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회
뉴 노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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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시작은 역시나 2CH.com이었다.
2CH.com은 누구나 게시판을 만들 수 있었고, 무료로 제공되는 트래픽의 양도 최고였다. 덕분에 온갖 커뮤니티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세계 최대의 음모론자 커뮤니티도 2CH.com에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모론자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이름은 록펠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음모론으로만 치부되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난 가장 극적인 케이스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메가톤급 규모로 말이다.
심지어 록펠러 가문의 풍비박산이 일으키는 후폭풍도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인 모두에게 주어지는 지원금이라든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라든가, 각종 신기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경매라든가.
음모론자의 커뮤니티에서는 사소한 것들까지도 모두 집중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나리자 모조품을 낙찰받았다는 것도 큰 화제였다.
더욱이 유재원은 음모론자 커뮤니티에서 두 번째로 많이 거론되는 이름이었다.
록펠러가 이제는 과거의 사람이 되었고, 그 자리를 유재원이 서서히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가 가짜인 거 같다.
-무슨 헛소리냐?
-록펠러 가문의 소장품이 나왔던 크리스티 경매장에 있었던 모나리자가 진품이라는 거다.
-근거는?
-아무리 돈이 넘쳐나는 유재원이라도 가짜에 1만 달러나 쓰겠나. 상회 입찰도 두 번 들어왔다는데, 호가를 10배씩 올렸다더라. 분명 록펠러 가문 쪽에서 유재원에게만 진짜 정보를 준 거다.
친절한 설명에 ‘왜?’라는 질문이 더는 붙지 않았다.
다들 음모론 쪽에 한가락 하는 네티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였기에,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만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건 뭐지?
-당연히 가짜지!
음모론자들은 아주 쉽게 결론을 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게시판에 올라온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기사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익명의 전문가들. 크리스티 경매에서 유재원이 낙찰받은 모나리자, 진품 가능성 높다!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다가 쓸 만한 게 나오면 기사로 내는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특히 팩트체커가 항시 발동 중인 인터넷 공간에서 빠르게 기사를 작성해 올릴 수 있는 건 커뮤니티 모니터링이 확실했다. 기사를 업로드하자마자 팩트체커가 움직이면서 신뢰도를 따지고 들어오는데, 최소한 커뮤니티에 관련 글이 좀 있다면 ‘가짜 뉴스’라는 낙인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자를 두고 있는 언론사들이 많아져서, 사람이 직접 모니터링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심지어 신뢰도 지수의 변동도 계속 모니터링하다가 50%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 하면 먼저 언론사에서 기사를 내기도 했다.
가짜 뉴스를 계속 올려서 언론사 신뢰도까지 깎이는 것보다는, 초반에 들어오는 클릭 수를 어느 정도 받아먹은 다음에 내리는 게 이익이라는 노하우가 쌓인 것이었다.
여기서 좀 더 과감한 언론사의 경우에는 도발적인 제목을 걸기도 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는 가짜?
확실히 제목이 화끈하면 클릭 수도 크게 오른다. 덕분에 세계가 인정하는 명화인 모나리자는 단숨에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비슷한 시각.
어제 대한민국을 크게 뒤흔들었던 유재원은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다.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9시까지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다가 서재로 들어와 ID 그룹의 회장으로서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ID 그룹의 현안 중 제일 큰일은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배분이었다.
정확하게는 AMD의 다이아몬드 CPU를 어디에 얼마나 보낼 것인가를 따지는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이아몬드 CPU의 확보는 곧 기업의 경쟁력이었다.
당장 애플만 보더라도 ARM을 포기하지 않는 잡스를 해고시켰다. 그러고서는 유재원이 예상했던 그대로 스팀 쿡을 새로운 CEO로 임명했다.
애플의 새로운 CEO가 된 스팀 쿡은 그날 바로 ID 일렉트로닉스에 연락해서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에 대해 문의했다.
처음에는 ARM의 a시리즈 AP를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당연히 ID 일렉트로닉스의 대답은 ‘안 됨’이었다.
유재원에게 상신할 필요도 없이, 이미 관련 지침이 내려간 상태였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을 완성한 다음부터 ID 일렉트로닉스는 파운드리 사업을 중단했고, 오로지 자사의 반도체만 생산하기로 했다.
수율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꾸준히 하나의 라인업을 유지하는 것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ID 일렉트로닉스의 자체적인 칩셋 라인업도 생각보다 훨씬 다채로웠다.
AMD의 ZEN 아키텍처 CPU, ATI의 라데온 GPU, 다이아몬드 D램 그리고 M시리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수원 공장에는 구식의 실리콘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낸드 플래시 칩을 생산 중이다.
이렇게만 해도 자체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맞출 수 있는 지경이었다. 괜히 애플의 a시리즈 AP를 수주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애플의 대안은 대만의 TSMC였다. 하지만 TSMC도 애플의 AP를 생산해 줄 여력은 없었다. 인텔과 엔비디아라는 대형 업체로부터 들어온 의뢰만 해도 다이아몬드 반도체 라인을 다 쓰고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IT 업계는 대변혁 중이었다.
실리콘 반도체를 다 버리고,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바꾸는 슈퍼 사이클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도태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단적으로 국가 안보에 상당히 중요한 슈퍼컴퓨터만 봐도 연산력의 단위가 페타플롭스에서 엑사플롭스로 바뀌는 중이었다.
단순한 접두사의 교체가 아니다. 이는 구식과 최신의 시스템 성능 차이가 1천 배가 난다는 걸 의미했다. 컴퓨터에서 1천 배의 성능 차이는 곧 절대적이었다.
단백질 분석 알고리즘만 해도 100년이 걸릴 작업을 1개월에 끝낸다는 것이니, 어마어마한 차이가 발생한다.
모바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확실한 성능 차이는 게임에서 나타났지만, 인공지능 개인 비서의 피드백이나 각종 업무 보조의 질에서 퀄리티의 차이도 컸다.
결국 애플에게 남은 선택지는 ARM을 통해 이끌어왔던 a시리즈 AP를 내려놓고 ID 일렉트로닉스의 M시리즈 AP를 받는 것이었다.
결정은 어려웠지만, 애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애플의 파워맥은 이름 그대로 IBM의 파워 CPU를 사용했지만, 인텔의 성능이 파워 CPU를 추월하자 인텔로 과감하게 교체했다.
더구나 M시리즈는 딱히 독점으로 파는 칩도 아니었다. 대금만 확실히 치르면 중국의 업체에도 칩을 공급해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애플의 iOS였다.
ARM용으로 만들어진 iOS를 M프로세서는 인식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M시리즈용으로 포팅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ID 그룹의 모든 시스템은 Z+로 프로그래밍하는데, M프로세서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Z+ 언어의 장점은 개떡처럼 입력해도 찰떡처럼 알아듣는 것이었다. 오브젝트 C로 만들어진 iOS의 소스코드와 리소스를 그대로 Z+로 입력하면 M프로세서용으로 무리 없이 포팅이 될 것이다.
다만 수많은 iOS용 앱이 M프로세서에서도 정상 구동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 문제를 최소화하는 게 애플의 고민이었지만, 결국 인텔로 이사를 했던 것처럼 M프로세서를 채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팔더라도 비싸게 팔아야지.”
유재원은 악당처럼 씨익 웃었다.
잡스가 없는 애플이니 보이지 않게 우대해줬던 것들을 모조리 회수할 작정이었다.
-마스터, 어제 토론에 대한 새로운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보여줘.”
유재원의 말에 마우스 커서가 황금색으로 변하며 반짝거렸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바탕화면의 웹브라우저 아이콘을 더블클릭으로 실행했다.
여기서 황금색 커서라는 건 인공지능 골드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변화였다. 인공지능이 제멋대로 움직여 컴퓨터를 조작할 수도 있다는 의견에 대한 피드백이다. 실제 인공지능 골드가 PC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걸 편리하게 이용하는 사용자도 많지만, 뭐든 의심스럽게 보는 사람도 있으니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제어하는 부분은 이렇게 황금빛으로 표시가 나도록 했다.
인공지능 골드가 웹브라우저의 주소창에 여론 조사가 담긴 기사를 입력할 때에도 노란 금색이 반짝였다.
-인공지능 판사, 검사 도입에 찬성한다 78% vs 반대한다 19%. 모르겠다 3%.
-국민들, 인공지능 도입에 압도적 찬성!
원래 인공지능 도입에 찬성 의견이 과반 이상이었는데, 이제는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78%였다.
어제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사들이 얼마나 수세에 몰린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였다.
“좋군.”
유재원은 수치를 보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이런 식의 토론은 좋은 말만 주고받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토론의 상대가 비슷한 급이라면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할 만만 계속 주장하다 끝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열린 토론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검사들은 본인들의 영역에 인공지능이 들어서는 걸 막을 수 있는 충분한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이 가진 엘리트 의식이 사실을 별 볼 일 없다는 것만 확신시켜 주는 이벤트였다.
곧이어 인공지능 골드는 관련 게시물 중에 유재원이 볼 만한 것들을 추려서 화면에 띄워줬다.
-검사들이 인공지능 해킹 가능성을 따지고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음.
-유재원 회장이 받은 그대로 해킹으로 반격할 때, 검사들의 모습!
기억해야 할 정보가 담긴 게시물은 아니고, 그냥 유머 게시글이었다. 전전긍긍하는 평검사들의 모습이 순간 포착으로 크게 담긴 게시글이었다.
1차원적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니 유재원도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이 검사와의 대화라는 사건을 인지하게 된 건, 회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때 있었던 검사와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본 건 아니었다. 그때는 꿈속 세계에 빠져 정신 못 차리던 시절이었고, 정치에 관심도 없던 나이여서 몇몇 기사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던 유재원이 제대로 검사와의 대화를 알게 된 건, 2020년쯤으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게 되고, 일성그룹으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투자금을 유치하던 때였다.
그때 일성그룹 측에서 나온 사람이 검찰 출신의 법무팀장이란 녀석이었는데, 무지하게 거들먹거리던 사람이었다.
완전 비호감이라서 따로 알아보니, 노 전 대통령 때 있었던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와의 대화라는 걸 인터넷으로 알아봤는데, 역시나 나빴던 첫인상은 더더욱 나빠졌다.
대통령에게도 학번 운운하던 사람이었으니, 유재원과 같은 애송이를 대할 때 얼마나 가관이었겠는가. 그렇지만 그 인간은 유재원의 뇌리에서 금방 사라졌다. 본질은 그 인간도 결국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잘살고 있나?”
문뜩 그 인간의 현재 상태가 궁금해진 유재원은 넥스트컴의 인명 검색에 그 이름을 넣었다. 그러자 상세한 이력이 출력되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이력을 훑어본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2006년도까지 검찰청에서 지검장까지 하며 승승장구하다가, 공수처에 뇌물죄로 적발되어 파면 처분을 받고 커리어가 끝장났다.
파면 처분을 받으면 변호사 개업도 5년 미뤄지기 때문에 전관예우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대체 무슨 뇌물죄인가 하고 자세히 찾아보니 역시나 일성그룹의 금융계열사인 일성생명으로부터 수차례 접대와 떡값을 받았다가 탈이 났다는 것이다. 공수처가 없던 시절이라면 일성그룹이 장학생 관리를 위해 뿌리는 떡값 정도는 대놓고 받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공수처 출범 후엔 파면으로 이어질 만큼 막강한 처벌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검사와의 대화에서 지적된 것처럼 공수처가 만능의 해킹 방지 툴은 아니었다.
-해킹 방지는 개뿔! 검사 중엔 돈 많으신 해커님들께 간택되길 기다리는 작자도 상당할 거라는 데, 100원 건다.
어떤 익명 네티즌의 촌철살인이다.
거기에 딱 맞는 게 이 인간 아니겠는가. 안에서부터 문을 열어놓은 상태라면 백약은 무효다.
게다가 최후의 보루인 공수처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현직 공수처장은 노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중에 임명된 사람이다. 문제는 전직 검찰총장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1대 처장은 판사 출신이고, 2대 처장은 변호사 출신이니 3대는 검찰 출신이 해야 한다는 야당 정치인들의 압력과 검사들의 강력한 요구로 이뤄진 인사였다.
그 결과는 누구나 예측했던 그대로였다.
일단 겉만 보면 공수처가 직접 수사하는 고위 공무원의 숫자는 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대신 자세히 보면 뭐가 문제인지 눈에 들어온다.
공수처에서 사건을 가져와 고소까지 이뤄지는 케이스 중에 행정부 고위 공무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기소되는 검사들의 숫자는 줄어든 것이다. 특히 파면과 같은 강한 처분을 받는 검사들의 숫자는 확 줄어들었다.
이렇게 되면 행정부는 매일 비리 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팔이 안으로 굽은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공수처장의 임기는 9월 말까지였다.
정 대통령은 오늘부로 이미 검사들과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니 노 대통령과 달리 뒤도 안 돌아보고 과감한 인사를 할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10월 초에는 사법 시험 2차 결과 발표도 있다. 거기에서 기대했던 그대로 결과가 나오면 인공지능 판사와 인공지능 검사의 도입은 못이 박히는 것이다.
띵!
-마스터, 모나리자 진위에 대한 이슈가 폭발적으로 성장 중입니다.
인터넷 여론 동향을 보고하던 인공지능 골드는 마침내 모나리자에 대해서도 보고했다. 재미있는 건 이에 대한 유재원의 반응이었다.
“흠? 벌써? 생각보다 빠르네. 역시 모나리자인가.”
마치 예상하고 있던 사람처럼 큰 놀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나리자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흘러가도록 조치한 사람이 유재원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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