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32화 (932/1,007)

9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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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유재원은 백악관에 도착하고 나서 깐깐한 보안 검색을 몇 단계 통과해야 했다. 예전 클린턴이나 앨 고어를 만날 때보다 훨씬 강화된 검색이라는 게 체감이 될 정도였다.

워싱턴 DC에서 유재원이 테러를 당한 이후 평시 경계 등급도 확 올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JFK 암살 사건의 전모가 해결된 다음 미국 대통령의 경호 체계는 완전히 개편되었다. 경호를 책임지는 시크릿 서비스는 이름만 비슷하지 조직도와 인물이 죄다 바뀌었고, 백악관의 보안 규칙도 크게 개편되었다.

“유 회장! 어서 오시게.”

그렇게 삼엄한 보안 검색을 통과해 마주할 수 있었던 존 매케인 대통령은 두 팔을 벌려 유재원을 환영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에 유재원의 공이 지대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ID 그룹의 기술 선도로 얻은 경제적 이익은 물론이고, 유재원의 도움으로 얻은 정치적 이익도 상당했다. 여기에 백악관에서는 유재원이 익명의 해커라는 심증도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JFK 사건의 해결부터 록펠러의 몰락도 그 이면에 유재원이 큰 힘을 행사했다는 확신이었다.

CIA와 NSA가 아무리 추적해도 흔적도 나오지 않는 해커라니.

참고로 티파니도 내부고발자 대우를 받고 있었다. 핵심 증거를 생성했던 알프레드 집사님이 공식적으로는 셰브롱의 직원이었고, 법정에서의 증언도 하면서 티파니를 적극적으로 두둔했기 때문이다. 티파니 또한 JFK 사건이라는 엄청난 태풍 속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임한 덕이었다.

하여튼, 공화당의 입장에서 앨 고어 시절 8천억 달러짜리 청나라 채권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뉴올리언스, 미시시피 제방 보수 작업이나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 등등 국가적 사업을 마구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제방 보수 작업은 헛돈이나 쓰는 줄 알았는데, 초대형 허리케인이었던 카트리나가 상륙하면서 효과가 입증되었다.

앨 고어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은 그 이후 더욱 가열하게 국가 산업을 마구 시작했다. 공화당에서는 그저 손만 빨아야 했다.

그런데 청나라 채권보다 15배는 더 큰 대박이 터졌으니 호감이 생기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다만 청나라 채권의 경우 중국에서 매년 현금으로 따박따박 들어왔다면, 이번 록펠러 가문의 재산은 현물부터 부동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게 살짝 부담스러운 점이었다.

그래도 현금성 자산이 2조 원은 거뜬히 넘어서 존 매케인 행정부가 하려는 대규모 사업은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커피?”

오벌 오피스에서 유재원을 맞이한 존 매케인 대통령은 유재원에게 커피의 취향을 물었다.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죠.”

존 매케인 대통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손수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네스카페 같은 커피 머신으로 버튼 한 번 눌러서 만들어지는 커피가 아니라, 잘 볶아진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서 에스프레소 머신에 넣어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다음 얼음물이 담긴 컵에 풀어서 만드는 진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존 매케인 대통령이 직접 유재원에게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유재원은 크게 한 입 마시면서 살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백악관에 들어오는 커피라 그런지 맛도 좋았다.

“아참, 튜링 테스트 통과 축하하네. 유 회장이 이뤄낸 업적이 뭐 하도 많아서 다 열거하기도 힘들겠지만, 이번 성과는 인공지능의 역사에 길이 기억될 걸세. 내가 장담하지.”

“고맙습니다.”

존 매케인도 커피를 마시면서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론이 나온 건 대화를 시작하고서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

“뭔가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신 유재원은 웃을 준비를 하면서 존 매케인에게 다시 집중했다. 부장님 유머보다 더 높은 등급의 유머가 대통령 유머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존 매케인이 하는 말은 유재원을 웃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 이 자리는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는 걸세. 여기저기 얼굴 다 팔린 로또 복권 당첨자의 처지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지. 여기저기서 돈돈 거리는데, 부끄러움은 내 몫이더군.”

무슨 말이고 하니, 존 매케인 행정부에 쏟아져 들어올 돈을 노리고 각종 로비를 해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런 사람들 중에는 존 매케인 대통령도 버거운 존재가 있었다.

이를테면 상하원 의장이라든지, 공화당에서 영향력이 큰 거물 의원이라든지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주지사들이나 지역에서 들어오는 민원도 어마어마했다.

“그러긴 하겠네요. 저도 주지사들이 24시간 워싱턴 DC에 상주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뿐이겠나? 요즘은 사이버 시대 아닌가.”

인터넷 청원의 규모도 무시무시했다.

특히 승리의 경험이 있는 월가 점령 운동은 이제 록펠러 가문의 압류 재산이 허투루 쓰이는지 감시하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여기에 샌더스와 같은 일부 급진적인 의원들은 그냥 모조리 공평 분배를 해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다.

미국 의회에서도 연일 특별법 따위가 쏟아지는데, 각자의 지역구에 공항을 비롯한 대규모 숙원 사업을 하자는 내용들이었다.

다들 돈의 마성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하다간 이 많은 돈도 순식간에 사라질 게 뻔하지.”

다행스러운 건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와중이지만 존 매케인 대통령만큼은 중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최근 여기 오벌 오피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논의되는 사안은 중동이나 우크라이나, 중국 문제가 아니라, 이 빌어먹을 록펠러의 똥을 최대한 영리하게 치우는 것이었네.”

록펠러의 똥이라니.

존 매케인 대통령이 이 문제로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단어였다. 유재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분배 문제도 문제지만, 역시 미국 대통령답다 싶은 게 존 매케인 대통령의 말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중동의 문제는 아무래도 아랍의 봄이 일으키는 후폭풍이 분명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유재원도 살짝 놓고 있던 문제였다.

우크라이나의 현직 대통령인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취임할 때부터 친러 성향으로 서방의 주요 경계 대상이었다. 그러던 빅토르 대통령의 친러 행보는 2013년 들어 더욱 노골적으로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원래 EU에 가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러한 노력 중 하나가 야권 인사들의 사면이었다. 그런데 빅토르 대통령은 그러한 합의를 다 엎어 버렸고, 여기에 분노해 일어난 시위대를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려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강한 반발이 일어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었고, 유로마이단이라는 대규모 시위대가 일어나서 빅토르 대통령을 몰아내고 친서방 과도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그걸로 끝이 나면 좋았을 텐데, 크림반도 동부의 친러계 주민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게 되면서 크림 위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돈바스 전쟁으로 확대된다.

지금 단계는 빅토르 대통령이 야권 인사들의 사면을 취소했고 시위대가 점점 규모를 불려 나가는 중이었다.

유혈 사태가 아직 터지진 않았는데, 미국은 이러한 위험을 이미 감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록펠러 사태로 인해서 백악관의 우선순위에서 우크라이나가 크게 밀리게 된 것이다.

“특히 공평하게 나눠 주라는 말처럼 어처구니가 없는 것도 없지!”

존 매케인 대통령은 평소 보여 주지 않았던 흥분한 모습을 보여 주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화당 소속인 존 매케인 대통령은 성향 자체가 상당히 자유 우파였다. 시장의 원리를 신봉했고, 경제 활동에 대한 자유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다. 대신 국가의 개입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 존 매케인 대통령에게 20조 달러나 되는 자금을 미국 사람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라는 말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빨간 맛이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이족 보행 로봇이 돌아다니고, 강력한 인공지능이 탄생해서 튜링 테스트까지 통과한 마당인데, 소련에서나 할 법한 단순 분배라니!”

“그러면 이제는 결론이 나온 건가요?”

“그렇지. 분배의 원칙은 딱 하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우선일세. 우리는 그것을 개척자 정신이라고 하지.”

존 매케인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단순했다.

거창하게 개척자 정신까지 나왔지만, 사람 갈아 넣어 서부를 개척했던 때처럼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밝은 미래를 위해 학업을 쌓는 학생들을 위해서 학비를 보조해 줄 수 있고, 사업을 키우기 위해 뛰는 이들을 위해 초저금리 대출을 해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집을 고치려는 사람들을 위해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 줄 수 있다.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신 그냥 제자리에 앉아서 공돈이 들어오길 바라는 이에겐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제는 선별 지원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지원 규모의 차이를 두고 터져 나올 불평불만을 최소화할 장치일세. 그걸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면서 단순 분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그리고 백악관의 수석들도 이에 동의했지.”

유재원은 존 매케인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속으로는 살짝 감탄했다.

존 매케인에게 감동한 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사람들의 인식이 여기까지 변했다는 것에 감탄한 것이었다.

선별 지급이 좋다는 건 알지만, 시행하기는 너무도 어렵다. 한국처럼 전산화가 잘 된 나라더라도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 드는 노력이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유 회장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 유 회장의 기업에는 정부 단위의 조직이 스마트해질 수 있는 솔루션이 있다지?”

“네, 전자정부 2.0이라는 도구가 있죠.”

전자정부 2.0은 단순히 본인 인증이 필요한 증명서를 인터넷 원 클릭으로 뗄 수 있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전자정부 2.0의 기능 중 하나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보다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전자 행정을 지원한다.

행정망이 통합되었고, 개인의 데이터 역시 통합되어 있으며, 빛의 속도로 작동되는 인공지능이 보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금 전 존 매케인 대통령이 예로 들었던 일들도 충분히 가능하다.

차상위 계층과 같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찾아내는 건 인공지능 골드에 몇 가지 명령을 내리면 바로 대상자들이 선별되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런데 법률적인 문제와 시민들의 인식에 대한 문제가 있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국가다.

신기술에 대한 국민적인 이해도가 매우 빠른 국가였고, 가장 빠르게 보급되는 국가이기도 했다. 컴퓨터만 해도 보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90년대 초반으로 국민 PC 사업을 하면서부터였다.

국민 PC 사업은 10년도 가지 못하고 끝났다.

실익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PC가 가정마다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경우에는 따로 보급 사업을 벌일 필요도 없었다. 초등학생 아이들까지도 한 대씩 들고 다니는 게 한국의 풍경이었으니 말이다.

전자정부에 대한 호응도 빨랐다.

전자정부 시스템이 개인 정보를 통합해 처리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반면 미국은?

자유와 개인의 권리가 최상위에 있는 나라였다.

정부의 권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보통의 미국인이었다. 그러니 민감한 개인 정보를 전자정부 시스템이 통합해 관리한다고 하면 기겁할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유재원이 사용자 정보를 서버에서 통합 관리하는 게 아니라 안드로이드 PC나 스마트폰의 개인 정보 보호 영역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동의를 받아서 제공받는 형식으로 설계한 이유도 이러한 철학이 바탕에 있었다.

“당연히 관련 법은 제정될 예정일세. 다만 강제는 아니야. 전자정부에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건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니까. 본인의 사회 경제적 정보를 제공하면, 그에 맞춘 지원을 해 주겠다는 것이니 말이지.”

존 매케인 대통령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걸린 일이라면 청개구리 같은 미국 국민들도 기꺼이 정보 제공에 동의를 표시하겠지. 대신 기본 사항인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미국의 모델은 부족한 점이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2, 3년 내에 인적 정보와 디지털 국토 데이터가 융합해서 디지털화된 국가 모델이 사이버상에 구현될 예정이다. 현실을 100% 반영한 형태로 말이다.

전자정부 사업을 처음 추진했던 때 여기까지 계획한 건 아니었다. ID 그룹의 지속적인 지원 속에서 전자정부의 효용을 체감하면서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구현된 가상의 국가 모델을 통해 다양한 사회 정책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도 있고, 재난과 재해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땜질식 처방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선제적인 대응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한국에 비해 미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은 반쪽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전자정부가 온전히 구현된 나라는 소수였고, 그마저도 국가의 규모가 작은 북유럽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쪽짜리인 전자정부라도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이자 인구 3억의 대국인 미국에서 구현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지금도 슈퍼파워를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인공지능 골드 기반의 전자정부가 도입된다면 미국의 국력은 한 차원 더 높이 올라갈 테니까.

“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ID 그룹의 전자정부 제안서를 받아 보고 싶네만.”

“아, 마침 혹시나 해서 가져와 봤는데,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전자정부를 예측해 낸 비서실에 보너스를 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준비된 서류 뭉치를 꺼내 보였다.

미국의 전자정부 사업을 위한 제안서였다. 종이뿐만이 아니라 USB 메모리도 있다. 종이 서류로 만들어진 제안서보다 훨씬 자세한 정보가 담겨 있는 USB 메모리였다. 그 모습에 존 매케인 대통령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추가적인 제안도 하나 있습니다.”

모름지기 거래라는 건 주고받는 것 아니겠는가.

백악관에서 이뤄지는 거래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백악관이기에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것들이 거래되기도 한다.

이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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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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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네요!

주말 건강히 보내시고, 월요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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