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3회
Dreams
=============================
이상하게도 2016년은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혜성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씩씩하게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여름 방학이라니.
아마도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느끼는 건 유재원 본인이나 주변이 별 탈 없이 안정적으로 잡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에 들어와 퀀텀 전용 양자 운영체제를 만드느라 그룹 경영에 소홀했던 유재원인데도, ID 그룹은 순조롭게 성장 중이었다. 이미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올해에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물건을 준비 중이었다.
혜성이도 학교생활에 별 탈 없이 적응했다.
유치원 때 친구들과 그대로 한 반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학교 가는 걸 너무도 좋아했다.
일단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혜성이는 틈틈이 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같이 놀았는데, 완전 마당발이었다.
같은 반이라면 최소 3번 이상은 데려온 것 같았고, 다른 반이라도 같이 놀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면 한 번은 초대했다.
게다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학교 성적도 최상이었다.
물론 초등학교 1학년의 학업 성적이라는 게, 조금만 잘하면 만점이니,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높게 나오는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이처럼 학교생활을 잘한 혜성이를 위해 올해 여름 방학은 완전히 혜성이 위주로 짜기로 했다.
일단 2016 IDDC가 끝나면 미국으로 가서 외갓집과 외가 쪽 친지들의 집 투어를 하고, 디즈니랜드와 스페이스X의 발사를 지켜보는 한 달짜리 미국 여행 코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관람이 있다.
정확히 따지면 여름 방학 계획은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9월 중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혜성이가 최근 푹 빠진 게 자동차라서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예전엔 비행기였다가 최근엔 공룡이었고, 이번엔 자동차라니.
혜성이의 덕질 변덕은 대체 언제까지 계속될까 모르겠다. 그래도 유재원이나 티파니가 그 변덕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으니 괜찮았다.
티파니와 상의를 한 끝에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하루 정도 보기로 했다. 대신 현장 체험 학습 형태로 덕진초등학교 1학년 전체가 부모님 동반으로 다녀오는 걸로 했다. 학교에서도 바로 허락이 나왔다. 유치원을 다닐 때에도 이런 식으로 통큰 지원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에는 소풍으로 제주도 원더랜드를 1박2일로 다녀오기도 했고, 덕진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미국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로 정하면서 여행비를 지원해주었으니 말이다.
“우와! 너무너무 좋아요! 아빠 엄마 최고야!”
방학 첫날, 유재원과 티파니가 이렇게 짜인 여름 방학 계획을 말해 주자 혜성이는 본인이 보여 줄 수 있는 즐거움과 기쁨을 팔짝팔짝 뛰면서 보여 주었다.
며칠 후.
2016 IDDC를 하루 앞두고 전 세계 언론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여 줬다. 하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3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2016년에도 파격적 혁신은 가능? 가능!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 줬다. 기본만 해도 충분.
-공룡이 된 ID 그룹에서 더 이상의 혁신은 없을 것.
이번 IDDC에서도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긍정적인 부류. 더는 특별한 아이템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부류, 마지막은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부류다.
이러한 기사들을 잘 분류해 보면 제법 특이한 동향도 파악할 수 있다.
긍정적인 기사가 많은 나라들과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나오는 나라들의 공통점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한국과 미국이었고, 후자는 중국과 유럽이었으니 말이다.
명백한 대립 구도가 2016 IDDC를 앞두고 나오는 기사에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반면 IDDC를 준비하는 유재원이나 ID 그룹은 언론들의 설레발과는 달리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이미 출시 준비를 마친 제품들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하다고 자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ID 그룹의 긴 역사만큼이나 IDDC의 회차도 길어졌고, 그에 따라 역대급이라 평가받는 회차도 있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처음 공개된 회차나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공개된 회차가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2016년의 IDDC 역시 새로운 역대급 회차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나 자신하는 이유는 비장의 무기가 두 개나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웨이퍼 클래스 양자 게이트 칩렛입니다.”
유재원은 당당히 가로세로 300mm인 초대형 양자 게이트 칩을 공개했다.
중국이 주장 산술 양자 컴퓨터로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전체 성능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고 자랑한 것에 대한 ID 그룹의 답변이 바로 웨이퍼 클래스 양자 게이트 칩렛이었다.
다이아몬드를 얇게 잘라 놓은 것처럼 보이는 칩렛에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자 찬란한 무지갯빛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요즘 양자 컴퓨터 개발에서 제일 격하게 경쟁하는 것이 큐비트의 집적이죠? IBM이 56개를 했다고 하고, 중국의 주장 산술이라는 양자 컴퓨터는 76개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 웨이퍼 클래스 양자 게이트 칩렛에 집적된 큐비트는 몇 개일까요?”
유재원이 메인 스테이지 객석에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수많은 숫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객석에 자리한 관람객이 말하는 숫자 중에는 정답이 없었다.
“정답은, 화면을 보시죠.”
드림 스타디움이 자랑하는 초대형 인피니티 디스플레이에 0.1초도 찍히는 초시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숫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5 뒤에 0이 점점 쌓이면서 백만을 넘었고, 억 단위도 넘었고, 조 단위로 치솟았다.
그렇게 해서 찍힌 숫자는 50조다.
“숫자에 0이 너무 많나요? 그러나 조금의 과장도 없답니다.”
메인 스테이지의 관객들은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IT 기기의 명가인 IBM은 56개였고 중국이 국가 전체의 역량을 총동원해 만든 양자 컴퓨터는 76개였다.
그런데 단숨에 조 단위라고?
“실감이 나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웨이퍼 클래스 양자 게이트 칩렛의 잠재력이니까요. 그러면 50조 큐비트의 연산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메인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그것은 중국의 주장 산술 양자 컴퓨터가 양자 우위를 증명했던 보손 샘플링 문제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보손 샘플링 문제를 극단적으로 심플하게 설명하자면, 빠칭코 머신을 예로 들 수 있다.
위에서 구슬을 떨어뜨리면, 빠칭코 머신 내부에 설치된 다양한 구조물에 튕기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떨어지는 자리를 예측해 보려면, 구슬을 여러 번 떨어뜨려서 확률적인 분포를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빠칭코 머신에 동시에 투입될 수 있는 구슬의 숫자는 결국 한정되어 있으니, 완벽한 확률 분포를 만들어내는 시간은 엄청나게 길다.
또한, 빠칭코 머신의 내부 구조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확률 분포를 구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정확성도 떨어진다.
기존의 컴퓨터로는 구슬을 하나씩 넣어서 수행하고 결과를 확인해 봐야 했다면, 양자 컴퓨터는 양자의 중첩 성질을 이용해 동시 수행이 가능하다.
동시 수행할 수 있는 숫자와 빠칭코 머신의 복잡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숫자는 제어할 수 있는 큐비트에 비례했다.
76큐비트라면 지금껏 나온 양자 컴퓨터 프로토타입 중에서는 최상급이다. 중국이 ID 클라우드 시스템을 뛰어넘었다고 자신 있게 발표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50조 큐비트라면?
웨이퍼를 통으로 양자 게이트로 만들어 버린다는 발상 자체는 상상력이 풍부한 누군가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걸 실제로 만드는 건 유재원과 ID 그룹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곧이어 메인 스크린에는 퀀텀으로 프로토타입 머신을 통해 보손 샘플링이 수행되는 장면이 나타났다.
목표는 큐브 형태의 코어였지만, 시범 가동되는 프로토타입은 웨이퍼 클래스 칩렛이 단 한 장 장착되어 있었다.
사실 저 화면 속에 보이는 웨이퍼 클래스 칩렛이 안정적으로 작동되는 유일한 정상 제품이었고, 지금 유재원의 손에 들린 건 만들다 실패한 불량품이었다.
겨우 한 장뿐이냐 싶겠지만, 수율은 기적적이었다.
무려 95%!
56조 개의 양자 게이트 중에 정상 제어가 되는 것이 50조 개가 넘는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IDDC의 메인 스테이지에서 자랑스럽게 50조 개의 큐비트가 집적되어 있다고 발표할 수 있었다.
성능도 압도적이었다.
중국의 양자 컴퓨터가 ID 클라우드 시스템을 수천만 배 뛰어넘었다며 근거 없는 자랑을 했다면, 지금 선보인 퀀텀 프로토타입은 중국의 양자 컴퓨터를 구골(10의 100승) 배 뛰어넘는 성능을 선보였다.
그것도 사진 몇 장과 얇은 리포트만 공개했던 중국과 달리 실제 작동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 주는 발표였다.
양자 컴퓨터에 관한 지식이 적은 이들은 유재원이 발표한 구골 배의 성능이라는 말에 그저 감탄만 했다면, 양자 컴퓨터를 직접 개발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부분을 보고 놀라기 바빴다.
특히 양자 게이트를 직접 제어하고, 각종 목적에 따라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도 돌릴 수 있는 양자 운영체제가 원시적이나마 완성되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IBM이나 중국이나 양자 게이트를 제어하는 방식은 게이트 하나하나를 직접 제어하는 기계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양자 게이트와 연결된 기기는 최첨단의 정밀 장비였지만, 운영체제라는 건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다.
존 매케인 대통령에게 전화가 왔을 때 유재원이 에니악을 언급한 이유가 이런 점 때문이었다.
“지금은 프로토타입 단계라서 보다 다채로운 활용에 문제가 있지만, 최대한 빨리 완성된 모델을 만들어 여러분께 가장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만간 관련된 논문도 공개하겠습니다.”
유재원의 다짐 중 하나가 첨단 기술에 대한 비밀주의 타파였다.
그 방법이 논문이었고, 이러한 기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퀀텀 프로젝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퀀텀 프로젝트 팀은 엘리에저 박사를 중심으로 퀀텀제타 알고리즘을 공개하기 위한 논문을 작성 중이었다.
이러한 논문으로 인해서 학계 전체가 발전하고, 그만큼 양자 역학과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다면 그게 곧 유재원 개인의 이익으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물론 논문으로 인한 기술 도용의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지식이 있는 것과 실물을 만드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웨이퍼를 통으로 사용하는 양자 게이트 반도체를 만드는 건 ID 일렉트로닉스에도 어려운 과제였다. 이걸 기술 수준이 수년, 혹은 10년 이상 차이 나는 업체들이 따라 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날 저녁.
-베일을 벗은 2016년 IDDC.
-유재원 회장의 발표는 차원이 다른 양자 컴퓨터!
-50조 개의 큐비트! 상상을 초월한 양자 게이트로 압도적 양자 우위 증명.
-구골이란?
유재원의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세계 매스컴들은 맹렬하게 기사를 쏟아냈다. 혁신은 끝났다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을 거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던 매스컴까지도, 퀀텀 프로토타입 앞에서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56개, 76개 큐비트로 아웅다웅하던 양자 컴퓨터 업계에 갑자기 50조의 큐비트라니.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였다. 단순히 숫자만 압도적인 게 아니라 실제 데모로 보여 준 성능도 탁월했다.
성능을 표현하는 데 구골이라는 숫자가 필요할 정도였다니. 게다가 오늘 발표된 것은 완성된 것도 아니고, 프로토타입이라고 못을 박았다. 완제품이 나올 땐, 얼마나 더 성능이 향상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대신 주식 시장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어김없이 IDDC를 두고 일주일 전부터 혼조세에 접어들던 ID 그룹 주식들이 큰 폭의 상승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가총액 1조8천억 달러, 한국 원화로 1,700조 원에 육박하던 ID 테크놀로지의 시총이 단숨에 2조 달러를 넘어서 버렸다.
중국의 양자 컴퓨터 개발 소식에 매일 –1~2%씩 하락하던 ID 테크놀로지의 폭발적인 반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 성능의 양자 컴퓨터라면, 유재원이 예측했던 강인공지능의 등장도 시간문제라는 걸 투자자들 모두가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면 몇 주 전만 해도 비싸다는 평이었던 ID 테크놀로지의 주식이 사실 제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이었고, 초대형 투자사는 물론 개미투자자들까지도 모두 사겠다는 버튼을 거침없이 눌렀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서 IDDC 2일 차에는 2016년형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Z6가 발표되었다. 스마트폰도 이제 더는 발전할 게 없어 보였지만, 아니었다.
이번에 준비된 혁신은 바로 디스플레이.
2년 전에 가로로 접히고, 세로로 접히는 스마트폰 Z3가 나왔다면, Z6은 말았다가 펼칠 수 있는 상소문 에디션 디스플레이가 탑재되었다.
접히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 있는 기술이었기에, ID 디스플레이도 장장 3년은 더 걸려서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효용은 접었다 펴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당연하게도 행사장에 준비된 Z6은 당일 매진이었고, 예약도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3일 차에는 프로젝트 2077의 무료 DLC들이 공개되었는데, 완벽한 VR 모드와 새롭게 추가된 2개 챕터 분량의 추가 스토리였다.
출시 1년이 된 게임이지만 아직도 동시 접속자 숫자가 50만이 넘는 인기 게임이었기에 반응도 뜨거웠다. DLC 출시를 계기로 이용자 숫자가 다시 뛰어올랐고, 판매량이 미진했던 VR 세트도 주문량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렇게 2016년의 IDDC를 성공적으로 마친 유재원의 가족들은 혜성이와 약속했던 대로, 미국 여행에 올랐다.
미국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텍사스 휴스턴이고,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스페이스X의 팰콘9 로켓의 두 번째 발사 참관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게 원래 일정이었는데, 스페이스X에서 예상보다 순조롭게 조립을 마치면서 일정이 변경된 것이었다.
혜성이도 흥분했지만, 유재원도 가슴이 두근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아들딸 동반해서 관람하는 건데, 저번처럼 또 터지면 큰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 팰콘9 로켓에 탑재된 스타링크 위성은 120기나 된다. 위성 하나 당 제작비가 수십억 원은 가뿐히 넘었으니, 폭발하면 수천억 원이 공중분해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