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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954화 (954/1,007)
  • 930회

    인피니티(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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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하게 나왔던 프랑스 문화부의 성명은 명백한 백기 항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재원은 방심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한국 문화재 환수의 전문가들과 함께 리스트를 검증했다. 정부에서도 팔을 걷고 도와주었고 실제로 프랑스로 가서 실사를 펼치기도 했다. 한국의 깐깐한 태도에 프랑스에서도 불만이 폭주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나리자는 한 점뿐이었고, 이미 프랑스가 자체적으로 시행 수 있는 최대한의 정밀 검증도 마친 상태였다. 더구나 유재원이 불신할 수밖에 없도록 리스트에 꼼수를 쓴 건 본인들 잘못 아니겠는가.

    덕분에 프랑스는 유재원의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문화재 교환 방식이나 비용 처리에서 엄청난 양보를 해야 했다.

    이를테면 문화재 발송을 위한 비용 처리나 모나리자가 프랑스로 돌아가는 날짜를 정하는 것 등등이 있다.

    일단 이번에 프랑스가 받을 건 모나리자 하나였지만, 한국 문화재는 만 단위가 넘었다. 그렇기에 발송 비용 부담은 프랑스 측이 월등하다. 오래된 문화재일수록 내구성이 매우 낮아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상승한다는 건 상식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1:1의 교환이 아닌 만큼, 얼마만큼 한국 문화재가 환수되면 모나리자를 발송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었다.

    해적들과 인질 교환을 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 정부와 ID 그룹의 수장이라는 명성과 신뢰성이 있는 이들 사이의 교환인 만큼 먹튀와 같은 사기 거래의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서 만약이라는 것도 있는 만큼, 모나리자가 프랑스 정부로 돌아가는 시점은 매우 중요했다.

    당연하게도 꼼수를 부린 프랑스의 협상력은 바닥으로 떨어졌기에 프랑스에 매우 불리한 형태로 교환 형식이 잡혔다.

    최종 확정된 리스트의 문화재가 모두 반환되면 모나리자를 프랑스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처음 프랑스에서 특수화물기가 대한민국으로 날아온 건 2014년 2월이었다.

    2월부터 매일 비행기를 띄워서 빠르면 4월, 늦어도 5월에 끝내겠다는 게 프랑스의 결심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첫 비행기가 오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자그마한 논란이 일어났다.

    -프랑스 반환 문화재, 누가 관리해야 하는가?

    프랑스가 가진 1만 점이 넘는 문화재의 처리를 놓고 슬슬 숟가락을 얹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나선 건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문화재청이었다.

    문화재청의 공식 입장은 프랑스의 한국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환 문화재 연구를 위해 유재원이 국립박물관 등의 기관과 협력하길 원했다. 혹은 국립박물관에서 예술성과 역사성이 높은 품목의 전시를 원했다.

    극단적인 주장 중에는 그냥 모나리자를 가지고 있자는 것도 있었고, 프랑스에서 오는 모든 한국 문화재를 국가에 기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극소수의 의견에 불과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어지간하면 무대응인 유재원이었지만, 기부 주장에 대해서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즉각 말이 나왔다.

    많이 나아진 대한민국의 국력이지만, 돈이 안 되는 것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한미했다. 그리고 해당 부처의 공무원들의 태도 역시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해외에서 어렵게 찾아온 조선 시대 약탈 문화재나 집안 대대로 가보로 내려왔던 문화재를 기부했는데, 관리가 엉망이었다는 게 며칠 전에 나온 뉴스였다. 최악의 케이스는 이렇게 기부 받은 문화재를 잃어버린 사태였다.

    보나 마나 뒤로 빼돌려서 팔아먹고 잃어버렸다는 핑계를 댄 것 같았다. 게다가 국가의 관심도도 여전히 낮았다.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문화재 관리와 연구 예산이었다. 국가 예산은 매년 5% 이상 폭증했다. 2014년도 예산이 400조 원을 넘었는데, 거기서 문화재 관련 예산은 2000년대 초반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프랑스가 반환한 한국 문화재가 보관될 곳은 바로 제주도의 인문학 연구소였다. 지금은 모나리자가 전시 중인 인문학 연구소 A동은 박물관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탄탄히 지어졌고, 크기도 넓었다.

    지하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문화재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거대한 공조 시스템도 설치 중에 있었다.

    제주도에서 접근성도 좋았다. 그렇기에 전문 큐레이터를 고용해서 1층과 2층을 각각의 테마로 상설 전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반환 문화재 소유에 대한 논란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4년 2월 1일.

    프랑스에서 2월이 되자 첫 번째 특수화물기를 띄웠다. 그와 함께 한국에서는 대대적인 귀환 행사가 시작되었다.

    -직지, 130년 만의 귀환.

    타이틀이 상당히 오글거렸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제주국제공항에서 유재원과 함께 프랑스발 특수화물기를 기다리는 사람 중에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길거리에서 구입해 고국 프랑스로 가지고 돌아갔던 직지였고, 이후 여러 사람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이 사실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문서와 함께 발견하였다.

    이후 박병선 박사는 직지와 외규장각 문서 반환 운동을 시작했는데, 절반의 성공이었다.

    외규장각 문서는 한국의 고속열차 사업에서 프랑스의 테제베를 선택한 대가로 한국으로 전해졌다. 임대 형식이긴 해도 5년마다 자동 갱신이라서 영구적으로 돌아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관 책임이나 연구의 진행도 모두 한국 정부 소관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직지는 아니었다.

    일단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들이 들고일어나서 직지 반환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여론도 좋지 않았다. 명분을 따지면 외규장각 문서는 명백한 약탈 문화재였지만, 직지는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라는 차이도 있었다.

    이번에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은 전과 같이 행동했다. 하지만 프랑스 여론의 반응은 90년대와 완전히 달랐다.

    진품 모나리자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잠시 후 도착할 프랑스의 첫 번째 특수화물기에 실려 있는 것은 직지였다.

    몇 분 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 프랑스와 태극기가 동시에 걸린 화물기가 착륙했다. 그리고 국악 의장대의 대취타를 시작으로 준비된 반환 행사가 시작되었다.

    “박사님이 이 광경을 보셨어야 했는데.”

    기쁜 장면이었지만, 젊은 남자에게서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 직지와 외규장각 문서 연구와 반환에 일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는 2011년 11월 22일 선종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탓에 직계 가족도 없었다. 지금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친인척이 아니라 직지 연구를 함께 수행한 제자였다.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 그야말로 감격과 아쉬움 등이 복합적으로 몰아치고 있었다.

    이어서 국악 의장대의 호위 속에서 직지를 시작으로 특수 케이스에 보관된 문화재들이 내려왔다. 프랑스에서 케이스에 넣을 때, 직접 작업을 주관했고 봉인실을 붙였던 담당자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봉인을 확인했다.

    불일치라거나 봉인이 훼손된 흔적은 없었다. 이러한 확인 단계를 모두 끝낸 다음에야 프랑스 측에 인수확인서를 내주었고, 문화재가 든 케이스들은 특별히 준비된 차량에 실렸다.

    무진동 화물차로 개조된 유니버스들이었다.

    준비된 유니버스는 모두 50대였지만, 한 번에 다 나르는 건 불가능해서 서너 번은 더 왕복을 해야 했다. 프랑스 측에서 모나리자를 빨리 되돌려 받기 위해 A340 특수화물기를 가득 채워서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를 위해서 특별히 제주도에 와 있던 유재원도 유니버스 화물차의 운전석에 앉았다. 그렇다고 운전을 직접 하는 건 아니다.

    제주도는 레벨5 완전자율주행이 허가된 지역이었기에, 내비게이션을 열고 인문학 연구소 A동으로 가자는 명령만 내리면 알아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대가 아니라 준비된 50대를 혼자서 움직일 수 있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성산읍에 자리한 인문학 연구소까지는 안전 운행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길이었고, 가는 길에 신호에 걸려 멈추지 않도록 경찰의 호위도 받았다. 이런 장면은 그대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러한 이벤트를 본 대한민국 사람들은 가슴에서 뭔가 솟구치는 감정이 있었다. 유재원 개인이 벌인 일이긴 해도 강대국인 프랑스를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인 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돌풍!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 여자 1,500m 결승 진출!

    -문화재와 함께 국운이 돌아오나!

    “이거 무슨 일이지?”

    아직 제주도에 있는 유재원은 아침 일과로 뉴스를 확인하면서 살짝 놀랐다. 문화재 반환과 함께 국운이 돌아왔다는 식의 얼토당토않는 기사에도 순간 솔깃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치 올림픽 4일 차에 있었던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건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6위였을 이한빈 선수가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등은 샤를 아믈랭이었고, 3위는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이 되었다.

    IT 업계는 유재원의 영향으로 완전히 달라졌지만, 스포츠 쪽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유재원이었다. 그래서 개입도 최소화했고, 지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나마 아버지인 유봉만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아버지의 활동을 도와드린 게 전부였다.

    물론 도와드린다는 말에 담긴 수준이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긴 했다.

    인적 지원뿐만이 아니라, ID 파운데이션을 통해서 무제한 수준의 자금 지원도 있었다.

    덕분에 유봉만은 팔자에도 없던 핸드볼협회장을 시작으로 체육계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핸드볼 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 중에 유봉만의 이름이 박힌 운동기구가 없는 학교는 없다. 또한, 핸드볼 운동부 소속 선수들도 최소 1번 이상은 협회장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다.

    이후 유봉만은 대한체육협회장 선거에 나가 당당히 당선되었고, 이번 소치 올림픽까지도 연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한체육협회장이 되면서도 돈을 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대신 체육계의 물을 흐리는 놈들을 걸러내는 것에는 칼 같았다.

    지원금이나 장학금을 횡령한다던가, 뒷돈을 챙기고서 출전 기회를 멋대로 조작하는 것에 가차 없었다. 폭력이나 성폭행 등등 애초에 범죄 그 자체인 행위에 대해서는 체육계 복귀 자체를 막았다.

    엘리트 카르텔이라 할 수 있는 체육계였기에 처음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자는 게 많았지만, 절대 갑의 위치인 유봉만에겐 회유나 협박 따위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이렇게 끊임없는 개혁과 자정 작용을 통해 체육계 전체의 역량이 발전되었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다양한 나비효과로 이어졌고, 결국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러면 피겨 스케이팅도 기대해 볼 만하겠네?”

    러시아의 스포츠 스캔들이 극한에 달했던 게 소치 동계올림픽이었다.

    국제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게다가 징검다리 총리직 수행 후 다시 대통령이 된 푸틴에게도 치적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이번 소치 올림픽에 들인 러시아의 조작은 극한에 달할 정도였다. 러시아 스포츠단 단체로 약물을 쓰기도 했고, 심판의 판정에도 홈 어드벤테이지가 엄청났다. 피겨 스케이팅도 그렇게 조작으로 얼룩진 경기였다.

    누가 봐도 금메달인데, 러시아 선수에게 강제로 빼앗겼다고 모두가 말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처음부터 달라진 결과라면 기대해 볼 만했다. 게다가 스포츠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유재원이지만, 김연아 선수에 대한 후원은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국제빙상경기연맹의 후원사에 ID 그룹 계열사를 2개나 박아 놓고 10년이 넘게 유지 중이었다.

    안드로이드와 ID 테크놀로지. 이렇게 2개 기업인데, 광고 효과는 미미함 그 자체였다. 오직 김연아 선수를 위해서 유지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다만 피겨 스케이팅 경기는 올림픽 13일 차로 2월 19일에 예정되어 있었다. 앞으로 10일은 더 기다려야 했기에, 유재원은 일단 본인의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2월 10일.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혁명적 이벤트가 있었다.

    -인공지능 판사, 검사 업무 시작!

    -역사적 첫 사건 무엇이 될 것인가?

    인공지능 판사와 검사의 세팅이 모두 끝이 났고, 역사적 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매스컴에서는 인공지능 판사가 제일 먼저 다룰 사건이 무엇일지 따져보면서 즐거워했다. 4차 산업혁명에서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선도한다는 기념비적 사건이었으니, 두고두고 회자될 일 아니겠는가.

    “정답은 노상 방뇨 사건이었군.”

    인공지능 판사 중 바로 업무를 시작한 모델에게 배치된 자리는 온라인 재판과 즉결 심판이었다. 온라인 재판의 경우에는 배석 판사였으니 주재판장을 돕는 역할이었다. 그러니 즉결 심판에서 인공지능 판사 1호 사건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즉결 심판에 올라오는 사건은 모두 자잘한 사건이었다.

    그중에서도 노상 방뇨가 인공지능 판사의 첫 케이스가 되었다.

    -벌금 20만 원을 선고합니다.

    노상 방뇨에 대한 인공지능 판사의 판결은 벌금 20만 원. 노상 방뇨치고는 벌금이 상당히 크게 나왔는데, 그 이유는 상습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도 수차례 노상 방뇨로 과태료를 냈던 기록이 있었다. 그럼에도 술만 마시면 노상 방뇨를 하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고, 이번엔 아예 술집 문 앞에서 노상 방뇨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 즉결 심판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인공지능 판사의 1호 사건이 노상 방뇨라는 게 실소를 자아냈지만, 인공지능의 판사와 검사들의 운영은 우려와 달리 안정적으로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인공지능의 무시무시한 효율을 모두가 체감할 수 있었다. 온라인 재판과 즉결심판의 시너지 효과였다.

    인공지능 판사는 1호 사건인 노상 방뇨를 처리하고서, 다음 피고인 하고 부르지 않았다. 오전 9시 공식 업무시 시작되자마자 수백 건의 온라인 즉결심판이 열렸고, 동시에 심판이 진행된 것이었다.

    이렇게 치러진 심판 중에 비교적 단순한 노상 방뇨 사건이 제일 먼저 판결된 것을 유재원이 확인했다. 혹자는 이렇게 동시 다발적으로 판결이 진행되면 날림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출력된 판결문을 보면 법과 원칙에 기반한 완벽한 법적 논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 모듈이 잘 굴러가는 걸 확인한 유재원은 안심하고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스마트폰을 들자 잠금은 자연스럽게 풀렸고, 첫 화면에 나온 즐겨찾기에서 SNS 앱인 톡톡을 실행했다. 단문용 SNS답게 톡톡을 켜고서 유재원이 손수 작성한 글도 딱 한 줄에 불과했다.

    -유튜브 라이브를 통한 특별 발표를 예고합니다.

    톡톡에 업로드 버튼을 누른 유재원은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유튜브 라이브 스튜디오를 실행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의 제목이었다.

    ‘문송합니다는 이제 끝! ID 그룹 대규모 공채 예정! 오직 문과만!’이라는 파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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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문과 떡상의 시대가 올까요?

    저는 긍정적입니다! 당장은 아니고 좀 더 기다려야겠지만요.

    주말이네요!

    건강 잘 챙기시면서 즐겁게 보내시고, 월요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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