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87화 (987/1,007)

963회

Dreams

“모비우스1?”

“퀀텀마스터?”

파스텔톤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에서 귀엽게 SD화된 캐릭터가 서로의 닉네임을 부르며 상대를 확인했다. 엑스박스 4D의 기본 앱인 VR 커뮤니티에서 만난 유재원과 아론 클레멘스였다.

아론의 SD 캐릭터는 네모난 안경에 날카로운 눈매가 특징이었다. 아이보리보다 좀 더 밝은 피부색과 금발이었고, 코스튬은 미 공군의 남색 점프 슈트다.

유재원의 경우 SD화로 과장된 동그란 인상에 정장 차림이다. SD화가 되면서 본래의 모습은 10%도 남지 않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바로 원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 미팅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재원입니다.”

“헉! 진짜요? 우와! 저는 아론입니다!”

닉네임을 확인하고 나서 이름도 교환했다. 그러자 아론의 SD 아바타는 실감 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연출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악수도 나눴다.

이번엔 유재원이 살짝 속으로 놀랐다. 악수를 할 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다섯 개의 손가락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VR 커뮤니티의 아바타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건 조금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초등학생들도 능숙하게 아바타를 조작해서 자기들끼리만의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하니까.

반면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VR 커뮤니티의 오브젝트들과 상호 작용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뇌파 인터페이스의 숙련도를 마스터 레벨까지 끌어올려야 하는데,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건 극소수였다.

참고로 유재원과 아론이 이렇게 엑스박스 4D의 VR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된 건, 아론의 상황 때문이었다.

유재원의 게임태그 쪽지를 받은 아론은 ID 하이테크로 초대한다는 말에 무척이나 기뻐했지만, 실망도 컸다. 아직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VR 커뮤니티에서 먼저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유재원도 흔쾌히 수락했다.

더구나 경호실에서는 최근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하고서 경호 등급을 더욱 격상했다. 평소보다 2단계는 상향되었는데, 유재원을 향해 뭔가 위협이 다가온다는 건 아니다. 대신 ID 그룹 전체에 기술 탈취 시도가 엄청나게 들어오는 중이었다.

특히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과 LG이노텍의 배터리 기술의 탈취 시도는 3개월 전보다 2배가 늘어났다.

또한, ID 그룹의 온라인 서비스들에 대한 해킹 공격도 심해지고 있었다.

해킹 성공은 못 하더라도 최소 서비스 장애만 일으킬 수 있다면,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힐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해킹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했고, 전 세계 보안 시스템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ID 그룹의 클라우드 시스템은 지금도 난공불락을 자랑했다.

해킹 공격의 주최는 역시나 중국의 홍객들로 판정되고 있는데, 한국과 북한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유재원의 사업이 더욱 잘될수록 사이버 공격의 강도가 그에 비례해서 커 나가고 있다.

해 봐야 별 타격도 없는 짓을 이렇게 열심히 한다는 건 유재원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방심하면 크게 당할 수도 있기에 긴장은 놓지 않았다.

어쩌면 홍객들의 난리는 위장이고 그 난장판 속에서 진짜 실력자들이 치명적인 해킹을 시도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아론과 VR 커뮤니티에서 만나는 것도 특수한 보안 시스템을 설치한 다음 접속한 것이었다.

“저쪽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실까요?”

유재원은 격납고를 가리켰다.

예전 센티넬 포스의 초도 비행 참관을 위해 방문했던 격납고를 사이버상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현실과 똑같은 크기로 재현했고, 디테일도 그대로였다.

이처럼 VR 커뮤니티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원래는 VR 모드로 엑스박스 4D를 켠 사람들을 위한 로비였는데, 여기에 다중 접속 기능을 추가하고, 친구 관리와 채팅 제스처 등등 커뮤니티 기능이 추가되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빌드 기능도 추가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요즘은 VR 게임을 하는 사람만큼이나 VR 커뮤니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VR 커뮤니티에 쇼핑몰을 비롯해 타임플렉스와 같은 온라인 서비스들이 입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1세기 중반에는 직접 쇼핑을 하는 것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상현실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고 물건은 드론 배송을 통해 전달받는 게 더 이상 특별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본격적인 가상현실 세계가 등장하기 전에 이렇게 간소하게나마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게 유재원의 전략이었다.

또한, 프로젝트 2077과 같은 대규모 풀 패키지 게임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도 궁극의 가상현실 게임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었다.

최근 게임 웹진에서는 잘 만든 프로젝트 2077보다 부분 유료화 모바일 게임의 순이익이 훨씬 크다는 게 충격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을 만큼, 게임 업계는 일명 갸차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유재원은 별 느낌 없었다.

조만간 퀀텀이 완성될 거고, 그러면 완벽한 가상현실 시스템도 등장할 거다. 완벽한 가상현실 시스템에 맞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갸차 게임이나 만들던 회사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의 압도적 개발 능력이었다.

프로젝트 2077에 적용된 각종 신기술도 완벽한 가상현실을 위한 프로토타입이었다.

“우와!”

격납고로 들어온 아론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센티넬 포스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속에서 스스로 파일럿이 되어 몰아 보기도 했고, 스페셜 미션에서는 1대1로 대결을 펼치기도 했지만, 이렇게 격납고 안에 주기된 모습으로 만나는 건 처음일 테니 말이다.

더욱이 게임 속 센티넬 포스는 1:10 정도로 간소화된 모델링이었다면, 이곳 가상현실 격납고에 있는 건 현실과 똑같은 형태를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델은 게임에서가 아니라 실제 고등 무인 전투기 개발에 쓰이는 시뮬레이터용 모델이었기에, 모델링의 정확성은 차원을 달리했다.

얼마나 정확하냐면 비행기 개발에 필수인 풍동 테스트의 데이터와 여기 있는 가상의 모델링을 가지고 시뮬레이터상에서 구동한 풍동 테스트의 데이터의 오차 범위가 0.1% 이하였다.

실제와 똑같은 센티넬 포스를 옆에 두고서 한쪽에는 편안한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현실에서는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로 VR 커뮤니티에 들어온 것이지만, 커뮤니티 안의 아바타가 서 있는 것과 잘 꾸며진 자리에 앉아 있는 느낌은 또 달랐다.

“먼저 VR 버전의 센티넬 포스를 세계 최초로 격파한 것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론은 유재원의 축하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센티넬 포스를 플레이했던 건 그저 자신의 욕심과 재미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페셜 미션의 클리어는 완전 오기였고, 어제의 성공도 무리수가 컸다. 본인의 기체가 먼저 땅과 충돌했다면 본인이 지는 것이었는데, 협곡으로 방향을 틀면서 1초를 벌었던 게 승리의 요인이었으니 말이다.

이걸 격파라고 할 수 있을지 아론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약 유재원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론은 좀 더 완벽하게 클리어하기 위해서 다시 도전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거 아세요? 아론 씨가 미사일을 요격했을 때부터 고등 무인 전투기 개발팀이 뒤집어졌다는걸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유재원이 주목하는 건 VR 버전의 센티넬 포스를 먼저 터트렸다는 게 아니라, 기관포로 미사일을 요격해낸 센스였다.

기체를 미세 조정해서 기관포의 정확성을 더욱 보정해냈다.

고등 무인 전투기 개발팀이 뒤집어진 이유도 이러한 미세 보정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대기 환경은 게임보다 훨씬 불친절했다.

음속 이상의 속도에서 대기를 뚫고 비행하게 되면 충격파도 대단하고, 기체에 가해지는 압력과 진동도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서 아론이 보여준 조준 보정 기술이 적용되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단 기관총뿐만이 아니라, 조만간 프로토타입이 나오는 광학 무기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광학 무기란 바로 화학 레이저포였다.

화학적 반응을 이용해 밀도 반전과 유도 방출을 일으키는 레이저다. 기술이 연구되기 시작한 건 무척이나 오래되었고, 미군에서도 미사일 요격과 군용 레이저로 연구 중이었다. 현재는 메가와트 단위의 고출력도 가능하다.

유재원은 이 무기 체계를 소형화하여 전투기의 기관총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제가 아론 님께 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습니다. 아론 님을 ID 하이테크의 고등 무인 전투기 팀에 사이버 테스트 파일럿으로 영입하고자 합니다.”

아론의 아바타가 순간 멈췄다.

유재원의 영입 제안은 아론이 예상한 것을 아득히 넘어갔던 모양이다. 크게 흥분해 버리면 뇌파 인터페이스에 노이즈가 끼면서 아바타와의 싱크로가 끊어지는 것이다. 유재원은 아론이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대략 알고 있었기에, 흥분이 가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와! 와! 진짜죠? 제가 진짜 이런 몸으로 센티널 포스의 테스트 파일럿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네, 센티널 포스니까 육체적인 사소한 문제는 아무런 제약도 되지 않지요.”

아론은 당연히 승낙이었다.

그 사고 이후 하늘을 나는 꿈을 접었던 아론이었지만, 파일럿이란 꿈은 다시 움켜쥘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사이버라는 수식어가 아론의 마음에 걸렸다. 애초에 센티널 포스는 무인 고등 전투기로 개발되었으니 사람이 탈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렇기에 무인기의 테스트 파일럿이 뭘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 것이다.

그런 아론의 불안감을 읽은 유재원은 부연 설명을 했다.

“VR용 센티널 포스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아니, VR 수준만 따지면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내일 중으로 ID 하이테크의 인사팀이 아론 님 집을 방문해서 계약을 체결할 것이고, 서류가 처리되면 보안과 안전이 보장되는 숙소로 옮겨서 테스트 파일럿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겁니다. 보수는 ID 하이테크의 1티어 개발자와 같을 겁니다.”

ID 하이테크의 1티어 개발자는 알파팀의 팀원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세계 최고의 인재만을 모아 꾸린 알파팀의 평균 연봉은 12억 원이었고, 정기 보너스와 연말 특별 보너스를 포함하면 20억 원이 넘었다.

월급부터 다른 대기업을 압도하는 ID 그룹이지만, 거기에서도 알파팀은 더욱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퀀텀에 집중하고 있는 유재원을 대신해 ID 그룹의 소프트웨어의 유지 보수 그리고 업그레이드까지 맡고 있는 게 알파팀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론은 그런 알파팀과 같은 대우를 받을 만큼 특별한 존재라는 게 유재원의 판단이었다.

상세한 설명에 아론의 불안감은 사라졌다.

“아, 네. 잘 부탁합니다.”

곧이어 전자 문서에 VR 펜으로 사인을 마친 아론은 다시금 유재원과 악수했다.

유재원과 아론 모두가 만족하는 계약이었다.

시간이 흘러 11월 8일.

-미합중국 제45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 당선!

CNN 라이브 방송에 큼지막한 자막으로 오바마 당선 확정이란 문구가 떴다.

“역시 오바마가 됐네.”

“응, 벤 카슨이 당선됐으면 그게 이변인 거였지.”

유재원과 나란히 텔레비전을 보던 티파니의 말에 유재원이 답했다.

공화당 경선에서부터 문제가 많이 있었던 벤 카슨이었다. 본선에 나와서 그의 가벼운 입방정이 고쳐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유재원에게 선견지명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티파니는 돗자리 좀 깔고 썰을 풀어 달라는 표정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신나게 이야기를 풀었을 텐데, 지금은 많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대로라면 이번에 당선되었어야 할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2010년부터 다시 뜨거워진 부동산 호황에 푹 빠져 정치권엔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여기에 존 매케인 대통령이 록펠러 로또의 힘으로 미국의 고질적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중이었다.

낡디낡은 인프라의 현대화라든가, 스마트 시티 사업도 본궤도에 올랐고, 각종 전력 증강 사업도 이뤄졌다. 또한 긴급 생활 자금 대출이라든가 주택 리모델링 비용 지원과 같은 사업도 하면서 서브프라임으로 반쯤 박살 났던 미국 중산층에 심폐소생술을 불어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의 선장이 된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러면 존 매케인 대통령이 미국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부분에서 힘을 쓰는 것 아닐까.

공공 의료부문과 노동 분야 말이다.

세계 최악인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수준은 록펠러 로또로도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노동 문제도 있었다. 임금 격차가 극과 극으로 나눠지는 중이었고, 여기에 아틀라스 로봇이라는 변수까지 생겨났으니 말이다.

“아마 의료 분야 개혁이라든가, 노동 분야에서 뭔가를 해 볼 거 같아.”

“흐음, 둘 다 자기 분야네.”

ID 그룹에도 바이오로직스라는 신약 업체가 있고, 아틀라스 하나로 노동 시장을 초토화 중인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있다. 만약 오바마 당선자가 존 매케인 대통령과 차별화된 행보를 시작한다고 의료 개혁이나 노동 개혁을 시작한다면 두 계열사가 제일 먼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사실 미국 국내 정치판은 크게 바뀔 건 없고, 외교에서 차별점을……."

띵!

-긴급 상황 발생!

“응?”

텔레비전에서 한참 오바마 당선자에 대한 뉴스들이 연이어 나오던 중이었는데, 유재원의 스마트폰에 알람이 떴다. 그러고서 한 박자쯤 늦게 티파니의 스마트폰에도 알람이 울렸다.

“남중국해? 무력 충돌?”

유재원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오바마 당선인이 처음 맞닥뜨린 문제는 바로 국제 분쟁이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군과 인도네시아 해군의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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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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