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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924화 (924/1,007)
  • 900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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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원은 단번에 차이를 느꼈다.

    인공지능 골드가 새롭게 추가된 하드웨어를 인식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인식된 하드웨어의 무결성 검사가 끝나면 클라우드 시스템을 위한 운영체제를 원격으로 설치하게 된다. 클라우드 시스템이라는 게 각각 별개의 시스템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인 만큼, 각각의 시스템에 별도의 운영체제 설치가 필요하다.

    그 작업은 아주 지루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파도가 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몰아치며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작업 속도는 유재원이 들고 있는 안드로이드 패드의 모니터링 툴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직관적으로 보이는 건 랙마운트케이스에서 반짝이는 LED 불빛을 통해 비치는 모습이었다.

    녹색은 시스템 작동이 정상임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이는 하드웨어적인 트러블이 없다는 뜻이었고, 운영체제까지 설치가 되어 클라우드 시스템과 연결이 됐다고 하면 파란색으로 바뀐다.

    어두침침한 공간에 녹색의 은하수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파란색의 파문이 일어났다. 그리곤 커다란 파도가 되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파란색 빛이 처음 등장하기까지는 몇 분 정도 걸렸지만, 처음 파란색이 뜬 다음 맨 끝에 자리한 랙마운트케이스까지 파란색으로 물들기까지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음? 빠른 건가요?”

    콘솔을 조작 중인 유재원의 표정을 살피던 짐 켈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CPU는 물론이고 고성능 라우터의 네트워크 유닛, 인공지능을 위한 텐서 코어도 거뜬히 만들어내는 인물이었지만, 클라우드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요! 원래대로라면 소프트웨어 세팅에 하루는 넘게 걸렸을 텐데, 몇 분 만에 끝났네요. 짐 이사님이 강력한 CPU를 만들어주신 덕이죠.”

    -신형 에픽 6412 CPU 12만5천 개가 클라우드 시스템에 추가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 램, 36만 개가 클라우드 시스템에 추가되었습니다.

    일련의 작업이 끝나자 인공지능 골드가 작업 완료 메시지를 냈다. 온종일 힘을 쓴 것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한 메시지였다. 그저 새롭게 추가된 시스템의 물리적인 스펙만 요약해서 말해 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능은 훨씬 거대했다.

    CPU의 물리적 규모만 보자면 12만5천이고 이는 ID 클라우드 시스템에서 1%도 되지 않는 숫자였다.

    그렇지만 CPU 하나에 물리코어 64코어가 집적되었으니, 실질적인 코어 숫자는 800만 개였다. 800만 개라고 하면 레기온 0.8개 정도의 규모이니 갑자기 존재감이 확 달라진다. 게다가 1개 CPU당 성능이 기존 아이비브릿지 제온의 20배 이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술적으로 1억6천만 개의 규모죠.”

    그러니까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 지하 공간 한 층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ID 클라우드 시스템 전체 규모를 능가한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한 곳에 시스템 파워가 집중되면서 생겨날 이점도 있죠.”

    “음, 레이턴시인가요?”

    “맞아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ID 클라우드 시스템은 레기온끼리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다. 레기온 사이에 제일 거리가 먼 것은 대전 레기온과 샌프란시스코 레기온으로 그 거리가 8,980Km에 이른다.

    광케이블을 통해 데이터가 빛의 속도로 움직여도 60~80밀리세컨드의 렉이 발생한다.

    만약 찾고자 하는 데이터가 캐시 서버에 담겨 있지 않는 비활성 데이터라면 직접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야 하니 렉은 더욱 크게 일어난다.

    반면 여기는 서버실 제일 앞에 있는 시스템과 제일 뒤쪽에 자리한 시스템 사이의 거리가 100m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렉의 단위는 밀리세컨드가 아닌 나노세컨드 단위로 뚝 떨어진다. 데이터의 탐색 시간이 짧아진다는 건, 곧 성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유재원이라도 이 정도 규모의 업그레이드는 처음이었기에, 과연 골드의 성능이 얼마만큼 향상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좋은 성능 측정 툴이 있다.

    “그러면 지능 테스트를 다시 해 볼까요?”

    인공지능 지능 지수 테스트 프로그램이었다.

    작년 유재원이 미국 국회의 청문회에 소환되었을 때, 유재원은 골드는 물론이고 시중에 출시된 다양한 인공지능의 점수를 평가했던 적이 있었다. 골드가 103점이었고, 시리가 91점이었다. 3위 이하는 80점대를 형성했었다.

    유재원은 인공지능 골드가 시스템 확장을 끝내자마자 지능 테스트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연산 중이라는 창이 뜬 메인 스크린에 집중했다. 특히 ZEN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짐 켈러는 무척이나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긴장된 표정과는 별개로 지능 테스트 진행률은 느릿하면서도 확실하게 차올랐다.

    1시간.

    0에서부터 시작된 수치가 100%를 찍을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유재원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능 지수 테스트 프로그램을 여러 번 돌려 봤던 유재원인 만큼, 진행률이 차오르는 속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테스트의 결과가 매우 좋게 나올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인공지능 골드가 103점을 찍었을 때, 테스트 완료까지 걸린 시간 시간은 50분도 넘었다.

    오히려 103점을 냈을 땐 10분이나 일찍 끝났으니, 점수가 더 낮게 나오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 지능 지수 테스트 프로그램은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직접 치르는 IQ 테스트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테스트에 주어지는 시간도 1시간으로 똑같고, 인간의 지적 능력에 포함된 다양한 능력을 종합적으로 검사하기 위해 다양한 문제가 주어졌다.

    그렇게 사람이 긴 시간 생각을 하면서 풀어야 하는 문제와 비슷한 수준의 문제를 인공지능에게 랜덤으로 주어 풀게 하는 게 유재원이 만든 지능 지수 테스트였다. 게다가 테스트의 특징 중 하나가 오답을 내면 –1점과 함께 주어지는 시간도 10초 줄어든다.

    괜히 지능 지수 테스트에 시간 낭비 하지 말라는 유재원의 높은 뜻이었다.

    그러니 그냥 냅다 찍기만 하는 식으로 빠르게 풀었다가는 마이너스 점수가 쌓이게 되고, 테스트도 일찍 끝나게 된다.

    결국 인공지능이 엉터리일수록 테스트도 빨리 끝나게 되고, 점수도 낮게 나오는 것이었다.

    고득점을 위해서는 답을 모르는 문제라면 확실하게 모른다고 체크를 하고 넘어가는 게 제일 무난하다. 다만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걸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인공지능 지능 지수 테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점수는 119점입니다.

    “우와!”

    119!

    아주 오랜만에 유재원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점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업그레이드로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역량은 2배가 상승했다. 그렇기에 지능 지수 테스트에서 10점 정도의 상승은 기대할 수 있었다.

    지능 향상을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시스템의 규모를 2배 상승시키면 10점 정도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10점이 아니라 16점이나 올랐다.

    ZEN 코어의 사기적인 성능도 성능이지만, 짐 켈러가 말했던 그대로 작은 공간에 밀집된 덕에 시스템 간 레이턴시가 극도로 줄어들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이뤄낸 것이었다.

    +α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사기적일 줄은 유재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구식 실리콘 반도체들을 모두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인공지능 골드의 지능 수준은 얼마나 오르게 될까?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양자컴퓨터라는 하드웨어 없이도 강인공지능으로의 진화를 이뤄낼지도 모르겠다.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원래 유재원은 다이아몬드 반도체라는 건 양자컴퓨터로 전환하기 전 과도기적인 기술로만 여겼다.

    안정적인 양자 게이트를 유지할 수 있는 게 다이아몬드 반도체였다. 또한, 양자컴퓨터의 연산력을 그나마 크게 저하시키지 않고 따라갈 만한 수준의 보조 기억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기술 정도로 말이다.

    예상치도 못한 청문회에 불려가서 홧김에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만든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완성된다면 뒤로 밀려날 기술이긴 해도, 2012년에 이만한 연산력을 내준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었다.

    “짐 이사님!”

    “넵!”

    생각을 정리한 유재원이 짐 켈러를 불렀다.

    “ZEN이 많이 필요합니다!”

    “네? 얼마나 필요하신지요?”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모든 CPU를 ZEN으로 갈아치워야 하니까 1억 2천만 개 정도는 있어야겠지요.”

    “와우! 그 정도입니까?”

    ZEN이 많이 필요하다는 유재원의 말에 짐 켈러는 기쁨을 참지 못했다.

    하루 종일 유재원 곁에서 클라우드 시스템의 세팅을 도왔던 진 켈러였고, 방금 끝난 인공지능 지능 지수 테스트 프로그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다.

    다만 짐 켈러는 조금 전 메인 스크린에 뜬 119점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1억 2천만 개의 CPU가 집적된 ID 클라우드 시스템 전체를 ZEN 코어로 완전 교체하겠다는 말은 그 어떤 칭찬이나 찬사보다 짐 켈러를 감동시켰다.

    ZEN 프로젝트에 임했던 짐 켈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IT업계의 황제인 유재원을 실망시킨다면, 그 다음 일은 없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방망이 깎는 장인의 심정으로 회로도를 하나하나 그려 나갔고, 동시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과 맞지 않는 부분은 재설계를 했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완성된 ZEN 코어였기 때문일까?

    이제껏 짐 켈러가 설계한 어떤 제품보다 더 정이 갔다. 처음의 압박감은 책임감이 되었고, 책임감은 자신감이 되었다. 무엇보다 ZEN 코어와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의 시너지 효과는 짐 켈러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다. 문제는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의 효과가 너무도 좋아서 ZEN 코어의 가치를 과소평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짐 켈러가 주로 접속하는 전문가 커뮤니티를 보면 인텔의 아이비브릿지를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만들면 ZEN보다 나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상당했으니 말이다..

    그런 ZEN 코어를 유재원이 직접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시스템인 ID 클라우드에 전격 채용하겠다고 했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체가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수율 향상이 더욱 필요하겠군요.”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규모를 따져 본 짐 켈러가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내년 봄이면 대전 공장 라인들의 전환이 끝나고, 칩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 물량은 월 수천만 개 수준. 여기에 TSMC도 내년 늦게나마 생산에 동참하게 되면 지금의 수율로도 공급 부족 문제는 크게 해결된다.

    그렇지만 수율이 향상된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리질 것이다.

    “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유재원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현재 기준으로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건 유재원이지만, 수율 향상을 위한 일에는 짐 켈러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재원의 전문 영역은 인공지능과 프로그래밍이었지, 반도체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으니 말이다.

    짐 켈러는 망설임 없이 유재원의 손을 꽉 잡았다.

    “아! 그래도 CES 기조연설은 빠지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짐 켈러도 확실하게 답했다.

    2013년 1월.

    세계는 각자의 방식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특히 미국은 역대 가장 화려한 새해맞이 축제를 벌였다.

    타임스퀘어 광장에 응집한 사람만 100만이 넘었을 정도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새해 희망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재 미국의 모든 경제 지표는 최상급을 그리고 있었다. 경제학자들 모두 전후 최대의 호황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화려하게 꾸며진 타임스퀘어 광장의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다. 이름만 들어도 바로 노래가 떠오를 만큼 유명한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이매진 드래곤스부터 머라이어 캐리, 제이 지 등등. 그리고 거기에 싸이도 있었다.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가 아니어도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로 세계적 스타가 되었을 싸이였다.

    그런 싸이가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 시즌3의 우승자가 되면서 인기는 다시금 대폭발했다. 오죽하면 타임스퀘어 무대에서도 최고의 프라임 타임인 10시 30분에 등장했고, 노래도 2곡이나 불렀다.

    강남스타일과 챔피언이었다.

    유재원이 혹시나 우려했던 그대로 챔피언이란 곡에서 싸이의 발음 때문에 N워드 논란이 약간 일어났다.

    다행히 오해는 곧 풀렸다.

    인공지능 골드에 이와 관련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고 골드는 깔끔한 설명을 해주었다.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믿었다. 기자나 전문가들의 말은 안 믿어도 인공지능 골드의 말이라면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골드의 설명은 쉽고 명확했다. 골드는 심지어 예도 들어주었다. 박규석이라는 한국의 평범한 이름과 영어 프린시팔이었다. 박규석이나 프린시팔을 까딱하고 잘못 들으면 완벽히 욕으로 들린다.

    다른 나라의 말이 엉뚱한 뜻으로 들리는 몬더그린 현상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의문이 해소되자 싸이에게 몰린 의혹의 시선들은 유명세로 전환되었다.

    한국에서는 싸이의 모습을 연일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행보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분야가 많이 다르긴 해도 유재원이란 규격 외의 존재가 먼저 등장한 탓에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규격 외 등급인 유재원이 이끄는 ID 그룹은 이번에도 새해 벽두부터 한 건 크게 올리는 중이었다.

    1월 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 전자제품 박람회인 CES에서, AMD의 이름으로 당당히 대중 앞에 선 짐 켈러를 통해서 말이다.

    -이것이 세계 최초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만들어진 x86 호환 CPU 라이젠입니다.

    수많은 대중 앞에 섰던 기억이 너무나 적었던 짐 켈러는 그야말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에 어색한 모습이었다.

    -그럼, 준비된 벤치마크 자료를 보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에 모인 이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유재원이 말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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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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