 있으니, 한 발에 최대 3대의 적 기체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최대 동시 교전 능력이 발휘되는 구간은 교전 거리가 20km 안이었을 때다.
로널드 레이건함에서 발진하고 나서 즉각 남해 함대가 발사했던 미사일과 포탄을 요격했을 때가 그 상황이었다. 그러니 화학 레이저 포탄 한 발로 최대 30기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대의 공중전에서 20km 내의 교전이라면 도그파이트나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급기동이 이뤄지는 중에 30기나 되는 동시 교전을 치르는 건 센티널 포스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지금처럼 80km의 거리를 둔 상태라면 무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센티널 포스는 자체적인 표적 획득 시스템과 미국의 글로벌 조인트 스타를 통한 데이터 링크로 인민해방군의 전투기를 모두 타깃팅하고 있었고, 실시간 추적도 되는 중이었다.
인공지능 파일럿은 이렇게 추적 중인 기체 중에 가장 위협적인 순위를 매겼고 1번부터 차례대로 화학 레이저를 날려 주는 중이었다.
한 번 번쩍일 때마다 여지없이 폭발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빗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가공할 파괴력이다.
반면 인민해방군의 전투기들은 백색으로 번쩍거릴 때마다 센티널 포스의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J 시리즈 전투기들도 센티널 포스를 타깃팅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인민해방군의 전투기를 지원하기 위해 뜬 중국의 조기경보기 또한 마찬가지로 눈뜬장님이다.
멀티스펙트럼 스텔스 덕이었다.
센티널 포스의 검은색 도장은 단순한 멋이 아니라 F-22보다 더 완벽한 스텔스 도장이었다. 덕분에 센티널 포스는 화학 레이저를 마음 놓고 뿜어낼 수 있었다.
더구나 교전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화학 레이저 포탄 한 발을 짧게 끊어서 발사해도 충분한 파괴력을 내었고, 빛이 번쩍일 때마다 터져 나가는 전투기의 숫자도 확 늘어났다.
딱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과열이었다.
-화학 레이저 반응로 과열 경고.
“텀을 두고 쏘는데도 20발 정도 연속 사격하면 과열 경고가 뜨네.”
센티널 포스의 가상 콕핏 화면에 집중하던 유재원이 혀를 찼다. 실전에선 처음 들어보는 경고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처럼 쉬지 않고 화학 레이저를 쏘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반응로의 온도가 위험 상태까지 치솟아 올랐다. 과열을 식히기 위해 잠깐 사격을 중단해야 했고, 이는 인민해방군 공군이 파고들 수 있는 틈을 만들었다.
동부전구 공군도 나름 대단한 것이 레이저포가 쏟아지는 중에도 기수를 돌리는 기체는 그다지 없었다는 점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고, 실제로 센티널 포스의 백색 레이저에 터져 나가고 타죽는 동료들의 비명 소리가 무전망을 쉬지 않고 울렸다.
패닉에 빠질 법한데도, 극소수만 제외하면 모두 미친 듯이 제7함대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그러던 중 센티널 포스의 화학 레이저포가 과열로 중지된 틈에 사거리를 확보했고, 제7함대 함선들을 겨냥한 대함 미사일을 발사했다.
극초음속 대함 미사일이었기에 발사하고 나서 몇 초 지나지 않아 음속을 돌파했다.
제7함대에서도 즉각 반응했다.
센티널 포스의 가공할 공대공 능력을 직접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제7함대의 윌리엄 메르츠 제독이었지만, 본인의 역할에 대해서는 단 1초도 잊지 않고 있었다.
함대 방공을 위한 이지스함의 이지스 레이더가 대함 미사일을 포착했고, 요격 미사일도 즉각 발사되었다. SM2와 SM3 미사일이었다.
원래 함대 방어용으로 만들어진 SM2는 몰라도, SM3는 탄도 미사일 방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최대 위기 상황에서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이라도 써야 할 판이었다. 그렇기에 윌리엄 메르츠 제독은 미사일을 아끼지 않았다.
-요격 성공! 성공!
-실패! 실패! 실패!
안타까운 점은 세간에 알려진 SM3의 명성과 달리 실제 요격 성공률은 50%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이 카피한 Kh-31 대함 미사일은 극초음속에 다양한 회피 기동까지 펼치는 모델이었다.
이대로라면 제7함대의 함선 중 몇 대는 대함 미사일에 내줘야 할 판이었다.
-데몬, 미사일 디펜스 모드 가동.
그렇지만 제7함대에는 함대 방공을 위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센티널 포스 2번기 데몬이다.
비스트가 괴물처럼 동부전구에서 발진한 인민해방군의 기체를 파괴했다면, 데몬은 이름 그대로 악마와 같은 능력으로 이지스함이 놓친 대함 미사일을 막아냈다.
길게는 중국의 전투기에서 쏘아진 순간 전투기와 미사일이 함께 터져 나갔고, 짧게는 로널드 레이건함으로부터 불과 5km 앞에서 폭발하기도 했다. 대함 미사일이라서 탄두의 중량이 100kg에 육박했기에 충격파가 제7함대를 휩쓸었지만, 함선 자체에 가해지는 대미지는 0이었다.
총공세 작전을 지휘하고 있던 동부전구 사령실에서는 절망적 탄식이 터져 나왔다.
중국도 미국의 C4I를 따라 비슷하게 구축된 네트워크 전투 시스템이 있었고, 이를 통해 제7함대와의 교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었다.
동부전구의 항공 전력 전체를 동원해 대함 미사일 러시를 하는 것이 회심의 한 방이었는데, 그 시도가 실시간으로 무위로 돌아가고 있는 게 메인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보였다.
이것만 해도 기절할 일이었지만, 동부전구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스트, 온라인.
화학 레이저 반응로 과열로 전장에서 이탈했던 센티널 포스 1번기인 비스트가 다시 전장으로 복귀했다. 비스트가 전장에서 이탈한 사이 동부전구의 인민해방군 전투기와의 거리는 40km 이하로 짧아졌다.
이제는 서로 간 피아식별용 램프의 불빛이 맨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화학 레이저를 더욱 짧게 끊어서 쏴도 충분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최초 접촉에서 화학 레이저 포탄 한 발에 전투기 1대였던 교전비가 40km 거리에 접어들자 5, 6대로 대폭 늘어났다.
짧게 끊어서 쏘는데도 인민해방군의 J 시리즈는 종이비행기처럼 불타올랐다. 그야말로 스쳐도 사망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다.
-비스트, 화학 레이저탄 잔량 경고. 남은 포탄 3발.
안타까운 점은 비스트의 화학 레이저탄 잔량이 이제 겨우 3발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대만 해협 상공에 떠 있는 인민해방군의 전투기는 아직도 50기 이상이 남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작전에 나선 전투기 중 50% 이상의 손실이 생긴 것이다. 전체 병력 중 30%만 사망해도 전멸이라고 한다. 전투를 지속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50%라면 괴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렇지만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50기의 전투기도 위협적이었다. 만약 이대로 센티널 포스가 화학 레이저탄을 모두 소모하고 귀환하게 된다면 중국의 기세가 살아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로널드 레이건함에서 발진한 20여 대의 F-35와 대만에서 발진한 F-16이 센티널 포스의 뒤를 따라 전장에 합류하게 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응?”
알프레드 집사님이 가져다준 생수를 마시던 유재원은 화면의 변화에 반색했다. 스타링크 위성을 통해 보는 대만 해협 상공에서 무질서하게 엉켜 난전을 펼치고 있던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공군기들이 일제히 기수를 돌려 도주하는 게 잡혔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후퇴인가?”
비스트가 남은 3발의 화학 레이저를 쏟아붓는 와중에 제7함대의 해군 항공대 소속 F-35 전투기들이 합류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하늘을 나는 인민해방군 전투기의 숫자가 40기 밑으로 떨어지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일제히 후퇴하는 모습이었다.
2라운드도 제7함대의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였다.
여기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센티널 포스였다. 그리고 이 사실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달되고 있었다.
CNN이었다.
CNN은 이미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브레이킹 뉴스 체제로 바뀌면서 대만 해협 전투에 대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당연히 센티널 포스에 대한 이야기도 쉬지 않고 나왔다.
현장의 영상을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제7함대의 함선에서 대만 해협 상공을 찍은 영상을 보도 중이었다. 뭐가 보이지도 않을 새카만 하늘이었는데, 백색의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며 뿜어졌다. 그리고 빛이 다다른 끄트머리에서 노란 폭발이 일어났다.
더욱 압권인 것은 데몬이 대함 미사일을 요격할 때의 모습이었다. 미러볼이 빛을 받아 사방에 빛줄기를 퍼트리는 것처럼, 번쩍번쩍 빛이 터졌고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대폭발이 일어났다.
화질은 무척이나 좋았다.
덕분에 빛이 번쩍일 때마다 센티널 포스의 윤곽도 보였을 정도다.
영상의 출처를 따져 보면 아무래도 제7함대 크루들이 각자 가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서 CNN을 비롯한 뉴스 채널에 제보를 한 게 틀림없다.
미국은 당연히 축제 분위기였다.
서킷 브레이커가 몇 번이고 떨어졌던 주식 시장의 폭락세가 멈추고 상승의 기운이 일어날 정도였다.
한밤중인 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대만은 공습 경고가 내려진 상태로, 긴급 대피가 진행 중이었다. 다들 TV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남해 함대를 초전박살 내놓고 그것도 모자라 대만의 최대 위협이었던 동부전구의 공군 세력까지 일소해 버렸다.
최악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 상륙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이 퍼지던 중이었는데, 상황이 180도 반전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건 아니었다.
-적색 경고!
스타링크의 광학 모듈과 연동되어 중국 전역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중이었던 인공지능 골드가 유재원의 모니터 위에 붉은색 경고등을 띄웠다.
-탄도 미사일 발사 징후 감지.
“이런 미친! 탄도 미사일이라고?”
흑백의 영상이 곧 나타났다.
대만 바로 위쪽에 자리한 중국의 푸젠성 렌장현의 깊은 산골짜기의 비탈면이 갈라지면서 탄도 미사일 사일로가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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