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1회
인피니티(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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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1.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입니다.”
인공지능 골드의 시그널에 맞춰 유재원은 컴퓨터에 달린 카메라를 보며 꾸뻑 인사했다. 톡톡으로 예고를 한 덕에 미리 유재원의 채널에 접속한 사람들이 많았다. 방송을 켜자마자 기록한 시청자 숫자는 1만 명을 훌쩍 넘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청자 숫자는 빠르게 올라갔다. 일의 자리, 십의 자리는 너무나 빠르게 변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백의 자리 숫자도 초시계처럼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승은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졌다.
원래 유재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어지간한 톱스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는데, 최근 모나리자와 프랑스의 한국 문화재 교환과 같은 일대 사건을 벌이고 있는 덕에 더더욱 많은 관심이 몰리면서 시청자 수 대폭발로 이어졌다.
“제목을 보고 이상하다 생각하시는 분이 많겠지요?”
인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늘어놓던 유재원은 시청자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 3만 정도에서 좀 둔화된 것이 느껴지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네!
-문과에도 봄이 오는 겁니까?
-야야, 문과라도 다 같은 문과가 아니란다.
채팅 창도 유재원의 물음에 즉각 반응했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2014년 상반기에 대규모 채용이 있는데, 이번에는 문과만 집중적으로 모집할 계획입니다.”
-신입 공채인가요?
“그럼요. 공채 정원 중에 70%는 신입으로 뽑을 예정입니다.”
-중고 신입도 신입으로 쳐주는 거죠ㅠㅠ?
“물론입니다. ID 그룹의 기본 이력서는 이번 공채에서도 적용됩니다.”
기본 이력서라는 건 ID 그룹 홈페이지에서 입력할 수 있는 지원서였다. 이메일닷컴의 통합 아이디를 가지고 있으면, 마우스 클릭 두어 번으로 이력서를 자동 작성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필수 입력이라고 정해진 개인정보 항목은 최소화되어 있다.
그러면 서류 심사 때 무얼 보느냐?
지원자가 ID 그룹에 어필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작성할 수 있는 칸이 있고, 이를 중점적으로 본다. 그렇다고 인사부의 직원들이 일일이 보는 건 아니었고, 인공지능이 전방위적인 검증을 하고, 그 결과를 보게 된다. 스마트 찬스도 이때 사용할 수 있다.
덕분에 서류 심사에서 경력을 써넣는 칸이나 자기소개서 같은 무의미하고 작성하는 사람만 괴로운 항목은 없었다.
그렇기에 중고 신입이라고 해서 서류 심사를 못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여기 채팅방의 누군가가 말씀하신 것처럼 문과라고 해서 다 같은 건 아닙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유재원의 말에 바로 흥분한 네티즌이었다. 문과라고 다 같은 취급 말라는 채팅을 쳤던 그 사람이었다.
-법조인이나 회계, 경영 쪽을 우대한다는 거지!
그러면서 더욱 구체적인 예측도 내놓았다.
“아닙니다.”
-으응? 아니에요?
유재원의 칼 같은 대답에 그 누군가는 크게 당황했다.
“일단 이번 공채가 왜 계획되었는지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퀀텀 프로젝트의 로고인 Q를 큼지막하게 띄웠다.
이미 기계 학습 기반 인공지능인 골드의 지능도 엄청나게 상승한 상태였다. 여기에 조용히 진행 중이었던 퀀텀 프로젝트도 상당한 성과를 내는 중이다.
양자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한 연산 알고리즘, 이른바 폰 노이만 구조를 탈피한 진짜 양자 슈퍼컴퓨터 완성을 위한 설계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또한, 양자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 제어를 위한 하드웨어 제조 기술도 순조롭게 테크트리를 올리고 있었다.
2나노를 시작으로 개막한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미세공정 정밀도는 현재 1나노까지 올라왔다. 올해 여름에 출시될 안드로이드 Z4 스마트폰에 탑재될 DM14 AP에 처음 적용될 것이고, 이어서 CPU와 GPU, 다이아몬드 램에도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이러한 속도라면 퀀텀 프로젝트의 목표인 2016년이면 0.5나노 공정도 무난히 성공할 것이다.
“0.5나노미터 공정이 중요한 건, 바로 양자역학의 현상들이 발현되는 최대의 미시 세계이기 때문이죠.”
이 밖에도 미세공정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는 양자 우위 요소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유재원은 굳이 이 자리에서 그 요소들을 모두 열거하지 않았다.
미세공정은 어마어마한 자본과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였지만, 이외의 요소들은 경쟁자들에게 큰 힌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결과적으로 2016년이면 여러분들께 양자 슈퍼컴퓨터를 공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진짜 인공지능이 탄생하는 거임?
-인공지능은 지금도 있잖슴!
-인공 인격이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이지!
“역시 우리 시청자님들은 정확하시네요. 바로 맞췄습니다. 강인공지능의 탄생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하드웨어만 충분하다고 강인공지능이 제대로 만들어질까요? 당연히 아니죠. 고도의 소프트웨어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는 말 아님?
-그러게, 그러면 이 방송은 뭐지? 왜 문과를 찾으시는 거예요?
네티즌들의 채팅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네, 양자 컴퓨터용 운영체제든, 강인공지능의 핵심 알고리즘이든, 양자 컴퓨터 하드웨어든. 중요한 건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완성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문뜩 ‘철학’의 부재를 깨달은 겁니다.”
-여기서 철학이라고요?
-응? 이게 무슨 소리죠?
-순수철학, 응용철학 할 때의 그 철학 맞아요?
“네네, 바로 그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 칼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이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리면 식구나 손님을 위한 요리 도구가 되겠지요. 군인의 손에 들리게 되면 안보를 지키는 무기가 됩니다. 그런데 강도의 손에 들리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가 되지요. 칼은 하나인데 누가 드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 결과를 만듭니다. 그럼 칼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도구들은 어떨까요?”
-누가 쓰는 거냐에 따라 다른 거 아닌가요?
“네, 결국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역할과 결과가 달라지는 거죠. 그러면 여기서 문제. 이러한 요리사와 강도의 차별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유재원의 물음에 다시금 채팅 창에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인식하기도 전에 새로운 채팅이 올라오니, 처음 보는 사람은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유재원은 채팅의 폭풍 속에서 정답에 제일 가까운 걸 바로 잡아냈다.
-양심!
-마음가짐이요!
-신념?
“네, 드디어 정답이 나왔네요. 칼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고 했을 때, 요리를 만들어 파는 것과 칼로 위협해 빼앗겠다는 차원이 다른 결과가 발생한 건 결국 마음가짐의 차이가 결정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칼이 아니라 고도의 인공지능이라면 어떨까요? 너무나도 강력한 양자 슈퍼컴퓨터 위에 발현된 강인공지능은 우리의 삶과 미래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것임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기계가 마키아벨리즘이나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의 이득만을 위해 움직인다면?”
-프로젝트 2077!
“정답!”
이번엔 바로 정답이 나왔다.
아직은 3시간짜리 싱글플레이 데모판만 나온 상태인 프로젝트 2077이지만, 그 3시간이란 플레이 타임만으로도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십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강인공지능에는 인류와 기계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올바른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마음가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우리에겐 아주 오래전 고대로부터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던 학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서, 설마!
“네, 이번 공채로 선발할 핵심 인재는 바로 철학 전공자분입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에 슬라이드 쇼가 큼지막하게 올라왔다.
이번 상반기 공채의 구체적인 모집 요강이었다.
모집 공채에서 집중해 선별할 인재상이란 바로 철학 전공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목표도 상상을 초월한 강인공지능의 코어에 탑재될 진리를 탐구였다.
-단기 알바는 아니죠?
“물론 아닙니다. 이런 일은 프로젝트팀처럼 한 번 뭉치고 일이 끝났다고 해체하는 것으론 감당할 수 없지요. 게다가 지금도 복잡하고 앞으로는 더 복잡해질 인류 문명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도록 철학과 진리를 쉬지 않고 탐구할 것이고, 시시때때로 발생할 윤리적, 철학적 문제에 관해서도 계속 연구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수행할 겁니다. 바로 이곳 인문학 연구소에 말입니다.”
유재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들었다. 유튜브 라이브 스튜디오 앱을 조작해서 온에어 카메라를 스마트폰 메인 카메라로 전환하여 창밖을 비추었다.
유재원이 있던 A동의 사무실은 제법 높이가 있었기에 사방에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한 번에 담을 수 있었다.
-제주도다!
-저기 개인용 소장품을 보관할 장소가 아니었어?
라이브 스트리밍 시청자들은 한눈에 제주도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2월이 되자마자 모나리자와 교환된 한국 문화재들이 제주도로 바로 들어오는 모습이 특별 생방송으로 공중파를 탔다.
이후에도 이틀에 한 번꼴로 프랑스에서 특수화물기가 제주도로 날아오고 있었고, 거기에 실린 문화재가 제주도 성산읍으로 계속 옮겨졌다.
그때 인문학 연구소라는 타이틀도 공개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저 유재원이 개인 소유가 된 문화재 전시를 위해서 만든 시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서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 전략의 핵심인 강인공지능을 위해서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유튜브 라이브로 발표해요?
-이게 유재원 스케일!
-철학과 떡상 가자!
-몇 명 뽑아요? 300명?
-300은 너무 적소! 500명 뽑읍시다!
충격 속에서 채팅이 다시금 빠르게 올라왔다.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는 공채 정원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
300에서 600명 정도 예측하는 이들이 제일 많았다. 그렇지만 그 정도 숫자는 ‘유재원 스케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일단은 3천 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3,000명.
철학 전공자를 이렇게나 대단위로 고용하는 기업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게 전부가 아니라 ‘일단’이라는 단서까지도 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강인공지능을 위한 진리 탐구는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방대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달시킨 철학을 정리해서 학습을 시키는 게 먼저였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서부터 고도로 발전된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돈이 안 되는 학문이라 찬밥 취급이었지만, 지금의 인류 문명을 만들어낸 것에는 수천 년 동안 쌓인 철학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철학을 정리하는 것과 강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계와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을 목표로 하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동시에 수행할 작정이다. 그러면 3,000명으로도 부족할 거라는 게 유재원의 생각이었다.
비서실이나 전략기획실 등등, 유재원의 그룹 경영에 도움을 주는 부서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3,000!
-3,000만큼 사랑해요!
채팅 창이 들끓어 오를 만큼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있는 지금도 문과의 취업 압박은 심한 편이었다. 특히 철학은 학문 중에서도 소외 받는 분야였다. 그런데 3천 명이나 되는 공채를 예고했으니, 그야말로 뜨거운 반응이 터지는 건 당연했다.
-ID 그룹 유재원 회장, 공채 부활 예고!
-강인공지능에 탑재할 철학 완성을 위해 3천 명 공개 채용!
매스컴도 거의 실시간으로 유재원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발표를 보도했다. 한국의 매스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매스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매스컴을 접한 사람들은 2번 놀랐다.
일단 양자 컴퓨터 기반의 강인공지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강인공지능의 인격을 위해 고도의 철학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반응은 매우 복합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지만, 후폭풍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양한 후폭풍이 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타오른 건 과연 기업이 주도하는 철학 연구를 신용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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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제가 이번 챕터를 준비하면서 문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요~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중화되는 때부터 문과 떡상의 시작점이라는 결론이었거든요.
자세한 이야기는 연재글로 보여드릴게요!
문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