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59화 (959/1,007)

935회

인피니티(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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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바로 보셨습니다.”

유재원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비록 불미스러운 모나리자 사건으로 만나게 된 인연이지만, 유 회장의 비전에 대해 나는 공감하는 바요.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계가 쌓아 올린 전과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 특히 독일과 비교해도 말이오.”

“그 말씀은?”

“유 회장의 인문학 연구소에 우리 프랑스가 적극 힘을 보태겠소.”

“대가는 뭔가요?”

“없소. 그저 선의라고 생각해 주시오.”

유재원은 인문학 연구소를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 주는 대가로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말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흠. 어떤 방식으로 힘을 보태시겠다는 거죠?”

“무엇이든. 인적인 협력부터 기존 연구 데이터 공유나 사회적 실험까지도.”

기대 이상의 긍정인 말들이 나왔다.

그렇지만 올랑드 대통령과의 관계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었기에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살짝 삐딱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관심 감사합니다. 실무진과 논의를 해 보고 최대한 빨리 답변을 드리도록 하지요.”

똑같은 말을 미국의 존 매케인 대통령이 했다면 잘해 보자면서 악수를 했을 테지만, 올랑드에겐 기다려 달라는 말이 최선이었다.

“알겠소.”

올랑드 대통령도 바로 확답을 받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유재원과 올랑드 대통령은 그나마 조금은 풀린 표정으로 예정된 모나리자 반환 행사를 시작했다.

동선만 보자면 A동 메인홀 중앙에 걸린 모나리자를 올랑드 대통령이 타고 온 시트로엥 DS에 싣고, 그대로 제주도 국제공항까지 가서 대기하고 있던 프랑스 대통령 전용기에 실어 프랑스로 직행하는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진품 모나리자가 담긴 투명 특수 케이스와 팔목을 수갑으로 연결한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유재원의 모나리자를 진품인가 검증하는 단계에서부터 있었던 프랑스 문화부의 고위 공무원들 중 보안 최고 책임자였다. 인문학 연구소로 옮겨지고 나서, 프랑스와 반환 협의가 이뤄진 다음부터 이렇게 프랑스 측 사람들이 직접 물리적으로 연결한 상태로 있었다.

교대로 계속 그렇게 모나리자를 지켰는데, 그 모습에 유재원은 살짝 불쾌해지기도 했다. 본인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면 이번엔 절대 도난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도 하니, 그냥 프랑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했다.

최종적으로 유재원과 올랑드 대통령이 문화재 교환이 합의대로 이뤄졌다는 문서에 사인을 했다. 그것으로 모나리자에 걸린 물리적 잠금장치가 풀렸고, 올랑드 대통령은 모나리자를 앞장세우고 A동 건물을 나섰다.

나왔다!

그 모습을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들이 열심히 찍었다. 곧이어 모나리자는 수갑과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시트로엥 DS에 실렸고 그대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예비 차량에 따로 탑승해 뒤를 따랐다.

바글바글했던 취재진도 시트로엥 DS를 쫓아서 이동한 덕에, 시끄러웠던 인문학 연구소는 거짓말처럼 고즈넉했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나리자 사건에 이제 마침표가 찍힌 것이었다.

유재원도 더는 제주도에 남을 이유가 없을 것 같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며칠 후인 5월 3일.

“어서 오세요!”

유재원은 제주도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막 나온 누군가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며칠 전 올랑드 대통령이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유재원이지만, 이번에는 직접 입국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유 회장님, 반갑습니다.”

상대도 유재원이 직접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깜짝 놀라면서 인사했다.

“네, 저도요. 교수님께서 수락해 주셔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비행은 괜찮았나요?”

“그럼요! 회장님의 전용기라 그런지 편히 왔습니다.”

유재원은 마이클이란 교수를 제주도로 데려오기 위해서 본인의 전용기까지 띄우는 수고를 들였다.

그야말로 유재원의 특별 서비스였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직접 마중을 나올 이유가 충분한 것은 다부진 악수를 나누는 마이클 교수가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의 소장직에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풀 네임은 마이클 샌들.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의’라는 강좌를 20여 년간 전담하고 있는 천재 교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가 된 건 27세였으니, 당시에는 최연소 교수라는 타이틀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대중적으로는 그가 담당했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가 유명했지만, 학계에서는 정치 철학 관련 연구 성과로 명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공동체주의가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전문이었는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통해 주제를 잘 드러냈다.

거기서 마이클 교수는 정의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행복, 자유, 미덕을 설정한 다음,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를 제시했다.

마이클 샌들 교수의 공리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주의는 유재원이 그리는 미래 비전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유재원은 기술적 특이점을 달성한 미래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보도록 하고 싶었는데, 마이클 샌들 교수의 공동체주의와 겹치는 부분이 제법 많았다.

그렇기에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의 설립 계획을 공시한 다음, 유재원은 마이클 샌들 교수와 접촉했고 연구소의 소장직을 제안했다.

처음엔 이메일로 시작해서 나중엔 화상 통신까지 이어졌다. 그러면서 연구소 소장직의 권한, 연구 성과에 대한 응용, 퀀텀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와 보수까지도 합의가 이뤄지면서 오늘 제주도에 오게 된 것이었다.

“아름다운 섬이군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제주도 공항을 나선 마이클 교수는 화창한 봄 날씨의 제주도에 감탄했다. 3월에는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난리였지만, 황사 시즌이 끝난 다음에는 그야말로 어느 휴양지 못지않은 모습을 자랑했다.

“그럼 이동하실까요?”

선택한 교통수단도 유재원의 전용차가 아니라 제주도에서 운행 중인 무인 셔틀버스였다.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선택할 수 있는 데다, 결제 수단을 Z코인부터 현금까지 다양하게 지원했다. 이용 요금도 다양하게 지원했는데, 택시처럼 목적지까지 직행하면 택시보단 비쌌고, 버스처럼 가는 길에 승차장마다 멈춰서는 버스 타입을 선택하면 버스비보다 저렴해진다.

유재원은 당연히 전용 택시 서비스를 선택했다. 또한, 마이클 교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인문학 연구소로 가는 길도 해안가 도로를 타고 가도록 설정하고서 호출 버튼을 눌렀다.

“이것이 그때 말씀하신 제주도의 명물이로군요.”

호출한 지 2분 만에 스르륵 다가온 딱정벌레 비슷한 미니버스를 보고 마이클 교수가 감탄했다. 운전석도 없이 통째로 좌석만 있는데, 운전은 모범택시보다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제주도에는 이런 미니버스가 100대에서 300대까지 운행 중이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성수기에는 300대까지 증편을 하다가, 비수기 때는 100대로 줄여 제주도민의 편의를 돕는 식으로 운영된다.

처음엔 낯선 서비스였지만, 지금은 제주도의 대표 상징이 되어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 일부러 타 보는 서비스가 되었다.

또한, 도민들의 자가용이나 렌터카도 전기자동차에 자율 주행 모드가 기본이 되었다. 덕분에 제주도의 교통 문화는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렌트로 빌린 차로 쌩쌩 달리면서 온갖 사고를 유발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운전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제주도의 풍경에만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제주도의 교통사고 통계는 전기자동차의 전면 도입과 레벨5 자율 주행이 시작되고 나서 급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신고되던 자동차 사고는 이제 1달 단위로 통계를 내야 잡힐 정도였다.

오로지 자율 주행만 허가된다면 그런 한 달에 1, 2건 나오는 사고도 사라질 텐데, 운전대를 놓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기에 사고의 가능성이 완전한 0%로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하여튼, 날씨 좋은 5월에 해안 도로를 달리는 자율 주행 차량의 드라이브는 완전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음?”

시원스레 달리던 미니버스가 사거리 교차로에서 멈췄다.

교차로 진입 때의 신호는 파란색이었으니 그냥 지나가야 하는데, 멈춰 서다니. 마이클 교수는 유재원의 안색을 살폈다. 자율 주행의 오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클 교수의 오해가 풀리기까지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파란색이었던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로 바뀌더니 사이렌 소리가 점점 크게 가까워졌다. 곧이어 녹색 경광등이 켜진 구급차가 빠르게 지나갔다.

파란색 신호에서 유재원과 마이클 교수가 탄 미니버스가 그대로 진입했다면, 구급차는 아예 완전히 정지했다가 다시 출발해야 했었다.

“구급차나 소방차, 경찰차와 같은 차량은 상황에 따라 긴급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그게 전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군요?”

“네. 중앙관제소의 인공지능이 알아서 모두 조율하죠.”

단순한 교통신호기에도 인공지능이 적용되고 있다는 말에 마이클 교수의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잠시 후.

“이곳이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입니다. 아직, 공사 중인 곳이 더 많지만요.”

작은 소동 후에는 무난하게 30분쯤 달려서 목적지인 인문학 연구소에 도착했다. 정문을 지나 연구소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는 도서관 앞에서 내린 유재원은 마이클 교수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대단히 크군요. 이렇게 큰 도서관도 있고요.”

마이클 교수의 말 그대로 인문학 연구소의 규모는 어지간한 정규 대학 캠퍼스만큼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연구소라고 해서 단순히 사무실에 박혀 연구 과제만 수행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여러 사람의 뜻을 모을 수 있는 대형 세미나실부터 각종 행사와 발표를 진행할 수 있는 대강당과 프랑스로부터 되찾아온 문화재를 전시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별도의 시설도 건설 중이었다.

대도서관도 그렇다.

디지털이 익숙한 유재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소설이나 웹툰은 전자책 형태로 잘 나오지만, 전문 서적은 종이책 형태가 지금도 대세였다. 옛날에 나온 책이라면 절판되어 종이책을 찾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연구소의 대도서관에는 연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이 모이는 중이다. 또한, 세계 유명 저널의 유료 논문 구독권이 설치된 컴퓨터와 각종 멀티미디어 장비도 세팅되어 있었다.

말이 인문학 연구소지 학생만 받지 않는 인문대학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로 유재원은 퀀텀 프로젝트가 성공한 다음부터 인문학 연구소를 인문대학교로 전환할 생각도 있었다.

퀀텀 프로젝트의 런칭 이후에도 진리 탐구는 계속된다. 그러니 기왕 연구를 진행하는 김에 후학을 양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마이클 교수는 이 모든 환경에 만족했다. 아니, 기대 이상이었다.

유재원이 강인공지능의 등장 가능성을 예고했을 때. 당시 학계의 충격은 대단했다. 빨라도 너무나 빨랐으니 말이다. 마이클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의 기본 행동 수칙을 소수의 사람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방식으로 설정했을 때 그 여파를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ID 그룹은 사기업이었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유재원의 뜻에 따라 강인공지능의 세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그야말로 현실적 수치였다.

그러던 찰나, 유재원으로부터 이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엄청난 것이었다.

시설이 좀 나빠도 소장직을 기꺼이 수락할 작정이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기대 그 이상으로 준비 상황이 좋았다.

그날 마이클 샌들 교수는 유재원이 ID 그룹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의 이름으로 낸 고용계약서에 기꺼이 사인을 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동경제학의 거두인 리처드 세일러가 합류했고, 게임이론을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로버트 B. 윌슨 교수도 합류했다.

이 밖에도 인문학계의 올스타들이 모두 인문학 연구소에 속속 참여했다.

한국에서의 공채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엄청난 규모로 치러졌다. 신입 2,500명, 전문가와 경력직 500명 해서 총 3,000명 모집이었는데 36만 명이 넘게 지원했으니 120:1의 경쟁률이었다.

참고로 유재원은 올랑드 대통령에게서 받았던 제안은 좋은 말로 거절했다. 아무래도 의도가 불순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대신, 유재원은 인문학 연구소에서 나올 논문의 검증을 부탁했다.

이 정도로 각이 섰다면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토씨 하나하나까지 검증을 해 줄 테니 말이다.

수많은 이슈를 양산하며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는 점차 형태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반면 인문학 연구소의 형태가 구체적이 될수록 사람들의 관심사에서는 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문학 연구소는 체감되는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을 새로운 이슈는 미국에서 터졌다. 정확히는 라이트닝 볼트가 독점하고 있던 셰브롱의 슈퍼 차지 시스템을 전면 개방한다는 소식이었다.

셰브롱 이사회에서는 5일 전에 결정된 사안이었는데, 오늘에서야 언론에 공개된 것이었다.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 초특급 뉴스에 자동차 업계 대표 기업들의 주가는 서로 다른 형태로 초특급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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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고민 끝에 나온 강인공지능의 핵심 철학은 공리주의였습니다~!

지금의 프랑스를 만든 프랑스 인문계도 좋지만, 어느날 갑자기 강인공지능이 기계들의 권리를 위해 레볼루숑 해버리면 곤란하니까요.

주말이네요!

건강도 잘 챙기시면서 재미있게 보내시고, 월요일에 다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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