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25화 (925/1,007)

901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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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CES에서 AMD의 최고기술이사인 짐 켈러가 발표한 제품은 모두 6가지였다.

일반 데스크톱 제품인 라이젠이 4종이었고, 서버와 클라우드 시스템을 위한 에픽 제품이 3종이었다.

라이젠의 경우 6, 8, 16코어 제품이었는데, 작동 속도가 6코어는 12Ghz였고, 8코어와 16코어 제품이 16Ghz였다.

에픽은 32코어 제품부터 시작해서 48, 64코어 제품이 있다. 작동 속도가 꽤 차이가 나는 라이젠과 달리 에픽은 일괄 14Ghz로 작동했다.

이러한 차이는 당연히도 수율 차이에서 오는 차이였다.

라이젠이나 에픽이나 모두 ZEN 코어에서 나오는 제품이었다. 젠은 딱 하나의 설계만 존재했고 수율에 따라 만들어지는 제품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8개 코어 중에 불량이 좀 나오면 라이젠 6코어 제품이 되는 것이고, 모두 정상이면 상위 제품이 되는 것이었다.

신기한 건 코어가 한두 개쯤 불량이 나온 칩은 작동 속도도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AMD의 ZEN 프로젝트팀에서 내구성과 안정성 테스트로 스윗스팟이라 찾아낸 속도가 16Ghz였는데, 코어 숫자가 적음에도 이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6코어 제품은 작동 속도도 4Ghz나 느린 12Ghz로 설정되었다. 대신 모험을 즐기는 오버클럭커를 위해서 작동 속도를 고정해 놓진 않았다. 바이오스를 만질 수 있는 고렙 유저이라면 배수와 전압을 설정해서 본인이 구매한 제품의 한계까지 밀어붙일 수 있도록 했다.

에픽의 경우에는 일괄 14Ghz가 되었는데, 이 결정은 당연히 안정성과 전력 소모율에 맞춰진 결정이었다.

에픽에도 전기를 빵빵하게 넣어주면 16Ghz나 그 이상의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전력 소모율과 발열이 크게 증가하면서 엄청난 난로로 진화한다는 걸 감지했다는 것이다.

ZEN 프로젝트팀이 찾아낸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특성 중 하나가 작동 속도와 인가 전력이 스윗스팟을 넘어가면 치솟아 오르는 온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32코어 이상이 집적되는 만큼, 발열량도 어마어마했다.

64코어를 19Ghz로 오버클럭했을 때의 온도가 160도였다.

화씨가 아닌 섭씨 기준으로 말이다.

160도의 발열은 손을 대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고, 냄비에 물을 담아 CPU에 올리면 그 물이 끓어오르고도 남을 온도였다.

이 정도 발열량이면 수냉을 하기에도 어렵다. 냉각수가 끓어 버려서 수로나 라디에이터가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이처럼 어마어마한 온도가 나와도 CPU가 엄청난 발열에 깨지거나 타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이아몬드는 내구성이 엄청나게 좋은 소재였고, 그 특성은 CPU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여튼, 적당한 절충점으로 정해진 게 14Ghz였다.

이 속도에서는 64코어짜리 초대형 CPU가 인텔의 아이비브릿지 수준의 전력 소모율을 보여 준다. 온도도 엄청나게 착해서 로드율 100%짜리 렌더링 작업이나 고도의 통계 데이터 정리 작업을 해도 40도를 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CPU를 한 공간에 밀집시켜 놓기에 안정성과 발열량이 중요한 항목이었고, 이러한 수치는 매우 환영받을 물건이었다.

반면 일반인 PC 유저와 하이엔드 게임 유저, 전문가를 위한 라이젠은 살짝 속도를 높여서 16Ghz가 되었다.

온도와 전력 소모율이 살짝 높아지긴 했지만, 최고의 게임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참고로 전력을 무제한으로 밀어 넣고, 쿨러로는 칠러라는 특수 수냉 시스템을 세팅하고 최대한 클럭을 높였을 때 달성한 속도는 20.1Ghz였다. 쿨러가 충분하다면 이 상태로 게임도 할 수 있긴 하다.

단지 수식어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전기난로 수준의 전력 소모와 발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면 여러분이 제일 궁금해할 가격을 발표하겠습니다.

짐 켈러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라이젠의 가격표가 떴다.

제일 최하급인 라이젠 6코어 제품이 200달러였고, 최상급 16코어 제품이 699달러였다. 8코어 제품은 330달러였다.

스크린에 가격표가 뜨는 순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에는 몇 초간의 침묵에 빠졌다.

우와아악!

침묵이 깨지는 순간, 그 거대한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함성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마어마한 성능 때문에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지 않을까 걱정했던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기 때문이다.

인텔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텔은 AMD와 한창 경쟁하던 때의 가격 정책과 경쟁자가 없는 지금의 가격을 비교하면 입이 떡 벌어진다.

주력 제품인 아이비브릿지 3770K의 출시가는 330달러였다. AMD가 건재했다면 200달러 중반대로 나와야 할 제품이었는데 100달러가 더 비싸진 것이었다.

이전과 여전히 같은 쿼드코어에 속도 향상은 그리 크게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가격이 확 뛰어올랐다.

반면 라이젠의 최하급인 6코어 제품만 봐도 아이비브릿지보다 2코어는 더 많았다. 심지어 성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짐 켈러는 벤치마크 수치를 발표할 때, 별다른 수식어도 없이 아이비브릿지와 라이젠의 시네벤치를 동시에 보여 줬을 뿐이다.

아이비브릿지는 10점을 조금 넘겼지만, 라이젠은 220점을 넘겨 버렸다.

30%의 향상이 이뤄지면 1세대 차이가 나는 걸로 치는 IT 업계였다. 그런데 단 한 번에 2200%라는 성능 차이가 벌어진 건 처음이었다.

인텔이 이 정도의 성능 차이를 달성했다면 가격도 몇 배 차이가 나게 매겼을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라이젠 6코어 제품의 가격은 200달러였을 뿐이다. 나라에 따라 세금이 따로 붙게 되니 약간의 차이는 생기겠지만, 200달러라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그러면 AMD는 어디에서 돈을 버는 것이냐?

당연히 에픽 제품군이었다.

짐 켈러는 에픽 제품군에 대해서는 성능만 발표했고, 가격은 그저 나중에 밝히겠다고 말을 아꼈다.

당연히 에픽 시리즈의 가격은 현실적으로 책정했다.

에픽의 최상급 모델인 64코어 제품이 1만 달러이고, 48코어 제품이 7,500달러, 32코어 제품이 5천 달러다.

라이젠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싸게 책정되었지만, 그래도 문의는 폭발적이었다.

이렇게나 비싸더라도 막강한 연산력으로 뽑아낼 수 있는 부가 가치가 월등하다는 걸 기업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CES의 기조연설을 성공적으로 마친 짐 켈러는 마지막 한마디로 메인 스테이지에 가득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라이젠은 지금부터 P마켓과 ID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구매가 가능합니다.

발표와 함께 출시는 ID 그룹의 상징 아니겠는가.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늘 그래 왔다. 라이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공급되는 수량이 많지 않은 관계로, 예약 구매를 추천드립니다.

며칠 후.

-AMD,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만들어진 CPU 공개.

-라이젠과 에픽, 파격적인 성능과 충격적 가격으로 선풍적 인기.

-인텔 주가 급락 중. 10달러 선 붕괴.

-보석의 황제 다이아몬드, IT 산업의 최첨단 소재로 변신.

짐 켈러의 CES 발표는 파괴적이었다.

AMD의 신형 CPU를 기다렸던 사람들을 열광시켰고, 그들의 뇌리에 라이젠과 에픽이라는 단어를 각인시켰다. 그와 함께 전 세계 플래그십 스토어에 긴 줄을 만들었고, P마켓에서는 AMD의 CPU 구매자들을 위한 특별 페이지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날만 손꼽아 기다린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구매력을 발휘했다.

글로벌 출시를 위해 준비한 수량은 260만 개였다.

실험실 라인으로는 그 짧은 시간에 준비하기 힘든 물량이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대전 공장의 정식 생산 라인의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규모 웨이퍼 투입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모든 라인이 다 가동되는 건 아니었고, 먼저 작업을 시작한 1번 라인에서만 가동 중이었다.

그렇지만 월간 30만 장의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는 1번 라인의 압도적 생산력은 강력했다. 12월 초부터 웨이퍼가 투입되어 칩을 뽑아냈는데, 벌써 물량이 폭발 중이었다.

덕분에 짐 켈러는 아주 자신 있게 발표 당일부터 판매를 개시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매진!

-물건이 없어요!

-누가 싹 쓸어간 거 아니냐?

-AMD, 물량 풀어라!

인터넷의 반응을 보면 그야말로 물건이 없다고 난리였다.

순식간에 재고가 바닥났다. 그것도 아주 비싼 모델부터 먼저 매진이 떴고, 6코어 제품이 제일 늦었다. 물론 매진 속도가 좀 늦었다고는 해도 시간의 차이는 겨우 서너 시간밖에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매 실패 글만 잔뜩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라이젠 16코어 전격 리뷰.

-구매 성공!

-스마트 찬스 개꿀!

-차라리 완제품 컴퓨터 사는 게 낫다.

-델이나 HP 사이트에서는 판매 중!

구매를 성공한 사람들의 자랑 글도 잔뜩 있었다.

보통 모두가 고대하던 신제품이 출시되면 물건이 없다는 소리만 나오게 된다.

애초에 준비된 재고도 없으면서 발매했다고 하는 페이퍼 런칭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나 빠르게 소진되거나 물류 시스템 어디선가 병목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어디는 물건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다른 곳에서는 재고가 쌓여 있는 모습도 보이는 게 보통이다.

특히 용산이라는 독특한 유통 구조가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후자의 경우가 심했다.

이번에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젠은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물건이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1월 초까지 만들어진, 460만 개 수량 중 100만 개는 델과 HP 같은 대형 컴퓨터 벤더로 팔렸다.

남은 360만 개 중 ID 클라우드 서버 업그레이드용으로 200만 개를 할당했고, 나머지 160만 개를 나라별로 분배했다. 나라별 분배 비율은 인공지능 골드의 정확한 예측에 따랐다. 잠재 수요을 예측했고, 수요가 큰 나라에 많은 물량을 배포했다.

골드의 대원칙에 나라별 차별은 없었다. 중국에도 10만 개 정도가 배분되었고, 아이티에도 10개가 보내졌을 정도다.

이렇게 나라별로 배분될 비율이 정해지자 곧바로 유통망을 통해 배송이 시작되었다.

P마켓 유통 시스템을 통해서였다.

글로벌 영업을 하는 P마켓은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에도 유통망이 있었다. 덕분에 단품으로 풀린 라이젠은 비정상적 유통 경로로 빠지는 수량이 지극히 적었다.

그렇기에 재고가 쌓이지도 않았고, P마켓에 재고가 등록되면 빛과 같은 속도로 사라졌다.

-유통 질서 파탄 내는 AMD 규탄!

거기에 분노하는 이들은 용산의 상가들과 같이 총판을 끼고 배짱 장사를 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나올 라이젠에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었다. 품귀 현상은 당연할 것이고, 품귀 현상이 심해질수록 그들이 뒷주머니로 챙길 부수입도 늘어난다.

그렇지만 라이젠은 중간 유통업자들의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CES에서 짐 켈러가 발표했던 가격에 나라별 세금이 붙은 가격 그대로 팔렸다. 한국의 경우 라이젠 6코어 제품의 가격은 VAT 포함 22만 원이 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요에 30만 원은 기본이고 40만 원을 불러도 팔릴 만한 물건이 22만 원에 계속 팔리는 꼴을 보고 있으니 복장이 터졌다.

그렇지만 용산에는 라이젠으로 쓰린 속을 달랠 아이템이 있었다.

-메인보드가 왜 이렇게 비싸냐?

-다이아몬드 CPU보다 메인보드가 비싼 거 리얼이냐?

인터넷 반응에서 알 수 있듯, 메인보드였다. CPU를 비롯해 컴퓨터를 구성하는 모든 장치를 연결해 주는 메인보드는 대만에서 대량 생산했고, 미국 제조사의 것이 소량 남은 상태였다.

대만에서는 라이젠 프로젝트와 함께 발을 맞춰 새로운 메인보드 생산을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나올 CPU와 램, GPU의 전원 공급 방식과 인터페이스가 확 달라졌다.

라이젠과 에픽을 위한 새로운 보드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메인보드 제조사들에게 먼저 보내진 엔지니어링 샘플을 통해 라이젠과 에픽이 대박이 날 것임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조사들은 메인보드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신기술로 무장했고, 안정성도 극대화했다.

그 결과 라이젠용 메인보드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제조사들에겐 변명거리가 있었다. 작동 속도가 크게 높아진 만큼, 데이터가 전송되는 속도도 빨라졌다는 것이다.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주고받기 위해서 고급형 부품이 아낌없이 쓰여야 했다.

여기에 용산의 업자들이 끼어들었다.

이들은 라이젠으로 풀지 못한 한을 메인보드에 풀었다.

메인보드 품귀 현상이 일어났고, 소수 나오는 물량도 시가로 거래되었다. 어제는 30만 원짜리 보드였는데, 오늘은 40만 원을 줘도 못 구하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난리였다.

오죽하면 라이젠은 구했는데, 보드가 없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대한민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 공통의 이슈였다.

메인보드도 P마켓 유통망으로 공급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정도였다.

-ID 일렉트로닉스, 라이젠과 에픽용 메인보드 생산 중.

-ID 클라우드 시스템 업그레이드용이지만, 메인보드 시장 안정될 때까지만 P마켓에서 한시적 공급할 것.

유재원도 네티즌들의 기대에 부응해 P마켓을 통한 보드 공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유재원이 부품 공급 상황을 계속 살필 여유는 없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CPU, 200만 개가 추가된 ID 클라우드 시스템에서 유재원도 처음 보는 반응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ID 클라우드 시스템상에서 가동되는 인공지능 골드에 일어나는 급진적인 변화였다.

인공지능 골드의 신경망은 100조에 달하는 매개변수를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형태로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신경망을 형성한 상태였다. 여기에 더욱 강력한 컴퓨팅 파워와 메모리 영역이 추가 되면서 신경망의 처리 속도가 폭발적으로 가속화되면서 밀도도 확 늘어났다.

그 속도는 유재원이 예측했던 것 이상이었고, 신경망의 품질도 어제와 차원을 달리 했다.

이러한 변화는 유재원이 예상했던 시일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 변화의 폭도 훨씬 격렬했다. 게다가 신경망의 확장 정도로 규정할 수 없는 규모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인공지능 골드의 지엽적인 기능적 향상이 아닌 본체 차원의 업그레이드였다. 감히 인공 진화라고 명명해도 틀리지 않을 사건이었다.

클라우드 시스템의 모니터링 프로그램에서 갑작스러운 경고 메시지를 받고 컴퓨터 앞에 앉은 유재원도 인공 진화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2013년 1월은 인공지능 골드의 1차 인공 진화가 시작된 날로 새로운 역사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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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900회 축하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여러 모로 부족한 제가 900편이라는 장편을 연재할 수 있는 건 모두 독자님의 성원 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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