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8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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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가는 유재원과 호위 차량의 규모는 참 화려했다.
유재원은 비스트라는 별칭이 따로 붙은 커스텀 오더 3세대 불칸에 올랐다. 6인승 대형 SUV 모델인 불칸인데 4인승으로 만들어졌고, 줄어든 2인 공간만큼 방탄 기능으로 올인했다. 예전에 CEO 에디션이라고 볼트 사장에게서 선물 받은 건 제2열 좌석에 비행기 일등석 수준의 의자를 넣었다면, 이번엔 방탄 기능에 더 중점을 두었기에 고급형 의자가 들어갔다.
승차감의 차이가 크게 났지만, 안전 우선이니 유재원은 싫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 비스트 불칸을 호위하는 경호 차량만 8대였다.
경호팀의 위험 경보 수준은 여전히 적색이었기 때문이다. CIA나 국정원은 클라크 록펠러가 운영했던 테러 조직이 일망타진되었다고 했지만, ID 그룹 경호팀은 방심하지 않았다. 테러 조직을 다루는 영화에서 나오는 클리셰 중 하나가 테러범을 일소했다고 방심하다가 크게 한 방 먹는 거 아니겠는가.
경호팀장 그렉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터지고서 후회하느니, 당분간은 몸이 힘든 걸 선택했다.
유재원은 그렉 팀장의 결정에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았다. 경호에 있어 전문가는 그렉이었고, 그렉에게 경호에 대한 전권을 준 건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재원은 그냥 차에 타서 앉아만 있으면 끝이었다.
보통은 i웍스 노트북으로 업무나 프로그래밍을 하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시골은 변한 게 없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시시각각 스카이라인이 바뀌는 서울과 다르게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시골의 모습은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지금도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큰데,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졌다. 유재원이 돌아온 지금도 이 차이는 여전히 줄어들진 않았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전과 다르게 세종시는 성공했고, 스마트 시티의 성공 모델이 되었다.
세종시의 중심 상권 부근의 집값은 서울 강남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겨우 집값이 희망이냐 싶겠지만, 회귀 전의 지방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서울 집값을 넘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집값은 곧 사람들의 욕망이었다.
집값이 높은 곳은 살고 싶다고 선망하는 지역이고, 실제 수요도 몰린다. 서울이 아닌 세종시를 선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의미이고, 여기서 스마트 시티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그러니 제2 스마트 시티에 대한 성공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유재원도 아예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 스마트 시티를 지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어도 10년 내에는 한국과 미국에 자체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혼자서 도시를 만들겠다니 너무나 오만한 소리 아니냐는 말도 나오겠지만, 지금 유재원에겐 그보다 더 불가능한 일도 가능했다.
띵!
-회장님, 긴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던 유재원에게 메시지가 왔다.
ZEN 프로젝트팀의 짐 켈러였다.
“뭔가요?”
짐 켈러로부터 오는 소식이란 모두 유재원의 눈을 번뜩 뜨이게 하는 것들뿐이기에 바로 확인했다.
이번에도 기대에 부흥했다.
-A3 스테핑의 수율이 크게 올랐습니다!
메시지에는 최신 A3 스테핑의 데이터 시트 문서도 첨부되어 있었다.
유재원은 즉각 문서를 열었다. 그러자 깔끔하게 정리된 차트가 나왔다. A3 스테핑이란 성능과는 별개로 수율 향상을 위한 몇 가지 개선점을 적용한 버전이었다.
리스크 생산에서는 5~10% 내외였던 수율이 A3 스테핑에서는 20%로 크게 향상되었다.
겨우 20%로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사업부의 수원 공장은 DDR4 램을 생산 중인데, 이곳의 수율은 95~99%의 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기술의 성숙도가 극한까지 오른 실리콘 반도체였고, 지금 짐 켈러가 말하는 건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찍고 있는 ZEN 코어였다.
20%의 수율도 대단한 것이었다.
일단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찍는 웨이퍼는 가로세로 300mm나 되는 정사각형이었다. ZEN 코어 생산 수율이 100%를 달성하게 되면 320개의 코어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20%의 수율이면 64개다.
웨이퍼 한 장에서 20개만 나와도 감지덕지였으니 엄청난 향상이었다.
“이야, 진짜 천재는 따로 있네요.”
유재원은 감탄했다.
본인이야 회귀자로서 얻은 미래 지식으로 여기까지에 왔던 것이었다. 그나마 프로그래밍이라면 해 볼 만한데, 반도체와 같은 다른 전공은 그냥 죽기 살기로 외웠다. 이것도 기억의 궁전이라는 절대 암기술이 있어 가능했지, 아니면 힘들었을 거다.
반면 짐 켈러는 완전한 무의 상태에서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의 특성을 이해했다. 덕분에 불량이 나오는 지점의 설계를 수정했고, 그게 실제로 수율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이 완성된 건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공정을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설계로 바꾼 건 대단한 업적이었다.
-제가요? 천재요?
“그래요!”
반면 유재원의 속사정을 모르는 짐 켈러는 오히려 당황했다.
“TSMC에 전달할 레퍼런스를 만들 때, 이사님 이름을 제일 앞에 넣으세요!”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회장님 작품이라는 걸 다 아는데 제가 어찌…….
“차세대 CPU 설계와 수율 향상은 또 다른 분야죠.”
파운더리 사업에서 수율은 신이다!
퓨처 액세스 모델을 만든다고 3달 내내 쉬지 않고 실험실 라인을 돌려서 얻은 수량이 겨우 500만 개였다. 그것도 ZEN 코어보다 훨씬 작은 DM12 칩이었는데도 그 정도 수량이었다.
수율이 20%로 향상된 지금은 DM12보다 훨씬 큰 ZEN 코어를 한 달만 돌려도 600만 개가 나온다.
실험실 생산 라인의 월간 웨이퍼 처리 능력은 10만 장이었으니 말이다. 정규 생산 라인은 월간 20만 장을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생산 라인이 대전 공장에는 4개나 있다. 그걸 계속 돌린다면 대전 공장에서만 월간 4,800만 개의 칩을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대전 공장에서는 ZEN 코어뿐만이 아니라 ATI의 GPU와 램도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찍어내야 하니 실제로는 월간 1,600만 개 정도가 나올 것이다.
문제는 이 정도 생산량으로는 전 세계가 원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ID 클라우드 서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TSMC에서도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최대한 빨리 생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도 TSMC에서도 공정 전환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모리스 회장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공정 전환을 완벽히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해 놓은 상태였다. MOU가 체결되었을 때는, 위약금을 기꺼이 감수하고 생산 라인을 멈췄을 정도였다. 그러니 미국에서 갑자기 수출 금지가 떨어졌을 때 대만이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나마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은 기존 반도체 공정에서 전환하기가 매우 간단했다. ID 그룹이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면 내년 늦봄쯤부터는 TSMC도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ZEN 발표회는 짐 켈러 이사님이 수고해 주세요.”
-진심이신가요?
유재원의 지시에 깜짝 놀라는 짐 켈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짐 켈러는 이제껏 매스컴의 전면에 나선 적이 없었다.
“그래요. 리사 박사님도 ZEN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짐 켈러 이사님이라고 하셨거든요. 저도 완전 동의하고요.”
과거의 AMD였다면 리사 박사가 총괄책임자였기에 발표도 그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유재원이 반도체 공정을 혼자 끝내 버렸기에 리사 박사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리사 박사의 공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칩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조율하는 건 리사 박사의 몫이었다.
-설계라면 모르겠는데, 발표까지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짐 켈러가 말을 흐렸다.
대중의 전면에 나서서 뭔가 발표를 한 경험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그냥 ZEN 프로세서를 들어 보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반응이 나올 거예요. 그렇게 열광하게 만든 다음 벤치마크를 시연해 보이면 끝장나는 거죠.”
유재원은 끝까지 권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짐 켈러를 앞으로도 쭉 AMD에 잡아두기 위해서였다.
그간 짐 켈러는 방랑벽이 있는 사람처럼 프로젝트가 끝나면 회사를 옮겨 다녔다.
DEC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다음이 AMD였다. AMD에서 딱 1년을 근무하면서 AMD의 황금기를 이끈 애슬론과 하이퍼트랜스포트를 설계했고, 그다음엔 Si바이트라는 회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PA 반도체로 이직했고, 다시 애플로 가서 ARM 기반 AP인 a시리즈의 성능을 극대화했다.
마치 프리랜서 해결사 같았다.
DEC에서 16년을 근무한 것 말고는 아무리 길어도 4년을 한자리에 있지 않았다. 뭔가 굵직한 성과를 내면 무조건 퇴사였다.
아주 나중에 자서전이 나오면서 밝혀진 사실은 짐 켈러는 유명세를 바랐다는 것이었다. 애플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가 되는 것이 짐 켈러의 꿈이었다. 하지만 짐 켈러가 가진 능력은 스티브 잡스와는 궤를 많이 달리하는 것이었고,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움직임이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이라 판단하여, 그렇게 움직였다.
유재원은 그런 짐 켈러를 AMD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불도저로 망해 버렸던 AMD를 ZEN 프로젝트로 부활시킨 공이 있으니, 억지로 꾸미는 일도 아니었다.
64코어짜리 ZEN 프로세서라며 PC 마니아는 물론이고 컴퓨터 업계까지 싹 다 뒤집어질 테니 말이다.
그러면 리사 수 박사는?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부문 총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줄 예정이다. ID 그룹의 4번째 부회장이고, 개발은 물론이고 반도체 사업 전체를 다루는 것이 리사 수 박사의 능력을 100% 활용하는 것 아니겠는가.
-해 보겠습니다!
짐 켈러도 유재원의 제안을 심사숙고 끝에 수락했다.
이리저리 해결사처럼 회사를 바꿔 가던 짐 켈러의 인생 궤도가 크게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늦은 오후.
유재원은 서울에 올라와 하루 쉰 다음 여의도 드림 스타디움으로 일찍 이동했다.
디젤 게이트라는 최대 현안이 있었지만, 이게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사안이 아니었던 관계로 시간은 넉넉히 낼 수 있었다.
아직 여의도에 도착하기도 전이었는데 서울 대로변의 가로등이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로고인 별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출연진의 면면도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었기에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딱 하나 안타까운 요소는 좋지 못한 날씨였다.
아침부터 잔뜩 흐려 있었고, 밤에는 적잖은 비가 올 거라는 예보도 있었다. 하지만 공연의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 중이었다. 지붕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개폐형 돔 스타일의 스타디움이었기에 지붕을 닫으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흐린 날씨 때문에 레이저 외부 조명의 가시성이 훨씬 좋아졌다. 쇼가 진행되기까지 3시간도 더 남았음에도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서 진입로부터 북적였다. 1시간 후부터 입장이 시작되면 이보다 훨씬 더 밀릴 것이다.
방송이 메인인 만큼 최대한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스타디움의 수용 인원의 절반인 4만 석만 개봉하고, 나머지 반은 화려한 무대로 꾸몄는데, 한 달 전 예약을 받자마자 매진이었으니 말이다.
인종도 각가지였다.
서울에서 열리는 만큼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각양각색의 외국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인기가 한눈에 보였다.
“다행히 밀리지는 않네요.”
“예, 지하철 배차도 2배로 늘었고, 여의도 다리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 국제공항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고속페리선도 임시 운행 중입니다.”
김대석의 상세한 설명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수동 사거리에서 여의도 하류 지점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서울시와 ID 그룹의 합작으로 지어졌다. 교통난 해결책이었다. 덤으로 고속페리선까지 임시로 띄우면서 교통난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썼다.
그렇다고 평일처럼 완만한 통행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일부 언론이 경고한 교통 대란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저번 달 드림 콘서트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좌석을 개봉했는데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드림 스타디움의 개장 행사는 드림 콘서트였다.
드림 콘서트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유재원도 참석하기로 했던 행사였다.
이름 그대로 국내의 3대 기획사들의 연예인들이 총출동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은 물론이고 JYP와 YG의 아이돌도 초청되었고, 중소기업의 아이돌도 무대에 올랐다.
다음 날에는 클래식과 오페라 공연도 있었고, 연극도 올라갔다.
드림 엔터테인먼트만으로도 무대를 풍성하게 꾸릴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최대의 실내 공연장인 만큼 니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장르에도 차별화를 두지 않았다.
관계자용 출입로를 통해 중간에 멈추지 않고 바로 드림 스타디움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한 유재원 일행이다. 그리곤 대기하고 있던 관계자용 엘리베이터에 타서 대기실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갈수록 쿵쿵 울리는 신나는 비트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드림 스타디움은 운동 경기가 아닌 공연이 주요 목적이었기에, 사운드 시스템에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고, 그 효과가 엘리베이터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유재원은 멀리서 전해지는 비트만으로 음악의 정체를 단숨에 파악했다.
공개되자마자 2012년 유튜브 최고의 인기 동영상에 오른 그 노래, 강남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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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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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네요!
건강히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