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회
New 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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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Radio
같은 시각.
-재원아! 무슨 일이야?
-클라우드 시스템의 여유 자원이 10% 이하……. 아니 8%, 어어! 5%라고!
영식이로부터 다급한 메시지가 유재원에게 전송되었다. 메시지를 작성하는 와중에도 가용 자원 수치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모양인지 10에서 5까지 빠르게 바뀌었다.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운영을 책임지는 영식이를 식겁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신경망 업그레이드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거야.”
영식이에겐 참 다행스럽게도 유재원은 클라우드 시스템의 여유 자원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유재원도 왜 여유 자원이 빠르게 바닥나고 있는지 몰랐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면, 이 작업은 언제 끝나는 건데?
-가용 리소스를 적어도 3% 이상은 남겨 둬야 할 거 같은데? 지금은 미국이 새벽이라 다행이거든. 그런데 아침이 되면 이용률이 크게 올라가는 거 알지?
아침이 되면 알람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스마트폰 이용률이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인공지능 골드를 쓰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업무가 시작되면 그 수치는 더욱 폭증한다. ID 오피스를 통한 사무 작업부터, 공장이나 각종 가게에서 서비스직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인공지능 골드의 어시스트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영식이가 말하는 3%의 리소스 확보는 인구에 비례해 보면 생각보다 적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아침이면 아시아는 밤이었기에, 아시아 지역의 로드율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확보되는 추가 자원이 있었다. 그렇기에 3%의 리소스 확보는 네트워크 최고 책임자에 걸맞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나온 답이었다.
실제로 영식이가 한국서 군 복무를 했던 때 쏟아져 나왔던 경고 메시지와 지금 원래 자리로 복귀한 후 나오는 메시지의 숫자는 차원을 달리했다.
ID 클라우드 시스템과 같은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면 매일매일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는 날이 없다. 또한, 사소한 변수 설정 하나를 잘못 기입하면 시스템 장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 차이가 영식이의 군 복무 시절을 돌아보면 잘 나타난다. 영식이가 군대에 가 있던 동안엔 하루 평균 3건 이상의 치명적 에러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월 단위에서 1건이 나올까 말까 했다.
2013년 1월은 아무런 경고 없이 넘어가나 싶었는데, 오늘 그 한 건이 터졌다. 그런데 위험도는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아무래도 서비스 장애 공지를 띄워야 할 거 같다.”
-장애 공지라고?
“응, 인공지능 골드의 어시스트가 원활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아니, 왜? 오늘 자로 에픽 CPU를 200만 개나 추가했잖아. 그것도 64코어짜리로.
“그랬지.”
12만5천 개를 추가했을 때, 가용 리소스는 50%나 확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지능 지수도 16점이나 폭등했다.
그때가 12만5천 개였는데, 지금은 200만 개다. 가용 리소스는 최소 70% 이상이 찍혀 있어야 정상이다. 게다가 지능도 30점은 더 올라야 한다.
지능 수치는 단순한 누적치가 아니라 로그 함수의 형태로 수렴된다. 그렇기에 100점 이상을 넘은 다음 10점을 더 올리기 위해서는 이제껏 투입된 자원보다 배는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 골드는 유재원이 지능 지수 테스트를 하기도 전에, 스스로 움직이면서 신경망을 확장했다.
신경망 확장 작업 때문에 가용 리소스가 3%로 급락해 버린 것이다.
물론 마스터 권한이 있는 유재원이었기에 얼마든지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유재원은 이번만큼은 골드에게 자율권을 주고 싶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럼 다행이고.
“20시간 정도?”
-망했네. 20시간이라니.
영식이가 클라우드 시스템을 담당하고서 서비스 장애가 없던 건 아니었다. 운영을 잘한다고 해도, 케이블 단선과 같은 물리적인 사고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0시간을 넘어 20시간이나 되는 서비스 장애는 처음이었다.
“장애가 아니라 업그레이드 과정이야. 작업이 끝나면 확 달라질 골드의 성능에 다들 만족해할 거야.”
-아! 그런 거였어?
업그레이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업그레이드로 인한 서비스 장애라도 우리 문제이니 약속한 보상을 해 주겠다고 공지해. 음, 약관을 보면 개인은 30NP고, 기업은 계약 사항에 따라 다르네. 이건 비서실을 통해 전달해 줄게”
30NP라면 한국 돈으로 3천 원 정도였다.
개개인에겐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아메리카 지역 이용자가 5억 명은 되었으니, 1조5천억 원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기업은 계약서의 특약에 따라 추가 보상이 따로 있었다.
영식이가 서비스 장애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유재원에게 있어서 이 정도 액수는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액수였다. 그렇다고 껌값은 아니지만, 큰 부담이 없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ID 그룹 차원에서 드는 보험이 있다. 이번처럼 돌발적인 사고가 터졌을 때,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이었다.
보험료를 받으면 수천억대로 지출을 축소할 수 있다.
-알겠어. 그나저나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연락 좀 해 줘. 그나마 센터에서 가까운 데 있어서 바로 달려갈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난리가 났을 거야.
“그래. 네 연애 사업에 지장 가지 않도록 신경 써 줄게.”
ID 클라우드 시스템을 책임지는 영식이었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영식이는 제 짝을 만나서 한창 알콩달콩하고 있을 때였다.
유재원은 영식이가 보내 준 사진만 보았는데,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리고 영식이처럼 초대형 컴퓨터 시스템이나 거대 네트워크를 마구마구 주무를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셰브롱 리서치 연구소 소속 슈퍼컴퓨터 센터의 연구원인 박혜수였다.
둘 사이의 주선은 티파니가 해 주었다고 했다.
예전에 티파니에게 영식이의 소개팅을 부탁했다가 난색을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 이후로도 티파니는 포기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둘 사이가 진짜로 성사만 된다면 유재원은 영식이에게 큰 선물도 해 줄 생각이었다.
띵!
-북남미 지역 인공지능 골드 이용자 여러분께 긴급 공지합니다.
-인공지능 골드의 업그레이드 작업이 앞으로 20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입니다.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는 동안 인공지능 골드의 어시스트 기능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ID 그룹은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용자님의 개인 정보는 안전하게 보호될 것임을 약속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장애에 대한 보상으로 30N포인트를 책정했습니다. 업그레이드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비서실에서 약관에 대한 파악이 끝났는지, 전체 공지가 떴다. 기업에 대한 보상안은 따로 언급되진 않았다. 그 문제는 각 기업의 법무팀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급한 불은 다 껐다는 뜻이었고, 유재원은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모니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몇 시간 뒤.
미국은 아침을 맞이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었고 ID 그룹이 올린 공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해 보면 먼저 공지를 보았던 사람들이 저마다 올린 글들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ID 그룹이 이런 식의 공지를 올린 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서비스 장애보다는 인공지능 골드의 업그레이드 작업 후에 얼마나 바뀔지 상상해 보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았다.
그중에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시중에 풀린 라이젠과 에픽의 성능을 통해 인공지능 골드가 얼마나 바뀔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보통의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인공지능 골드에 서비스 장애가 있어 봤자 얼마나 불편하겠나 싶었다. 업그레이드로 인한 서비스 장애라면 이해해 줄 수 있다. 게다가 그에 대한 보상 30NP까지 있지 않은가.
30NP는 결코 큰 보상은 아니었지만 나름 쓸 만했다. 대형 봉지 과자 하나 혹은 타임플렉스에서 최신 영화 한 편을 빌려 본다든가, 웹툰 10편 정도를 볼 수 있는 보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인공지능 골드의 부재에 대해 처음 불편함을 느낀 건 업무가 시작된 직장인들이었다.
시작은 ID 오피스였다.
-망했다! 오탈자가 안 잡혀!
-세로 방향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검색하는 명령어가 뭐였더라?
특히 사무직 직장인들 사이에 망했다는 말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직들의 필수 프로그램은 ID 오피스였다. 해가 지날수록 발전하고 발전한 ID 오피스는 현재 인공지능 골드와 완벽히 융합된 상태였다.
이 말은 다르게 풀어 보자면, 사람이 할 일을 인공지능 골드가 반쯤은 대신 해 주고 있었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그런 골드가 서비스 장애이니 ID 오피스 사용자들의 능률이 폭락했다. 실제로 IDW 문서 작업에서 오탈자와 맞춤법 수정은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맞춤법 검사기를 일일이 돌려서 수정해야 했다. 스프레드시트나 프레젠테이션, 데이터베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평소에는 본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인공지능 골드에 의지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가, 서비스 장애가 생기자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인공지능 골드의 대안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다른 회사의 인공지능을 부랴부랴 가져다 쓰면서 인공지능 골드의 빈자리를 메우려고 했지만, 그 어떤 인공지능도 사용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같은 시각 유재원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인지하지 못했다.
인공지능 골드의 상태 확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ID톡의 본인 상태를 ‘프로그래밍 중, 방해 금지’로 설정해 두었기에 임직원으로부터 오는 보고도 없었다. 게다가 평소 프로그래밍 중이었다고 해도 골드의 보고는 예외였기에 이것저것 알려주었을 테지만, 골드의 서비스 장애는 유재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중이었다.
그 어떤 방해 없이 유재원은 인공지능 골드에 모든 심력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여기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아빠! 아침이에요!
혜성이었다.
“음, 좋은 아침이구나. 여긴 밤이지만 말이야.”
-나도 알아요! 시차라는 거예요!
언제부턴가 아침 인사를 꼬박꼬박해 오는 혜성이었다. 그것도 영상 통화로 말이다. 문제는 모닝콜이라고 해 주는 시간이 샌프란시스코 기준이었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와의 시차는 –17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침이면 한국은 늦은 밤이었으니 말이다.
혜성이가 이렇게 모닝콜을 열심히 해 주는 건 당연히 아빠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매일 자신과 잘 놀아주고, 엄한 엄마와 달리 원하는 것도 거의 다 들어주는 아빠가 유재원이었다.
그렇다고 유재원이 작년 가을부터 계속 한국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전용기도 있는 마당에 계속 한국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라이젠과 에픽의 양산이 급할 때에도 혜성이 생일은 직접 가서 축하를 해 줬고, 그 전에도 종종 미국에 다녀왔다. 물론 티파니와 혜성이, 라희가 유재원을 보러 한국에 오기도 했다.
-아빠! 근데 집에 언제 와요?
그래도 하루하루 빠르게 커 가는 혜성이에겐 함께하는 시간이 늘 부족했다.
-다섯 밤만 기다려.
유재원은 오른손을 척 펼쳐 보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일정이 이제 프로녹틱스의 임상 시험 2상 결과의 공시와 3상 실시 계획을 발표하는 것뿐이었다.
유럽 연합을 뒤집어 놓은 디젤 게이트도 현재 진행형이긴 했지만, 그건 미국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딱 하나 불안 요소라면 인공지능 골드의 진화였다. 다행히도 진행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느리지만 확실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어디 이상한 지점에서 버벅거린다거나, 아예 멈춰 버리는 프리징 현상은 전혀 없었다.
기분 좋게 혜성이와의 통화를 끝낸 유재원은 다시 집중했다.
다음 날.
-마스터, 신경망 확장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만세!”
스피커를 울리는 인공지능 골드의 메시지가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는 유재원이었다. 그러다가 유재원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유재원의 비상한 두뇌는 그 차이점을 빠르게 잡아냈다.
“어? 골드, 목소리가 달라졌네?”
인공지능 골드의 목소리는 성별 구분이 어려운 중성적 기계의 느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가장 거부감이 없는 톤을 만들어냈지만, 성능이 부족해서 살짝 마무리가 부족한 목소리, 그것이 골드의 기본 목소리였다.
덕분에 인공지능 골드의 서드 파티 업체들 중엔 TTS 전문 기업도 활성화된 상태였다. 이들 업체가 가진 건 자연스러운 목소리 합성 기술이고, 이걸 유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유재원은 처음 만들어진 목소리 그대로 유지했었다. 골드가 스스로 만든 목소리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온 골드의 목소리는 TTS 전문 기업의 최고급형 목소리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이것이 인공 진화의 결과물 중 일부일까?
가장 기본적인 목소리가 이렇게 달라졌는데, 골드의 종합적인 지능은 얼마나 향상되었을까?
유재원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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