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회
Dreams
“암초섬 문제였구만.”
유재원은 정보팀부터 인공지능 골드의 보고서까지 다양한 루트로 올라온 정보들을 취합하면서 사건의 전모를 빠르게 파악해냈다.
암초섬이란 남중국해의 남쪽, 그러니까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경제 수역에 자리한 돌섬들을 의미했다.
파라셀과 스프래틀리 군도가 대표적이었다. 이런 섬들은 거리적으로 보면 인도네시아의 소유인 게 상식인데, 인도네시아는 중국이 무리수를 두기 전까지 딱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섬을 거느린 인도네시아는 그 자체로 자원 부국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중국은 언제부턴가 기선으로부터 12해리의 영역만 영해로 인정되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남중국해의 90%를 중국의 영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주장 근거는 역사적 종주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한나라 시대, 그러니까 유관장이 등장하는 삼국지가 벌어지기도 전의 왕조가 그 땅이나 바다를 경영했다는 사료가 하나라도 나오면 현재도 중국 땅이라는 논리였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고대의 사서에서 등장하는 작은 섬이라는 게 파라셀이나 스프래틀리 군도의 섬이란 증거가 없지만, 중국은 그냥 우겼다.
중국이 이런 식의 무리수를 둔 것은 중국의 영토 크기나 중국이 추구하는 국제적 영향력에 비해 바다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와 인접한 말라카 해협은 중국의 대외 무역 항로의 60%를 넘게 차지하는 해상 거점일 뿐만이 아니라, 천연가스와 원유 등의 매장 자원도 풍부했다.
급기야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의 작은 바위섬인 휴스 암초섬에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인공섬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의 영토라 주장하며 해군을 파견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의 어민들도 이에 동조하며 수천 척의 어선들이 휴스 암초섬 인근까지 내려와서 어족 자원을 싹쓸이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의 상식 밖 행동을 처음 접했을 땐 분노를 다스리며 외교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영토 확장의 야욕이 더욱 노골적으로 행해지자 인도네시아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띵!
유재원의 스마트폰으로 짧은 영상 클립 하나가 전송되었다. 인공지능 골드가 찾아낸 충돌 현장을 담은 드론 영상이었다.
푸른 바다를 새카맣게 뒤덮는 중국 어선이 제일 먼저 보였다. 그러다가 줌아웃이 되면서 인도네시아 해군의 군함이 나타났다. 그리곤 군함에서 제일 가까이 있던 어선을 향해 기관포를 갈겼다.
“이야, 인도네시아가 막 나간다는 건 알았는데, 대놓고 쏴 버리네.”
어선은 숫자가 많아도 그냥 어선이었다. 특히 중국에서 몰려나온 어선은 강화수지도 아니고, 그냥 나무로 된 구식의 어선들이 대부분이었다.
기관포를 맞은 어선은 큼지막한 구멍이 뻥뻥 뚫렸고, 곧이어 검은 연기가 나더니 불이 붙었다. 이에 나머지 어선들은 혼비백산해서 선수를 돌려 도망쳤다. 한번 쏴보라며 떼로 몰려다니다가 진짜로 기관포 공격이 실행되자 배짱을 부릴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먼저 타격을 받았던 어선은 불이 확 올라왔고 어부들은 바다로 뛰어내렸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아주 느긋하게 바다로 탈출한 어부들을 건져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의 초강력 대응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도망갔던 중국 어선들이 다시 돌아왔고, 그 중심에는 중국 군함이 있었다.
중국 군함은 인도네시아 군함을 향해 기관총을 쏘았다.
처음엔 경고 사격이었던 모양인지 인도네시아 군함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그러다가 인도네시아 군함에서 불꽃이 튀었다. 애초에 경고 사격이 아니라 대놓고 발사한 것인데, 주변 바다로 빗나갔던 것인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인도네시아 군함도 기관포로 맞섰다.
서로 수백 발의 기관총을 주고받았다. 피해가 상당할 텐데 드론은 멀리서 포착한 것이라서 피해 상황이 자세히 파악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나 중국이나 상당한 인명 피해를 입은 건 틀림없었다.
이것이 남중국해 무력 충돌의 전모였다.
다음 날.
남중국해에서 일어났던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무력 충돌은 즉각적으로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후보에서 당선자가 된 오바마에겐 본인에게 주어졌던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었으니 상당히 불쾌했을 거다. 그렇지만 화를 내기 전에 그동안 잠잠했던 중국이 영토 문제로 국제 외교 분쟁을 시작했다는 건 너무나 큰일이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은 강력 대응을 천명했다.
남중국해의 평화를 위해서 항공모함도 파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이 항공모함이지 실제로는 항공모함 전단이었다. 전략적으로 귀중한 유닛인 항공모함은 어디를 가든 혼자 이동하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방공함과 호위함 그리고 잠수함까지 포함한 전단이 움직이는 게 기본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의 언론들은 1월이면 백악관에서 나와야 하는 존 매케인보다 오바마의 입에 주목했다.
취재를 나오는 기자들을 향해 오바마 당선자는 아직 지금의 대통령은 존 매케인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오바마도 나름 중국에 대한 대전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대통령이 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오바마의 대중국 전략과 지금 존 매케인 대통령이 보이는 대응이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대중국 포위망의 완성과 고립 말이다.
이를 위해서 남중국해에 미해군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게 오바마 당선자의 생각이었다.
미국의 예상 밖 빠른 대응에 당황한 건 중국인들이었다.
남중국해 전체를 진심으로 자기네 영해라고 여기는 중국은 어선을 공격한 인도네시아를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도 인도네시아를 비난해 주길 내심 바랐던 것이다. 어민을 군인이 공격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중국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남중국해 주변 나라들은 모두 인도네시아 편이었고,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어업에 당했던 나라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중국 주변의 나라에서 중국에 호의적인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항공모함까지 파견할 수도 있다고 하니 중국의 민심이 폭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강경책을 꺼낼 수 없었다.
항공모함에는 항공모함으로 대응하는 게 최선이고, 중국도 랴오닝급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매물로 나온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의 깡통 선체를 도입한 다음 각종 장비를 중국산으로 대체한 함정이었다. 그래서 구조적인 문제가 터져 나왔고, 함재기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항공모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항모를 제외한 수상함들 역시 동남아시아에서나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이지, 진정한 강자인 미국 항모전단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중국의 대응은 매우 유치하고도 유재원에게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中國一点都不能少!
‘중국은 한 점도 작아질 수 없다’라는 문구와 함께, 남중국해 전체를 영해로 포함한 중국 지도가 중국 전용 SNS를 통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국 내에서만 돌면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톡톡은 물론 페이스북과 인스타 등의 다양한 인스타그램에도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국에서 활동 중이던 중국 출신 아이돌들도 일제히 남중국해를 영해로 포함한 지도와 함께 한 점도 작아질 수 없다는 문구를 올렸다.
남중국해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던 한국에도 이는 큰 이슈로 떠올랐다.
“다행히 우리 식구들은 없네.”
유재원이 말한 우리 식구들이란 드림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와 아이돌을 말하는 것이었다.
넥스트 뮤직을 런칭할 때, 표절 파문으로 박살이 났던 LSM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드림 엔터테인먼트로 개명했다. 이후 안정적인 운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기획사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2000년 중반 이후로 유재원이 따로 곡을 준다거나 콘셉트를 잡아 주지는 않았지만, 연예 기획에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덕에 드림 엔터테인먼트가 내놓는 아이돌은 모두 대성공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드림 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아이돌 산업의 레퍼런스를 그대로 따라 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아이돌 시대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심지어 한국을 벗어나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들도 대거 만들어진 상태였다.
이른바 신한류였다.
원래 유재원이 개입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이었는데, 여기에 한 손 거드니 그 범위와 세기가 훨씬 거대해졌다.
타임플렉스만 봐도 오래전부터 K드라마가 공급되는 중이었는데, 처음엔 마니아층만 즐기던 카테고리였다. 지금은 K드라마 카테고리가 처음 생겼던 때보다 시청자 숫자가 100배는 많아진 상태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아이돌 산업이 성장하면서 아이돌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아이돌이 되기 위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인재들이 지원했다.
이미 데뷔한 중국 출신 아이돌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런 아이돌들의 개인 계정에 남중국해 지지 게시글이 일제히 등록된 것이었다.
팬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이돌의 SNS라는 건 팬들과의 공감대를 쌓는 곳이었는데, 뜬금없이 정치적 사안이 올라왔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반감도 빠르게 올라왔다.
드림 엔터테인먼트에서 ‘중국은 한 점도 작아질 수 없다’는 글귀 따위를 올리는 아이돌 멤버는 없었다.
애초부터 중국 연습생은 발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행보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유재원이었고, LSM 엔터 때 중국인 멤버를 발탁했다가 여러 번 통수를 당하는 걸 직접 보기도 했었다.
일본인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나라 출신의 멤버를 배출했던 드림 엔터테인먼트가 유독 중국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업계 관계자들은 오너인 유재원과 중국의 불편한 관계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틀린 건 아니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알고 미리 대처해 놓았다는 점이다.
중국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권리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모든 걸 동원할 수 있는 나라였다.
“안타까운 건 이런 게 아무런 대미지도 없다는 거지만.”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게시글을 동시에 올리는 게, 뭔가 대단해 보이기도 할 테지만 실질적으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외국 사람들에겐 반감만 불러일으킬 따름인, 중국 내수용 보여 주기에 불과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중국과 주변 나라들의 관계가 유재원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파탄이 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전쟁이 쉽게 나는 건 아니긴 한데.”
그렇지만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게 전쟁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은 이미 해군끼리 교전이 일어나 사망자가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해양 영토 확보 전쟁은 베트남과 필리핀, 일본은 물론 한국과도 분쟁인 지역이 있을 정도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지금보다 빨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첫째는 역시나 양자 슈퍼컴퓨터 퀀텀의 빠른 완성이다.
완전체 퀀텀이 완성되기만 하면 중국을 엎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중국의 폭주를 보고 있자니, 코어 큐브가 완성되기 전에 중국이 일을 벌일 것 같았다.
그러면 퀀텀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칼 세이건 우주 망원경을 띄우는 것과 센티널 포스의 양산, 화학 레이저의 완성이었다.
칼 세이건 우주 망원경은 이름 그대로 우주를 관측하는 데 쓰는 것이지만, 관측 방향을 우주가 아닌 지구로 향하게 하면 훌륭한 첩보 위성이 된다.
물론 유재원은 필요하다면 CIA나 미국의 정보조직과 협의해 군용 위성의 데이터를 얻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첩보 위성을 갖고 있는 건 큰 보탬이 되는 일이었다.
센티넬 포스의 양산도 순조로웠다.
아론 클레멘스의 합류, 그리고 0.3% 수준의 완성도지만 이미 가동 중인 퀀텀의 보조는 센티널 포스의 인공지능 파일럿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절대 고등 무인 전투기 사업에서 탈락할 일은 없을 거라고 자부한다. 만에 하나 변수가 있다면 정치 논리뿐이었다.
현재 기준으로 미국서 유재원보다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은 없지만, 록히드마틴이나 보잉과 같은 업체들은 미국의 역사와 함께해 온 군산복합체였다. 이들이 정치 논리로 힘을 쓰면 유재원도 장담할 수가 없다.
물론 미국의 고등 무인 전투기 사업에서 탈락한다고 해도, 유재원의 재력이면 20~30대 정도 뽑아내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게다가 미국은 몰라도 한국이라면 고등 무인 전투기 사업에서 탈락할 일도 없다.
이제 겨우 T-50을 만드는 한국의 전투기 산업인데, 센티넬 포스는 이보다 몇 차원이 더 높은 곳에 자리한 기체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화학 레이저였다.
군사 기술은 유출되면 치명적이기에 유재원은 아직까지 파괴적인 기술을 내놓지 않았다. 화학 레이저도 퀀텀이 완성된 이후에나 선보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유재원은 원래의 타임라인을 수정해서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이뿐만이라 필요하다면 화학 레이저보다 더한 것도 꺼내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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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선 빠른 진행을 위한 시간 점프가 살짝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