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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979화 (979/1,007)
  • 955회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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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 Internationale Automobil-Ausstellung)는 역사가 참 깊었다.

    1897년부터 시작되었으니 100년이 훌쩍 넘는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렇지만 현재 자동차 산업의 전통적 강자들에겐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특히 독일 자동차 3사가 제일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원죄는 디젤 게이트 때문이었다.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을 시작으로 미국은 전 세계 모든 차종에 대해 제대로 각 잡고 전수 조사를 했다. 그러자 폭스바겐 그룹의 자동차들은 물론이고, 벤츠와 BMW도 연비와 매연 수치를 속였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미래자동차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자동차에서도 표기와 실제가 다른 경우가 나왔지만, 폭스바겐처럼 심각한 차이가 나온 건 아니었다.

    이후 폭스바겐은 독일과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고소가 이뤄졌고,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재판의 진행 속도는 미국이 제일 빨랐고, 독일이 제일 느렸다. 또한, 재판 결과도 미국에서는 유죄에 천문학적 배상 금액이 내려진 반면, 독일에서는 폭스바겐 경영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였다.

    독일 내부에서도 이건 아니라면서 폭스바겐과 독일 정치권-사법부 커넥션을 비난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에도 독일의 정치권과 사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만큼 뿌리 깊게 얽혀 있기도 했고, 자동차 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대단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자동차 업계는 전기 자동차라는 게임체인저로 인해서 대격변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내연 기관이 있는 자동차로는 도저히 라이트닝 볼트의 전기 자동차가 제공하는 편의 기능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완전 자율 주행을 비롯해서 소환과 원거리 자동 주차 그리고 스마트 도로 체계와 연동된 각종 부가 기능까지.

    심지어 마감 품질도 너무나 좋았다.

    벤츠나 BMW, 아우디와 같은 고급형 브랜드의 자동차라도 실제 수령해서 운전해 보면 잔고장이 제법 많이 나온다. 마감이 좋지 않은 부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라이트닝 볼트의 자동차들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트닝 볼트의 공장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아니라, 팀별로 하나의 자동차를 끝까지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팀이 작업할 때 인공지능과 연결된 AR 렌즈를 착용했고, 어시스트 로봇이 보조해 준다.

    만에 하나 조립 시 인간적인 실수를 하게 되면 AR 렌즈를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 중이었던 인공지능이 바로 그래픽으로 표시해서 실수를 바로잡게 해 준다.

    게다가 구동계가 배터리와 모터, ECU로 매우 간소했기에, 내연 기관 자동차처럼 복잡하지도 않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의 자동차 업계를 전기 자동차가 순식간에 엎어칠 수 있는 저력이 여기에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이뤄지는 폭스바겐에 대한 재판은 연방대법원에 오른 상태였는데, 여기서 2심의 결과가 그대로 인용되게 되면, 미국 국가 차원에서 폭스바겐을 10년간 판매 금지시킬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 폭스바겐은 셰브롱의 슈퍼차지 얼라이언스 가입도 거부당했다. 이는 폭스바겐 경영진의 위기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폭스바겐이 선택한 건 독자적인 전기차 생산이었다.

    완전 자율 주행 기술이 완성되었고,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는 더욱 깐깐해졌다. 이제는 전기 자동차 말고는 답이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배터리였다.

    전기 자동차용 모터 정도는 독일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고성능 제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터리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결국 폭스바겐의 선택은 CATL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결과물을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덕분에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전 세계 매스컴들의 집중을 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유재원이 꼬맹이들 군단을 거느리고 등장하면서 매스컴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재원과 덕진초등학교 1학년의 현장 체험 학습단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입성한 건 3일 자였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1, 2일 차가 미디어데이였는데, 이날은 전 세계 매스컴의 취재진들만을 위해 개방된다. 3, 4일 차에는 트레이드데이로 개인 구매자부터 대형 딜러에게만 개방되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5일 차부터는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전체 일정 중에 그나마 여유가 많이 남는 날이 트레이드데이였기에, 유재원은 그날을 디데이로 잡았던 것이었다.

    당연히 상당한 수량의 자동차를 구매하기로 약속을 하고,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집행위원회에 허가를 얻었다.

    어차피 경쟁사의 기술 분석용으로 멀쩡한 자동차를 사서 분해해 보기도 하는 게 자동차 업계였다. 게다가 아직 전기 자동차가 완전히 넘어서지 못한 상용차 분야의 경우에는 실제 ID 그룹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매를 해야 했다.

    유재원이 ID 그룹 명의로 사들이기로 한 수량은 덕진초등학교 1학년 현장 체험 학습단 허가를 얻기 충분한 수량이었다.

    사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집행위원회 측에서는 유재원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었다.

    일단 독일 자동차 산업에 대해 심대한 타격을 입힌 장본인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라이트닝 볼트의 신차들은 모터쇼에서 공개된 적이 없었다. 죄다 IDDC라는 자체 신제품 발표회에서 발표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모터쇼 참가도 한국의 서울, 부산 모터쇼 말고는 없었다.

    이렇게 전통 자동차 산업 업계에 톡톡히 미운털이 박힌 유재원이지만, 역시나 실적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그 수량에 감동한 모터쇼 주최 측은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안정적인 관람을 위해서 전문 안내 요원 여럿을 배정해 주기까지 했다. 물론 안내 요원들이 배정됐다고 해서 유재원이 따로 준비한 경호원들이 빠지는 건 아니었다.

    혜성이도 당연히 친구들과 함께 자동차 구경을 신나게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유재원은 수행원들과 함께 곧장 폭스바겐 부스로 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볼츠바겐 부스였다.

    볼츠바겐이라니.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압을 의미하는 볼트와 폭스바겐의 바겐을 붙인 이름으로, 폭스바겐 그룹이 이번 모터쇼에서 화려하게 공개한 전기차 전용 브랜드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아내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말한 분이 계셨지?”

    멀리 보이는 볼츠바겐 로고를 보던 유재원은 문뜩 고인이 된 일성의 최현희 회장이 떠올랐다.

    그때가 1993년이었던 거 같은데, 당시 일성그룹은 일류 글로벌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할 때였다.

    당시 최현희 회장은 이때 일류로 도약하지 못하면, 영영 그저 그런 기업으로 남게 된다는 위기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유재원이라는 규격 외의 존재가 등장해서 미국서 크게 한방 터트렸을 때이니, 위기감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을 터였다.

    그런데 사장단과 임원들만 다급한 마음이었지, 일반 직원들에게까지는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왔던 게 프랑크푸르트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 봐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유재원에게도 나름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혁신의 정신은 일성전자에게 가장 크게 적용되었는데, 그걸 고스란히 유재원이 흡수해 지금의 ID 일렉트로닉스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최현희 회장의 말 그대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 보려는 기업이 있었다. 폭스바겐 그룹이었다.

    볼츠바겐이라는 전기 자동차 전용 브랜드를 두고 지금은 비웃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재원은 폭스바겐 그룹이 사라지고 볼츠바겐으로 완전 전환될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볼츠바겐을 통해 중국과 독일이 손을 잡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았다.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등의 가치가 중요한 EU가 중국과 손을 잡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 그림이지만, 국익 앞에서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었다.

    “옵니다.”

    비서의 말에 헤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그룹 회장은 긴장감에 목이 서늘해졌다. 저기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젊은 동양 남자 때문이었다.

    유재원.

    이제는 그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천재였고, ID 그룹이라는 초거대 기업의 오너였으며, 폭스바겐에 있어선 핵폭탄과도 같은 이름이었다. 유재원으로 인해서 폭스바겐 수뇌부는 일단 싸그리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유재원이 바라는 정의 구현이란 사퇴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감옥에 들어가 푹 썩어 버리는 것이었지만, 헤어베르트 같은 당사자에겐 이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덕분에 헤어베르트가 4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폭스바겐 그룹 회장에 오를 수 있었지만, 전임자들이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는 것에만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일단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배상해야 할 천문학적인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큰일이었고, 미국에서 논의되는 판매 금지 처분이 실제로 내려질 경우를 대비한 계획도 세워야 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단독으로 3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가 미국이었는데, 여기가 막힌다는 건 장사 접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국 시장이 폭스바겐에게 활짝 열렸다는 점이었다.

    중국에도 자체적인 자동차 기업들이 있지만, 그들의 기술력은 세계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대신 1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억지로 산업을 굴릴 정도는 되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억지로 굴릴 수는 없는 법이었고,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된 게 궁지에 몰려 있는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 측도 중국의 의도는 뻔히 읽었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중국에 의욕적으로 진출했다가 기술을 탈탈 털리고 도망치듯 나오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 베트남이나 태국이 새로운 생산 기지로 주목받는 것도 중국의 노동 시장 변화와 정책 때문이었다.

    폭스바겐 그룹 측은 자신들은 다를 거라고 확신했다.

    이미 전기 자동차는 라이트닝 볼트를 중심으로 하는 공룡이 등장해 버린 상태였다. 여기에 셰브롱 슈퍼차지를 경쟁 업체들에도 공급하는 정책을 펴면서 우군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슈퍼차지 얼라이언스에 들어갈 수 없는 업체들은 퇴출되거나,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다. 거기에서 선봉장이 폭스바겐 그룹의 볼츠바겐이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다스 회장님.”

    “아, 넵! 안녕하십니까, 유 회장님.”

    이렇게 속마음을 다잡은 헤어베르트 디스였지만, 다가온 유재원의 인사말에 같이 당황하며 아랫사람처럼 대답하고 말았다. 심지어 호명된 성이 틀렸는데 말이다.

    “그런데 제 이름은 헤어베르트 디스입니다만.”

    “아, 죄송합니다. 헤어베르트 디스 회장님.”

    유재원의 빠른 사과에 강하게 나가려던 헤어베르트도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나저나 볼츠바겐이라니. 굉장히 파격적인 선택을 하셨군요.”

    유재원이 좀 더 막 나가는 사람이었다면 파격적 선택 대신 꼼수라고 했을 거였다.

    미국에서 폭스바겐 자동차들의 판매 금지가 떨어질 게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고, 폭스바겐 그룹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도 최악이었다. 이럴 때 꺼내 들 수 있는 쉬운 카드가 바로 간판 바꾸기 아니겠는가.

    볼츠바겐으로 나오는 자동차들은 미국의 판매 금지 처분을 피해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름도 바뀌어서 폭스바겐의 오명도 뒤따르지 않는다. 물론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다 보이겠지만, 대다수 일반인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예.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뼈아픈 결정이었지요.”

    뼈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런 결정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건가?

    하긴, 셰브롱 슈퍼차지에서 폭스바겐은 응모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주가는 대폭락했다. 여기에 공매도 헤지펀드의 공격까지 이어졌고, 결국 빅쇼트가 나 버렸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폭스바겐 그룹 주가는 50유로대에 머물고 있었다.

    이것도 볼츠바겐 출범 소식에 오른 가격이었고, 몇 주 전까지는 더 깊은 바닥에 빠진 상태였다.

    그런 헤어베르트 디스 회장을 보며 유재원은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그런데 저는 이게 또 폭스바겐그룹, 아니 볼츠바겐을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결정인것 같아 걱정인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재원의 말에 헤어베르트 디스 회장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무슨 말이긴.

    볼츠바겐이 CATL로부터 공급받은 배터리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유재원이 예상했던 그대로, 전고체 배터리 제작에 ID 그룹의 특허가 무단 사용된 걸 확인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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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주말인데, 날씨 변덕이 너무 심하네요.

    이럴 때 감기 조심해야 해요~!

    그럼, 월요일에 다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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