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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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서비스가 정식으로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2G 서비스는 도태가 됩니다. 700~800Mhz 대역의 귀한 주파수가 일시적으로 비게 되는 거죠.”
5G 서비스의 시작은 원래 역사보다 8년 정도 빠르다.
미국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5G 중계기를 설치한다는 사업이 승인되었기 때문이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도시와 농촌에 대한 차별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커버리지를 확보하고, 통신사에 대역폭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사업이 확정되었다.
현재 단계는 여러 회사들로부터 5G 중계기 입찰을 받고 있지만, ID 그룹의 중계기가 확정이나 다름이 없다.
현재 5G 중계기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딱 두 곳뿐이었다. ID 그룹과 중국 화웨이였다.
가격은 화웨이가 확실히 저렴했다. 하지만 ID 그룹의 중계기가 엄청나게 비싼 건 아니었다. 화웨이보다 50% 정도 더 높은 가격이지만, 비싼 만큼 성능은 확실했다. 28Ghz 대역을 사용하는지라 커버리지 영역이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화웨이보다는 넓었다.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디바이스의 숫자나,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 보안 시스템의 완성도 모두 ID 그룹의 5G 중계기가 월등했다.
화웨이의 장점은 그저 저렴한 가격인데, 대량 생산에 들어가면 그 저렴한 가격도 의미가 옅어질 것이다. 대량 생산을 통해 단가를 절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 연방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5G 서비스의 전면적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년 뒤인 2015년이었다.
무지막지한 속도다.
기업에 맡겼다면 10년도 넘게 걸릴 일이지만, 연방 정부가 무지막지한 자본력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2년 안에 못 할 이유가 없다.
그나마 예외는 대한민국이었다.
TG 모바일도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5G 서비스의 커버리지 영역을 단숨에 늘린다는 계획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량 생산 물량에 얻어 타는 방식으로 5G 중계기의 단가를 크게 절약하는 것이었다. 마치 공동 구매처럼 말이다.
하여튼, 2015년에 5G가 시작되면 무선 통신의 시대를 열었던 2G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거다. FHD 스트리밍도 불가능한 2G를 쓸 사람은 이제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2G가 사라지면 주파수는 남게 된다.
“아, 유 회장도 2G 주파수를 원하는 모양이군.”
존 매케인 대통령은 역시나 하는 반응이다.
물론 700~800Mhz 대역의 주파수를 탐내는 이들은 꾸준히 있었다. 일단 방송사가 제일 탐을 냈다. 이 대역이라면 UHD 공중파 채널을 2, 3개 정도 만들 수 있는 주파수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겨우 공중파 채널을 만드는 것으로 주파수를 사용하는 건 유재원이 보기엔 낭비였다.
요즘 공중파의 위상은 예전만 못했다.
뉴스를 선도하지도 못했고, 공중파 방송국이 내놓는 프로그램의 질도 과거처럼 높은 수준을 자랑하지 못했다. 그저 광고를 붙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소중한 전파가 낭비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네. 라이트닝 볼트와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위해서죠.”
자동차와 로봇.
두 가지 모두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장비였다.
라이트닝 볼트의 자동차들은 이제 레벨5의 완전 자율 주행이 가능하다. 완전 자율 주행의 핵심은 사물인터넷이었다. 도로 전반의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예측 주행을 하는 것이 완전 자율 주행의 비밀이다.
스마트 도로와도 소통하고, 도로 주변의 CCTV와도 소통하고, 라이트닝 볼트의 전기자동차들끼리도 소통한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도 자율 주행 자동차와 비슷한 이유다.
특히 로봇은 돌발 상황에 놓이게 될 경우가 자동차보다 많은데, 그런 상황이 닥칠 때 최선의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서버와의 연결이 중요했다.
연결의 수단은 당연히 무선 통신이었다.
4G LTE 모드가 기본이었고, 이게 불가능할 경우에는 3G를 차선책으로 사용한다. 2G는 많이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보험은 될 수 있다.
“그런데 2G로는 속도가 부족할 거 같은데?”
존 매케인 대통령이 핵심을 잘 봤다.
2G의 데이터 통신 모드의 경우 빨라야 4Mbps였으니, FHD 스트리밍이 기본인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네, 맞아요. 그래서 2G 주파수로 무선 데이터를 쓰겠다는 게 아니라, 와이파이 서비스를 위해서 2G를 쓰겠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4G나 5G 망에 장애가 생겼을 때나 산악지역 등에서 사용할 백업용으로요. 또한 우리 ID 그룹만 전용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보편 복지 차원에서 무료로 개방하겠습니다.”
5G 서비스는 연방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니 당연히 저렴하겠지만 완전한 공짜는 아니다.
게다가 연방 정부가 직접 시민들에게 5G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통신사에 임대 후에 통신사가 각자의 5G 상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니 기대했던 것보다 비싸질 수도 있다. 연방 정부에서 통신사에 임대를 해 줄 때에도 공짜는 아니었고, 통신사는 임대료에 각자의 마진을 더해 상품을 출시하게 될 테니까.
어지간한 미국인들에겐 큰 부담은 아니겠지만, 미국 사람들 모두가 다 잘 사는 건 아니다. 하루 일해서 하루를 먹고 사는 극빈층에겐 그러한 통신비도 부담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무선 통신은 의식주와 같은 생활 필수 요소다.
배움도 인터넷으로 하고, 여가도 인터넷으로 즐긴다. 심지어 일감도 인터넷으로 얻는다. 인터넷에 익숙한가, 얼마나 많은 인터넷 장비를 가지고 있는가는 곧 소득 수준과 비례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무료로?”
“네, 해당 주파수를 와이파이 대역으로 전환하면 50~100Mbps 정도의 속도는 꾸준히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2G 중계기를 와이파이 AP로 바꾸는 기술도 이미 개발되었고요. 주파수도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사용료도 당연히 낼 겁니다.”
“이렇게 해서 유 회장이 얻을 수 있는 게 뭐요?”
“더 많은 인터넷 사용자죠. 그리고 사이버 영토의 물리적인 확장도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니 굳이 돈을 받지 않아도 제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은 많습니다.”
인터넷의 절대자가 유재원이다.
그러한 인터넷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만큼 유재원의 힘도 대폭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렇군. 음, 다른 누구도 아닌 유 회장의 제안이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네.”
확답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충분한 답이었다.
2G 주파수 대역에 대한 처분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온 다음에도 유재원과 존 매케인 대통령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처음엔 독대였지만, 나중에는 백악관의 수석들도 참가해서 심도 있는 토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전자정부라는 이슈는 밀실에서 단둘이 끝낼 만큼 단순한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거대한 미국 행정부의 시스템을 하나의 기업이 전담하는 일은 법적으로도 문제였다. 그렇기에 ID 테크놀로지가 주도하고, 다양한 미국의 업체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큰 그림이 그려졌다.
그냥 유재원 혼자서 하는 게 제일 속 편하고 확실했지만, 존 매케인 행정부의 입장은 하나의 기업을 너무 편애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부담이었다. 차라리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다양한 기업들에게 기회를 나눠 주는 것이 낫다는 게 결론이었다.
다음 날.
유재원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 전, 뉴욕에 들러 레밍턴과 그린힐을 만났다. ID 그룹의 창업 멤버이고 동시에 유재원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특히 어제 백악관에서의 미팅은 레밍턴과도 관련이 있었다.
2G 주파수를 인수해서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할 주체는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통신사업부이니 말이다. 게다가 2G 주파수 인수는 즉흥적으로 나온 아이디어였기에, 레밍턴에게 이해를 구해야 했다.
“그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레밍턴의 대답은 든든했다.
다른 방송사와 주파수를 놓고 경쟁해야 하지만 그 정도는 타임워너 넥스트컴에겐 큰일도 아니었다.
인터넷 시대와 맞물려 빠르게 체질을 바꾼 타임워너 넥스트컴은,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미디어 그룹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루퍼트 머독의 뉴스콥과 경쟁을 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차이가 확 벌어졌다.
실제로 인터넷 광고 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는 ID 테크놀로지의 애드센스였고, 2위가 넥스트컴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무료라고 해도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광고를 탑재한다든가, 인터넷 사업자들에게는 돈을 받고 대역폭을 빌려주는 등의 사업은 충분히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와 라이트닝 볼트와의 거래 역시나 매출이었다.
레밍턴과의 업무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이후에는 그간 있었던 일들이나 아이들 이야기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다.
레밍턴과의 일상 대화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확 느껴졌다. 특히 엠마가 내년에는 대학생이라고 하니까 ‘벌써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으니 말이다. 엠마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따라다닐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대학생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 싶다.
그렇지만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나 남은 유재원이기에 감상에만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레밍턴 다음으로 만난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과의 대화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주력하고 있는 ETF의 성과와 ID 라이프 리워드에 대한 현황을 보고 받았다.
ETF 상품들은 여전히 잘 팔렸다.
미국과 한국의 증시 상황이 너무나 좋다 보니까, 인버스 상품만 아니면 다들 우수한 투자 수익률을 보였으니 말이다.
반면 라이프 리워드의 경우에는 기대보다는 못했다.
2013년 1월 한 달 동안 라이프 리워드에 새롭게 등록된 회원들의 숫자는 8만 명 정도였기 때문이다.
라이프 리워드의 정원은 아틀라스 로봇의 보급 대수와 같다.
그러니까 대략 8만 대가 시중에 풀렸다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정가로 완전 구매하는 것보다는 임대 방식으로 계약하는 숫자가 훨씬 많았다.
완전 생소한 제품인 아틀라스 로봇이 1월 한 달간 8만 대라면 많이 나간 거 아닌가 싶지만, 유재원의 욕심은 월 10만 대 정도는 팔아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욕심을 채우겠다고 아틀라스 로봇의 판매를 압박한다거나 추가적인 프로모션을 새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로봇의 보급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으니 말이다.
의외인 점은 라이프 리워드에 대한 논란은 이제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게거품을 물면서 반대를 했던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많았다. 자본의 침공이니, 나태라는 전염병이니 하는 말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아틀라스 로봇이 실생활에 도입되는 모습에서 4차 산업 혁명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상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건강 관리는 잘하고 계시죠?”
“그럼요! 끄떡없습니다!”
안타까운 건 빈센트 그린힐의 나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노년이었던 빈센트 그린힐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주름이 늘어났고, 머리숱도 많이 사라진 상태다.
“이 부분만 프로녹티스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요.”
유재원의 눈빛이 본인의 머리칼에 닿았다는 걸 알아챈 빈센트 그린힐이 걱정 말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네, 3상도 잘 끝나서 조만간 나올 거예요.”
3상이 성공리에 끝나더라도 FDA 승인에 걸리는 시간은 또 별도였다. 그렇지만 FDA의 심사 시간은 매우 짧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프로녹티스라는 이름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기대가 모인 상태였으니 말이다.
임상 결과도 좋은데, 괜히 FDA에서 시간 끌기를 했다가는 난리가 날 거라고 장담한다.
뉴욕에서의 일정을 마친 유재원이었지만,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떠나지 않았다. 근처 매사추세츠에 있는 보스턴 다이나믹스에서 마크 박사를 만나는 게 동부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받은 과제인 사법 시험 응시용 로봇 제작 때문이었다.
띵!
마침 유재원이 보스턴 다이나믹스 본사로 가는 길에 유재원의 의욕을 한층 자극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회장님, 재판부가 또 심리기일을 연기했습니다.
유럽 사업부 케빈 존슨 부회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유럽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케빈 존슨이었지만, 최근 그에게 맡겨진 최대 현안은 폭스바겐 재판이었다.
폭스바겐이 치르는 재판은 한둘이 아니었다.
폭스바겐 자동차를 산 오너들의 집단 소송과 환경 단체가 걸었던 소송도 있었고, 독일 정부 차원에서 폭스바겐 회장과 책임자를 고소한 재판도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독일 정부가 폭스바겐 회장과 조작 책임자를 고소한 재판이었다.
거기에서 유죄가 나오면 나머지 재판들은 자동으로 풀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핵심 재판이 대체 언제 끝날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심리기일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측에서는 최대한 재판을 길게 끌고 가면서,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합의를 하는 게 전략이었다. 합의가 되기 전에 1심 판결에서 폭스바겐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크게 불리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지연전을 펼쳤다.
독일 법원도 폭스바겐 측에게 최대한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연기를 받아 주었다. 전생의 일 때문에 사법부 불신이 심했던 유재원인데, 독일 법원의 막장스러운 행태까지 보자 더욱 열이 뻗쳤다.
이번 사법 시험 도전에 더욱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명색이 유럽의 양심이며 법과 원칙의 나라라고 하는 독일의 법원이 이렇게나 한심스러운 모습을 보일 줄이야.
인공지능의 사법 시험 도전은 대한민국에서 시도하는 것과 독일은 별개의 문제였지만, 유재원의 각오는 새파랗게 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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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예전과 같은 설날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쉬면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