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회
인피니티(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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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어느덧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12월이 된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북반구 나라들은 이미 겨울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유난히 더 차가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나라가 있었다.
프랑스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지지율 7% 폭락!
특히 올랑드 대통령에겐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다.
“모나리자가 가짜라고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하네.”
유재원은 모니터를 보며 혀를 찼다.
7% 하락이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원래 지지율이 40%쯤 되었다면, 33%로 추락한 건 뼈아픈 것이지 치명적인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도 60%의 지지율로 잘 나가는 존 매케인 대통령이라면 7%쯤이야 여론조사가 한 번 좀 튀었다 싶은 정도였다. 그런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이전 지지율은 15%였다.
여기서 7%가 빠져서 8%로 급락했으니 그야말로 뼈아픈 하락이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지지율 기사를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으면서 모나리자도 큼지막하게 실었다. 기사 본문에서도 이번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 사태는 가짜 모나리자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가짜 모나리자를 비싼 입장료를 내고 보러 간 것도 열받는 일이었고, 그걸 수십 년 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최근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다시 검증할 때 데이터가 이상하게 나온 탄소연대 측정 보고서를 은폐하려다가 발각된 것이었다.
숨기려다 밝혀졌다는 게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에 치명적이었다.
이후 유재원은 프랑스 측에 초고해상도 X선 3D 모델러를 무료로 제공해 줄 테니,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가져와 검증해 보라고 권했다.
프랑스 문화부 측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국민적인 반발이 워낙 심했고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발하면서 제안에 응하게 되었다.
결과는 역시나 가짜였다.
초대형 입자가속기가 있는 미국 몬테나 주까지 애써 공수한 보람도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도 없었고, 밑그림의 형태도 완전히 달랐다. 또한, 여러 번 수정한 흔적들도 나타났다.
이제 프랑스에 남은 건 유재원의 제안에 응하느냐?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유재원의 모나리자를 환수하느냐만 남았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프랑스의 미래는 암울했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한국에 내줘야 할 문화재가 수만 점이나 되고, 다른 나라들의 강한 반발까지 일어나게 된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프랑스가 소유한 문화재 중 다른 나라에서 강탈해 온 건 엄청난 숫자였으니 말이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도 많이 가져왔고, 이집트와 아프리카, 중동에서도 막무가내로 가져온 것들이 있었다.
심지어 문화재 복원 기술이 낮은 오스만 튀르크 시절, 셀림 2세 무덤에서 찾아낸 예술적인 타일의 복원을 프랑스에 의뢰했었다. 프랑스는 이를 훌륭하게 복원했고 오스만 튀르크도 이를 만족하해면서 다시 무덤에 설치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무덤에 설치한 타일들이 수십 년이 지난 후부터 색이 바래는 것이 아닌가. 오스만을 계승한 터키가 조사해 본 결과 프랑스에서 오스만 튀르크에 돌려준 타일은 복제품이었고, 진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터키는 당연히 진품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프랑스는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셀림 2세의 타일은 루브르에 전시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문화재를 돌려주면 다른 나라들도 돌려달라고 할 것이 아닌가.
절대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재원은 이런 쪽으로는 타협이 안 되는 존재였다. 누가 감히 유재원을 협박해 모나리자를 강탈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올랑드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유재원의 제안을 수락하고 모나리자를 되돌려 받거나 아예 모나리자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후폭풍은 대단할 거라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올랑드 대통령도 유재원의 제안을 받은 지 4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선택을 못 내놓고 있었다.
프랑스가 혼돈 속에서 40일을 보내는 동안, 대한민국도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 3차 면접도 통과. 사법 시험 최종 합격!
-합격장은 유재원 회장이 대리로 받아.
-국회, 법원조직법 개정안 통과!
-특정직 공무원법 개정안도 무난히 통과!
그중에서도 제일 큰일이라면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었다.
개정안의 가장 중요한 요지는 사법 시험을 통과한 인공지능에 판검사 임명의 근거를 마련해 주는 조항 신설이었다.
다행히 헌법 개정은 필요 없었다.
전명헌 전 대통령이 했던 개헌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원칙이 개헌 필요성의 최소화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은 지역색이 강하다는 것이었는데, 그나마 예외가 있다면 전국정당인 통일국민당이었다.
그렇다고 통일국민당이 지역 기반이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최근 통일국민당은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급부상 중이다.
대전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자리한 ID 그룹의 공장들이 있고, 거기에 근무하고 있는 이들과 협력 업체들, 그리고 해당 지역 사람들은 무조건이라 할 만큼 통일국민당을 지지했다.
참고로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서울의 경우에는 통일국민당과 민주당이 40%씩 점유했고 나머지 20%가 정통보수를 자처하는 한나라당이었다.
이렇게 파편화가 되어 있었기에 개헌선인 국회의원 200명의 동의를 받는 게 너무나 힘든 구조였다.
그래서 전명헌 대통령과 개헌추진위원회는 확장 가능한 방식으로 헌법을 만들었다. 그것은 헌법에 너무 구체적인 조항을 적시하는 것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렇기에 법관에 대한 조항도 법원과 법관의 헌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과 독립성을 명시하는 것에서 그쳤다.
나머지 임명과 연임, 징계, 금지 조항 등은 국회의 법원조직법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덕분에 인공지능 판사의 도입도 법원조직법 개정안 하나로 끝이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검사 역시 특정직 공무원법 개정으로 임명이 가능해졌다.
-이르면 내년 2월부터 인공지능 판사와 검사 만날 수 있다.
기사에 나온 것처럼 내년 2월부터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의 판사, 검사 활동은 시작된다. 다만 인공지능 판검사의 도입은 일단 1심 법원과, 2심을 맡는 고등법원까지였다. 최종심인 대법원은 대법관 자격을 받은 다음에 고민을 해 보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법원 판결은 개개인이 아닌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인공지능이 각 개별 사안에 대해 판결을 하는 것과 나라의 전체 운영에 관여하는 건 차원이 다른 사안이었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판사의 배치는 대다수 일선 1심 법원에 하고, 사건의 배당 역시 기존의 관례대로 컴퓨터의 랜덤 배당을 통해 진행토록 했다.
대신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인공지능 판사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즉결 심판은 인공지능 판사로 반 이상을 교체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2월이 되면 총 300기 이상의 인공지능 판사가 배치되는 것이니, 법원 행정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검찰청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어마어마한 사건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방검찰청에 우선 배치하기로 했고, 그 숫자는 200기 정도였다.
“정 대통령이 진짜 단단히 각오했다는 게 보이네.”
유재원으로서는 대만족이었다.
500기라는 숫자는 원래 유재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50배는 많은 수치였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법원이나 검찰청에서 정권의 정책에 장단을 맞춰 주는 식으로 10기 정도 가져다 놓고 생색을 내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실제 유재원은 10기만 도입되어도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 판검사의 효율성은 사람의 10배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이것도 최소로 쳤을 때의 경우였다.
즉결심판을 예로 들 수 있다.
즉결심판은 벌금 20만원 이하나 구류, 과료 등 죄질이 약하고 사안이 명백한 사건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재판이다. 재판의 절차도 간단해서 판사가 혼자서 심사 후 즉시 심판한다. 피고인도 원칙적으로는 출석해야 하지만, 불출석해도 서류와 증거만 보고 심판이 가능하다.
즉결심판은 이제 막 임용된 초임 판사에게 주로 주어지는 일이었는데, 이들은 하루에 수백 건의 선고를 해야 했다.
인공지능이라면 수천 건을 넘어서 수만 건도 처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사람도 그냥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벌금이나 구류를 때린다면 수만 건도 가능할 테지만, 그러면 이를 납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즉결심판은 정식재판으로 청구되는 케이스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절차인데, 불복하고 정식재판으로 넘어가는 케이스가 많다면 최악 아니겠는가.
실제로 초임 법관 평가에서 즉결심판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항목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는 사람의 10배 효과를 내면서도 정확한 판결을 내려준다는 것이다. 즉결심판처럼 간단한 심문과 함께 바로 판결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100배의 효율도 충분히 가능했다.
여기에 법원은 인공지능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온라인 재판도 만들 계획을 밝혔다. 1심 재판도 심리를 위해서 재판장으로 출석을 하는 게 많았다. 이를 온라인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온라인 재판이었다.
증거도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내고, 심리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심리가 다 끝나고 최종 판결을 할 때만 출석하는 재판이다.
당연하게도 세계 최초의 온라인 재판 시스템이란 타이틀을 노리고 내년 2월 시작을 준비 중에 있었다.
정병우 정부가 그야말로 4차 산업 혁명에 사활을 걸었다는 것이 확 보였다.
참고로 인공지능 500기 도입 비용은 0원이다. 대신 판검사 초임 급여에서 20% 할인된 돈을 매년 받기로 했다.
초임 판검사의 월급은 320만 원이었는데, 20% 할인이니 256만 원인 것이다. 아틀라스 로봇을 임대로 도입했을 때 1달 요금이 180만 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보다 70만 원 정도 더 비싼 금액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틀라스 로봇은 그냥 일상적인 힘쓰는 일에 투입되는 로봇인데 반해, 판사와 검사는 문과 최고의 전문직이었다. 70만 원 더 비싸다고 해도, 사람을 쓰는 것보다는 60만 원이나 절약이었다.
동시에 라이프 리워드에서도 500명의 추가 모집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숫자만큼 라이프 리워드의 정원도 늘려 나간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유재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인공지능이 일을 시작하는 건 내년 2월이지만, 라이프 리워드의 500명 추가 모집은 12월에 하기로 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1년 전만 해도 라이프 리워드에 500명 추가 모집이라면 상당한 이슈가 되었을 텐데, 지금은 잠깐 기사 몇 개 나오고 끝이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틀라스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도입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3년 연초만 해도 월 10만 대를 출하했다면, 연말인 지금은 30만 대까지 치솟아 올랐다. 과연 아틀라스 로봇이 일을 제대로 할지 긴가민가하며 지켜봤던 사람들이 이제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농촌은 물론이고 원양 어선이나 건설 현장에서도 아틀라스 로봇들이 움직이는 게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였다. 11월만 해도 한국에 도입되는 아틀라스 로봇은 10만 대를 넘겼다. 라이프 리워드의 추가 모집도 10만 명이라는 이야기였으니, 500명 추가 정도는 작은 이슈에 불과했다.
201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만 80만 명에 달하는 라이프 리워드의 신규 가입자가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100만 명 이상, 다른 나라에서도 수십만 명의 가입자가 생겨났다.
이러한 라이프 리워드 정책의 효과는 확실했다.
급속도로 인공지능 로봇 일꾼이 보급되는 미래를 그릴 때면 당연하다는 듯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현실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단적으로 사람들의 공격에 의해 파손된 아틀라스 로봇의 숫자는 10대를 넘지 않았다. 장기간의 불황으로 극우가 득세한 유럽에서 5대 정도 화형식을 당하긴 했지만,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판검사들의 집단 반발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사표를 냈던 사람들도 모두 수리되었다. 2월 중 도입되는 500기라는 인공지능의 수도 이렇게 사표를 쓰고 나간 사람들 덕에 생긴 것이니 말이다.
여기에 +a도 있다.
대동조선 남상호 로비 사건은 대검찰청 스캔들로 확대되었다. 무려 검사들이 대통령을 담그려고 남상호를 불러다 사건을 조작했으니 말이다.
검찰총장이 본인 책임이라며 사표를 냈지만, 그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이 사건과 연루된 검사들은 모두 공수처에 기소되어 수사 중에 있었다.
사건과 연루 정도에 따라서 정직이나 감봉이 나올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 10명의 검사가 파면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이 차지할 것이었다.
비슷한 시각.
“우리나라 일이 이렇게나 잘 풀릴 줄이야.”
유재원은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를 보며 감탄했다.
연말이었기에 1년을 정리 중이었는데, 연초에 계획했던 것 이상의 성과가 쏟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박인 것은 정 대통령이었다. 처음엔 그저 얄팍한 계산으로 인연을 시작했던 정병우가 이런 대박을 만들어 줄지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상대방의 유닛을 빼앗아 오면 두 배의 타격이라는 간단한 계산으로 정병우를 본인의 편으로 데려온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최고의 활약이었다.
띵!
유재원이 올해의 성과에 그저 만족하지 않고, 더욱 크게 확대할 후속 대책에 대해 생각할 때, 알람이 울렸다.
인공지능 골드의 알람이었다.
-회장님,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며칠 만에 온 거지?”
-정확히 42일 2시 39분 만에 왔습니다.
모나리자 컨퍼런스 때 유재원은 모나리자와 한국의 문화재들과의 맞교환을 제안하면서 동시에 공문도 보냈다.
명색이 한 나라의 정부를 상대하는 것인데, 말로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공문에 대한 답신이 42일 만에 왔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늦어진 프랑스의 사정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진짜라고 알고 있던 게 가짜고, 진짜를 되돌려 받고 싶으면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다 반출해야 하니 말이다.
하여튼, 답신이 왔다는 것을 보면 결국 본인의 제안을 수락한다는 쪽으로 결과가 난 모양이었다.
“역시.”
유재원은 e메일을 열었다. 역시나 본인의 짐작이 맞았다. 이메일은 교환에 응하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공식 답신이 담겨 있었다.
그와 함께 이메일에 추가로 첨부된 문서도 있었다.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문화재 리스트였다. 리스트에 동의하면 바로 교환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유재원은 바로 리스트 목록을 열었다. 그런데 목록에 집중하던 유재원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리스트를 끝까지 확인한 유재원의 얼굴에 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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