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1회
인피니티(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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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최근 이런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큰돈 벌고 싶은 사람들은 뭘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2015년 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라이프 리워드 적용 대상자는 500만이 넘었다.
이는 ID 그룹의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500만 대나 보급되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숫자만큼이나 라이프 리워드의 신규 멤버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라이프 리워드의 평균적인 보상은 150만 원 정도.
젊은 사람에겐 대단히 크게 느껴지는 액수였지만,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에게는 라이프 리워드만으로 부족했다. 물론 가족들 모두가 라이프 리워드의 대상이 된다면 이야기는 살짝 달라진다.
4인 가족 모두가 라이프 리워드의 멤버가 된다면 600만 원 이상을 받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가족 전체가 라이프 리워드의 대상이 된 경우는 없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보급이 개개인에게도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골고루 뽑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50만 원이 부족하다는 사람은 대부분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다들 만족하는 건 아니었다.
일찍부터 집을 사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거나,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있는 이들은 라이프 리워드로 받는 액수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데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들은 빠르게 줄고 있었다.
일단 대표적인 전문직이었던 판검사들의 신규 TO가 그 증거다. 검난이 있고 나서 수백 명의 검사들이 사표를 썼다.
검난이 무위로 돌아가고 나서 슬그머니 돌아오려고 했던 사람들도 상당했지만, 누구 하나 봐주는 것 없이 사표는 모두 수리되었고, 빈자리가 많이 생겼다. 그러니 이후 사법 시험 합격자 TO가 늘어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TO는 크게 줄어들었다.
2014년 사법 시험 합격자는 268명으로 300명대 TO가 붕괴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의 활약 덕이었다. 인공지능 판사와 검사의 능력이 너무나 출중했다.
오죽하면 검난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의 빈자리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주어진 증거와 주장을 바탕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판사 인공지능이라면 충분히 효과적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런데 검사 역할도 유능하게 해낼 줄은 몰랐다.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를 도입한 검찰청에서 기대한 것은 행정적 업무의 보조였다. 영장 청구라거나 공소 유지, 사건 검토, 오류 검증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수사 능력도 발군이었다는 게 이번에 증명되었다.
바로 대동조선 로비 조작 사건에서 말이다. 공수처장의 공백 때문에 검찰 조사가 먼저 시작되었는데, 거기에서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는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처음엔 인공지능이 대질을 한다고 하니 방심했다가, 날카로운 질문 세례와 논리적 빈틈을 파고드는 수사에 깜짝 놀란 피의자들이 상당했다.
범죄 사실을 찾아가는 논리 전개 능력만 보면 초임 검사보다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의 능력이 더 출중했다. 그렇게 포착된 사실을 바탕으로 혐의를 입증하는 공소장을 작성하는 능력도 출중해서 단 한 번에 퇴고할 필요도 없는 문서가 툭 튀어나왔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능력에 고무된 정 대통령은 이번에 재선만 성공하면 의료 분야에도 인공지능을 도입하겠다면서 재선 공약을 걸었을 정도다.
문제는 이렇게 판사와 검사 직종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이족 보행 로봇을 통해 더러워도 돈은 많이 받는 블루칼라 일자리의 소멸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도 문제였다.
생산 직종 중에서 제법 알아주는 곳이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공장이었는데, 미래자동차 공장이 대표적이었다.
금속노조라는 강력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어지간한 대기업 사무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자리였는데, 미래자동차가 군산에 새로운 전기차 공장을 지으면서 완전 자동화된 공장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전문직이나 높은 임금이 나오는 생산직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멸되고 있는 게 지금의 한국이었다.
그나마 ID 그룹이 라이프 리워드 정책으로 사라진 일자리 숫자만큼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전해 준 덕에 일자리를 빼앗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파괴하자는 식의 과격한 시민운동이 나오진 않았다.
대신 큰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 문제였는데, 지금 유재원이 존 카멕에게 보여준 VR 세트가 그 해답 중 하나였다.
“가상현실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지요.”
실감 나는 가상현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이버 라이프를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 가상현실 게임의 프로화라면 문제가 되는 현실에서의 고소득 직군을 대체하고도 남는다.
유재원이 꿈속 세계를 창조하면서 참고했던 자료 중에는 가상현실 게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있었다. 그런 소설들에서는 수억 명이 하나의 MMORPG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면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을 다루었다.
레이드부터 길드전까지. 아니면 메인 스토리 퀘스트를 밀면서 이를 스트리밍하거나 게임 방송에 팔아 수익을 내는 것까지 다양한 수익 모델이 등장했다. 아이템과 게임 속 재화를 거래해서 돈을 버는 일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 불과했다.
또한, 가상현실에 현실을 그대로 이식할 수도 있다.
주민센터부터 시작해서 쇼핑몰이라든가, 휴양지, 체험 센터 등등을 만들어 놓으면 어디서 접속하든 갈 수 있을 테니까.
단적으로 몰디브와 같은 유명한 휴양지에 가는 건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걸 클릭 한 번으로 바로 체험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전제는 현실과 구분하기가 어려울 만큼 실감 나는 가상현실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유재원이 보았을 때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늦어도 10년 내에 가능하다.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완전한 가상현실을 만드는 것이 말이다.
다만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잘 쌓아야 했는데, 지금 존 카멕에게 준 VR 세트가 과도기적 상황에서 최선의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물건이었다.
“세상에.”
유재원의 구상을 들은 존 카멕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도 최상급 게임 개발자이긴 했지만, 가상현실용 MMORPG 같은 건 어쩌다 한 번 하는 상상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프로젝트 2077도 마찬가지였다.
“음, 그런데 우리 프로젝트 2077은 VR 대응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괜찮아요. 프로젝트 2077을 1인칭 시점을 기본으로 만들었잖아요. 게다가 ID 테크엔진에 게임 패드를 통한 라이브 피드백 2.0도 지원하니, 별다른 설정 없이 연동시키기만 하면 되죠.”
따로 설정할 필요가 없이 간단히 연동이 되지만, 그만큼 VR의 품질은 보증하기 힘들다. 일단 머리에 착용할 VR 고글의 성능이 불완전했으니 말이다.
왼쪽과 오른쪽 독립된 형태의 디스플레이 모듈의 해상도는 2K였다. 시각적으로나마 부자연스러운 것 없이 가상현실 세계를 볼 수 있으려면 적어도 4K는 되어야 하는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4K 해상도의 디스플레이 모듈을 만드는 건 세계 최고 수준인 ID 디스플레이도 아직 무리였다.
“당장 해봅시다!”
그렇지만 존 카멕은 새로운 게임기를 선물 받은 아이처럼 흥분한 상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젝트 2077의 제작자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마니아이기도 했던 존 카멕이었다. 본인이 만들어낸 세계를 컴퓨터 모니터로 간접 체험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말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유재원도 바로 호응했다.
앞으로 만들 VR 환경에서 존 카멕과 같은 초일류 개발자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ID 테크엔진 차원에서 VR 개발도 지원하게 되면, 우수한 VR 게임을 만드는 게 더 수월해질 것이고, 그러면 유재원이 상상하는 대규모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부터, 다양한 사회 활동까지 가상현실 세계에서 하는 사이버 라이프도 빠르게 도래할 것이다.
지금 존 카멕의 반응을 보면 이미 성공한 것 같지만, 일단 체험은 하고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유재원과 존 카멕은 베타 테스트용 PC 중 최상급 스펙으로 세팅된 본체를 가져와서 VR 세트와 연결했다.
CPU는 AMD가 올해 초 발표한 ZEN2의 최상급 모델인 1618였다. 모델명에서 볼 수 있듯 코어 숫자는 16개이고 작동 속도는 18GHz인 제품이다. 여기에 ZEN2가 되면서 모델명에는 보이지 않는 개선점들이 여럿 있었다. 캐시 메모리가 16코어 전체와 공유되었고, 용량도 2배나 증가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인텔이 TSMC의 다이아몬드 공정을 빌려서 만든 스카이레이크에 밀렸던 ZEN1의 복수를 제대로 해 주었다.
GPU 역시나 ATI의 최신 모델인 DX480이었다. 다이아몬드의 D에 최신 아키텍처를 의미하는 X5였고 90이라는 건 그중에서도 플래그십이라는 뜻이었다.
ZEN2와 DX480으로 세팅된 게이밍 PC의 연산력은 1.76페타플롭스!
가히 괴물이라 할 정도였다. 실리콘 반도체 시절에는 이 정도 성능을 내려면 얇은 블레이드 서버를 어른 키보다 더 높게 쌓아서 하나로 묶어야 했다. 전기도 무척이나 많이 먹었고, 온풍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뜨거운 바람도 무지하게 뿜어져 나왔다.
지금은 조금 두꺼운 법전 크기로 강력한 성능을 다 담아낼 수 있었다.
이런 최신 PC와 VR 세트를 연결시키는 것도 아주 쉬웠다. VR 고글만 그래픽 카드와 직접 연결하고, 양손에 나눠 쥐는 게임 패드는 무선으로 연결되었다. 내장된 배터리도 3세대 전고체였기에 한 번 충전하면 2주는 기본이다.
세팅은 금방 끝났다.
VR 세트는 완전히 새로운 장비였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새롭게 연결된 장치를 바로 인식해서 인터넷으로 드라이버를 다운받아 자동으로 설치했다. 사람이 해 줄 일은 고글과 그래픽 카드의 유선 연결 그리고 전원 버튼을 켜는 일뿐이었다.
“일어설까요?”
세팅이 끝나자 존 카멕이 물었다.
“아뇨! 앉아서 플레이하는 걸로 충분해요. 아직 풀 바디 트래킹은 구현되진 않았어요. 지금은 머리하고 손만 되거든요.”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 역시 지금도 하면 할 수 있지만, 게임적으로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 프로젝트 2077만 해도 월드맵의 크기가 제주도만 한데, 이 넓은 공간을 뛰어다니는 건 게임이 아니라 노동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완전한 가상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풀 바디 트래킹은 필수적으로 구현해야 할 기능이긴 했다.
문제는 플레이어 모두가 마음껏 뛰어다닐 공간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 몸은 고정하고 의식만 풀어서 뛰어다닐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아마도 캡슐 형태의 가상현실 접속기 형태로 구현될 것이다.
“시작합니다!”
고글까지 완전히 착용하고, 양손에 VR용 게임 패드를 쥔 존 카멕이 기대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프로젝트 2077을 실행했다.
강력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PC였기에, 실행하자마자 타이틀 화면이 떴다. 거기서 존 카멕은 살짝 어색한 손길로 ‘새로운 게임’이란 항목을 눌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 선택했다.
온전히 VR 모드로 프롤로그를 해 볼 작정인 모양이다.
유재원도 의자에 앉아서 느긋하게 보기로 했다.
PC와 연결된 모니터로 존 카멕의 플레이를 지켜볼 수 있었는데, 처음 VR을 접한 사람들의 기발한 플레이를 즐기는 건 유재원의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몇 시간 후.
“최곱니다!”
VR 고글을 벗은 존 카멕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손 모두 치켜세운 쌍따봉을 올렸다.
프로젝트 2077이 VR 게이밍을 의도하면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1인칭이라 그런지 찰떡처럼 잘 어울렸다. 덕분에 본인이 만든 게임을 해 보는 것인데도 존 카멕은 새로운 게임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색한 VR 장비 때문에 난이도가 제법 쉬운 프롤로그 미션을 수행하는 것도 요절복통이었다.
“몰입감이 미쳤습니다.”
유재원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제일 큰 즐거움을 얻은 건 존 카멕 본인이었다.
“그렇죠? 10세트 정도 가져왔으니, 종종 플레이해 보면서 피드백을 좀 주세요.”
“아예, VR 모드도 내면 어떻겠습니까?”
VR에 흠뻑 빠져 버린 존 카멕은 욕심을 냈다.
몰입해서 재미있게 플레이를 했는데, 직업이 개발자이다 보니 부족한 게 제법 많이 보였던 탓이다.
“메인 퀘스트만 해도 플레이 타임이 80시간이 넘는데, 이걸 VR 완벽 지원을 추가할 시간은 있나요?”
프로젝트 2077은 현재 말이 베타 테스트이지, 전체적인 개발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은 버그 잡기와 플레이어의 편의와 재미를 위해 마무리 작업만 남았으니 말이다. 그것만 해도 8월까지의 일정은 다 잡혀 있어서 여유가 없다.
“음, 발매연기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합니다만.”
그걸 잘 알고 있는 존 카멕이었기에 발매일 연기를 언급했다.
“연기는 절대 안 되죠.”
유재원은 바로 거절했다.
VR 지원이란 타이틀이 좋긴 해도, 그걸 위해 거의 다 만들어진 게임을 연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차라리 무료 DLC로 나중에 VR 지원 모드를 내는 걸로 하죠.”
대신 유재원이 제시한 대안은 VR 모드 DLC였다.
VR 모드가 게이머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옵션이긴 했지만, VR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지금 유재원이 가져온 장비의 가격은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거라서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 게이머들에겐 부담인 장비였다.
그러니 VR 모드는 나중에 무료로 풀고 익스트림 게이머들 먼저 관심을 끌어 VR 장비의 보급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존 카멕도 유재원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대신 프로젝트 2077이 끝나면 한동안은 푹 쉬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FPS장을 개척한 것처럼 VR 게임에도 본인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었다.
유재원은 존 카멕의 반응에 만족하며,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미국 서북 쪽에 자리한 시애틀의 ID 하이테크였다. 방문 목적은 고등 무인 전투기인 센티넬 포스의 초도 비행 참관이다.
“그나저나, 이것도 터지는 거 아니겠지.”
전용기의 전용 좌석에 앉자마자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라면 없었을 일인데 어제 팰콘9이 화려하게 터트린 불꽃놀이는 평생 각인될 충격적 장면이었던 탓이다. 유재원은 재빨리 머리를 털어 불길한 생각은 떨쳐버렸다. 그리곤 잡생각을 할 시간에 일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i웍스 노트북을 켜고 업무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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