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6회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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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이노텍은 CATL의 전고체 배터리를 입수하고 리버스 엔지니어링도 끝낸 상태였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CATL의 전고체 배터리가 최초로 탑재된 전기 자동차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볼츠바겐은 모터쇼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일반인 관객도 들어오는 내일 최초 공개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CATL의 전고체를 LG이노텍이 입수할 수 있었을까.
세계에서 제일 강력한 첩보망을 보유한 미국의 도움 덕이었다. 예전에 존 매케인 대통령이 전화를 했을 때, 마지막에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CATL 건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CATL의 볼츠바겐용 배터리를 정식 출고도 하지 않았는데, 입수할 수 있었는지는 유재원도 궁금했다.
어쨌든, 외형부터 LG이노텍에서 생산되는 전고체 배터리와 매우 흡사했다.
일단 외형이 사각기둥 형태의 20kg짜리 모듈러인데, LG이노텍의 최신 전고체 배터리팩과 완전 판박이였다.
이걸 분해해 보니 파우치 형태의 배터리팩이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서부터는 LG이노텍의 제품과 차이가 나타났다. 정품은 파우치 사이사이에 열을 외부로 배출하기 위한 얇은 구리 냉각핀이 들어가 있는데, CATL은 이게 없었다. 전고체 배터리라고 해도 충전 중에는 열이 다량 발생하는데, 이걸 적절히 외부로 발산해 주려면 이렇게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를 쓰는 게 최선이었다.
CATL의 전고체는 발열 문제를 처리했다는 말일까?
당연히 아니었다. 대신 충전량과 충전 속도가 상당히 느린 탓에 구리 냉각핀까지 필요하지 않았다는 분석이었다.
이 말인즉, CATL의 복제품의 성능은 LG이노텍의 1세대 전고체 배터리보다 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실험실에서 정밀 측정 결과 오리지널의 75% 정도의 성능이었다.
분해를 해 보니 그 이유가 나왔다.
전고체 배터리의 핵심은 그래핀 전극이었는데, 그래핀 전극의 완성도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래핀 전극의 형태는 LG이노텍의 제품과 판박이였다.
더 문제가 되는 건 그래핀을 만드는 공정이었다. 유재원이 금성그룹과 LG이노텍이라는 합작 법인을 고민 없이 만들 수 있던 건, 그래핀 양산은 ID 일렉트로닉스에서만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LG이노텍에서 나쁜 마음을 먹고 합작을 파기하고서 독자적인 배터리 양산을 한다고 해도, 전극 제조에 필수인 그래핀은 ID 일렉트로닉스가 쥐고 있으니, 불가능했다.
당연하게도 미국이 전해준 정보에는 그래핀 양산 기술 역시 CATL이 무단 도용했다는 증거들이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특허 등록 때문이었다. 특허를 등록한다는 건 제조 기술의 핵심을 공개한다는 말과 같았다. 대신 특허법으로 그 공정이 보호를 받기에, 다른 기업들은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따라 할 수 없다.
그걸 가볍게 무시하는 게 중국이었다.
불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특허권자의 허가도 없이 무단으로 기술을 가져와서 무작정 만드는 게 중국의 스타일이었고, 그게 이번에도 작동한 것이었다.
다만 이러한 막무가내식 불법도 그냥 무시하면 안 되는 게, 그래핀 양산 공장을 만드는 건 어마어마한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왜 ID 일렉트로닉스가 그래핀 생산을 전담할까?
이유는 간단하게도 다이아몬드 반도체 생산 공정과 그래핀 생산 공정에서 겹치는 부분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래핀의 분자 구조와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구조는 한 끗 차이였다. 물론 그 한 끗 차이로 기술적 난이도의 차원이 달라지고, 가치도 달라진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아무래도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복제해 내려다가 그건 실패했고 그래핀은 성공해서 전고체 배터리 복제로 방향을 전환한 것 같았다.
중국 당국도 이렇게 만들어진 전고체 배터리가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걸 알고 있기에, 폭스바겐 그룹을 끌어들여 고기 방패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미국의 도움으로 CATL의 전고체 배터리 분석을 마친 유재원이니 프랑크푸르트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혜성이와 약속한 게 없었다면 퀀텀의 양자 운영체제 만드는 것에 집중했을 텐데, 약속은 지켜야 하니 온 것이었다. 여기에 폭스바겐 그룹 회장을 비롯해 임원들을 보며 CATL이 하는 일에 어디까지 개입된 것인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했다.
볼츠바겐의 반응을 보니 다 알고 여기까지 온 게 분명했다. 반격의 대상에 볼츠바겐을 넣는 것을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럼, 내일 볼츠바겐의 신차 발표 기대하겠습니다. 건투를 빌죠.”
유재원은 건투를 빈다는 말로 인사를 마치고 돌아섰다.
비슷한 시각.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대여섯씩 뭉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곳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팝업 스토어였다. 자동차 관련한 기념품들이 잔뜩 있는 곳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정밀하게 만들어진 모형 자동차가 꼬맹이들의 선택을 받는 중이었다.
모형 자동차는 1/10의 비율로 제법 큼직했고, 디테일도 상당히 정교했다.
“핸들을 움직이니까 바퀴도 움직여!”
이런 아이들 중에 대장처럼 나서는 녀석이 있으니 혜성이었다.
만져 볼 수 있게 내놓은 모형을 들어서 이리저리 움직여 보다가 모형의 핸들과 앞바퀴가 연동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트렁크나 엔진룸도 열렸고, 거기에도 실제 자동차처럼 정밀하게 부품들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이거요!”
혜성이는 대뜸 이거라고 말했다.
“나도!”
“선생님! 골랐어요. 이거, 이거예요!”
그러자 혜성이의 친구들도 같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모두 골랐니? 음, 가격을 보니 골드코인이어야겠는데. 그것도 2개나.”
“여기요!”
현장학습 지도 선생님이 혜성이를 비롯한 아이들로부터 노란 코인을 한 개씩 걷었고, 수량을 확인한 후 팝업 스토어 직원에게 아이들이 고른 모형 자동차를 실제로 결제했다. 잠시 후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씩 들게 된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이 났다.
팝업 스토어 직원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아이들이 고른 모형 자동차는 이곳 팝업 스토어에서도 제일 비싼 상품으로 899유로의 가격을 자랑했으니 말이다.
팝업 스토어 직원은 유 회장의 아들과 그 친구들이 방문할 거라는 언질을 들었던 터라, 다들 돈이 많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본인들의 자식과 혜성이를 같은 학교 친구로 만들어 주겠다고 덕진리나 여주시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학생 전체가 그런 식으로 입학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덕진초등학교는 물론이고 덕진 사학재단에 대한 유재원과 ID 그룹의 투자가 대단했던 것이었다.
그중 하나가 코인 제도였다.
의무가 내려지면 권리도 주어진다는 평범한 명제로부터 시작된 정책이었다.
국민의 의무 중 하나가 의무교육 아니겠는가. 학교에 꾸준히 출석하는 것과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은 의무교육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은 무상으로 해 주는 것인데, 덕진 사학재단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성실히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코인을 주는 것이었다.
암호화폐가 아니라, 학교 내에서만 통용되는 토큰을 코인이라고 칭하는 것이었다. 은색과 금색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학교 내 매점이나 학교 주변의 상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인데, 출석만 해도 은색 코인이 한 개씩 나온다. 그리고 반장부터 당번까지 학급 운영에 필요한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을 때는 금색 코인이 지급된다. 은색은 매일 하나, 금색은 월마다 하나였고, 교환비는 금색 1개가 은색 50개와 같았다.
반면 시험을 잘 봤다고 추가 코인을 주진 않는다.
인공지능 골드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시점부터 단순 암기 시험의 가치는 폭락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러한 최신의 트렌드가 교육 현장에 실시간으로 도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인데, 덕진 사학재단이라서 가능했다.
하여튼 코인은 의무를 이행하고, 여기에 추가적인 일을 맡아서 하면 나오는 것이었다. 혜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학생의 입장에서 코인은 무조건적인 수혜가 아니라,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실제로 프랑크푸르트 현장 체험 학습도 유재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뤄지는 것이지만, 학교 내부에서는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은 것이었다. 비용은 은색 코인 30개. 적잖은 수량이었지만, 방학하기 전부터 공지를 했기에 학생들은 대다수 30개를 지불할 수 있었다. 물론 코인을 받자마자 다 써버린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출이라는 제도가 있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원래대로라면 코인은 학교 밖에서는 쓸모가 없어지는 것인데, 이번만큼은 유재원이 특별히 코인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를 프랑크푸르트까지도 확장시켜 주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금색 코인으로 고급형 자동차 모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른 학교 아이들이 덕진 사학재단 학교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정책이었는데, 코인의 가치만 적당히 조절한다면 일반 학교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제력은 회귀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성장했고, ID 라이프 리워드의 수혜자들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만 900만 명이 혜택을 보고 있는데, 이 속도라면 2020년쯤에는 전 국민이 라이프 리워드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유재원이 굳이 덕진 사학재단에서 코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이유도 이렇게 기본 소득에 대한 선행 학습을 위해서였다.
혜성이도 엄마나 아빠에게 떼를 써서 원하는 물건을 얻어내는 것보다 학교에서 코인을 벌어서 지금처럼 본인이 원하는 걸 갖는 걸 더 좋아했다.
다음 날.
혜성이를 비롯한 덕진초등학교 1학년들 그리고 학부모님들은 모두 귀국길에 올랐다. 반면 유재원은 프랑크푸르트에 남았다.
-볼츠바겐의 비틀V를 소개합니다.
볼츠바겐와 CATL의 합작품 전기 자동차의 발표를 보기 위해서다.
자동차를 가려 놓은 베일이 벗겨지면서 등장한 것은 폭스바겐 그룹의 국민 자동차였던 비틀이었다. 정확하게는 전기 자동차답게 미래지향적으로 다시 해석된 비틀이었다.
역시 100년이 넘는 전통이 있는 회사답게 헤리티지와 미래지향을 적절하게 섞은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었다.
-완전 충전까지 19분!
-완전 충전 상태에서 800km 주행 보장!
-탁월한 자율 주행과 수동 운전을 돕는 각종 인공지능 어시스트 탑재.
볼츠바겐에서 최초로 출시하는 자동차임에도 완성도는 상당했다. 다만 공개된 스펙에서 문제가 되는 건 바로 배터리 부분이다. 800km 주행은 배터리팩 2개를 장착했을 때의 이야기고, 완전 충전 19분은 배터리 1개를 충전할 때의 이야기였다.
배터리팩 하나로 800km를 달린다는 건 LG이노텍의 최신 전고체 배터리팩보다 더 성능이 좋다는 이야기였는데, 질 낮은 복제품으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실제로 비틀V에 탑재되는 배터리팩은 2개가 기본이었다.
“그러면 가격은?”
전기 자동차 부품 중에 제일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게 배터리다. 아무리 중국에서 물량으로 찍어 누른다고 해도 그래핀 전극의 수율은 형편없는 게 당연하다. 처참한 수율이란 곧 비싼 비용을 의미하니 비틀V의 가격도 높을 텐데, 대체 얼마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격은 볼츠바겐 측이 보기에도 비싼 모양인지, 나중에 발표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가죠.”
유재원은 그걸로 충분했다.
비틀V는 디자인적으로는 훌륭했지만, 그렇다고 라이트닝 볼트가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탑재된 자율 주행도 레벨5의 완전 자율 주행이 아닌 게 틀림없다. 레벨5라면 대놓고 자랑을 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레벨5 인증을 위해선 누적 주행 1억km의 기록이 있어야 했는데, 볼츠바겐은 물론 폭스바겐 그룹도 달성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터쇼의 행사장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국산 전기 자동차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렸던 독일 사람에게 비틀V는 완벽한 취향 저격이었으니 말이다.
며칠 후에 예약 사이트가 열리면서 비틀V의 가격이 한국 돈으로 6천만 원이 넘는다는 게 공개되자 열기가 살짝 식었지만, 그래도 예약자는 많았다. 독일도 전기 자동차에 대한 보조금을 강화하면서 실구매 가격은 3천만 원 후반대까지도 가능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독일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이 살아나나 싶었던 그때.
찬물이 확 뿌려졌다.
찬물을 뿌린 그곳은 바로 백악관이었고, 존 매케인 대통령이 직접 로즈가든에 기자회견장을 만들어 모습을 드러냈다.
금빛으로 풍성해진 머리칼 덕에 10년은 젊어 보이는 존 매케인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중국의 지적재산권 절취에 대한 우리의 경고는 예전부터 꾸준히 전했습니다. 그때마다 중국은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기는커녕 절취의 정도는 더욱 대담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기어코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었습니다. 네. 전고체 배터리를 말하는 겁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은 시작부터 돌직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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