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16화 (916/1,007)

892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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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은 10여 초간 말없이 메인 스크린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으로 시티OS 운영실은 순식간에 적막만 감돌았다. 마치 천재의 사색을 방해하면 큰일 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제가 보기에…….”

침묵을 깨고 유재원이 말을 시작하니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대체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는 느낌도 있었다.

“대기질 데이터 자체는 문제없습니다. 센서의 상태도 모두 정상이고요.”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일부는 살짝 표정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센서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유재원의 모습에 팔은 안으로 굽는구나 싶은 표정이다.

일부가 실망하는 표정이 되어도 유재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면 원인은 단순하죠. 오염 물질을 내뿜는 요소가 시내에 있다는 것. 저는 그것을 휘발유나 경유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로 보고 있습니다.”

간단하고 확실한 논리다.

그렇기에 이재관 세종시 시장이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종시에서 배기관이 있는 자동차를 몰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기준은 매우 꼼꼼합니다. 지금 세종시에서 움직이는 차들은 기준을 다 통과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배기가스의 조작질을 대놓고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작자들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차량 점검 때 배기가스의 오염 물질 함량을 검사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때만 오염 물질을 걸러주는 필터를 가동하는 방식으로 검사를 우회했다.

그러면 검사할 때는 배기가스의 오염 물질 함량이 유로6를 충족하지만, 도로에 나오게 되면 다시금 오염 물질을 뿜어낸다.

차량 점검 때에 맞춰 필터를 끄고 켜는 장치를 만드는 수고라면 차라리 평상시에도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필터를 켜면 문제가 생긴다.

일단 엔진의 출력이 떨어지고, 연비가 급락하고, 배기 장치의 수명도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단축된다.

자동차를 팔 때 약속한 엔진 출력이나 연비가 있는데 필터를 상시 켜게 되면 어떤 수를 써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만큼 유로6 기준이 빡빡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니 전기차 100%로 설계한 스마트 시티 세종에서도 유로6 차량은 운행 허가를 내준 거 아니겠는가.

“그런가요? 하지만 제 확신은 휘발유와 디젤 엔진 차량이 문제입니다. 시티OS의 정밀한 환경 모니터링 기술이 이를 감지한 것이지, 센서의 오류는 절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샘플을 뽑아서 정밀한 차량 점검을 해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바로 이해했습니다.”

유재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차량 정밀 점검을 해 보자고 했으면, 이렇게 즉각적인 호응은 없었을 것이다.

“저기, 시장님. 그것은…….”

이미 통과를 한 차량의 정밀 점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을 키우는 짓이었으니 말이다. 만에 하나 문제라도 나오면 자기 책임일 수도 있는데, 수동적인 공무원들에겐 선뜻 결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 됐네. 최대한 빨리 정밀 점검을 준비하지. 우리 시청 직원 중에 휘발유 차나 디젤 차 타고 다니는 사람 있나?”

대신 이재관 시장은 정치인이었기에 좀 달랐다.

정치적 계산이 빠른 그는 유재원이 이례적으로 나온 지금 상황에서 힘을 보태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 있긴 있습니다.”

“그럼 그 직원들 연락처 좀 주게. 내가 바로 협조를 구하도록 하지. 차량이 준비되면 바로 검사소로 보내서 정밀 검사를 하게.”

“협조에 감사합니다, 시장님.”

“아닙니다. 이런 게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본인이 유재원에게 협조적이었다는 걸 적극 어필하는 이재관이었다.

잠시 후.

차량은 금방 수배가 되었다.

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시장이 직접 전화해서 대뜸 협조를 요청하면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금세 8대의 휘발유와 디젤 차량이 모였다.

그중에서 6대는 국산 차량이었고, 2대가 외제차였다. 하나는 아우디 a4였고, 다른 하나는 폭스바겐 골프였다.

공무원이 외제차 타는 걸 색안경을 끼고 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라이트닝 볼트와 미래 자동차가 미국에 어마어마한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는 지금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도 열심히 만들지만, 그것만으로는 물량이 부족해서, 한국서 만들어진 물량도 엄청나게 수출 중이었으니 말이다.

자동차 분야만 놓고 보면 한국은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흑자를 올리는 중이었다.

덕분에 미국에서도 본인들의 자동차를 사라는 압력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었고, 한국 정부는 경찰차나 소방차를 미국 자동차로 구매하기도 했다.

“그럼 측정을 시작합니다.”

자동차 8대는 바로 배기가스 정밀 측정이 가능한 점검소에 동시에 입고되었고, 엔진이 켜지면서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커다란 롤러 같은 게 장착되어 있어서 동체는 고정한 채로 엔진의 RPM을 올리고 바퀴를 돌릴 수 있다. 그러면서 머플러에 오염 물질 감지 센서가 장착되어 있는 상태였다.

오염 물질이 감지가 되면 실시간으로 즉각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측정 데이터는 바로 모니터에 떴다.

미세먼지, 질소 산화물, 황 등등.

중요하게 다뤄지는 매연 물질의 수치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최종 결과가 나왔다.

-PASS.

모든 오염 요소에서 기준치 이하의 수치가 나오면서 최종결과 패스를 찍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유재원을 향해 쏟아졌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도 있었고, 해명을 해 보라는 눈빛도 있었다.

반면 유재원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본인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필터 조작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는데, 엔진과 바퀴만 도는 상황을 감지해서 필터를 가동시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출시된 자동차들은 그런 동작 감지 센서를 모두 장착하고 있으니, 자동차 점검 상황을 판별하는 건 아주 쉬웠을 것이다.

“역시, 단순 점검만으로는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네요.”

“아직도 기름으로 가는 자동차가 문제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사실 저는 센서 오류라기보다는 밖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가 원인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만.”

유재원에게 퇴로를 만들어 주고자 외부의 미세먼지를 언급하는 이재관 시장이다. 하지만 유재원은 단호했다.

“제 추측이 맞는다면, 배기가스 포집 장치를 장착하고 평소처럼 시내 주행을 해 보는 게 가장 확실할 겁니다.”

“배기가스 포집 장치요? 음, 소장님. 여기에 포집 장치가 있습니까?”

유재원의 말에 이재관 시장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차량 점검소 소장에게 포집 장치의 유무를 물었다.

“두 세트가 있긴 합니다만.”

“좋습니다. 장착해서 배기가스를 포집하고 분석해 보죠.”

사실 이재관 시장은 이쯤 되면 그만하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재원의 편을 들어서 확실히 눈도장을 받겠다는 쪽으로 판단이 섰다. 설사 배기가스 포집기로도 아무런 데이터가 나오지 않더라도 시티OS나 유재원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는 쪽으로 빠져나갈 시나리오도 떠올렸다.

시장이 결정하자 곧장 배기가스 포집기를 장착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선택된 차량은 아우디와 폭스바겐이었다. 두 차량의 트렁크를 열고 커다란 포집 장치를 설치하고, 머플러와 포집 장치를 연결하는 등의 부산스러운 작업이 이어졌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회장님, 이제 청와대로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시계를 보던 김대석 비서실장이 다음 스케줄을 상기시켜 줄 때까지도 작업은 끝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포집기가 작동되는 건 못 보고 가야겠네요. 대통령님과의 접견이 약속되어 있거든요.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럼요! 대통령님과의 면담이 최우선이지요. 여기는 제가 맡고 있을 테니, 걱정 마시고 이동하십시오.”

“여기에 제 수행원을 좀 두고 갈 테니, 일손이 필요하면 무엇이든 부탁하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 없다고 마다하는 이재관 시장이었지만, 유재원은 기어코 둘을 남겼다. 명분은 일을 벌인 건 자신이니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행원에게 유재원이 남긴 임무는 포집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포집 작업 중에 잘못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실제 주행 중에는 필터가 작동하지 않을 거고, 그러면 배기가스에서 기준치의 4,400%가 넘는 오염 물질이 검출되어야 한다.

몇 시간 후.

유재원은 저녁이 다 되었음에도 세종시 청와대에 있는 중이다.

정 대통령과의 면담이 잘 끝났지만, 저녁 식사도 하고 가시라는 권유 덕에 남아 있게 된 것이었다.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논의된 건 역시 4차 산업혁명이었다.

특히 미국의 사례가 많이 이야기되었다.

수많은 전설을 낳았던 정보 고속도로의 후속 사업인 5G 중계기 보급 사업에 대해서는 너무나 부러워했다.

광케이블을 전국에 까는 것은 땅도 작고 도시 밀집형 인구지도를 가진 한국이 최고였다. 덕분에 유선 인터넷의 품질은 지금도 세계 최고다.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500Mbps를 상회했고, 도시에 공급되는 초고속 광통신은 1Gbps가 기본이었다. 또한 5Gbps나 10Gbps의 서비스가 이뤄지는 지역도 제법 되었다.

무선 통신도 최상위권이었다.

국내 최대 통신사인 TG 모바일과 유재원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정도다. 또한 모바일 인터넷의 적극적 보급을 위해서 기본 제공 데이터와 추가 사용 데이터의 가격을 염가 수준에 맞추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모바일 환경 역시 한국은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덕분에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 빠르게 자라났고, 다양한 모바일 서비스도 일찍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나라이기도 했다.

PC용 MMORPG 게임의 시작은 한국이지만, 이제는 그 어떤 개발사들도 신규 MMORPG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모든 역량이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데 투입되고 있었고, 그만큼 성공작도 많았다.

대신 하드웨어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느려졌다.

미국은 5G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은 4G LTE가 최선이었다. 5G는 그저 내후년쯤에 설치를 한다는 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4G 서비스가 되는 영역을 모두 5G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드는 예산은 최소 10조 원 이상으로 점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계기 설치에 필요한 부지 확보 비용은 빼고 오로지 중계기 교체 비용만 따졌을 때 그만큼 들었다. 중계기 하나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면서 훨씬 많은 수의 중계기가 필요하고, 대량의 데이터 전송이 필요한 만큼 중계기의 가격도 비싸진 탓이다. 그나마 유재원이 뒷배로 있는 TG 모바일은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일성통신이나 KTF는 페이퍼 플랜 상태다.

유재원도 당장 5G가 필요한 건 아니었기에, 정 대통령을 재촉하진 않았다.

대신 유재원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빠른 보급에 집중했다.

한국은 이미 산업 재해 책임법이 시행 중이지만, 아틀라스 로봇의 주문 숫자는 미국에 비해 크게 모자랐다. 일반 가정에서의 주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로봇 구매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는 없었다. 그건 쇼미더머니라는 치트 키를 부릴 수 있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제시한 현실적인 수단은 경제 논리였다.

사람을 쓰는 것보다 로봇을 쓰는 것이 더 저렴한 환경을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로봇의 효용은 높이면서 가격을 낮추는 건 ID 그룹이 할 일이다. 실제로 보스턴 다이나믹스에서는 저렴한 범용 로봇을 만드는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대신 노동력의 가치를 현실화하는 건 국가나 국회라는 거대한 권력이 움직여야 가능했다.

최저 임금 대폭 인상!

이사회 의석에 노동자 할당제 시행!

파견, 하청 전면 금지!

조금 과하게 말하긴 했지만, 초강성 노조가 주장하는 노동자 정책을 다 받아들여서 시행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인공지능과 로봇의 보급을 가속화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로봇과 인공지능의 보급 확대라는 역설을 낳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비슷한 시각.

-TJB 6시 저녁 뉴스입니다!

-오늘 ID 그룹 유재원 회장이 세종시를 찾았습니다. 정 대통령과의 접견이 있었고 환영 만찬도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자리에서 유재원 회장은 다이아몬드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발표했고, 인공지능, 로봇 등의 빠른 보급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유재원이 청와대에서 저녁을 대접받고 있을 때, TJB라는 대전 지역 방송의 저녁 6시 뉴스의 첫 꼭지로 유재원의 소식이 보도되었다.

더구나 유재원의 소식은 한 꼭지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두 번째 보도에서도 이어졌다.

-또 다른 소식은 유재원 회장이 청와대에 방문하기 전 세종시 시청사에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유재원 회장은 시티OS의 운영실을 방문했는데, 그 이유가 시티OS에서 보고된 대기질 센서의 오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유재원 회장은 시티OS의 센서 오류가 아닌, 실제 오염 물질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재관 시장의 도움으로 검증에 나섰습니다.

지방 방송이긴 해도 공중파라 그런지 전달되는 뉴스는 팩트에 입각했다.

반면 비슷한 소식은 인터넷 뉴스로도 빠르게 퍼지는 중이었다. 특이한 점은 청와대 방문보다 세종시의 시티OS 점검 소식이 더 많이, 더 빠르게 보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그룹의 작품인 시티OS에서 에러가 발견된 건 처음이었기도 했고, 그 에러가 얼마나 치명적이면 회장인 유재원이 직접 방문했냐는 거다. 게다가 인터넷 뉴스에서는 현장 검증을 위해 도로를 잘 달리던 휘발유/디젤 차량 8대를 가져와 배기가스 정밀 검사를 했는데, 오염 물질은 검출되지 않아서 유재원이 망신을 당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러한 인터넷 뉴스는 곧장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언제나 성공 가도만 달렸던 유재원이었다. 그 행보 하나하나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처음으로 치명적인 오류가 제보된 것이었다. 그것도 스마트 시티 사업의 핵심인 시티OS의 오류였다.

그래서일까.

미국 주식 시장이 열리자 ID 그룹의 계열사들은 약세로 돌아섰다. 동시에 세종시에서 시작된 뉴스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도 전해졌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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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뷰어가 바뀐 거 하나만으로, 리플을 다는 게 어려워졌다는 게 최근 확 실감이 되네요.

조아라처럼 독자님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는 곳은 없었는데 말이죠.

독자님의 리플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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