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76화 (976/1,007)

952회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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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중순.

“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친구들이랑 두루두루 재미있게 놀아.”

“네!!”

티파니의 당부에 혜성이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이내 총알처럼 뛰어나갔다.

“혜성 도련님.”

그런 혜성이에게 알프레드 집사님이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체력 넘치는 비글처럼 뛰어다니던 혜성이가 얌전해졌다. 유재원과 마찬가지로 혜성이도 알프레드 집사님의 말에 꼼짝 못 하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높인다든가, 체벌한다든가 하는 일 없이 그저 부르는 것만으로 혜성이를 바로 잡는 건 참 대단한 일이었다.

곧이어 혜성이는 집 앞에 도착한 스쿨버스에 뛰어올랐다.

운전기사에게 꾸뻑 인사를 하고, 본인의 지정석에 앉더니 아직 배웅 중인 유재원과 티파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곧이어 스쿨버스가 출발했다. 당연하게도 스쿨버스의 앞뒤로 경호 차량이 따랐다.

알프레드 집사도 뒤쪽 경호 차량에 올랐다.

미국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런 문화가 약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 등하교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유재원과 티파니도 이 문제로 살짝 고민했었는데, 유치원 생활을 해 보면서 덕진리라면 혜성이가 혼자서 스쿨버스로 통학을 해도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이를 위한 준비는 철저했다.

조금 전 혜성이가 탔던 스쿨버스 운전기사는 그냥 운전수가 아니라 국정원 최정예 요원이었다. 실탄이 장전된 권총도 휴대하고 있어서 최악의 사태에 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여기에 앞뒤로 붙는 경호 차량은 ID 그룹의 경호실 대원들이었다.

스쿨버스도 미국에서 가져온 엄청나게 튼튼한 모델을 전기 버스로 개조한 것으로 덤프트럭이랑 충돌하는 사고가 나더라도 덤프트럭이 밀려날 정도였다. 마지막 안전장치는 뒤쪽 경호 차량에 동승하는 알프레드 집사님이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혜성이의 의지였는데 지금 보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치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그대로 1학년 같은 반이 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유재원과 티파니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빼고는 덕진초등학교에 갈 이유가 없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네.”

“그러게.”

씩씩하게 학교에 가는 혜성이의 모습에 뭔가 복잡한 심경이 올라온 티파니였다. 유재원도 십분 동의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재원과 티파니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나 세월이 지났구나 싶은 순간이 여럿이었다.

지금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아쉽게도 여운을 오래 느낄 시간은 없었다. 혜성이가 집 앞을 나서는 시간은 8시 30분으로 잠시 후엔 유재원이나 티파니도 업무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점심때 봐.”

모닝 키스를 나눈 후, 유재원은 서재로, 티파니는 별채에 새롭게 만든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시작해 볼까.”

서재의 본인 자리에 앉은 유재원은 안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 페이스 키로 잠금을 해제해 책상 한쪽에 놓았다.

그러자 컴퓨터와 모니터가 켜지면서 바로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예전엔 키보드로 일일이 로그인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스마트폰 인증 시스템과 PC의 보안 체계가 통합되면서 아주 간편하게 부팅을 완료할 수 있었다.

훨씬 간편했지만, 보안 수준은 키보드로 암호를 넣는 것보다 몇 배는 향상된 보안 체계였다.

유재원은 바로 그룹 전산망과 ID톡을 열었고, 새롭게 쌓여 있는 수많은 현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대석 비서실장도 이미 로그인이 된 상태였다.

유재원이 한국으로 오면서 김대석 비서실장 부부도 고향인 덕진리 내오마을로 집을 옮겼다. 근무 형태는 미국과 같이 보통 땐 이렇게 온라인 자택 근무였고, 외부 스케줄이 있거나 특별한 용무가 있을 때는 김대석이 찾아오는 게 보통이다.

“비서실장님. 굿모닝! 오늘 브리핑 부탁해요.”

-예,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그러면 밤새 있었던 그룹 동향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초고화질의 영상으로 연결된 김대석이 평소처럼 보고를 시작했다.

-프로녹티스의 판매량이 누적 1억 개를 돌파했습니다.

역시나 첫 번째로 보고가 된 것은 프로녹티스였다.

누적 판매량 1억 개 돌파!

작년 9월 초부터 정식 판매가 시작되었으니, 어마어마한 히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주일 분량인 7개가 들어 있는 패키지 기준으로 1억 개였고, ID 바이오로직스에서 도매상에게 넘겨지는 공장도 가격이 30달러다. 그러니까 1억 개 돌파는 매출 30억 달러 달성이라는 이야기였다.

-소비자의 반응은 무척이나 긍정적입니다. 개발진에게 노벨상을 줘야 했다는 말도 나올 지경입니다.

이렇게나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는 건 바로 서양인 중에 탈모 기운이 있는 이들이 전체의 40%가 넘기 때문이다. 아직은 괜찮다고 해도 나중에는 반드시 탈모가 찾아왔다. 그런 사람들에게 프로녹티스는 기적이었다.

-영국 해리 왕자도 프로녹티스 SNS에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현실판 차밍 프린스가 바로 영국의 해리 왕자였다.

다만 차밍 프린스라는 별명이 오래가진 못했는데, M자형 탈모가 오면서 인상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도용 사진과 실물의 차이도 점점 크게 벌어졌다. 그러던 중에 프로녹티스가 발매되었고, 큰 효과를 본 해리 왕자는 SNS 활동을 열심히 시작했다.

최근에는 프로녹티스에 엄지를 척 드는 이모티콘을 올렸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프로녹티스 계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엄지 척 이모티콘을 보내기 시작했다.

“효과를 보았다니 다행이군요.”

탈모를 앓고 있는 사람 중엔 프로녹티스의 약효가 들지 않는 사람들도 소수 있었다. 면역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탈모가 시작된 유형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극소수였고, 오염물에 노출되었다든가 스트레스 때문이라든가 하는 일시적인 요소 때문에 탈모가 온 것이라 불치는 아니었다.

하여튼, 이렇게 프로녹티스로 효과를 본 사람이 많아지면서, 노벨상 이야기도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회충 감염의 새로운 치료법 발견에 대한 공로로 윌리엄 C. 캠벨과 오오무라 사토시 팀과 말라리아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한 투유유에게 돌아갔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본인이 받고 싶다는 게 아니라, 프로녹티스의 개발자인 장재진 박사가 받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아예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탈모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고, 여기에 덤으로 아토피와 같은 면역 질환에도 효과가 나오는 신약이었다.

프로녹티스로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김대석의 브리핑은 계속되었다.

안드로이드 Z5가 아직도 기세 좋게 팔린다는 것부터, i웍스나 i웍스 노트북의 품귀 현상이라든가, AMD의 ZEN2 CPU와 라데온 그래픽 카드의 공급 부족 현상에 대한 보고들이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블랙홀이었던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작업이 끝나고서, 시중에 공급되는 다이아몬드 반도체 물량도 대폭 늘어났다.

그런데 수요는 그 이상이었다.

특히 PC의 수요가 폭발적이었는데, 2015년 전 세계 PC 판매량이 2억 대를 돌파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마치 90년 말 대IT 혁명기 때의 열기와 비슷했다.

처음 나왔을 때는 비쌌는데, 지금은 합리적인 가격이 되면서 잠재 수요가 폭발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사이버펑크 RPG로는 단숨에 최고 명작에 오른 프로젝트 2077이 큰 역할을 했다.

프로젝트 2077 게임을 풀 옵션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 반도체 PC 아니면 엑스박스 4D라는 두 가지 답뿐이다.

가격만 따지면 엑스박스 4D가 정답이다. 겨우 599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쾌적한 게임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골수 게이머들은 PC를 선택했다.

MOD 때문이었다.

개발자는 최선을 다해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수백 수천 시간 게임을 하다 보면 바닥이 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할 거 없다는 게이머들을 위해 나온 것이 MOD였다. 유저들이 스스로 게임의 콘텐츠를 채울 수 있게, 리소스를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인데, 프로젝트 2077은 아예 게임 에디터가 내장되어 있었다.

다만 PC에서만 100% 활용이 가능하고, 리소스가 한정된 엑스박스 4D에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 밖에도 PC용 킬러 앱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요가 폭발 중이었다.

물론 김대석의 브리핑에는 이렇게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VR 세트의 판매량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김대석 비서실장의 멘트와 함께 유재원의 모니터에 상세한 판매 자료가 떴다.

지금까지 180만7,692대를 팔았는데, 같은 기간 엑스박스 4D는 2천만 대를 팔아치웠다. 역대 게임기 중에 가장 빠른 2천만 기록 달성이었다.

판매 부진의 제일 큰 이유는 비싼 가격이었고, 두 번째는 부족한 콘텐츠였다. 그나마 기대하는 게 프로젝트 2077의 VR 지원 무료 DLC였다. 비지원 상태에서도 나름 몰입감이 대단해서 VR을 완벽 지원하게 되면 엄청날 거라고 기대했다.

아마 지금까지 팔린 VR 세트 중에 최소 반은 프로젝트 2077의 팬들로 예상되고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또 다른 안 좋은 소식은 VR 세트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아쉽게도 웨이퍼 클래스 퀀텀 코어 제작에는 아직 큰 진전이 없습니다.

퀀텀 프로젝트가 암초에 걸렸다.

웨이퍼 클래스의 초대형 칩렛을 쌓고 쌓아서 퀀텀의 코어 큐브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유재원의 계획은 작년부터 수행 중인데, 아직 성과가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수율이다.

웨이퍼 자체 수율은 잘 나온다.

0.5나노라는 초미세공정까지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 오면서 기술력을 쌓은 ID 일렉트로닉스였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같은 장비를 사용하는 TSMC였고, 대중국 견제 전략에 따라 기술 지원을 충실히 해 주고 있는데도 그곳은 1나노미터 공정에 머물고 있었다.

문제는 0.5 나노미터 공정으로 완성된 웨이퍼 3장을 겹쳐서 하나의 양자 회로 레이어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3장의 칩렛을 정확히 겹쳐야 하는데, 그게 보통 난이도가 아니었다.

회로도 설계에서 최적화를 하긴 했는데, 수조 개의 접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맞물려야 양자 게이트가 동작한다. 맨눈으로 보면 그냥 다 잘 맞춘 것처럼 보이는데,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제대로 접촉된 게 전체의 10%도 되지 않을 정도다.

이 정도면 불량이다. 게다가 한 번 결합 작업을 수행했다가 실패하면 재활용도 불가능하다. 억지로 뜯어내면 정상적으로 접촉된 곳의 접점이 깨져 버리니 말이다.

수천 번의 시도에도 실패만 이어지니 퀀텀 프로젝트 팀에서 손톱 크기의 작은 칩렛으로 해 보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유재원은 거절했다.

퀀텀을 처음 설계했을 때부터, 한 변이 300mm인 정육면체 큐브 코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 설계만이 회귀 전 구글이 만든 양자 컴퓨터 골든실버를 능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퀀텀제타 알고리즘의 특성상 양자 게이트가 많이 집적되면 될수록 높은 성능이 나온다.

유재원은 앞으로도 뚝심으로 밀어붙일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파악하고, 해결하다 보면 목표를 이룰 것 아니겠는가.

“아, 스페이스X에서 올라온 리포트는 없나요?”

-네, 최근 소식은 2주 전 보고드린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알아볼까요?

퀀텀 프로젝트 다음으로 유재원은 스페이스X에 대한 화제를 꺼내들었다.

작년 봄에 팰콘9 로켓을 시원하게 터트려 먹은 뒤로도 유재원의 투자는 계속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 발견된 문제점을 해결하고, 추가적인 보완책과 새로운 기술도 추가된 팰콘9 로켓 블록5를 2기나 동시에 제작 중이었는데, 2주 전에는 최종 조립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왔었다.

그러면 지금쯤 완료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니. 그렇다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전해진 것도 아니었기에 유재원은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때, 김대석이 유재원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응? 회장님, 중요한 소식입니다.

“뭔데요?”

-폭스바겐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전기자동차를 공개할 거라고 합니다. 아직 교차 검증되진 않은 정보입니다.

“폭스바겐의 전기자동차라면, CATL의 전고체 배터리가 들어가는 걸 말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CATL의 전고체 배터리는 ID 그룹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사안이었다. CATL의 기술력 수준은 이미 뻔히 아는데, 전고체 배터리를 이렇게나 빨리 만들어내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면 답은 뻔하다.

유재원을 비롯한 이들은 상식을 뛰어넘은 비법을 기술 도용이라고 확신했다.

만약 확신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거대한 전쟁의 서막으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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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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