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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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자동차 안.
라이트닝 볼트의 15인승 버스인 유니버스에는 아틀라스 로봇과 사람 한 명뿐이었다. 사람도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운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뒤쪽에서 아틀라스 로봇에 달라붙어서 뭔가 열심히 점검 중이었다.
비상식적 장면이지만, 유니버스 안에서는 이게 기본이었다. 유니버스의 홍보 책자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운전석을 완전 접어 버리고, 운전대도 대시보드 밑으로 밀어 넣고서 극대화한 좌석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시스템은 정상입니다.
유준영은 스마트폰에서 뜨는 메시지에 안도하면서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정밀 점검해 봐.”
그렇기에 점검 명령을 재실행하면서 본인도 거치대에 놓인 아틀라스 로봇을 다시 들여다봤다.
삐빕.
그러자 우웅 하는 시스템 점검 소리가 아니라 메시지를 보냈다는 알람 소리가 나왔다.
-조금 전 명령을 포함해서 이미 5차례나 점검했습니다. 짧은 시간 시스템 점검을 연속적으로 실시하면, 오히려 시스템의 내구성에 문제가 됩니다. 그래도 수행합니까?
아틀라스 로봇의 메시지다.
실제로 목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문장 속에선 뭔가 띠꺼운 듯한 어조가 느껴졌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전적으로 유준영의 위축된 심리 탓이었다.
“음, 그렇겠네. 점검 명령은 취소다.”
유준영은 머릴 긁적이면서 정밀 점검 명령을 취소했다.
본인도 아틀라스 로봇의 하드웨어 점검을 하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풀썩 앉았다. 그러자 차창 밖에서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덕진리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사방은 하얀 눈이 쌓인 논밭이었는데, 지금은 회색의 도시 초입에 들어온 듯, 건물도 많아지고 도로도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멍하니 창밖을 보던 유준영은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2011년 MIT를 졸업하고서 바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신입 연구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야말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행보였다. 지금도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위상은 전 세계 최고였지만, 그때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완벽히 수습함으로써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입사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에서는 유준영을 한국의 덕진리로 파견시켰다. 거기에서 하는 일은 농사였다. 아틀라스가 농업에도 잘 활용될 수 있게 보조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치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첨단의 연구 시설에서 미래형 로봇을 만들고, CES와 같은 무대에서 발표하는 걸 꿈꾸며 보스턴 다이나믹스에 들어왔던 유준영에겐 충격적인 발령이었다.
그렇지만 유준영은 꿋꿋하게 버텼다.
덕진리가 유재원 회장의 고향이었고, 거기에는 회장님의 부모님과 친척들이 살고 계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준영은 덕진리에서 유 회장과 만나서 악수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한국 지사에서 연구원 등급은 본인이 유일했다.
덕진리 생활도 이제 만으로 2년 차가 되었기에 꽤나 적응이 되었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할 일도 크게 줄어서 만족스러웠던 유준영이었다.
무엇보다 올해 가을까지만 지내면 덕진리에서의 생활은 마무리가 되는 것이었기에 아주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쯤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유준영의 목가적인 삶도 크게 달라졌다. 인공지능 골드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일대의 사건이 벌어지더니, 한국에서는 한발 더 나가서 사법 시험 응시 자격에 인공지능도 포함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1월 임시 국회에서의 법 개정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났고, 2월 초에 있었던 2013년 사법 시험 공고의 응시 자격에 사법부 주관의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에 시험 자격을 준다는 것이 명시되었다.
당연히 인공지능 골드는 사법부 주관의 튜링 테스트를 통과해서 응시 자격을 확보했고, 사법 시험 응시를 위한 초단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시험장에 통신 장비의 반입이 허가되지 않다는 치명적인 제약이 걸려 있긴 했지만, ID 그룹의 기술력으로 이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사법 시험 돌파를 위한 전용 소프트웨어는 유 회장이 직접 만들었고, 시험 응시를 위한 전용 모델은 마크 박사가 맡았다.
시일이 촉박해서 로봇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진 못했고, 사고 현장에 투입하는 대형 아틀라스를 개조하는 선에서 시간을 맞췄다고 한다. 10마력이나 되는 강한 힘을 내는 대형 모델이었는데, 그만큼 커다란 모터가 들어간다. 그걸 떼어내고 소형인 일반형 모델의 모터를 달았고, 그렇게 확보된 공간에 강력한 연산 가속기와 대용량 SSD를 추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특수 모델이 지금 유준영의 바로 옆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준영에게 맡겨진 일이 사법 시험 응시였다.
유준영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 스케일의 프로젝트라면 유 회장이나 마크 박사가 직접 오는 게 맞지 않나 싶었는데, 두 분 모두 1분 1초가 황금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한국 지사의 연구원인 유준영이 사법 시험 응시에 대한 책임자가 된 것이었다.
-신촌에 진입했습니다.
잠깐 생각을 하는 사이 유니버스는 목적지인 연세대학교에 다다랐다.
연세대학교 백양관이 인공지능 골드에게 배정된 사법 시험장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나도 안다고.”
유준영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고가 높은 유니버스였기에, 키가 좀 큰 유준영이 일어서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한 유준영은 거치대에 결속되어 있던 아틀라스의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러고서 마지막 최종 점검을 했다.
바보처럼 정밀 진단을 명령한 건 아니었고, 다리나 손가락 등등의 구동 계통을 중점적으로 확인했다.
시험장으로 들어가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유준영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만에 하나 시험장 내에서 구동 계통의 잔고장이 발생하면 유준영의 커리어도 끝장이었다.
솔직히 시험의 통과 유무는 유준영의 관심사 밖이었다. 그저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고장이 없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한 상태였다.
“좋아.”
마지막으로 전지의 충전율이 100%인지 꼼꼼히 확인한 유준영은 충전 플러그를 뽑았다. 그리곤 킬버튼을 덮고 있는 안전 덮개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제어용 스마트폰과 아틀라스 로봇을 연결하던 유선 케이블도 제거했다.
“자, 가자.”
모든 준비를 끝낸 유준영은 유니버스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같은 시간.
-언제 여는 거야?
-곧 열리겠지. 입장까지 5분밖에 안 남았는데?
-혹시 문제 생긴 거 아냐?
연세대 백양관에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은 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잡담을 나눴다. 이번 사법 시험 도전에 모든 매스컴의 관심이 지대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때가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도전이었다.
그때에도 엄청난 취재진이 몰렸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또한, 인공지능 골드가 도전했던 바둑계도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법조계 출신 인사들이 인공지능 골드의 성공과 실패를 전망하는 말만 하면 바로 기사화되었다. 만에 하나 인공지능 골드가 시험을 뚫고 들어왔을 경우를 예상하는 기사들도 많았다.
온갖 상상력이 동원된 기사들이 쏟아졌고, 그런 기사들은 클릭도 많이 받았다.
요즘 시대의 기사 작성 원칙에서는 누군가의 말을 옮기게 되면 팩트 체크가 필수다.
기사를 인터넷에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팩트 체크가 되고, 만약 거짓이라도 나오면 신뢰도가 떨어지니 말이다. 신뢰도가 추락하면 사람들은 클릭을 하지 않고, 넥스트컴 등이 지급하는 원고료도 급감하게 된다.
하지만 예측성 기사의 경우에는 팩트 체크가 단순해지기에 작성할 때 신경 써야 할 게 확 줄어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 골드의 사법 시험 도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법원과 검찰 그리고 사법 시험 응시 지원자 중엔 상당했다.
-신성한 사시에 기계가 웬 말이야!
-물러가라! 물러가!
연세대 백양관 입구에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이들이 격정적으로 구호를 외쳤다. 사시 낭인들이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인공지능 골드가 도입된 분야는 수도 없이 많았고, 그 이후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도 직접 본 사람들이었다.
조직의 최적화.
정확하게는 인적 최적화가 일어난다.
인공지능은 노동법에 적용받지 않고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을 엉터리로 하느냐? 절대 아니다. 인허가 과정에서 사람이 처리할 때는 기약이 없을 정도로 긴 인허가 과정도 총알처럼 빠르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승인을 하는 게 아니라 위험 요소의 체크는 정확했다.
사법부에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렇지 않아도 매년 줄어드는 사법 시험의 정원이 크게 줄 거라는 게 이들의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최적의 시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관례가 된 사법 시험 시험장 앞에서 깽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과격한 폭력 시위까지 확대되진 못했다.
이러한 소란을 예상하고 경찰에서는 200명이 넘는 의경을 투입해서 질서를 잡았기 때문이다. 숫자로만 보면 의경이 훨씬 많았는데, 시위대가 워낙 흥분하고 목소리도 커서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때.
-열렸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유니버스의 뒷문이 열렸고 한 명의 사람과 한 대의 로봇이 나타났다.
“잠깐 인터뷰 가능한가요?”
“성함과 직위 좀 알 수 있을까요?”
“합격 확신합니까?”
취재진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달려드는 바람에 포토 라인이 무너질 뻔했지만, 의경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힘을 쓴 덕에 질서는 곧 찾았다.
“공식 인터뷰는 아틀라스로부터 안전하게 입실했다는 메시지가 오면 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고시생분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저기 소운동장에서 할 테니 지금은 질서를 갖춰 주십시오.”
이런 상황에 대해 미리 언질을 받은 유준영은 한 발 앞으로 나오면서 발언했다.
유준영의 말에 취재진이 웅성거렸다.
일부 발 빠른 사람들은 소운동장을 향해 뛰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틀라스 로봇에 포커스를 맞췄다.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아틀라스는 유준영을 쓱 지나쳐 백양관 입구의 계단을 올랐다.
“아틀라스 로봇님! 아니, 골드인가? 하여튼! 로봇님은 합격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극성인 취재진은 유준영이 소운동장에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한 다음부터 한 마디도 않자 아틀라스 로봇에 대고 질문을 날렸다.
사실 답을 들을 거라는 기대도 없었던 질문이었다. 아틀라스 로봇에는 입이 없다는 게 상식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험장이 있는 백양관 건물의 맨 마지막 계단에 이른 아틀라스 로봇이 상반신만 슥 돌리더니 오른손 엄지를 척 하고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어?”
그냥 질문만 하는 장면이라도 딸 생각으로 뱉은 말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멋진 답변을 들은 것이었다. 운 좋게도 그 장면까지도 정확히 카메라에 담겼고 이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속보로 올렸다.
당연하게도 클릭 수는 단숨에 최고로 치솟아 올랐다.
“이제 끝났나?”
유재원은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깨어 있었다. 서재의 한쪽 벽을 차지하는 커다란 OLED TV에 맞춰진 채널은 한국의 케이블 뉴스였다.
-앗! 사법 시험이 종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카메라를 현장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오늘의 사건이 너무도 특별했던 만큼, 한국에선 온종일 인공지능의 사법 시험 도전에 대한 이야기만 줄곧 나오는 중이었다. 지금 유재원이 띄워 놓은 채널을 보면 전문가 둘이 나와서 합격 혹은 불합격을 주장하며 그 결과에 대한 후폭풍을 이야기했고 시험이 끝날 때가 되자 현장으로 카메라가 넘어갔다.
-저기 아틀라스 로봇이 나옵니다. 아침에 들어갔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안정적인 모습입니다.
딱 마침 아틀라스 로봇이 나오는 게 화면에 잡혔다.
같이 시험을 치른 고시생들 사이에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아틀라스 로봇이었다. 왠지 움직이는 속도도 좀 느려진 듯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인공지능 신경망의 벡터 연산에 막대한 전기가 소모되면서 유휴 전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틀라스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유준영이 바로 달려가서 보조 배터리 팩을 달자 움직임이 바로 자연스러워졌다.
“유 연구원!”
-예, 회장님.
“아틀라스를 유니버스에 태운 다음 곧장 통신 모듈 연결해서 시험 데이터 전송시켜 주세요.”
유재원에겐 아틀라스가 시험을 잘 보고 나왔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핵심은 정답률 아니겠는가.
아틀라스의 저장소에는 풀었던 문제의 답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고, 이를 전송받아서 공개된 답안지와 바로 비교하면 결과가 딱 나온다.
띵!
지시를 내린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알람이 왔다. 아틀라스의 시험 데이터였다.
이미 정답지가 공개됐기에 점수는 즉각 계산되어 화면에 떴다.
점수를 확인한 유재원의 얼굴에 환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천하의 유재원이라도 사람이었기에, 혹시나 하고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감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점수가 화면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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