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회
인피니티(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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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후.
자크 소비에르는 유재원 회장의 비서와 만나 정밀검증 리포트를 받아 보았고, 일반인 전시가 끝난 다음, 통유리 안으로 들어가 실물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원래 입국 당일에는 슥 보고 숙소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진품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너무나 강렬해서 원래 계획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현장의 관리자에게 연락해서 양해를 구해야 했다.
현장 관리자는 자크 소비에르가 가까이 다가올 때부터 그의 정체를 진작에 확인하고 있었기에, 바로 상부에 연락했다.
현장의 연락에 5분 만에 도착한 이는 홍범수였다.
덕진대학 1기 졸업생이었던 홍범수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ID 그룹에 입사했고, 유재원의 지목으로 비서실로 근무처가 확정되었다. 본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한국에서 1, 2위를 다툴 다움이란 포털사이트의 개발자가 되었을 테고, 이후에는 포털사업이 대박이 나면서 밀크초코라는 메신저 회사와 통합되어 승승장구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미래는 없다.
달라진 그의 미래에 대한 약간의 책임감과 다움이라는 포털사이트를 대기업으로 키운 능력자이기도 했으니 비서실 근무가 딱이라는 것이 유재원의 판단이었다.
그 결정은 지금 보는 것처럼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홍범수는 ID 그룹 비서실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했다. 능력도 우수해서 인턴 딱지를 뗀 다음에도 계속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서 지금은 비서실 서열 3위, 비서실 제2 차장이 되었다. 2004년에 입사했으니 9년 만에 비서실 서열 3위에 오른 것이니 초고속 승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홍범수는 차장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보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 열심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모나리자 일도 최우선이었고, 자크 소비에르가 먼저 연락을 해오자 기다렸다는 듯 나갈 수 있었다.
홍범수가 자크 소비에르를 만나서 응대를 하고, 정밀 검증 리포트를 넘겨주는 모습과 통유리 안으로 안내해 가까이서 보여주는 것 모두 현장 취재 중이던 매스컴에 고스란히 찍혔다. 그 때의 시간이 저녁 7시를 지나고 있었으나, 각 방송사의 8시 뉴스나 9시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ID 그룹 사람들과 컨택을 하면 이렇게 번잡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는 그냥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서 슬쩍 보고 지나갈 예정이었는데,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이었다.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유 회장님께서 준비하신 자리가 있습니다.”
거기에 홍범수가 저녁 식사까지도 제안했다.
“유 회장이 나오는 자리요?”
“그건 아닙니다. 검증위원님들끼리 편하게 드실 수 있게 마련했습니다.”
“그럼 필요 없소.”
ID 그룹으로부터 일절 대우를 받을 생각이 없다는 건 여전히 분명했기에, 자크 소비에르는 칼 같이 거절했다.
“네, 알겠습니다.”
홍범수도 두 번은 권하지 않았다.
“잘 봤소. 우린 숙소로 돌아가겠소. 내일 다시 연락드리지.”
“네. 알겠습니다.”
홍범수는 가볍게 답했지만, 자크 소비에르의 내일 다시 연락 준다는 말은 아주 어렵게 나온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품이라 주장하는 유재원 회장 측과는 한 번의 미팅으로 끝장을 본다는 게 자크 소비에르와 검증팀의 원래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단번에 가짜라는 증거를 찾아내서 한 번의 미팅으로 끝장을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더구나 이렇게 계획이 틀어진 건 또 있었다.
“뭐라고?”
숙소로 돌아와 프랑스 문화부의 모나리자 TF팀과 통화 중인 자크 소비에르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측정 데이터가 맞지 않는다니?”
자크 소비에르에게도 루브르 모나리자의 측정 데이터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임 루브르 관장이었던 자크에겐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20년이 넘게 루브르 박물관 관장 자리에 있었다. 수천만 점의 유물과 미술품을 관리했고, 때에 따라 각각의 테마로 루브르 박물관을 운영했었다.
그렇게 각종 행사와 기념일에 따라 테마를 바꿔왔지만, 절대 로테이션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 모나리자였다.
그런데 가짜라니!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었다.
저녁에 여의도 드림 스타디움에서 모나리자를 보았을 때 진품의 아우라에 놀랐지만, 이번 것은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드림 스타디움에 걸린 모나리자가 진짜가 맞는 것일까?
가정이 사실이라면 모나리자는 도대체 언제 빼돌려진 것일까?
본인이 관장이던 시절, 모나리자 연구와 검증도 수차례 있었는데 그때는 왜 정상적인 데이터가 나왔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모나리자 사건은 세기의 사건이 되었다.
원래도 대단히 큰 이슈였지만, 프랑스의 자그마한 인터넷 언론사의 폭로로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커졌다.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재검증 작업 돌연 중단.
-탄소연대 측정 과정서 일부 샘플이 1940년대 수치 기록!
루브르 박물관 측이 비밀리에 진행했던 검증 작업의 중간 결과를 빼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특히 일부 샘플에서 1940년대 수치가 나왔다는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1500년대에 완성된 모나리자에서 1940년대라니!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가품의 증거였다.
반면 드림 스타디움의 메인홀에 전시 중인 모나리자의 분석 데이터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유재원은 대놓고 일을 키웠다.
‘하이테크 기술을 이용한 고미술품 분석’이라는 긴 제목의 초대형 컨퍼런스를 열었고, 거기에 자크 소비에르 팀과 고미술품 연구에 일평생을 바친 학자들을 모두 초청했다.
거기에서 유재원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초고해상도 X선 3D 모델링이라는 기법을 선보였다.
초고해상도 X선 3D 모델링이란 원래 ID 하이테크에서 무인기 연구에 쓰기 위해 만든 분석 도구였다.
ID 하이테크는 미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응모하기 위해서 강력한 고등 무인 전투기인 센티넬 포스를 개발 중이었다.
살짝 유치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혜성이가 네이밍한 것이었다.
물론, 재식명으로 확정된 건 아니었고 자체적으로 부르는 이름인데 의외로 실무진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센티넬 포스는 다채널 레이더와 고성능 스텔스, 센서통합항전장비, 레이저 무기체계와 인공지능 전자체계가 탑재된다. 엔진은 프랫&휘트니의 F155가 2개나 들어가는 대형 무인 전투기였다. F155엔진은 F-35에 탑재되는 F135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AB추력이 4만9천 파운드나 되는 괴물 엔진이었다.
이런 엔진이 2개나 들어가니 약 10만 파운드의 추력을 뽐낼 수 있다. 그야말로 로켓과 비슷한 추진력인데, 여기에 신기술이 더해지면서 더욱 괴물로 거듭났다.
그래핀 신소재를 적극 사용했고 태생이 무인이기에 콕핏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었으며 파일럿 생존에 필요한 장비도 제거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엄청난 무게의 감량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기동성과 가속도, 최고 속도를 달성할 수 있었다.
동체의 형태도 차세대 무인 스텔스 전투기답게 상당히 특이한 형태였다. 아니 극단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강의 스텔스를 위해 수직 꼬리 날개를 없앴고, 날개의 형태도 매우 짧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위아래로 길게 늘인 A자 형태였다. 이렇게 생기면 기동은 어떻게 하나 싶지만 추력편향 노즐, 가변 카나드 노즐을 통해서 기존의 전투기보다 운동 성능이 뛰어났다.
대신 그래핀 신소재를 사용했기에 제조 원가는 폭발했고, 소재 관련 데이터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다.
참고로 개발비 총액은 400억 달러 선으로 보고 있고, 양산이 된다면 1기체당 도입 가격은 5~6억 달러를 예상했다. 기존에 제일 비쌌던 F-22의 2배 가격이다.
작년부터 어마어마한 돈지랄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 행정부에서도 난색을 보일 만큼 비싼 가격이었다.
대신 예상되는 교전 능력은 F-22로만 구성된 1개 전투비행대대(총 12기) 전체와 맞먹을 것으로 보고 있었기에, 미국 공군의 관심은 지대했다.
하여튼, 완전한 신소재로 개발되는 탓에 새롭게 측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초음속 돌파나 초음속 상황에서의 급격한 기동에서 동체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일일이 살펴보면서 정밀한 데이터를 쌓아야 했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측정 도구가 초고해상도 X선 3D 모델러였다.
샘플을 파괴하지 않고도 내부의 모습을 선명하게 찍을 수 있는 X선이었고, 이걸 이용해서 아예 3D 투시도를 만들어 살펴보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유용했다.
정밀도는 세팅에 따라 가변적으로 조절이 되었는데, 필요하다면 탄소 분자의 형태를 그대로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올릴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게 초고해상도 X선 3D 모델러는 강입자가속기(LHC)와 연동되는 모듈 형태였기 때문이다.
강입자가속기에서 X선만 대량으로 방출한 다음, 플라톤이라는 초대형 특수 디지털 센서로 읽어들인 후, 인공지능 골드가 입체 모델링으로 구현해 낸다.
당연히 강입자가속기는 ID 하이테크의 소유였다.
처음에는 핵융합연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다양한 연구에 응용되고 있었다.
전체 규모도 엄청났다.
ID 하이테크가 자리한 시애틀 레드몬드에서 동쪽으로 300Km떨어진 몬테나 주의 콘래드라는 지역 지하에 지름이 20km인 구조물이 있는데, 그것이 ID 하이테크의 초대형 강입자가속기였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있는 LHC보다 규모가 더 크다. ID 그룹의 하이테크 연구소를 두고 예산의 블랙홀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이렇게 엄청난 걸 가지고 모나리자의 초정밀 3D 입체 모형을 만드는 데 쓰는 것은 전 세계에서 오직 유재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결과 나온 리포트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밑그림의 형태부터 붓질의 순서까지. 사용된 물감과 기름 그리고 미세하게 남아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체 흔적까지도 나왔다.
컨퍼런스에서 모든 증거는 공개되었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그야말로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데이터가 공개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디지털로 전환된 모나리자였고, 이를 보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다.
반면 프랑스 문화부는 루브르에 있는 모나리자가 진짜라는 주장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유재원의 모나리자에 비해서,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엉터리 수치가 튀어나오는 게 루브르의 모나리자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문화적 자긍심이 남다른 프랑스였기에, 그동안 가짜를 진짜라고 자랑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도난된 것을 인정하고, 유재원에게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하자는 의견도 빠르게 일어났다.
문제는 반환 가능성이었다.
일단 도난당했다는 것부터 증명을 해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도난을 당했는지 프랑스 당국에서도 알아낸 게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이 1911년 빈센초 페루자에 의해 도난된 것이었다. 그때의 도난 사건은 프랑스 당국이 공식 인정한 도난 사고였다.
다행히 모나리자는 몇 년 후 안전하게 반환되었다. 만약 이때 위조 작품이 반환된 것이었다면 탄소연대측정에서 1911년 이전으로 나와야 했는데, 데이터는 1940년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도난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후 모나리자의 행적을 살펴보면 총 3번의 해외 전시가 있었다. 미국과 일본, 소련이었는데 해외 전시를 하는 와중에 바꿔치기 됐다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프랑스 당국은 3번의 해외 순회 중에서 미국에서의 전시를 가장 의심하고 있었다. 일단 록펠러의 비밀 수장고에서 발견되어 크리스티 경매에 넘겨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도난당했다는 걸 인정해도 반환을 강제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유재원이다.
IT분야의 천재 중 천재였다.
유재원이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발표할 때마다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선 아예 몇 개의 책이 새롭게 만들어졌고, 반도체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경영 능력도 엄청나서 ID 그룹을 세계 최고로 올려놓는 데까지 성공했다.
프랑스가 정부 차원에서 힘을 쓴다고 해도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이렇게 프랑스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할 때, 모나리자 컨퍼런스의 마지막 날 유재원은 폭탄선언을 했다.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반환할 의사는 있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반환할 의사가 있다니.
그야말로 프랑스에는 희소식이었다. 문제는 조건이었다. 대체 얼마를 부를 것인가? 얼마나 큰 이권을 달라고 할 것인가? 다들 촉각을 곤두세웠다.
-프랑스가 소유한 한국 약탈 문화재 전체와 교환한다는 조건입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는 데에는 1분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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