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72화 (972/1,007)

948회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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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도달률 26%.

-노멀 48%, 히어로 22%, 중립 14%, 빌런 엔딩 11%, 기타 5%.

유재원의 모니터에 뜬 자료였다.

출시된 지 겨우 5일 된 프로젝트 2077의 세부 자료 중 엔딩을 본 사람들의 비율 그리고 엔딩의 종류였다.

ID 엔터테인먼트와 유재원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해 만든 게임인 만큼, 엔딩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수천 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수행한 퀘스트와 해결 방식, 주요 NPC의 생존 유무에 따라 엔딩의 성향이 갈린다.

출시된 지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26%나 엔딩을 봤다는 건, 그야말로 폐관 수련을 하는 것처럼 방에서 게임만 하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출시되고 5일째가 된 지금 프로젝트 2077의 판매량은 1천만 장을 거뜬히 넘겼으니 말이다.

PC와 엑스박스3, 엑스박스 4D 통합 집계로 기록된 수치이긴 했지만, 그야말로 게임 판매 기록의 신기원이었다.

출시하자마자 당일 8백만 장이 팔려 나갔고, 다음 날에도 수백만 장이 팔렸다. 무시무시한 기세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평단과 게이머들의 평가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제2의 삶을 살고 싶은가? 프로젝트 2077이 정답.

-폭력과 살인, 배신과 증오로 가득한 미래의 지옥에서 이만한 감동이라니.

-윤리 없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파국이란 이런 것.

-프로젝트 2077 메타크리틱 98점! 절대 강추!

엠바고에 서명한 리뷰어에게는 2주 전에 배포판을 보내줬다. 덕분에 출시 당일부터 상세한 리뷰를 배포할 수 있었다.

2주간 꼼꼼히 플레이를 해 본 리뷰어들은 90% 이상 강력 추천했다. 나머지 10%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이 불호인 사람이라거나, 개인적 취향을 타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취향이 맞지 않으면 그저 그런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삼촌! 그 몰살 이벤트! 대체 뭐예요?”

반면 이렇게 깊게 몰입한 플레이어는 엔딩을 보고 나서도 강력한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5일의 폐관 플레이를 마치고 나온 엠마는 바로 유재원이 있는 서재로 와서 억울하다는 듯 따졌다.

“당황스러웠어?”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충격이었다고요!”

엠마가 말한 몰살 이벤트란, 프로젝트 2077의 초중반의 가장 큰 분기점이었다. 당연하게도 유재원이 고의로 담아 놓은 악취미가 십분 발휘되는 퀘스트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루트로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들은 초반부에는 그야말로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였다.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서 돈을 벌어야 살인적 물가의 나이트시티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트시티는 어수룩해 보일수록 털릴 확률을 크게 설정해 놓았다. 경험치와 명성이 낮은 상태에서 픽서와 접촉해 퀘스트를 받으면, 미끼나 총알받이로 쓰이는 것이다. 어쩌다 겨우 미션에 성공해도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약속된 보수를 멋대로 깎아 버렸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도시가 나이트시티다.

이런 나이트시티에서 플레이어들을 돕는 NPC들이 소수 있다.

이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퀘스트를 처리해 나가는 게 정석 플레이인 것이다. 2년 전에 배포되었던 3시간짜리 데모판의 경우에도 동료들과 함께 장기 매매 집단에 납치된 사람을 구하는 퀘스트였다.

플레이어가 초반부를 잘 넘겨서 레벨 10이 되면 큰 건이 들어오게 되는데, 나이트시티를 주름잡는 메가코프 아라카사의 비밀 연구소를 터는 미션이었다.

일을 가져온 픽서는 거기서 매우 특수한 저장 장치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 물건은 사실 아라카사의 비밀 연구인 영생 프로젝트를 위한 특수 저장 매체였다.

플레이어와 같은 얼치기 따위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미션이었다. 당연히 일을 가져온 픽서는 사실 플레이어 팀을 미끼로 쓰려 했던 것이고, 실제 탈취를 위해 괴물 수준의 고레벨 팀을 꾸려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실제 작전을 진행해 보면 일이 잘못되게 된다.

아라카사의 비밀 연구소 측은 공격이 들어올 걸 미리 알고 있었고, 결국 고레벨 팀이 미끼가 되면서 플레이어가 특수 저장 장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플레이어의 절친이 죽고, 플레이어는 특수 저장 장치를 제 몸에 박아 넣고 나서 겨우 탈출하게 된다.

보통 게임이면 여기서 미션 완료가 뜨고, 다음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프로젝트 2077은 여기서 한 방 더 먹인다.

어찌어찌 겨우 아지트로 돌아온 플레이어는 정신을 잃게 되는데, 이때 플레이어와 깊은 관계를 맺은 NPC들이 적극적으로 회복을 돕게 된다.

그런데 이때, 특수 저장 장치에 담겨 있던 뭔가가 약화된 플레이어의 몸을 탈취하고 학살을 벌이게 된다. 뭔가에 장악된 플레이어는 원래의 레벨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어마어마한 전투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플레이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살피던 NPC부터 확실하게 죽였다.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게임 플레이에 도움을 준 NPC들이 죽는 것이지만, 엔딩을 보고 나서 바로 유재원에게 달려온 엠마처럼 게임에 몰입한 게이머라면 진짜 친구나 애인이 죽는 충격일 것이다.

“절대 악인 아라카사와 플레이어 사이에 확고한 대척점을 세워야 했거든.”

플레이어에게 빙의했던 것은 바로 아라카사의 영생 프로젝트의 실패작이었다.

아라카사 최고의 전투 요원인 타케무라는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다 치명상을 입고 죽게 되었는데, 어차피 죽게 된 거 영생 프로젝트의 실험자가 된 것이었다.

소울 이터르라는 프로그램으로 영혼을 뽑아내 사이버메트릭스에 옮기고, 그렇게 추출된 영혼을 다시 젊은 육신에 옮기는 게 영생 프로젝트다. 그런데 문제는 영혼 추출이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타케무라는 원래의 기억을 상당 부분 소실했고, 소울이터가 분노라는 감정을 건드리게 되면서 폭주 상태가 된 것이었다. 아라카사 측은 타케무라를 사이버메트릭스에 옮기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해 특수 저장 장치에 담아둔 것이었다.

그런 타케무라가 플레이어의 몸에서 깨어났고 폭주하며 주변 동료들을 싹 죽여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타케무라라는 놈이 왜 계속 남아 있는 건데요!”

“엠마 반응을 보니 효과가 좋은 모양이네.”

폭주한 타케무라는 그대로 사라졌나? 아니다.

그대로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남아서 플레이어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이 되어 계속 함께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분노했지만, 본인 머릿속에 든 타케무라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몸에 박힌 특수 저장 장치를 빼내면 본인도 죽게 되는 상태가 되면서,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다.

그런데 타케무라가 마냥 플레이어를 엿 먹이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철천지원수였지만, 아라카사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이었으니 말이다.

기억을 많이 소실했지만 아라카사의 내부 정보를 제일 잘 아는 존재였고, 타케무라의 전투 능력이 플레이어에게도 전승되면서 한층 더 강력해질 수 있었다. 게다가 타케무라 본인의 암호화폐 계좌를 불러주기도 하고, 특수한 티켓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블랙마켓과도 연결시켜 주면서 장비의 업그레이드까지 이루어지며 본격적인 프로젝트 2077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휴! 첫 번째 플레이에서는 모르고 당했지만, 2회차에는 다 살릴 거예요!”

“응? 바로 2회차 하는 거야?”

“네! 이번엔 VR로 해 볼 거예요!”

유재원을 향해 전의를 불태운 엠마가 다시 획 나가 버렸다.

여행을 와서 게임만 해도 되나 싶긴 한데, 저럴 수 있는 게 저 나이의 특권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졸업이 무조건 가능한 한국과 달리, 미국 명문대들은 졸업하는 것도 일이었다. 밀레니엄 문제를 풀어서 한 방에 끝낸 장본인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티파니도 리포트에, 시험에 엄청나게 힘들었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흐음. 센티넬 포스는 아직이네?”

유재원은 모니터링 데이터를 프로젝트 2077과 같은 날 공개한 센티넬 포스로 옮겼다.

온라인판이 59달러에 출시된 프로젝트 2077과 달리, 모든 PC부터 엑스박스 4D까지 완전 무료로 푼 센티넬 포스의 출하량도 1천만 개를 훌쩍 넘겼다.

그렇지만 센티넬 포스의 유저 데이터는 유재원의 기대만큼 의미 있는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현재 접속자 수: 36,001명.

-엔딩 도달률 4.08%.

프로젝트 2077보다 플레이타임이 짧은데도 4%밖에 되지 않는다니.

슈팅 시뮬레이터라는 장르적 특성이라고 치부하기에도 너무 낮은 수치였다. 아무래도 게이머들 모두가 프로젝트 2077이나 아니면 다른 대작 게임을 한다고 센티넬 포스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이다.

그러니 플레이하는 게이머들도 적고, 엔딩 도달률도 낮았다.

-SP 미션 클리어 횟수 0.

그렇기에 엔딩을 보고 난 다음 등장하는 스페셜 미션의 클리어도 0이다.

스페셜 미션이란 바로 센티넬 포스의 인공지능과 1:1 대결이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컨트롤에 숙달된 게이머와 센티넬 포스의 진짜 인공지능이 똑같은 기체와 무기로 대결을 펼치게 된다.

그냥 게임 메뉴에서 선택하도록 하면 더 많은 플레이어가 도전해 볼 수 있지만, 그러면 의미가 없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SF1에 탑재되는 인공지능 파일럿에게 학살 당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SP 미션에 등장하는 SF1의 컨트롤은 게이머의 PC나 엑스박스 상에서 구동되는 게 아니라, 멀티플레이로 연결되는 형식이었다. SF1 인공지능 파일럿을 가동하는 데 드는 컴퓨팅 파워도 상당한 수준이라서 수백만 명에 달하는 게이머들 모두에게 제공하는 건 무리다.

그렇기에 엔딩까지 모두 본 게이머에 한해 SP 미션이 등장하도록 했다.

“그래도 특수한 장르니까 곧 고인물이 등장하겠지.”

유재원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특히 현실성을 최대로 맞춘 VR 모드로 SP 미션을 클리어한 게이머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해당 모드로 클리어만 하면 바로 ID 하이테크 특채 확정이다. 역할은 시뮬레이터 속에서 SF1의 대항군으로 말이다.

혹여 그런 게이머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나쁠 건 없다.

인공지능 파일럿의 능력이 게이머들의 비현실적 기동과 공격도 이겨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이건 뭐지?”

엑스박스 데이 이후의 상황을 모니터링하던 유재원은 새로운 키워드로 데이터를 업데이트했다.

-중국 1,865,209.

중국이라는 단어 뒤에 200만 조금 안 되는 숫자가 달려 있다.

유재원이 넣은 키워드는 중국이었다. 그리고 뒤에 나온 숫자가 무슨 뜻인가 하면 프로젝트 2077을 플레이한 사람들 중에 중국어 자막을 사용한 사람들의 숫자였다.

1천만 카피 중 200만이니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프로젝트 2077은 중국에 정식 발매된 게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 사는 중국인을 위해서 중문 자막을 번체자와 간체자 모두 넣어 놓았다.

그렇지만 중국 본토의 게이머들까지도 포함하지 않으면 이렇게나 많은 숫자가 나올 수가 없다.

해답은 역시나 VPN이었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황금방패는 막강한 성능을 자랑했지만, 반체제와 관련된 게 아니면 풀어주는 게 많았다.

게임도 그중 하나였다.

프로젝트 2077의 판호가 나오진 않았지만, 중국의 게이머들은 마음만 먹으면 VPN을 통해 스팀에 접속할 수 있었다.

“느끼는 게 좀 있으려나?”

게임에서 크게 다뤄지는 건 메가코프였고, 그중에서 메인 빌런은 아라카사였다. 그렇지만 플레이어와 대적하는 집단은 아라카사 말고도 무척이나 많았다. 그중에 하나가 나이트시티의 항만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홍련이라는 갱이었다.

이름 그대로 빨간색 연맹인데, 기업전쟁 후 중국인 이민자들이 모여서 결성된 집단이었다. 이들의 구호는 ‘노예가 되기 싫은 자들아, 붉타는 깃발을 들어라!’였고,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갱단이었다.

게임 속에서 홍련을 통해 사회주의의 모순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노예가 되기 싫은 자들이 모인 조직인데도 그 안에서 극심한 계급이 존재했고, 차별도 컸다. 결정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도 전리품의 분배에서 지도부와 일반 조직원 사이의 수익 분배는 엄청난 격차가 났다.

홍련 관련한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일반 조직원들은 노예였고, 소수의 간부들이 이들을 부리는 특권 귀족이라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된다.

비록 프로젝트 2077의 중국 정식 발매는 막혔지만, 어둠의 경로로 플레이를 해 본 이들은 뭔가 좀 느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만든 스토리였다.

또한, 중국처럼 강력한 권위주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들이 많이 있었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홍련 관련 퀘스트에는 그냥 막장만 있는 게 아니라, 감동도 있었다.

플레이어가 최선을 다해 홍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다 보면 레볼루숑이 일어나서 특권지도층을 싹 밀어 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게임 속 특권층과 같은 계급이라면 공포로 다가올 충격적 퀘스트다.

덕분에 프로젝트 2077을 다루는 게임 커뮤니티를 보면 홍련 퀘스트에 대한 반응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며칠 후.

프로젝트 2077이 출시된 지 7일 만에 중국의 정식 반응이 나왔다.

-중국 대변인. ID 그룹의 전파공정에 분노와 경악. 홍련 관련 모든 콘텐츠 수정해야.

-중국 광전총국, 프로젝트 2077 심의 중단, 관련 콘텐츠 차단 결정.

전파공정이라는 격한 단어와 함께 광전총국 명의로 공식 차단 결정이 떨어졌다. 또한, 중국 내에서 프로젝트 2077을 플레이한 게이머들을 시범 케이스로 잡아 재판에 넘기기까지 했다.

여기에 중국의 과격한 네티즌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성공하고 나서 태어난 이들이 대다수로 구성된 이들은 일그러진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중국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걸 참지 못하는 이들은 프로젝트 2077의 커뮤니티 그리고 제작사 ID 엔터테인먼트와 ID그룹의 홈페이지를 맹공격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매우 단호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겨우 게임 하나를 가지고 국가 권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중국이 보통 국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추가적인 증거가 될 뿐이었다.

물론 유재원은 중국의 격한 반응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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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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