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74화 (974/1,007)
  • 950회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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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 박사님이다!”

    아빠와 비밀스러운 연구 기지에 놀러 왔다고 평소보다 상기된 혜성이가 마중을 나온 퀀텀 프로젝트 사람들 중 하나를 콕 찍어 목소리를 높였다.

    커다란 눈과 발달된 코, 강인한 하관까지. 혜성이가 자주 보는 만화의 마빈 박사와 싱크로율이 높긴 했지만, 그렇다고 면전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어허, 혜성아. 처음 보는 어른께 무슨 말버릇이니.”

    “그치만, 너무 마빈 박사님이잖아요.”

    “그럼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당사자가 직접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시겠어. 설마 혜성이 너, 유치원에서도 친구들 외모만 보고 별명 지어서 놀리는 거야?”

    “에……. 다신 안 그럴게요!”

    유재원의 추궁에 혜성이는 바로 잘못했다고 했다. 단단히 혼을 내줘야 할지, 처음이니 여기까지만 할지 고민하던 유재원은, 부자의 대화에 인사 타이밍을 놓친 퀀텀 프로젝트 임직원들의 모습에 일단 물러서기로 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이쪽은 제 아들 혜성이입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퀀텀 프로젝트 임직원들에게 혜성이를 소개했다.

    “박사님들, 안녕하세요. 유혜성입니다.”

    “어이쿠, 엘리에저 박사입니다.”

    하마터면 마빈 박사라는 별명이 생길 뻔했던 퀀텀 프로젝트의 팀장 엘리에저 박사가 혜성이의 인사에 답했다.

    조금 전 실례를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마빈 박사라는 캐릭터가 뭔지 모르기도 했고, 어린아이의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연락드렸는데, 이렇게 아드님까지 함께 방문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연락이 너무 늦어진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전혀요. 당연히 퀀텀 프로젝트라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죠.”

    유재원과 엘리에저 박사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지만 엘리에저 박사의 미안함은 진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퀀텀 프로젝트에 무제한적 지원을 한 지가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상태다.

    말 그대로 무제한적 지원이었다.

    특수한 계측 장비가 필요하다면 바로 구매해 줬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장비라면 제작비도 지원했다.

    그렇게 투입된 자금이 연간 10억 달러를 훌쩍 넘을 정도였다.

    유재원은 양자의 특성을 다뤄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에 이 정도 비용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단적으로 양자를 정밀 제어하기 위해서는 초전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현재 기술로 초전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극저온을 달성해야 했고 안정적으로 유지도 해야 했다.

    그런 특수 시설 건설에도 기꺼이 투자했다.

    사실 유재원의 입장에서는 ID 하이테크나 ID 파운데이션과 같이 돈을 물 쓰듯 하는 곳에 비하면, 퀀텀 프로젝트 팀에 들어간 예산은 소박한(?) 수준이었다.

    반면 퀀텀 프로젝트에 속한 개발진들의 마인드는 조금 달랐다.

    다들 과거에 특정 연구소나 학교에 속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예산을 추가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돈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시달려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싸워야 할 때도 있었다.

    반면 지금은 요청서를 넣기만 하면 즉각 승인됐다. 아니, 정 급한 일이면 이번처럼 ID톡으로 메시지만 보내도 된다.

    이렇게나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는데, 뭔가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서서히 올라왔다. 게다가 ID 하이테크에서도 SF1의 초도비행이 성공하기도 했고, 모나리자 진품 감별에 LHC가 큰 역할을 하자 퀀텀 프로젝트 팀은 정신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다이아몬드 반도체도 나왔다.

    당연히 퀀텀 프로젝트 팀의 시스템도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런데 이게 퀀텀 프로젝트 팀에겐 큰 부담이었다.

    바로 양자 우위 문제 때문이다.

    양자적 특성을 이용한 연산 알고리즘의 효율이 기존 컴퓨터의 효율을 넘기는 것이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허들이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었다. 실리콘 반도체와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성능 차이는 기본이 10배였고, 특성과 공정에 따라서 1,000배까지도 향상된다.

    퀀텀 프로젝트 팀 앞에 놓인 허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당시만 생각하면 엘리에저 박사의 등골이 서늘해진다. 유재원과 ID 그룹이 잘되는 건 좋았는데, 본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더더욱 가혹해졌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이번에 완성된 양자 연산 알고리즘은 실리콘이냐, 다이아몬드냐 하는 소재적 특성을 간단하게 뛰어넘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침내 엘리에저 박사와 퀀텀 연구팀은 답을 찾았다.

    애초에 소재의 특성에 구애받지 않는 양자의 물리적 특성을 100% 활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말은 쉽고, 실제로 구현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다만 엘리에저 박사와 퀀텀 프로젝트 팀원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건, 실제 하드웨어 제조의 난이도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이미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퀀텀의 양자 회로와 전체 하드웨어의 설계가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을 통해서 0.5나노 이하의 미세공정도 양산 채비가 갖춰지고 있었다. 이번에 2015 IDDC에서 발표된 안드로이드 Z5의 AP는 DM15 칩이었는데, DM15에 적용된 공정이 0.8나노미터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이었다.

    0.3나노미터만 더 줄이면, 드디어 양자 역학의 세계인 0.5나노미터를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잠시 후.

    “그러면, 비결정론적 퀀텀제타 알고리즘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연구소의 중앙에 자리한 대회의실. 엘리에저 박사가 전자 칠판 앞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런 엘리에저 박사의 맞은편에는 유재원과 혜성이가 앉았고, 그 뒤로 퀀텀 프로젝트의 연구원들이 자리했다.

    “퀀텀제타라는 이름은, 퀀텀 프로젝트의 6번째 알고리즘이란 뜻인가요?”

    제타라는 건 그리스의 6번째 문자였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네, 이게 아니구나 하고 갈아엎길 6번 했다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QED도 붙이려고 했는데,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고 이름도 복잡해지니 간단히 명명했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비결정론적’이라는 수식어는 현대의 컴퓨터를 ‘결정론적 튜링 기계’로 정의할 수 있기에, 동시에 여러 개의 값이 존재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의 경우 이와 반대되는 단어가 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에저 박사는 전자 분필을 들고 전자 칠판에 공식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말이 전자 분필이지 실제로는 안드로이드 패드의 부가 장치인 스타일러스를 박사님들이 익숙한 분필 형태로 만든 것이었고, 전자 칠판도 대형 OLED 패널에 Z4급의 스마트폰을 결합시켜 놓은 형태였다. 그래서 이름만 보면 저렴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둘 다 상당한 가격을 자랑하는 제품이었다.

    대신 전자 칠판에 무얼 기록하든, 실시간으로 저장이 되고 언제, 어디서라도 불러올 수 있는 공유 기능도 있었다.

    덕분에 이곳 퀀텀 프로젝트 연구원들은 연구 과제를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었고, 최신의 이슈도 빠르게 공유하면서 연구 속도를 극대화했다.

    “엥?”

    한껏 기대하던 혜성이의 표정도 이때부터 바뀌었다. 양자의 물리적 특성도 모두 수식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고, 이를 최적화하여 보다 효율적인 공식으로 압축하는 게 알고리즘이었다. 이렇게 수학 공식으로 만들면 한눈에 보기 편한 분량으로 압축도 된다.

    반면 혜성이는 요란한 기계 장치를 기대했는데 꼬부랑 글씨가 가득한 수학 공식이 나오자 실망한 눈치였다.

    그렇지만 유재원과 미리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며 관심이 있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면, 지금은 등받이에 기댄 채 슬슬 자세가 풀어지려고 했다.

    다만 유재원은 옆에 있는 혜성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엘리에저 박사와 퀀텀 프로젝트 팀의 성과를 검증하는 게 더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유재원에게 긴급히 연락을 띄운 만큼, 검증에 검증을 거친 알고리즘이었고 유재원도 논리의 흐름에서 오류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이론적인 해결책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엘리에저 박사도 거기까지 고민을 했고,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은 듯 보였다.

    “여기 교통 상황 분석 A형 문제의 시뮬레이터 결과가 있습니다.”

    엘리에저 박사가 전자 칠판에 띄운 건 시뮬레이션 결과였다.

    시뮬레이터는 ID 클라우드 서버에서 구동되는데, 여기에 가상의 슈퍼컴퓨터와 퀀텀제타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양자 연산 장치의 성능을 비교한 것이었다.

    이런 게 가능한가 싶지만, ID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한 다양한 시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고, 이제까지 연구된 양자물리학의 특성이 적용된 양자 역학의 세계도 구현이 가능했다. 물론 시뮬레이터 안에서 구현된 게 현실의 양자 역학의 세계를 완벽하게 반영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시뮬레이터 속의 큐비트는 이론 그대로 작동했다.

    반면 가상의 슈퍼컴퓨터는 실제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연산력을 빌려서 만든 슈퍼컴퓨터다. 가상의 물건이지만 성능은 임대한 연산력 그대로 발휘한다.

    “그 결과 퀀텀제타 알고리즘으로 구현된 양자 연산 장치의 효율은 가상의 슈퍼컴퓨터 대비 34,348%의 향상을 보였습니다.”

    엘리에저 박사는 텍스트로 구성된 시뮬레이터 결과에서 34,348%에 전자 분필로 동그라미를 크게 그렸다.

    “좋군요.”

    반면 유재원의 반응은 ‘좋군요’가 전부였다.

    “아, 네.”

    팀이 이룬 성과에 무척이나 감동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에 엘리에저 박사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유재원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절차에 들어가 있었기에, 리액션을 해 줄 겨를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곧바로, 시제품을 만들어 봅시다.”

    “예? 이걸로 말입니까?”

    “네! 바로 시제품 제작으로 가도 될 만큼 우수한 결과물이니까요.”

    바로 대규모 슈퍼 양자 컴퓨터의 시제품 제작이었다. 비록 이론적이지만, 이 정도 성능이 예상된다면, 바로 시제품을 만드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유재원에겐 핵심 알고리즘과는 별개로 양자 게이트를 만들고 이를 제어할 노하우가 충분하다 못해 넘쳐 흘렀다. 무엇보다 ID 그룹의 기술력은 그런 유재원의 노하우를 현실화시키는 데 충분했다.

    “오오!”

    엘리에저 박사와 퀀텀 프로젝트 연구원들은 그제야 긴장감이 탁 풀렸다. 동시에 유재원의 추진력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금 감탄하게 되었다.

    “와아.”

    또 다른 감탄은 유재원의 옆자리에서 나왔다. 혜성이었다.

    퀀텀제타 알고리즘의 발표는 2시간이 넘었고, 그동안 온갖 전문 용어들이 쏟아지는 격한 대화도 있었다.

    유재원은 이렇게 전문적인 대화에 푹 빠져서 순간 혜성이의 존재감을 잊고 있었다. 아마도 모르는 이야기니 지쳐서 자겠지 싶었다. 그런데 옆을 보니 혜성이는 또랑또랑한 눈을 반짝이면서 깨어 있었다.

    설마!

    “설마, 혜성이 너, 우리 대화를 다 이해한 거야?”

    질문을 하고도 순간 어처구니가 없는 유재원이다. 6살이 무슨 양자 역학과 양자 컴퓨터의 핵심 알고리즘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본인이 워낙 특별한 일을 겪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헤헷, 하나두 모르겠어요.”

    역시나 혜성이는 혜성이었다.

    헤헷 하고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를 쓱 쓰다듬어 준 유재원이었다.

    “그럼 왜 안 자고 있었어?”

    “아빠랑 얌전히 지켜 보기로 약속했으니까요!”

    혜성이의 대답에 유재원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이레귤러가 아니면 어떤가. 이렇게 똑바르게 자라주기만 해도 대만족이었으니 말이다.

    곧이어 유재원은 엘리에저 박사를 비롯한 퀀텀 프로젝트 팀에게 대전에서 보자는 말을 남기고 혜성이와 함께 연구소를 벗어났다.

    이렇게 유재원이 수원의 퀀텀 프로젝트 연구팀을 만나는 동안, 중국에서는 중대 발표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중국의 발표 주제는 양자 컴퓨터였다.

    -중국과학원 양자정보중점실험실, 양자 컴퓨터 주장(Jiuzhang, 九章) 공개.

    -76큐비트의 양자 프로세서로, ID 클라우드 시스템이 2억 년 걸릴 계산을 200초 만에 해결!

    -완벽한 양자 우위를 달성한 양자 컴퓨터 탄생!

    중국의 발표는 제법 임팩트가 있었다.

    일단 유재원이 퀀텀 프로젝트 연구팀을 만나러 갔다는 걸 중국도 알고 있다는 티를 내려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또한 중국이 발표한 주장이라는 양자 컴퓨터의 성능도 이제까지 발표된 양자 컴퓨터들 중에서는 최고였다. 양자 컴퓨터에 매우 최적화된 문제를 가지고 성능 자랑을 하는 것이지만, D웨이브나 IBM의 Q보다 훨씬 나은 성능이었다.

    더구나 중국의 공격적인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CATL, 전고체 배터리 개발 성공! 폭스바겐과 합작으로 양산할 시설 건설할 것.

    중국의 배터리 업체 CATL이 폭스바겐과의 합작해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하고, 이를 폭스바겐에 공급하겠다는 발표도 나왔다.

    CATL은 푸젠성 닝더에 본사를 둔 2차 전지 업체였고, 과거 리튬이온이 대세였던 시절에는 한국과 세계의 톱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 체제가 되면서 밀려난 회사였는데, 다시금 전면에 등장한 것이었다.

    LG이노텍은 CATL의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자사의 특허를 도용했다면, 공장이 만들어지는 것부터 막아 버릴 작정이었다. 중국이 자랑하는 게 저렴한 인건비와 재료비를 바탕으로 한 물량전이었으니, 시작하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중국이 작정하고 국제법 따윈 개나 줘 버리라는 태도로 무시하고,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 답은 없으니 말이다.

    참 공교롭게도 중국이 이런 깜짝 발표를 할 거라고 예상이나 한 것처럼, 미국에서 좋은 뉴스가 터졌다.

    -미국 FDA 프로녹티스, 프로테라피 최종 승인!

    누군가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그 신약, 프로녹티스와 프로테라피에 대한 미국 FDA의 판매 승인이 드디어 나온 것이었다.

    프로녹티스를 당장 살 수 있다는 소식에 중국의 양자 컴퓨터나 CATL의 전고체 배터리 뉴스는 당장 뒷전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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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혜성이의 말이 제 맴입니다.

    제가 양자역학을 잘 이해했다면 더 다채롭게 쓸 수 있었을 텐데, 관련 자료를 몇 번을 봐도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ㅎ!

    주말 재밌게 보내시고, 건강도 잘 챙기시길~!

    그럼, 월요일에 다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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